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chef of the constellations RAW novel - Chapter 167
167화. 맥스파이시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강산에 단군 할아버지가 터 잡으시고,
홍익인간 뜻으로 나라, 그러니까 고조선을 세운 뒤 대대손손 훌륭한 인물도 많았지만, 고조선은 한의 무제에게 정벌 당해 멸망하고 만다.
그런 고조선의 근간이 되던 민족 중에 예족과 맥족이 있었는데 이를 합쳐서 예맥족이라고 불렀다.
고조선 멸망 후, 예족은 부여, 동예, 옥저 등의 나라를 세웠고 맥족은 고구려를 세우고 백제의 건국 세력 중 일부가 되기도 했다.
이들 예족과 맥족, 그리고 고조선의 후예 중 한반도 남부의 원주민과 융합한 한족이 초창기 한민족의 구성이었다.
······라는 추측에 가까운 고대 한국사의 이론 일부를 내가 입 아프게 말하고 있는 이유는 하나였다.
“지금부터 제가 만들 맥적은 바로 이 맥족의 후예인 고구려 때부터 내려온 양념 돼지 직화 구이를 뜻합니다.”
“예맥에 대한 것은 내 익히 알고 있었으나, 돼지고기라니. 신선하구나.”
“돼지고기······.”
세종이 신기해하고 단종이 꺼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알고 있습니다. 두 분이 이 땅에 계실 때는 돼지가 몹시 천한 고기였죠?”
돼지는 고기를 먹기 위해 기르는 가축 중에서 까다롭기 그지없는 동물이었다.
우선 풀만 뜯어 먹어도 먹이가 해결되는 말이나 소, 그리고 약간의 곡물 정도만으로도 알을 낳아주는 닭과 달리 돼지는 먹을 것이 사람과 겹쳤다.
돼지가 먹는 풀은 사람들이 먹는 풀이었고 곡물을 먹이자니 사람 먹을 곡물도 없었다.
괜히 제주도에서 똥돼지라고 하면서 사람 인분을 먹인 게 아니라니까.
먹일 게 없으니 돼지에게 똥이라도 먹여야 했던 거였다.
먹이만 골치가 아프냐? 하면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돼지는 습기를 좋아해서 항상 돼지우리에 축축한 진흙을 준비해야 했고 토종 돼지는 성체가 되어봤자 전체 무게가 30kg도 되지 않았고 고기만 놓고 보자면 더 적어서 먹을 것도 없었다.
즉, 토종 돼지는 가성비가 극악인 가축이었다.
심지어 소나 말은 농사와 전쟁이라는 주된 사육 목적이 있었고 닭은 알이라도 낳아줬지, 돼지는 부수적인 도움도 되지 않는 말 그대로 음식만 축내는 골칫거리였다.
나는 그 점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하면서 세종과 단종에게 현재의 돼지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말해주었다.
“현재 개량된 돼지가 100kg의 무게에 고기만 90kg이나 나옵니다. 농사 기술과 사료 기술이 발달해서 먹일 것도 많고요.”
“그게 정말인가?”
내 설명에 세종의 눈이 번쩍 떠졌다.
하지만 세종은 곧 아쉬움에 찬 표정으로 수염을 쓰다듬으며 한탄을 내뱉었다.
“허허, 내가 조선의 임금일 때 그런 돼지가 나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꼬.”
“그러고 보니 대왕님께서도 돼지를 좋아하셨다는 기록을 보았습니다.”
“암. 돼지는 좋은 가축이지.”
세종이 얼마나 돼지고기를 좋아했냐면, 중국에 역관 이흥덕을 보내 양돈 기술을 배워오게 한 뒤, 잘 배워오자 그를 돼지와 닭을 기르는 분예빈시의 감독으로 삼았다.
그가 워낙 양돈과 양계를 잘해서 세종의 예쁨을 받았기에 중인 신분인 역관이 정3품 당상관 이상의 자리까지 올라갔을 정도였다.
거기다 세조 때 탐관오리라고 탄핵을 받을 때도, 돼지를 잘 기른 공으로 형벌을 감형받기까지 했다.
아무튼, 세종은 그 정도로 돼지고기를 좋아했다.
“내 어의 전순의가 이르길, 내 병에는 돼지고기를 이용한 식치가 중요하다 했지.”
어의 전순의가 [식료찬요]를 써서 퍼뜨린 식치(食治)는 먹는 것으로 병을 치료하고 예방한다는 의미로 할아버지가 쓴 [약선구급방] 일맥상통하는 개념이었다.
실제로 할아버지가 [약선구급방]을 쓸 때 전순의의 [식료찬요]를 많이 연구하셨다고 했다.
“나는 소갈(당뇨)이 심해 하루에 물을 몇 말이나 마시고 소변을 자주 봐야 해서 몸의 기운이 허약해졌지. 그럴 때마다 전순의는 삶은 돼지의 위와 된장 음료를 처방해 갈증을 달래게 했네.”
“본초강목에 이르기를 돼지의 위는 성질이 약간 따뜻하고 맛이 달며, 갈증을 멎게 한다고 했으니까요.”
“그렇지. 자네도 공부를 꽤 했군 그래?”
“요리에 관해서는요.”
세종의 칭찬에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 외에도 몸이 붓는 부종과 배에 가스가 차는 창만에는 잘게 저민 돼지 간을 된장, 생강, 산초 등의 양넘을 넣고 익힌 음식으로 먹으면 좋죠.”
“맞네. 또 소갈로 눈이 침침해져 안질이 왔을 때는 껍질을 벗긴 돼지 간과 뿌리를 제거한 총백(흰 파 뿌리), 그리고 계란 3개를 된장에 풀어 끓인 국으로 먹으면 좋다고 하지.”
세종은 신이 나서 돼지고기 식치법을 줄줄 읊어댔다.
좋지 않은 식습관과 과로로 인해 몸이 망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고기를 포기하지 못한 세종에게 돼지고기를 처방해준 전순의의 처방은 한 줄기 빛이나 다름없었을 터.
실제로 돼지고기에는 그런 효과가 있고 또한 효과도 보았을 테니까.
······물론 그렇다고 너무 많이 먹었을 테니 비만이 왔을 거고 당뇨의 근본 원인인 비만 때문에 큰 차도는 없었겠지만.
“이렇게 훌륭한 돼지를 신하들은 키우기 어렵다는 말과 하품의 고기라고 모두 반대를 했다네. 다들 보는 눈이 없어서야.”
세종은 혀를 차며 예전의 신하들을 탓했다.
“궁에 고기를 진상하겠다고 백성들이 농번기에 산과 들에 노루와 사슴을 사냥하러 나간다면 누가 농사를 짓는단 말인가? 거기에 거리가 멀기에 고기는 십중팔구 상하기 마련이지.”
말이나 소는 군사나 농업 등 그 쓰임새가 있기에 함부로 도축해서는 안 되었다.
“그러니 궐에서 돼지를 키워 그 고기를 먹는다면 몸에도 좋고 백성들의 고난도 없어지지 않겠는가?”
“맞는 말씀입니다.”
백성을 사랑하는 세종의 말은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다.
그 시절 돼지가 덩치가 작아서 가성비가 좋지 않고 기생충이 몹시도 많았다는 걸 제외하면 말이지.
“내 그리하여 성계육이라는 오명을 안고 있는 돼지를 널리 퍼뜨리려 하였거늘!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세운 이성계가 돼지띠라서 고려의 옛 수도, 개성 사람들은 망한 고려와 최영 장군을 기리기 위해 돼지고기를 성계육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먹을 때마다 이씨 왕조에 대한 원망을 풀었다나?
세종이 살아있을 때는 아직 개성 사람들의 조선에 대한 반발이 남아있었을 테니, 돼지고기를 궁중에서 먹겠다고 한 세종의 결정에 신하들이 반대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할바마마, 아무리 그래도 그것은 좀······.”
저거 봐. 과묵하던 단종도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잖아.
그만큼 세종의 돼지고기 사랑이 깊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면 역사 공부는 이쯤 했으니, 고기를 구워볼까요?”
나는 전에 에녹이 잡아 왔던 블러디 보어의 목살을 꺼내왔다.
“원래는 고기에 칼집을 내고 두드려서 힘줄을 끊고 부드럽게 만들지만,”
이번에는 특별한 도구를 쓸 생각이었다.
나는 품에서 [묠니르의 장난감 레플리카(전설급)]를 꺼냈다.
윤진하랑 같이 던전 갈 때 써보고는 깜짝 놀라서 봉인할까 했던 망치였지만, 특별히 전격 스킬을 쓰지 않으면 이게 또 훌륭한 연육 망치가 된단 말이지.
쿵! 쿵!
나는 가볍게 힘을 주어 돼지 목살을 내리쳤다.
묠니르 끝에 번개가 잘 퍼지라고 뾰족한 침이 촘촘히 나 있어서 연육에 딱 알맞은 도구였다.
토르가 봤다면 묠니르로 뭐 하는 거냐고 황당해했겠지만, 몬스터를 번개로 튀겨 죽이는 것보다 이렇게 연육 망치로 쓰는 게 더 훌륭한 사용법 아니겠어?
그렇게 충분히 부드럽게 만든 고기를 미야에게 건네고 나는 맥적 구이의 소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3세기경에 쓰인 중국의 ‘수신기(搜神記)’에선 고구려의 맥적이 장과 마늘로 조리해서 불로 직접 굽는다고 했고, 이미 조리되었기에 따로 장을 찍어 먹지 않아도 된다고 했습니다.”
오래전의 기록이었기에 언급되는 장이 현대의 된장이나 간장은 아닐 터였다.
아마 아주 오래된 형태의 막장일 게 분명했다.
하지만 그 막장까지 재현하기보다는 먹는 사람의 입맛을 생각해야 하는 법.
나는 된장에 더 익숙할 세종과 단종을 위해 된장을 베이스로 양념하기로 했다.
“된장은 돼지의 잡내를 잡아주고 감칠맛을 더해주죠.”
된장과 다진 파, 다진 마늘, 그리고 던전 생강즙과 단맛을 주는 던전 보석 꿀 조금, 마지막으로 간을 맞춰줄 간장과 던전산 암염을 넣고 들기름을 살짝 넣어주면 양념 완성이었다.
그리고 양념을 고기에 골고루 발랐다.
그러자 된장 양념 냄새가 가게 가득 퍼지기 시작했다.
꼬르륵.
양념을 잘 섞고 있자, 갑자기 어디선가 배고프다는 알람을 울려왔다.
우리 직원들은 아닐 테고, 세종인가?
고개를 들어보니 단종이 얼굴을 붉히며 배를 잡고 있었다.
콧구멍이 벌름거리는 게 양념의 냄새를 맡고 배가 신호를 보낸 모양이었다.
먹을 걸 거부하던 단종의 그런 모습에 세종이 흐뭇해져서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벌써 고소한 냄새가 나는구나.”
“냄새가 참 좋습니다, 할바마마.”
단종은 얼굴을 붉히면서도 양념을 바른 고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고로 한국인이라면 된장 냄새에 반응하지 않을 수가 없죠.”
그렇게 말한 나는 양념을 묻힌 고기가 숙성될 때까지 시간을 체크했다.
“미야, 30분이 지나면 고기를 구워줘요.”
“네, 마스터.”
고기를 굽는 건 세심한 작업이지만, 더 세심한 과자도 만드는 미야에게 어려울 리 없었다.
나는 그사이, 주방으로 들어가 오늘의 하이라이트 재료를 준비했다.
“돼지고기를 구워 먹는데 밥이 빠질 수야 있나.”
그리고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밥은 보통 밥이 아니었다.
“이게 오늘의 하이라이트가 될 요리지.”
나는 오늘 했던 그 어떤 요리보다 정성을 기울여서 밥을 지었다.
* * *
“크으, 맛이 참 기똥차구나.”
“할바마마, 송구하오나 언행이······.”
“그런 딱딱한 소리하지 말고 너도 어서 먹어보려무나. 돼지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고 고소하구나.”
“정말입니다. 정말 맛있습니다.”
내가 밥을 다 짓고 오픈 키친 바로 나갔을 때는 이미 맛있게 구워진 맥적 구이를 세종과 단종이 맛을 보고 있었다.
“맛은 괜찮으신가요?”
“속된 말로 끝내주는군.”
“할바마마······.”
하하, 고기 러버인 세종이 저렇게 좋아할 정도면 맛이 아주 좋은 모양이었다.
“돼지고기는 삶아도 맛있고 볶아도 맛있지만, 제일 맛있는 건 직화로 굽는 거죠. 거기에 된장 양념까지 같이 구워져서 맛이 더 좋을 겁니다.”
고기를 구우면 일어나는 마이야르 반응, 던전 보석 벌꿀의 당이 열을 받아 일어나는 캐러멜라이징, 거기다 직화로 입혀지는 불맛까지.
맛이 없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맥적 구이였다.
그러니 고구려 때부터 지금까지 그 맥이 끊기지 않고 내려온 거 아니겠어?
“이런 맛있는 요리를 임금인 내가 먹지 못했다니, 아쉽구나.”
“정말 그렇습니다, 할바마마.”
세종과 단종이 한탄했지만, 궁중에서 맥적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었다.
맥적에 쓰이는 고기는 돼지고기만이 아니었으니까.
“설야멱적(雪夜覓炙)이나 너비아니도 결국 이 맥적에서 유래된 음식이니 못 드셔본 건 아닐 겁니다.”
양념한 소고기를 굽다가 반쯤 익으면 찬물에 잠시 담갔다가 센 숯불에 다시 구워 먹는 설야멱적.
극한의 온도를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하는 덕분에 고기가 연하고 눈 오는 겨울밤에 먹기 좋다 하여 설야멱적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 설야멱적은 고려 때 개성의 명물이었는데 조선이 되면서 궁중 요리인 너비아니로 변했다.
쓰이는 고기는 다르지만, 맥적은 계속 이어져 내려오며 우리 민족의 뱃속으로 들어갔다는 소리.
“그럼, 이제 고기와 밥도 같이 드셔야죠.”
나는 그렇게 설명하며, 들고 왔던 드래곤스톤 돌솥의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그 순간, 고기를 즐겁게 먹고 있던 단종이 눈을 크게 떴다.
“이, 이건······.”
“네, 맞습니다. 어수리 나물로 만든 어수리 나물밥입니다.”
단종과 정순왕후의 추억이 서린 어수리 나물을 넣고 만든 어수리 나물밥이 돌솥에서 그 향과 자태를 뽐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밥상의 희로애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