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chef of the constellations RAW novel - Chapter 169
169화. 마리아주
“단종께서 방에서 나와서 이제 태백산신의 본분으로 돌아가셨다고요?”
“그래. 그렇다니까.”
영업이 끝난 ‘연성이네’에서 내가 해준 맥적 구이를 먹고 있는 건 다름 아닌 황희 정승.
황희 정승은 쉴 새 없이 젓가락을 놀리며 잘 익은 맥적 구이를 입으로 가져갔다.
“덕분에 영양위 정종도 한시름 놨지, 뭐야. 단종께서 일을 안 하시니 소백산신인 그 친구가 태백산신의 일까지 했거든.”
단종과 정종의 비참한 죽음 뒤에, 백성들은 두 사람이 태백산과 소백산의 산신이 되었다고 믿고 제사를 지내왔다.
실제로 그 둘이 태백산신, 소백산신이 맞기도 했고.
아무튼, 단종이 방에서 나와 다시 주변과 어울리고 제자리를 찾았다니 좋은 일이네.
“크, 거참, 고기 맛있다. 주상께선 이걸 혼자만 드셨단 말이지?”
단종의 소식을 알리러 세종이 보냈다고 가게로 온 황희 정승의 안색이 영 좋지 않기에 간단하게 요리해 준 건데, 지금은 희희낙락 고기를 먹고 있었다.
“이렇게 좋아하실 줄 알았으면, 소고기로 설야멱적을 해드릴 걸 그랬습니다.”
“아니야. 돼지가 나아. 소는 불쌍해서 먹지 못하겠어······.”
갑자기 우울한 표정이 된 황희가 관복의 소매 끝으로 눈물을 찍어냈다.
“하루 종일 일만 하고 일만 해도 죽을 때까지 쉬지 못하는 것이 소 아니더냐. 그런데 죽어서도 고기로 먹혀야 한다니. 어이구, 불쌍한 누렁소. 죽어서도 넌 쉬질 못하는구나.”
······저 이야기가 소 이야기일까, 아니면 죽어서도 세종의 신하로 살아가는 본인의 이야기일까?
내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보자 황희는 더 서럽게 울어댔다.
“그 농부는 그래도 누렁소 검은소한테 들리니 조용히 속삭이기라도 했지. 주상은 그런 것도 없어! 그냥 면전 앞에다 대고 일! 일! 일!”
눈물을 흘리던 황희가 이번엔 고통의 절규를 내질렀다.
“난 차라리 서운해도 좋으니 일 못 하는 검은소가 되고 싶었다고!!”
어쩌겠습니까.
본인이 그렇게 일을 잘하신 게 죄지요.
그래도 저렇게까지 힘들어하는 걸 보니 좀 안 되어 보이기도 하고······.
“젠장, 그거 뇌물 좀 얻어먹었다고 이리 괴롭히시나.”
······그러고 보니 청백리로 유명한 것과 달리 실제로는 뇌물도 받고 처남, 사위, 자식들 모두 사고를 쳐대서 그거 수습하려고 권력도 많이 썼다지?
심지어 막내아들은 계유정난에 협력했다고도 하고.
나 같아도 사직을 윤허하지 않았겠다.
죄를 지었으면 죽을 때까지 일해서 죗값을 치러야지.
아니, 이미 죽은 뒤에도 일하고 있는 걸 보니 다 갚지도 못한 모양이다.
“내가 서러워서 살겠나. 혹시 술은 없는가?”
“저희 업장에서 술은 윤허하지 않,”
“뭬야?”
“는 게 아니고, 성좌나 권속분들이 드실만한 술이 없습니다.”
어휴, 나도 모르게 속으로 생각하던 게 튀어나왔네.
마력이 깃든 술이 없다는 내 말에 황희는 이럴 때야말로 세종 눈을 피해 한잔해야 하는데, 라며 긴 탄식을 내뱉었다.
술이라.
사실 몇 번 술을 빚어볼까 생각은 했었지.
하지만 그때마다 재료나 도구가 부족해 시도를 포기했었다.
뭐, 지금까지는 요리만으로도 성좌 손님들을 충분히 만족시켜드렸으니까.
그래서 아직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거였기도 했고.
“여하튼 나는 주상의 명에 따라 소식을 전했으니 이만 일어나 보겠네.”
“아, 대감님, 이걸 단종께 가져다주시겠습니까?”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는 황희에게 보자기에 싼 꾸러미 하나를 건넸다.
“이게 뭔가?”
“백설기입니다.”
원래는 코스 요리 마지막에 디저트로 넣을까 말까 하다가 뺀 것이 백설기였다.
단종이 영월로 유배 가는 길에, 백성들이 그에게 허기를 달래라고 얼마 없는 쌀을 찧어 만든 백설기를 바쳤다고 한다.
방구석 폐인에서 벗어나는 게 우선이었기에 백성들까지 생각하는 게 부담이 될까 뺐던 건데, 이제 훌륭히 태백산신으로 복귀했으니 드려도 될 것 같았다.
“꼭 백성들을 아끼는 산신님이 되시길 빌겠다고 전해주세요.”
“내 그러지. 걱정하지 말게. 그런데······.”
황희는 보자기를 챙기고는 잠시 나를 못마땅하게 쳐다보았다.
내가 무슨 일인가 싶어 그를 보자,
“떡을 만들 수 있으면, 거 술도 좀 만들어주지. 떼잉.”
라고 중얼거리곤 가게를 떠나버렸다.
······확, 세종대왕님께 꼰질러 버려?
그러나 일터로 복귀하는 누렁소의 뒷모습을 보니 이미 그것 자체로 벌인 것 같아 내가 참아주기로 했다.
* * *
“그나저나 진짜 술을 한 번 빚어볼까?”
황희가 떠난 뒤, 나는 [도원향]의 내 집에서 곰곰이 생각에 잠겨있었다.
“사실 술 달라고 했던 손님이 황희 대감뿐인 건 아니었으니까.”
술 좋아하기로 이인자라면 서러운 토르나 팔선들, 그리고 서왕모나 다른 성좌들도 전부 술이 없냐며 아쉬워하긴 했다.
그럴 만도 한 게 맛있는 음식과 술은 뗄 수 없는 궁합이니까.
그 누구보다 미식과 와인을 사랑하는 프랑스에는 마리아주(marriage)라는 단어가 있을 정도였다.
마리아주란 ‘결혼, 결합’이라는 뜻으로 음식과 술의 궁합을 나타내는 용어였다.
그만큼 맛있는 음식과 술은 떨어질 수 없는 소리라는 거지.
“와인만 해도 음식과의 궁합이 수백, 수천 가지가 되니까.”
크게 보면 붉은 살의 고기를 먹을 때는 레드 와인, 생선이나 가금류, 해물을 먹을 때는 화이트 와인, 케이크나 달콤한 과자랑 먹을 때는 포트와인 같은 디저트 와인을 먹는 것에서부터,
각종 음식의 종류에 따라 적합한 와인을 알고 추천하는 직업인 소믈리에까지 있을 정도였다.
와인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맥주, 브랜디, 위스키, 럼, 동양으로 와서는 막걸리, 청주, 사케, 고량주 등등 다양한 술은 그 짝꿍이 되는 음식이 있어 왔다.
오죽하면 삼쏘(삼겹살에 소주), 치맥(치킨에 맥주)이라는 단어까지 유행했을까.
“그런 점을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내 식단을 보면 조금 아쉽긴 했네.”
특히 요즘처럼 코스 요리로 ‘신야식당’을 운영하고 있을 땐 더더욱 좋은 술이 아쉬웠다.
단품 요리일 때 술이 함께 나가면 좋은 거지만, 코스 요리에서는 술이 필수니까.
“여러분 생각은 어때요? 술이 있으면 잘 팔릴까요?”
내 물음에 천오가 손뼉을 치면서 좋아했다.
“당연히 찬성이지. 사실 그동안 술이 없어서 섭섭했다고.”
누가 서왕모의 반도연에서 쓸 술 훔쳐먹은 사람 아니랄까 봐 바로 좋아하는 거 봐라.
내가 피식 웃고 있자 천오가 당황해서 손을 내저었다.
“에이, 나도 철들었는데. 이제 술은 안 훔치지. 대신 화과산 원숭이들의 원숭이술 비법을 알려줄게.”
“오호, 원숭이술?”
“그게 어떻게 만드냐면 말이지······.”
놀랍게도 최초의 술은 원숭이들이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나무 옹이 같은 곳에 과일을 보관해두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비가 내려 물이 고이고 과일이 발효되면서 자연스럽게 술이 되었다는 소리.
실제로 야생 원숭이 중에서 발효된 과일을 먹고 취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도 한다.
그렇게 내가 천오가 말해주는 원숭이술 비법을 메모하고 나자 에녹이 난처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저는 술을 먹어보질 않아서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한 번도 마셔본 적이 없어요?”
“네. 제가 살던 시절에는 술이 아직 발명되기 전이라······.”
“아, 그러고 보니 그렇죠.”
성경 속에서 최초로 술이 등장하는 건, 노아가 홍수가 끝나고 다시 농사를 시작하면서 포도밭을 만들었을 때였다.
처음 포도주를 마시고 취한 노아가 장막 안에서 벌거벗고 해롱대고 있으니 차남인 함이 그 모습을 보고 조롱했다가 저주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었다.
그러니 성경에 따르면 노아 이전에 태어났던 에녹이 포도주를 마셔봤을 리 없었다.
“포도주도 나쁘지 않겠네요.”
원숭이술과 마찬가지로 포도도 자연적으로 술이 되는 특별한 과일이었다.
포도 자체가 달콤한 과일인 데다, 포도 껍질에는 자연 효모가 들어있어, 포도를 으깨기만 해도 발효가 시작된다.
그렇게 자연적으로 발효된 포도를 방치하면 술이 초기의 포도주가 된다.
물론 현대의 포도주는 여러 가지 공정이 더 추가되지만 말이야.
“미야는요?”
“술은 역시 맥주죠.”
누가 게르만의 여신 아니랄까 봐 미야가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맥주가 얼마나 좋냐면, 만들기도 쉽고 배도 불러요. 보리나 호밀을 쓰기 때문에 비싼 포도나 밀을 소모하지 않아도 되죠.”
신이 나서 미야가 맥주어천가를 불렀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원숭이술이나 포도주 같은 과실주에 비하면 더 복잡했지만, 만드는 것 자체가 어려운 술은 아니니까.
특히 기후 때문에 포도를 키우기 어려운 유럽 북부에서는 와인보다 사과주나 맥주가 더 선호되었다.
“사과주라고 하니깐 아펠바인(Apfeltwein)도 괜찮겠네요. 옛날엔 종종 담가 먹기도 했어요.”
나는 미야가 불러주는 사과주의 레시피도 적었다.
“사장이 추천하는 술은 없어?”
“나?”
나는 천오의 물음에 살짝 고민에 잠겼다.
서민의 술이자 국밥에 잘 어울리는 건 소주였지만,
“아무래도 소주를 코스 요리에 내긴 좀 그렇지.”
단품 요리에 내면 모를까, 서민의 고단함을 달래주는 감성적인 측면을 제외하고는 주정과 인공 감미료의 결합인 소주는 별로 좋은 술이 아니다.
특히 마리아주 적인 측면에서는 몇몇 음식을 제외하곤 빵점이다.
“역시 막걸리나 청주려나.”
쌀 등의 곡물로 빚은 탁주, 막걸리.
그리고 그 막걸리를 가만히 놔두면 앙금이 가라앉고 맑은 윗술이 뜨는데 이걸 청주라고 했다.
술이 귀한 우리 조상님들은 양이 많은 막걸리는 평소에 먹고, 깨끗하고 양이 적어 귀한 청주는 제사상에 올리곤 했다.
용도에만 차이가 있는 건 아니었다.
“기름진 음식과 함께 먹을 때는 막걸리가 좋고, 담백하거나 깔끔한 음식과 먹을 때는 청주가 좋지.”
비 오는 날 지글지글 익힌 파전에 막걸리는 끝내주지.
그것뿐이게? 탱글탱글한 횟감과 함께 청주 한 잔이면 하루 시름도 잊게 된다.
아, 생각하니깐 벌써 침이 고이네.
내가 그렇게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님에도 이런 반응인 걸 보면 역시 술은 맛있는 음식과 잘 어울리는 환상의 짝꿍이라니까.
거기다,
“기왕 만드는 거, 잘 만들어서 팔아볼까?”
술은 발효와 숙성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소량으로 만드는 게 더 힘들다.
그래서 한 번에 만들 때 대량으로 만들어 보관하는 게 좋은데, 아무리 ‘연성이네 신야식당’에서 술을 많이 팔아도 그걸 다 소모하진 못할 거란 말이지.
기왕 만드는 김에 식당에서만 쓰는 게 아니라 성좌 마켓에서 팔면 꽤 괜찮은 장사가 될 것 같았다.
“성좌 마켓에 팔려면 일단 문의부터 해봐야지.”
누구에게 문의하냐고?
당연히 우리의 상업의 신, 헤르메스였다.
나는 가게로 돌아가 헤르메스의 신상을 통해 헤르메스에게 연락했다.
– 술을 만들어 팔겠다고?
“네.”
성좌들이 술을 좋아하니 당연히 잘 팔리겠지.
잘 팔리면 상업의 성좌인 헤르메스도 좋아할 거고.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 이런, 난 좀 말리고 싶은데······.
“네?”
– 그쪽은 옛날부터 확고한 카르텔이 있어서 말이야.
술 만드는 데 카르텔이 있다고?
아니, 이게 무슨 금주법 시대 알 카포네도 아니고.
내가 당황해하자, 헤르메스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 디오니소스를 비롯한 술의 신들이 그쪽을 꽉 잡고 있거든. 내 형제라지만 걔는 참······, 광기가 있다고 해야 하나.
그리스 신화 속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
단순한 술의 신이 아니라 광기의 신이기도 했다.
술에 취하면 사람의 광기가 드러나는 법이니 이해는 하는데, 헤르메스가 이렇게 말할 정도일 줄이야.
– 일단, 내가 그쪽이랑 이야기해볼게.
헤르메스는 그렇게 말하고 연락을 끊었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당황한 표정으로 [도원향]에 모인 성좌들을 볼 수밖에 없었다.
‘디오니소스 배 양조 올림픽’
술 빚는 신들이 모여서 대회를 연다고?
그것도 내 아공간에서?
대체 왜 일이 이렇게 된 거지?
천하제일 양조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