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chef of the constellations RAW novel - Chapter 173
173화. 너의 효모는
나는 라구티엔이 입으로 씹어 만든 액체를 보며 눈을 크게 떴다.
“꿀벌레 효모요?”
“네. 여기 올라와 있는 곰팡이가 꼭 벌레가 모여있는 것 같죠?”
그녀의 말대로 씹은 꿀물 위에는 언뜻 보면 벌레처럼 보이는 거무튀튀한 부유물이 떠 있었다.
아니, 이게 곰팡이라고? 먹어도 되나?
내가 당황하고 있자, 그걸 눈치챈 라구티엔이 웃음을 터뜨렸다.
“당연히 이 위의 꿀벌레 곰팡이는 먹지 않아요. 우리가 쓸 건 이 밑에 가라앉은 효모예요.”
라구티엔의 말을 따라 투병한 용기의 밑을 보니 마치 솜이불처럼 하얀 가루 같은 침전물이 쌓여 있었다.
이게 효모라고?
“네. 원래 벌꿀 속에 있던 효모가 그사이 성장을 한 거랍니다.”
“꿀을 씹어서 숙성시킨 것만으로도 효모가 자라는 겁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라구티엔을 보면서 나는 그녀가 한 행동이 어떤 원리인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침 안의 아밀레이스로 꿀을 분해시키는 거군요.”
우리가 학교 다닐 때 열심히 외웠던 것처럼 아밀레이스는 소화 효소.
곡물의 녹말이나 꿀 속의 과당을 포도당으로 분해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렇게 분해된 포도당은 꿀 속에 있던 효모의 먹이가 되는 거지.
사실 원래 꿀은 과당과 포도당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이런 과정이 없어도 효모가 늘어나면서 발효가 진행되긴 한다.
하지만 도와주면 더 빨리, 많이 늘어날 수 있었고 라구티엔이 꿀을 씹었던 건 바로 이 때문이었다.
“하긴, 생각해보니까 사람이 직접 입으로 씹어서 만드는 술이 없는 건 아니었네요.”
예를 들면, 치차(chicha)라고 불리는 페루식 옥수수 막걸리가 있다.
나이 든 여성들이 싹을 낸 뒤 갈아버린 옥수수 반죽을 입으로 씹은 뒤 발효시키는 술이었다.
그것뿐이랴.
당장 조선시대 기록에도 미인주(美人酒)라는 쌀을 입으로 씹어서 발효시키는 술이 있었다.
한국 전통주는 아니고 지금의 캄보디아에서 처음 만들어져 동남아를 거쳐 오키나와와 일본에 전래 되었고, 오키나와의 사신이 조선에 전한 걸로 기록되어 있었다.
만드는 방법은 극도로 간단했다.
술을 만들 고두밥을 입에 물고 천천히 오래 씹어서 형체가 거의 보이지 않게 죽의 형태로 만들어 발효시킬 용기에 뱉으면 끝이었다.
침과 섞여 죽이 된 쌀밥을 10일 정도 상온에 방치하면, 그대로 발효가 되어서 살짝 시큼한 향을 내기 시작한다.
그때 걸러서 마시면, 낮은 도수에 시큼하면서 달콤한 미인주가 완성된다.
이 술이 내가 어렸을 때 유명 일본 애니메이션에 나와서 꽤 유명해졌던 걸로 기억한다.
일본 이름은 쿠치카미자케(口噛み酒)였지 아마?
“왜 미인주라는 이름이 붙은 거야?”
“아, 처음 이 술을 만들었던 나라에서 그렇게 불렀다고 하더라고요.”
아시아 쪽에 미인주를 처음 만들어서 퍼뜨린 나라는 진랍(크메르 왕국), 지금의 캄보디아였다.
결혼하지 않은 처녀들이 쌀이나 녹말이 많은 작물을 씹어서 왕에게 바치는 술을 만들었다고 해서 ‘미인주’라고 불려 왔다.
“왜 여자들이 씹은 거지?”
“이 술을 진상 받을 높으신 분들이 전부 남자라서 그런 게 아닐까요?”
미인주처럼 씹어서 만드는 술은 과정이 간단한 대신 굉장히 가성비가 좋지 않았다.
일단 쌀이나 옥수수처럼 전분이 많은 작물을 씹기 편하게 한번 익히거나 가루를 내야 했고, 이를 다시 계속 씹어줘야 했다.
침과 골고루 섞이도록 천천히 그리고 확실히 씹어야 했기에 시간도 오래 걸렸다.
그 뒤로는 발효가 된 술을 한번 걸러서 술을 완성해야 하는데, 침 외의 수분이 딱히 들어가지 않아서 양이 몹시 적었다.
“그러니 이 귀한 술을 아무나 먹진 못했을 거고 왕이나 귀한 손님에게 바쳐졌다는 거지?”
“네. 그 당시에 고귀한 신분의 사람은 대부분 남자였을 테니까요.”
그렇다.
남자들은 같은 남자의 침으로 만든 술 따위 전혀 입에 대고 싶지도 않겠지.
그렇다고 여자의 침으로 만든 술이라고 딱히 좋은 느낌은 아니지만, 당시의 시대상을 생각하면 뭐······.
나는 거기까지 말하곤, 라구티엔을 보았다.
“미드(벌꿀 술)에도 입으로 만드는 방법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바이킹들은 남자가 항해를 나가면, 집에서 여인들이 이렇게 꿀을 씹어서 미드를 만들었죠.”
그렇게 남편을 기다리는 동안 발효시킨 미드를 항해에서 돌아온 남편에게 주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연인이 결혼하면 한 달 동안 같이 미드를 함께 마시는 풍속도 있었어요. 미드에는 부부의 연을 돈독하게 한다는 믿음이 있었거든요.”
“아, 저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신혼부부가 같이 벌꿀 술을 1개월 동안 마신다고 해서 허니문(honeymoon)이라는 단어가 생겼다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꿀벌레 효모의 곰팡이와 윗물을 걸러내고 가라앉은 효모를 아까 만들어 놓은 꿀물 통에 넣으려는 찰나였다.
“안 된다, 닝겐!”
“라구티스 님?”
“내 각시의 침이 들어간걸 왜 네가 먹으려고 해!”
갑작스러운 외침에 놀라서 보니 질투심에 활활 불타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는 라구티스.
그런 라구티스를 향해 라구티엔이 입을 열었다.
“서방님. 이건 술을 만들기 위한 거니깐 괜찮아요.”
“안 돼! 그래도 안 돼! 내 각시의 침이 들어간 건 절대 안 돼!”
“어머나, 기쁜 말을 해주시네요.”
자신을 향한 독점욕을 내보이는 꼬마 신랑의 모습에 흐뭇한 듯 라구티엔이 웃음을 흘렸다.
······왜 내 주변의 부부 신들은 견우직녀도 그렇고, 보르테 치노 부부도 그렇고, 다 이렇게 염장을 지르지 못해 안달인 걸까.
성좌들한테 결혼 바이럴이라도 하라는 지령이라도 떨어진 거야? 그런 거야?
“그럼, 제가 먹을 건 제가 만들도록 하죠.”
“그래야지!”
“하······.”
나는 한숨을 길게 내쉬면서 라구티엔이 했던 것처럼 꿀을 크게 한입 떠서 오물오물 씹었다.
그 뒤는 아까의 반복.
결국, 내 침으로 만든 꿀벌레 효모를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이걸로 술을 만들면 뭐라고 불러야 하지?
‘미인주’는 좀 그렇고.
“노총각주는 어때?”
“······노총각 아닙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부정했다.
그야 꼬마 신랑 입장에서 보면 내가 노총각처럼 보이겠지만, 아직 창창한 30대 초반이라고!
발끈해봤자 나만 손해기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미드 만들기를 다시 진행했다.
“그럼, 아까 만든 꿀물을 두 개로 나눠서 발효를 시작할게요.”
“잠시만요. 세 개로 나눠주겠어요?”
“세 개요?”
라구티엔이 만든 효모와 내가 만든 효모.
효모는 두 개뿐인데?
내 의문에 라구티엔이 웃으며 손가락을 폈다.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효모가 하나 더 있어요.”
“그게 뭡니까?”
“바로 과일이죠.”
“아.”
그녀의 말에 나는 이번에도 감이 왔다.
“건포도나 대추야자를 준비해야겠군요.”
“정확해요.”
내 대답에 만족해서 싱긋 웃는 라구티엔.
포도나 대추야자, 체리 같은 과일의 껍질에는 자연 효모가 들어가 있었다.
그래서 제빵 기술 중에는 이런 건포도의 효모를 배양시켜 액종을 만든 뒤, 이 건포도 액종으로 천연 발효 빵을 만들기도 했다.
“잠시만요. 건포도가 괜찮은 게 있습니다.”
미야가 건포도 식빵을 만든다고 리빙 트리에서 길러낸 던전 포도를 말려놓은 게 있었거든.
미안하지만, 조금만 빌려야지.
열자마자 향긋한 건포도 향이 나는 주머니에서 나는 건포도를 꺼내왔다.
“이걸 액종을 만들어서 넣나요?”
“아뇨. 이미 효모가 발효될 환경이 마련되어 있으니 그냥 넣어도 돼요.”
꿀벌레 효소는 꿀 속에 당이 부족했기에 침으로 과당을 포도당으로 분해 해줘야 했지만, 건포도는 이미 포도당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괜히 이름이 포도당이겠어?
그렇게 나는 건포도 10알 정도를 세 개로 나눈 꿀물에 넣었다.
다른 두 개의 꿀물에는 라구티엔 표 효모와 도연성 표 효모를 각각 넣었다.
“자, 그러면 1차 숙성시킬게요. 시간은 한······, 2주면 되려나?”
라구티엔이 [숙성의 수레바퀴]를 돌리자, 마치 시간을 빨리 감기 한 것처럼 효모가 들어간 꿀물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효모가 증식되면서 갑자기 뿌옇게 탁해지더니, 거품이 미친 듯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뒤, 조금 지나자 효모가 밑으로 가라앉고 꿀물이 투명하게 맑아졌다.
밑에 가라앉아있는 효모를 그대로 두면 효모취라고 하는 특유의 구릿한 냄새가 많이 나기에 나는 새로운 용기에 각각의 미드를 나눠 담았다.
“이 정도면 1차 발효는 끝난 것 같네요. 마셔볼까요?”
나는 잔을 꺼내서 각각의 꿀물, 아니 1차 발효가 끝난 미드를 따라서 라구티스와 라구티엔에게 돌리고 내 잔에도 따랐다.
······라구티스가 째려보고 있어서 라구티엔 표 효모로 만든 미드는 못 따랐지만.
아무튼, 벌꿀 술의 여신의 지도에 따라 만든 미드니 그 맛도 각별하겠지?
나는 잔뜩 기대한 마음으로 먼저 꿀벌레 효모로 만든 미드를 입안으로 흘렸다.
“어때요?”
“은은하게 단맛이 나네요. 효모 냄새도 그렇게 많이 나진 않고. 괜찮은데요?”
입으로 씹어서 꿀벌레 효모를 만든다고 했을 땐 솔직히 반신반의했는데, 예상과 달리 깔끔하고 달달한 맛이 좋았다.
다음은 건포도 효모로 만든 미드였다.
건포도는 효모 찌꺼기를 제거할 때 같이 제거했지만, 색이 조금 진한 것이 특징이었다.
“음, 살짝 더 달고 은은하게 건포도 향이 섞였네요.”
아무래도 건포도 자체의 당분과 향이 있기에 꿀로만 만든 미드랑은 느낌이 조금 달랐다.
원조 콜라랑 레몬 향이 가미된 콜라를 먹는 느낌이랄까.
“역시 우리 각시가 만든 게 제일 맛있어!”
라구티스가 라구티엔의 꿀벌레 효모로 만든 미드를 품에 꼭 껴안고 칭찬했다.
······다른 것도 다 라구티엔이 만든 건데.
내가 한 건 꿀을 씹은 것밖에 없다고.
아무튼, 나와 꼬마 신랑의 평에 만족한 라구티엔이 웃으면서 다시 [숙성의 수레바퀴]를 들었다.
“그러면 2차 발효를 시작해볼까요?”
사실 미드는 1차 발효만으로도 완성이긴 했다.
원래라면 여기서 청징이라는 작업으로 효모를 완전히 죽여서 더 발효되는 걸 줄이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고 2차 발효를 하기로 했다.
“2차 발효를 하면 단맛은 더 줄어들지만, 깔끔하면서도 드라이한 미드가 된답니다.”
라구티엔의 설명대로 걸러내고 남은 효모가 미드 속에 남아서 계속 발효가 진행되기 때문에 당분이 알코올로 바뀌어서 도수가 올라간다.
이때, 2차 발효에 들어가는 미드에 어떤 걸 추가해 주느냐에 따라 맛이 확 달라진다.
“우선 그대로 발효시키는 것 한 병, 다른 꿀을 넣어서 혼합 꿀로 만드는 것 한 병, 과일을 넣어 단맛과 과일 향을 살리는 것 한 병, 허브와 향신료를 넣어서 독특한 향을 즐길 수 있는 것 한 병.”
나는 라구티엔의 지시대로 총 4병의 2차 발효 미드를 준비했다.
그대로 발효시키면 덜 달고 도수가 강한 드라이 미드가 된다.
다른 꿀을 넣어 주면 단맛과 도수를 모두 강화해주면서 꿀의 향이 서로 섞여 독특한 풍미의 미드가 된다.
참고로 미리 챙겨두었던 반도꿀을 살짝 섞어 주었다. 벌들아, 미안.
나머지 과일 미드와 허브 미드에도 재료를 모두 넣자, 라구티엔이 한 번 더 [숙성의 수레바퀴]를 돌렸다.
“이번엔 1년을 돌릴게요.”
다시 한번 빠르게 감기는 미드의 시간이 지나고 나자, 기가 막힌 향과 맛을 자랑하는 라구티엔 표 벌꿀 술, 미드가 완성되었다.
그리고 다시 이어진 시음.
“어때요? 성좌들의 마스터셰프가 평가하는 미드는?”
“얼른 말해 봐, 닝겐!”
라구티스와 라구티엔의 기대에 찬 눈빛을 보며 나는 신중하게 미드의 맛을 보았다.
요리사로서 평을 해달라고 하면, 역시 맛도 중요하지만, 어떤 요리랑 어울릴 지에 대해 이야기 해야겠지?
이른바 마리아주, 혹은 페어링이라고 부르는 조합이었다.
“드라이 미드는 바디감이 꽤 있고 느낌이 와인이랑 비슷하네요. 굳이 따지자면 화이트 와인? 해산물이랑 잘 어울리겠는데요?”
“혼합 꿀을 쓴 미드는 단맛이 꽤 강해서 디저트 와인처럼 케이크나 과자랑 같이 먹어도 좋겠어요. 치즈 케이크나 당근 케이크랑 굉장히 잘 어울리겠네요.”
“과일 향이 들어간 미드는 향이 강하고 매콤한 음식, 음 인도나 멕시코 요리랑 잘 맞을 겁니다. 향신료가 들어간 미드는 상큼한 샐러드와 함께 먹어 보고 싶네요.”
내가 각각의 미드를 평가하며 페어링하기 좋은 음식을 줄줄이 말하자, 라구티스와 라구티엔 부부가 입을 쩍 벌렸다.
“아니, 어떻게 그렇게 바로 나와?”
“대단해요. 벌꿀 술의 여신인 저조차도 미드와 잘 어울리는 음식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어요.”
“하하, 제 직업이 요리사인걸요.”
요리사가, 그것도 마스터셰프쯤 되는 요리사가 술이랑 어울리는 요리도 파악하지 못해서 쓰겠어?
나는 씩 웃으며 병에 밀봉한 미드들을 차곡차곡 정리해서 냉장창고에 집어넣었다.
라구티스와 라구티엔 부부에게 하나씩 줄 몫은 빼놓고 나중에 장사에 쓸 생각이었다.
후후후, 벌꿀 술을 곁들인 코스 요리라니.
요즘 살짝 뜸해진 성좌들의 예약이 다시 넘치는 모습이 절로 그려진다.
“자, 그러면 맥주도 만들어 볼까요? 맥주는 수요가 많으니 아주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너, 지금 내기가 문제가 아니라 장사 밑천 만드는 거 아냐?”
“하, 하하······.”
이런 들켰네.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어차피 만들 술, 장사용으로 넉넉히 만들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 아니겠어?
그러니 많이 많이, 아주 많이 만들어 보자고!
아이 엠 그루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