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chef of the constellations RAW novel - Chapter 172
172화. 미인 벌꿀 술
“벌꿀 술을 만들려면 좋은 벌꿀부터 구해야겠죠?”
헤르메스는 미안하지만, 자신이 더 있으면 공정한 거래와 내기에 위배될 것 같다며 먼저 자리를 떴기에 나는 라구티스와 라구티엔을 [서천 꽃밭]으로 데려갔다.
“닝겐, 여긴 어디야?”
“제가 양봉하는 벌들이 있는 곳이에요.”
아직 여왕벌이 부화하지 않아서 새로운 일벌들도 태어나지 않았기에 정확히는 양봉(養蜂)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지금은 몇 마리 안 되는 일벌들이 나중에 태어날 여왕벌과 새로운 일벌들을 위해 부지런히 꿀을 채우고 화분을 저장하는 중이었다.
“안녕? 잘들 지냈어?”
부웅! 부우웅!
내가 다가가자 나를 알아본 일벌들이 반가움에 날개로 소리를 냈다.
매일 보석 벌꿀을 가져가는 대신 감뀰물을 줬더니 그렇게 좋아하더라고.
겉으로만 보면 가져간 꿀에 물 타서 돌려주는 거였지만, 자신들의 꿀만으로는 얻지 못하는 영양분이나 특수효과를 얻을 수 있으니 서로에게 윈윈인 관계였다.
양봉업자들이 꿀을 가져가는 대신 설탕물에 영양제를 넣어서 주는 것과 같은 벌과 사람 간의 거래였다.
“어디 보자, 여왕벌은 아직 왕대 속에 있네.”
여왕벌의 왕대는 전에 봤을 때처럼 농구공만 했다.
자이언트 와스프 퀸이 거의 3m에 가까운 크기라서 퀸의 영향을 받은 던전 보석 여왕벌도 거기까지 커지나 싶었는데, 여기서 더 커지지는 않나 보네.
“언제쯤 깨어나려나.”
내가 왕대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려주고 있을 때였다.
“이 아이들이 아우스테야가 말한 그 벌들이군요?”
“네. 맞습니다.”
그러고 보니 꿀벌의 여신 아우스테야에게 나를 소개해줬던 건 같은 발트 신화의 신들인 라구티스와 라구티엔이었지?
덕분에 내가 키우는 던전 보석벌에 관해 들은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아우스테야는 이 벌들이 이 삭막한 세상에서 꽃과 벌들에게 희망이 될 거라면서 큰 기대를 품고 있었어요.”
“그런가요?”
라구티엔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평소보다 좀 큰 벌이 태어나는 게 아닌가?
그래봤자 네임드 몬스터일 거고, 설기처럼 성장하면 신수가 되는 정도일 텐데.
물론 신수가 된다는 건 엄청난 거지만, 신화급 성좌도 아닌 신수가 세상의 희망이 된다는 건 잘 이해가 안 갔다.
“키잉?”
역시 너희도 그렇지?
일벌들도 나를 따라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에 나는 피식 웃고, 오늘 온 목적을 말했다.
“오늘은 꿀을 좀 많이 가져갈 텐데, 괜찮아?”
“키잉?”
“벌꿀 술을 만들 건데 꿀이 조금 많이 필요해서.”
조금만 만들고 말 거면 모르겠지만, 술이란 건 한번 만들 때 많이 만들어야 들이는 노력 대비 가성비가 좋다.
사실 양조 초보라면 조금씩 담그는 게 좋다.
양조는 작은 실수에도 술 전체를 망칠 수 있기에 조금씩 술을 빚어서 자신감이 생기면 그때 만드는 양을 점점 늘리는 게 좋거든.
물론 나는 이미 몇 번이고 술을 담근 경험이 있는 데다가 내 옆에는 무려 맥주의 신과 벌꿀 술의 여신이 있다.
실패할 리가 없지.
“키잉!”
“미안, 미안. 다음에 또 [도원향]으로 데려갈 테니까 봐줘.”
“키잉······.”
꿀을 뭉텅이로 가져가자 일벌들이 놀라서 온 사방으로 날아다녔다.
이렇게 꿀을 가져가는데도 날 공격하지 않는 걸 보면 참 착한 애들이라니까.
나도 양심은 있어서 던전 보석벌들이 반도원과 [도화원]에서 채취한 반도꿀은 그대로 두고 [서천 꽃밭]의 꽃에서 채취한 꿀들만 가지고 왔다.
“닝겐, 그걸 구분할 수가 있어?”
“제가 눈이 좀 좋거든요.”
성안의 힘으로 꿀 안에 깃든 기운을 보면 바로 구분할 수 있었다.
사실 그게 아니더라도 자세히 보면 색이 미묘하게 다르다.
여러 꽃의 꿀이 섞인 잡화꿀은 검붉거나 진한 색을 띠는 반면, 반도꿀은 맑고 밝은색의 꿀 결정이었거든.
나는 그렇게 한 아름 따고 온 보석 벌꿀을 가지고 ‘연성이네’의 주방으로 향했다.
그러자 익숙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전장의 축복’은 당신이 전장에 있는 동안 축복이 유지되게 해줍니다.] [주의, 요리사 클래스인 당신의 전장은 ‘주방’입니다.] [현재 장소가 주방으로 인정되었습니다. 축복이 적용됩니다.]스루드가 내게 내려준 ‘전장의 축복’은 요리사가 요리를 하기 위해 주방에 들어가면 적용되는 특수효과.
이 메시지가 떴다는 건.
“역시. ‘양조’도 요리인 거지.”
술을 빚는 것 역시 요리의 일환이라는 걸 시스템이 증명해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실 조금 걱정하긴 했다.
술을 빚는 건 화학 실험이나 연금술, 혹은 약을 만드는 것과 비슷해서 요리로 취급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거든.
만약 요리가 아니라고 인정됐다면, 내 능력의 반의반도 쓰지 못했을 거고 그러면 양조 성좌협회의 제안도 다시 생각해봤을 거다.
“자, 그러면 벌꿀 술을 만들기 전에, 선생님께 제대로 배워보는 시간을 가질까요?”
“선생님? 제가요?”
갑자기 자신에게 공이 돌아오자 눈을 껌뻑이면서 놀라는 라구티엔.
나는 그런 라구티엔을 보며 히죽 웃었다.
“벌꿀 술의 여신인 라구티엔 님께 배우지 않으면 누구에게 배우겠습니까.”
“누굴 가르치기엔 부족한 실력이지만, 정 그러시다면 조금 나서볼까요.”
내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듯 라구티엔이 소매를 걷으며 빙긋 웃었다.
그러자 괜히 기분이 나빠진 라구티스가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쿡 찔러왔다.
“닝겐, 내 각시한테 추파 던지지 마.”
“추파라뇨. 저는 팩트만 말한 건데요? 혹시 라구티엔 님이 가르치기에 모자란다고 하시는 건 아니죠?”
“그건 아냐! 벌꿀 술은 우리 각시가 최고라고!”
내 짓궂은 놀림에 라구티스가 발끈하며 고함을 빽 질렀다.
실제로 벌꿀 술의 성좌는 양조 협회에서 그렇게 많지 않다고 한다.
원조 협회장이었던 잊혀진 신과 라구티엔, 그리고 북유럽 신화의 에기르와 크바시르가 있다.
“크바시르는 사실 성좌라고 부르기엔 어렵긴 해.”
라구티스의 말대로 크바시르는 사실 본인보다 크바스라는 벌꿀 술로 더 유명했다.
왜냐면 크바스는 크바시르의 피로 만든 꿀술이었거든.
아스 신족과 바나 신족의 전쟁이 끝나고 두 신족이 힘을 합치기로 한 날, 오딘은 종전을 축하하기 위해 항아리에 모든 신들의 침을 뱉게 했다.
북유럽 신화에서 침은 생명의 상징이자 지혜를 뜻하는 데, 오딘은 그렇게 신들의 지혜가 모인 항아리에 진흙을 넣어 반죽한 뒤, ‘크바시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를 만든다.
크바시르는 신들의 지혜가 모인 남자답게 지혜롭고 언변이 뛰어나서 오딘의 대변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런 크바시르를 질투한 드워프들에게 살해당하고야 만다.
드워프들은 크바시르의 피를 모두 빼내어 꿀과 섞어 꿀술 ‘크바스’를 만들었다.
크바스를 마시는 자는 크바시르의 위대한 지혜를 얻을 수 있었고 말을 잘할 수 있게 되고 동시에 창작의 영감까지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몇 번씩 주인이 바뀌었지만, 마지막에는 오딘이 크바스를 회수해 소중히 보관하면서 지혜가 필요할 때마다 한 잔씩 마셨다고 한다.
“성좌는 신화 속에서 죽더라도 부활하는 게 보통이거든? 그런데 욕심 많은 오딘이 ‘크바스’를 포기 못 해서 ‘크바시르’는 제대로 부활도 못 하고 있다더라고.”
“저런.”
크바시르라는 성좌의 핵심이 크바스에 담겨있으니 오딘이 크바스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크바시르가 부활하는 건 불가능하다나?
능력이 너무 뛰어나도 화를 입는 모양이었다.
에기르는 벌꿀 술만 빚는 게 아니라 에일 맥주도 같이 빚고 주된 권능이 바다인 성좌였기에 결론은,
“우리 각시가 전 우주에서 가장 벌꿀 술을 잘 빚는 성좌라는 거지!”
“아이참, 그만 하세요, 서방님. 부끄럽잖아요.”
꼬마 신랑과 부인의 꽁냥대는 모습을 보니 흐뭇하면서도 속이 부글부글 끓네.
얼른 벌꿀 술이나 만들어야겠어.
“자, 그럼, 벌꿀 술을 만들어 볼까요?”
“사실 벌꿀 술은 만드는 게 어렵지 않아요. 자연적으로도 생성될 정도니까요.”
벌꿀 술은 가장 오래된 술 중 하나.
가장 오래됐다는 건, 동시에 만드는 과정이 가장 간단하다는 이야기였다.
으깨진 과일이 나무 옹이 같은 작은 물웅덩이 속에서 발효되어 만들어지는 원숭이 술이나 꿀이 들어간 벌집에 빗물이 고여 꿀이 발효하는 벌꿀 술처럼 말이다.
“벌꿀 술을 만드는 재료도 간단해요. 꿀과 물. 이 두 가지면 충분하답니다.”
“이스트, 그러니까 효모는 안 들어가나요?”
라구티엔의 말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내가 예전에 벌꿀 술, 그러니까 미드(mead)를 만들 때는 와인용 효모나 제빵용 효모를 넣었었거든.
그런 내 물음에 라구티엔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사실 꿀 안에는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효모가 들어가 있어요. 그러니 빗물이 고이기만 해도 발효가 될 수 있죠.”
효모는 공기 중에도 떠돌지만, 그중 당분을 먹고 알코올을 내뱉어서 술을 만들 수 있는 효모는 극히 적다.
그런 효모가 꿀 안에 알아서 들어있다니.
“완전 술 전용 밀키트나 마찬가지네요.”
“그렇죠? 자연적으로 술이 되는 재료들은 모두 이렇게 효모를 가지고 있답니다.”
포도나 체리, 대추야자 같은 과일들도 껍질에 효모를 가지고 있기에 발효만 잘 시키면 술이 된다고 한다.
애초에 원숭이 술이 그런 식으로 생겼고, 최초의 포도주도 마찬가지였을 터.
“꿀을 1이라고 치면, 미지근한 물을 3으로 잡아서 섞어 주세요.”
“네, 선생님.”
나는 라구티엔의 지시에 따라 던전 보석 벌꿀 결정을 마력수에 섞으려고 했다.
“잠깐!”
“라구티스 님?”
“에헤이, 기본이 안 되어 있구만! 술을 만들기 전에는 잡균을 모두 제거해야 하는 거 몰라?”
술은 효모와 누룩, 이스트 같은 균들이 당을 먹고 알코올을 내뱉으면서 생성되는 세균의 산물.
그렇기에 술을 만드는 균이 아닌 다른 균들이 번식하면 술이 상하거나 망해버린다.
그래서 나도 식용 알코올로 용기나 도구를 깨끗이 소독했는데?
“마력균은 그런 걸로 안 죽어. 인간의 알코올로 죽을 균들이 아니야.”
“아.”
하긴, 마력이 깃든 균이라면 평범한 알코올 소독제로 죽일 수가 없겠지.
그럼 어떻게 처리하지?
마정석 화로의 불길로 소독이라도 해야 하나?
“위험하게 불을 왜 써?”
내가 용기를 불로 지질까 생각하자, 라구티스가 고개를 저으며 눈에 익은 슬라임을 꺼내 들었다.
“내 ‘균균 슬라임 마크2’한테 맡겨두라구!”
라구티스가 꺼낸 건 [균균 슬라임], 아니 [발효 균체 군단]과 비슷하게 생긴 또 다른 슬라임이었다.
“자, 쓸모없는 균을 몽땅 먹어버려, 균균 슬라임 마크2.”
놀랍게도 또 다른 슬라임은 쓱 훑는 것만으로도 용기 안의 마력 반응을 깨끗하게 지워버렸다.
“[마력 살균체 군단]이에요. 발효균 외의 모든 균을 깨끗하게 먹어버리죠.”
“대단하네요. 저게 있다면 양조계의 혁명이 일어나겠어요.”
잡균을 모두 치워버리고 시작할 수 있으면 내가 원하는 발효만 일으킬 수 있으니까.
내가 감탄하자 라구티스는 뿌듯한 얼굴로 자신의 슬라임을 통통 두들겼다.
“이건 안 줄 거야!”
“아, 네······.”
“······정말 안 필요해?”
달라고도 안 했는데.
오히려 내가 달라고 하지 않자 시무룩해진 라구티스를 보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조금만 주실래요?”
“역시 필요하지? 으헤헤. 내 슬라임은 대단하다고!”
아무리 성좌라지만 정신연령이 딱 초딩이라니까.
나와 라구티엔은 쓴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자, 다시 시작해볼까요?”
“네.”
“물과 꿀이 골고루 섞일 때까지 저어주세요.”
나는 멸균된 용기에 미지근한 마력수와 던전 보석 벌꿀을 넣고 라구티엔의 지시대로 잘 저어주었다.
이렇게 되면 꿀과 물이 섞이면서 효모가 꿀 속에 있는 당분을 먹기 쉬워지고, 온도도 따뜻해지면서 효모가 더 활발해질 수 있는 환경이 된다.
가끔 뜨거우면 무조건 좋은 거 아니냐면서 꿀물을 끓이는 사람도 있는데, 그러면 꿀의 좋은 성분과 효모가 모두 죽어서 술이 안 되고 꿀 젤리가 되어 버린다.
“이제 효모를 넣어볼까요?”
“네? 자연적으로 꿀 속에 들어 있는 효모를 쓰는 거 아니었습니까?”
내 물음에 라구티엔이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것만으로는 너무 오래 걸리니까요. 벌꿀 술에 잘 어울리는 효모가 있답니다.”
“그런가요?”
라구티스가 가진 [발효 균체 군단]에서 효모를 떼어내나 싶어서 그를 보자, 라구티스는 자기가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음? 아니라고?
그렇게 말한 라구티엔이 대뜸 벌꿀을 크게 퍼서 입으로 가져갔다.
그러곤 야무지게 입안에서 꿀을 씹는 게 아닌가.
“라구티엔 님?”
“아웁. 아웁.”
그렇게 한참을 꿀을 씹던 라구티엔이 멸균된 다른 용기 안에 침과 섞인 꿀을 주르르 뱉어냈다.
그런 뒤 마력수를 다시 그 위에 부었다.
아니, 잠깐만, 지금 뭐 하는 거야?
“이걸 잠시 놔두고 숙성시키면,”
그러면서 라구티엔도 자신의 아이템인 [숙성의 수레바퀴]를 꺼내서 휙 돌렸다.
그러자 씹은 꿀물 위로 거무튀튀한 곰팡이 덩어리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반대로 바닥에는 탁한 이물질들이 내려앉았고.
내가 그걸 보며 입을 쩍 벌리고 있자,
“꿀벌레 효모 완성이에요.”
라구티엔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그 잔을 내밀었다.
······이게 효모라고?
라구티엔이 만드는 벌꿀 술은 무려 꿀을 씹어서 만드는 미인주, 아니 미인 벌꿀 술이었다.
너의 효모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