Became a chef of the constellations RAW novel - Chapter 166
166화. 비프 콘소메
콘소메는 고기와 야채를 푹 끓인 수프의 건더기와 불순물을 제거해서 맑게 만든, 일종의 서양식 맑은탕이었다.
그렇기에 그릇 바닥이 보일 정도로 투명하고 맑은 수프 안에 재료의 맛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아름다움과 맛을 모두 잡은 요리라고 할 수 있지.
문제는,
“고, 고기가 없어······!”
우리의 고기 애호가, 고기 러버, 고기 없이는 못 사는 사람, 오죽하면 태종이 ‘내 상 치를 때 쟤한테는 꼭 고기 멕여라.’라고 유언을 남길 정도의 육식맨 세종.
그런 그에게 고기 수프인데 고기가 없다는 건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인 모양이었다.
“어찌하여 이런 요리를 만들었는가······.”
거의 울먹이다시피 하는 세종을 보니까 내가 마치 큰 잘못이라도 한 느낌이네.
나는 쓰게 웃으면서 단종을 슬쩍 보곤 입을 열었다.
“실록을 보니 단종께서 고기를 잘 드시지 못해서 모두 토하셨다는 기록이 있었습니다.”
비위가 약했던 단종은 고기를 거의 먹지 않았다.
열두 살 난 아이가 기본적으로 아버지 문종의 삼 년 상을 치르고 있었기에 고기를 거의 입에 대지 않아 신하들의 걱정을 사고 있었다.
오죽하면 신하들이 제발 고기 좀 먹으라고 해도, ‘환조 대왕의 기일이니 어찌 고기를 먹겠소.’라고 거절했을 정도.
참고로 여기서 환조란, 태조 이성계의 부친인 이자춘이었다.
그러니까 할아버지도 아니고, 증조할아버지도 아니고, 고조할아버지도 아닌, 5대조 현조 할아버지의 기일을 챙긴다고 고기를 먹지 않은 것이었다.
“허허, 그럴수록 더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대왕님. 아무리 몸에 좋은 음식이라도 먹는 사람이 고역이라면 그것은 음식이 아니라 괴로움이 됩니다.”
고기가 없어서 아쉬운 건지, 손자인 단종을 걱정하는 건지 살짝 헷갈리긴 했지만, 세종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제 요리는 먹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만들어집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단종을 향해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실록에는 육즙(肉汁)이라는 음식이 있죠?”
“······그래.”
육즙은 고기에서 나오는 액체가 아니라 요리의 이름이었다.
기름기가 없는 연한 살코기와 껍질을 벗긴 잣을 곱게 다져서 섞고 뭉근하게 데운 물에 오래 삶아 국물을 낸 뒤, 삼베로 걸러 소금과 후춧가루로 간을 한다.
마치 콘소메처럼 고깃국물만 우려내는 조선의 전통 요리였다.
······물론 당시 단종은 그 육즙도 거부했지만.
“콘소메는 육즙보다 조금 더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만듭니다. 그래서 더 맑고 깨끗하죠.”
“그 과정을 보여 줄 수 있나?”
연구 중독자 세종의 눈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어쩐지 물어볼 것 같더라.
나는 주방에서 비프 콘소메의 재료들을 가져왔다.
“우선 이 다진 소고기의 핏물을 빼줍니다. 에녹 씨?”
“네. 사장님.”
나는 천우의 고기 중에서 부드러운 살코기를 다진 뒤, 에녹을 불렀다.
에녹은 손가락을 휙 움직이는 것만으로 [블러드 컨트롤]을 사용해서 소고기의 핏물을 깨끗하게 빼냈다.
원래는 키친 타올로 꼭 짜주면서 빼는 거지만, 에녹이 있으면 참 편하단 말이야.
“그런 다음 채소들을 손질해 줍니다.”
“푸성귀가 들어간다고?”
“네. 그래야 고기의 향을 잡고 감칠맛도 나거든요.”
우리의 고기 러버 세종께서는 고기만 드시고 싶으신 모양이지만, 채소와 고기가 어우러져야 그 맛이 더 잘 사는 법.
나는 채소들을 빠르게 손질했다.
비프 콘소메에 들어가는 채소는 모두 네 가지.
당근, 셀러리, 양파, 그리고 토마토였다.
“당근과 셀러리, 양파는 불란서 음식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육수의 맛 내기 채소로 미르푸아(mirepoix)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보통 당근과 셀러리, 양파의 비율을 1:1:2로 하는 것이 프랑스 요리를 비롯한 양식의 기본 육수 비율이었다.
“미야, 이걸 썰어줄래요?”
“네, 마스터.”
미야가 미르푸아 삼 종 세트를 가늘게 채 썰어서 손질하는 동안, 나는 토마토를 물에 살짝 데친 다음 껍질과 씨를 제거하고 잘게 썰었다.
“마스터, 손질 끝났어요.”
“그러면 제가 어니언 브루리를 할 테니 미야는 머랭을 부탁해요.”
어니언 브루리는 양파를 통으로 살짝 태우듯이 굽거나 물을 살짝 넣고 채 썬 양파를 갈색이 될 때까지 볶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양파를 색이 나게 태우거나 볶아서 요리에 자연스러운 갈색을 내주고 양파의 자연적인 단맛을 끌어올려 주는 과정이었다.
내 경우에는 색을 낼 다른 방법이 있었기에 단맛만 끌어올리려고 채썬 양파를 갈색으로 볶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리고 내가 양파를 볶는 동안, 미야는 천둥오리의 알을 깨서 흰 자만 분리했다.
그리고,
“야압!”
거품기를 현란하게 쳐서 휘핑을 시작했다.
과자나 케이크를 만들 때 머랭은 필수 재료였기에, 미야는 숙달된 자세와 방법으로 능숙하게 머랭을 만들었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설탕을 넣고 만드는 머랭이 아닌, 순수한 흰자로만 만드는 머랭이라는 것.
지금 과자를 만드는 것도 아닌데 왜 머랭을 만드냐고?
“이 흰자 거품이 일종의 여과 기능을 해줄 겁니다.”
“여과?”
“네. 고깃국의 불순물을 이 머랭이 모두 빨아들이게 되거든요.”
나는 두툼하게 부풀어 오른 머랭에 핏물을 뺀 고기와 채 썬 미르푸아, 어니언 브루리, 그리고 다진 토마토를 거품이 꺼지지 않게 섞었다.
원래 비프 콘소메는 머랭까지 치지 않고 그냥 계란 흰 자만 섞어서 바로 비프 스톡에 끓인다.
그렇게만 해도 내용물이 끓으면서 거품이 자연스럽게 생기거든.
하지만 머랭을 쳐서 더 풍부한 거품을 미리 만들어 놓으면 머랭 거품이 스펀지처럼 불순물을 깨끗하게 빨아들여 더 맑고 깨끗한 콘소메를 만들 수 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끓여줄 겁니다.”
나는 머랭과 섞은 재료들을 냄비에 담고 부엌으로 들어가 곰솥을 하나 들고 왔다.
“이건 사골 국물입니다. 정확히는 비프 브라운 스톡이죠.”
소의 뼈와 힘줄을 불에 한 번 구운 뒤 물에 오랫동안 끓이면 짙은 갈색빛을 띠는 비프 브라운 스톡이 완성된다.
내가 양파를 태우지 않고 볶는 선에서 끝낸 이유가 바로, 이 비프 브라운 스톡 때문이었다.
사실 제대로 비프 스톡을 만들려면 마찬가지로 미르푸아와 토마토 페이스트를 넣어야 했지만, 그러면 불순물이 많아지기에 패스했다.
지금은 맑은 콘소메를 만들 거였으니까.
“이 국물이 콘소메 수프의 기본이 됩니다.”
나는 소뼈와 힘줄에서 진하게 우러나온 육수, 비프 스톡을 냄비에 옮겨 닮았다.
그러곤 마정석 화로의 불을 켜서 재료와 비프 스톡을 함께 끓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기 냄새를 잡아주고 식욕을 북돋아 줄 향신료도 같이 넣어주었다.
“자, 보시면 머랭이 국물 위로 둥둥 떠 오르죠?”
열에 익으면서 머랭이 떠오르기 시작하자 나는 머랭의 가운데를 국자로 뚫어주었다.
이렇게 해주지 않으면 비프 스톡이 끓으면서 머랭이 넘치기 때문에 숨구멍을 내준 것이었다.
그리고 기름과 머랭에 다 흡수되지 않는 불순물을 저 구멍을 통해서 걷어내야 하거든.
내가 그렇게 계속 은근한 불에 재료를 끓이면서 불순물과 기름을 국자로 건져내고 있자, 그 모습을 본 세종이 감탄을 터뜨렸다.
“단순한 외형에 비해 정말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군.”
처음에는 간장을 탄 물인 줄로만 알았다며 세종이 혀를 내둘렀다.
나는 그 말에 피식 웃으면서도 계속 불순물을 걸러냈다.
“최대한 맑고 깨끗한 국물을 얻으려면 정성이 필수죠. 손님에게 최대한 불순물 없는 순수한 맛을 전해드리고 싶으니까요.”
“자네의 요리에 대한 정성은 경탄을 자아내게 하는군.”
“손자에게 좋은 걸 먹이고 싶어 하는 할아버지의 마음에 비하겠습니까. 저는 그저 그 마음을 조금 따라 할 뿐입니다.”
“허허허. 말도 이쁘게 하는구나.”
이건 세종에게 하는 아부가 아니었다.
세상에 어떤 할아버지가, 어떤 부모가 자식에게 깨끗하고 좋은 걸 먹이고 싶지 않겠는가.
나는 그 마음을 조금 거들어줄 뿐이었으니까.
“······.”
단종은 나와 세종의 말을 듣고 있는 건지 아닌 건지는 몰라도 내가 국물을 맑게 하는 과정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머랭이 불순물을 어느 정도 걸러낸 뒤에 나는 미야가 준비해준 삼베 천 위에 끓이고 있던 비프 콘소메를 부었다.
“이렇게 한 번 더 면보에 거르면 맑고 깨끗한 국물이 나오는 겁니다.”
앞서 나갔던 비프 콘소메는 요리 과정을 보여 주는 동안 식었기에 빼고 나는 새로 끓인 따뜻한 비프 콘소메를 다시 세종과 단종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러자 처음으로 단종이 아깝다는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저기에도 공이 꽤 많이 들었을 텐데, 음식은 버리는 건가?”
“콘소메는 그냥 그대로 먹을 수 있는 수프이기도 하지만, 다른 요리에 육수로 쓰일 수 있습니다. 버리지 않고 재활용할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면 다행이다.”
아무래도 내가 정성들여 콘소메 수프를 끓이는 과정이 그에게 퍽 인상 깊었던 모양이었다.
단종의 물음에 대답해준 나는 웃으며 어서 세종과 단종에게 수프를 먹을 것을 권했다.
“드셔보세요.”
“그럼 맛있게 먹도록 하······지.”
세종이 놀라서 잠시 말을 더듬은 건, 단종이 세종보다 먼저 수저를 들고 콘소메를 입에 가져다 댔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나도 많이 놀랐다.
아까 ‘벌집 베리 요거트 타락죽’은 독이 들어가 있을까 봐 손도 대고 싶지 않아 했던 단종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단종은 비프 콘소메를 한 입 먹고는 입가를 올리며 만족스러운 표정까지 짓고 있었다.
“그윽하구나. 맑고 투명한 것이 속을 속이는 것 없이 진실되고 너의 말대로 소의 진한 맛이 그대로 담겨있다.”
······단종 맞아?
지금까지 과묵했던 단종의 입에서 줄줄 칭찬의 말이 흘러나온다.
거기다 저 밝은 웃음까지.
나 말고도 세종 역시 놀라고 있었다.
“무엇보다 너의 정성이 보이는 음식이라 더 뜻이 깊다. 아주 맛있는 육즙, 아니 비프 콘소메였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내가 최상급의 칭찬에 감사를 표하자,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 단종이 배에다 손을 가져다 댔다.
“이상하게도 이 요리를 먹으니 더 고기가 먹고 싶어졌다.”
[당신이 만든 ‘비프 콘소메(영웅급)’에 특수효과가 부여됩니다.] [특수효과 [입맛 촉진]. [비위 강화], [양기 보충]이 적용됩니다.]고기를 거의 입에도 대지 않던 단종이 고기를 달라고 하다니.
정말 놀랄 노 자였다.
특수효과인 [비위 강화]와 [입맛 촉진]의 영향인 모양이었다.
우리 단쪽이가 달라졌어요!
놀란 건 나만이 아닌지, 세종 역시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단종에게 물었다.
“홍위야. 그 말 진심이더냐?”
“네, 할바마마. 소손, 지금 제 이로 고기를 씹고 싶어졌사옵니다.”
단종의 말에 세종이 기뻐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내게 물어왔다.
“참으로 기쁘구나.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아느냐?”
“소고기는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비위를 강하게 해줍니다. 그리고 채소의 깊은 감칠맛과 단맛이 잠들었던 입맛을 깨도록 해준 걸 겁니다.”
나는 자신 있는 표정으로 세종의 물음에 답했다.
애초에 오늘 요리 코스를 짤 때, 단종이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특수효과를 노리고 비프 콘소메를 만든 것이었다.
그리고 그 효과는 아주 잘 먹히고 있었다.
“그렇구나. 홍위 역시 내 손자니 당연히 고기를 좋아할 터. 허허, 이보게, 어서 고기를 내주지 않겠는가?”
“네. 금방 여기서 해드리겠습니다.”
나와 미야는 서둘러 다음 요리를 할 준비를 했다.
어차피 만들어서 와도 세종이 물어볼 터였고, 요리를 만드는 과정이 단종에게도 좋은 자극이 되는 것 같아서 바로 앞에서 실시간으로 조리를 할 생각이었다.
“이번에는 두 분이 모두 즐기실 수 있는 우리 민족의 전통 고기 요리, 맥적(貊炙)을 할 겁니다.”
양젖으로 속을 보호하고 소고기로 입맛을 돋웠으면 역시 고기구이는 돼지 아니겠어?
내 말에 세종이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오, 돼지고기로구나!”
“······돼지고기라니.”
반면, 찡그려지는 단종의 표정.
돼지고기라는 말에 급격히 실망한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찌 백성도 먹지 않는 그런 고기를······.”
조선 초기에 돼지고기는 극심한 흉년이 들지 않으면 제사상에도 올라가지 않고 가난한 백성들도 피해 가는 일종의 기피 음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시절 사람이었던 단종이 저런 표정을 짓는 것도 당연한 일.
하지만 나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단종을 향해 말했다.
“돼지고기, 제대로 먹으면 얼마나 맛있게요?”
두고 봐. 돼지의 진가를 알려주겠어.
맥스파이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