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chef of the constellations RAW novel - Chapter 174
174화. 아이 엠 그루트
벌꿀 술 미드를 만든 다음에는 맥주를 만들어 볼 차례.
기다렸다는 듯 라구티스가 손가락을 꺾으며 몸을 풀었다.
“이제 내 차례네. 잘 보고 있으라고, 닝겐!”
“······그런데 그 닝겐이란 말은 왜 쓰시는 건가요?”
“닝겐? 이게 왜?”
맥주랑은 관계없지만, 예전부터 궁금해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발트 신화의 성좌가 일본어를 쓰니깐 영 어색해서요.”
“엥? 이게 최신 유행 아니었어?”
“네?”
아니, 누가 저런 단어가 최신 유행이라고 가르쳐준 거야?
내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라구티엔이 짧게 한숨을 쉬면서 라구티스의 볼을 꼬집었다.
“그러니까 제가 커뮤니티 좀 그만하라고 했죠?”
“각시는 모르지만, 거기에 세상의 진리가 있······, 아야!”
라구티엔이 손에 힘을 쥐자, 볼을 잡힌 라구티스가 눈물을 쏙 빼며 비명을 질렀다.
잠시 참교육의 시간이 지나고 말투를 교정받은 착한 어린이 라구티스는 다시 맥주 만들기에 돌입했다.
“맥주를 만드려면 역시 보리가 있어야겠죠?”
“그래. 이걸로 해보자.”
라구티스가 품에서 보리를 한 포대를 꺼냈다.
아니, 저 작은 몸보다 더 큰 보리 포대가 품에서 나오네.
성좌가 부리는 마술 같은 기예에 놀라며 나는 포대 안의 보리 낟알을 확인했다.
“두줄보리네요. 품질이 괜찮은데요?”
“그렇지? 내 영역에서 자라는 보리들이야.”
성좌들의 영역은 그 성좌에게 가장 편안하고 익숙한 장소로 꾸며지는 법.
최초의 농사꾼이었던 카인의 영역은 황금빛 밀밭이었고 하데스의 영역은 지하 저승세계에 있는 그의 궁전이었다.
아마 라구티스와 라구티엔의 영역은 보리밭과 벌집이 가득한 곳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더니, 라구티엔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벌집이 가득한 곳은 아우스테야의 영역이에요. 저는 아우스테야한테 벌꿀을 받아서 미드를 만든답니다.”
대신 라구티엔은 자신의 영역에서 열심히 빵을 굽는다나?
아무튼, 성좌의 영역에서 자란 보리답게 마력이 풍부하고 맥주 만들기에 적합한 품종이었다.
사실 모든 보리로 맥주를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우리가 흔히 보리밥을 해 먹는 쌀보리는 나맥(裸麥)이라는 종류로 껍질이 잘 떨어져서 보리만 먹기 편한 품종이었다.
반대로 맥주를 만들 때는 껍질이 그대로 붙어 있는 겉보리를 쓴다.
맥주의 본고장인 유럽과 중동에서 많이 자라는 보리였다.
어쨌든 그래서 마철성이 기르는 쌀보리는 맥주로 만들기가 어려웠다.
“자, 여기서 문제. 맥주는 뭘로 만들까요?”
“정답! 맥아입니다.”
“에이, 뭐야. 시시하게.”
내가 바로 정답을 말하자 라구티스가 실망했는지 입을 삐죽였다.
이거 왜 이러셔. 나도 맥주 많이 만들어봤거든?
“보리를 싹 틔워서 맥아를 만들어야 진짜 맥주 재료가 되죠.”
“네 말이 맞아.”
맥아(麥芽).
보리, 밀 등의 곡물을 일부러 싹을 틔운 걸 맥아라고 하는데, 순우리말로 하면 엿기름이었다.
“그럼 두 번째 문제. 왜 싹을 틔울까?
“그래야 달아지니까요.”
“이번에도 정답.”
이게 무슨 소리냐고?
우리가 먹는 곡물은 대부분 씨앗.
그 씨앗은 당연히 식물을 자라게 하기 위한 영양소가 듬뿍 담겨있다.
다만, 그게 포도당이 아닌 녹말의 형태로 담겨있다는 게 문제지.
세포가 늘어나고 성장하려면 흡수하기 쉬운 포도당이 있어야 하거든.
그래서 씨앗이 발아할 때 아밀레이스가 나오면서 녹말을 포도당으로 분해해 버린다.
어디서 많이 들은 얘기 아니냐고?
맞다. 입으로 씹어 벌꿀 술을 만드는 것과 비슷한 원리였다.
나와 라구티스가 보리 낟알을 마력수에 담그자, 옆에서 라구티엔이 [숙성의 수레바퀴]를 살짝 돌렸다.
그러자 아주 작은 싹이 콩나물처럼 스르륵 낟알에서 자라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 이걸 말려주자.”
맥아를 말려서 뿌리의 성장을 멈추는 작업인데, 뿌리가 기껏 늘려놓은 당을 먹고 자라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말리기 좋은 곳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싹이 난 맥아 포대를 가지고 [남국의 해안]으로 향했다.
사시사철 뜨거운 적도의 태양 빛이 내리쬐는 백사장에 돗자리를 펴고 맥아를 넓게 펴준 뒤, 이번에도 [숙성의 수레바퀴]를 돌리면 끝.
순식간에 바싹 마른 맥아는 성장을 멈추었다.
“이제 이 싹을 다 떼면 돼.”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네요.”
귀찮은 일이지만, 이걸 떼지 않으면 맥주의 맛이 불순해진다나?
그래도 다행인 건, 마르면서 뿌리가 약해졌기에 체에 담고 잘 털어주기만 해도 알아서 뿌리가 떨어져 나간다는 거였다.
“다했습니다, 라구티스 님.”
“벌써 끝났어? 아쉽다. 다음에 또 놀자.”
“꾸엉!”
맥아를 말리는 동안 셀키랑 놀던 라구티스가 아쉬운 표정으로 작별 인사를 했다.
그러자 지느러미 하나로는 배를 찹찹 두드리며 다른 지느러미는 열심히 흔드는 셀키.
우리는 말린 맥아를 들고 다시 ‘연성이네’ 주방으로 복귀했다.
“이제 이걸 볶아줄 거야. 여기까지를 몰팅(malting)이라고 해. 몰팅이 끝난 맥아는 몰트라고 부르고.”
말린 맥아를 어느 정도로 볶느냐에 따라 맥주의 색과 맛이 달라진다.
라구티스는 다양한 맥주를 만들기 위해 내게 세 가지 종류의 몰트를 요청했다.
살짝만 볶은 밝은 노란색의 몰트와 갈색이 될 정도로 볶은 것, 그리고 까맣게 될 때까지 태우듯이 볶은 검은 몰트였다.
“이제 이걸 갈아줄 거야.”
“그런 다음에 뜨거운 물에 담그는 거죠?”
“잘 아네.”
에이, 맥주 많이 만들어봤다니까요.
70℃ 정도의 뜨거운 물에 분쇄한 몰트를 담그면 몰트 속에 있던 포도당이 빠져나와 물에 용해된다.
가는 것도, 뜨거운 물에 담그는 것도 모두 이 보리 단물, 그러니까 맥아즙을 추출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그렇게 다시 [숙성의 수레바퀴]를 돌려서 충분히 맥아당을 빼낸 맥아즙을 걸러서 보리 찌꺼기를 빼낸 뒤에는,
“효모를 넣는 거지. 나와랏, 균균 슬라임 마크1!”
오랜만이네.
라구티스는 내게 나눠준 적 있던 [발효 균체 군단]에서 맥주 효모만 떼어내어서 맥아즙에 넣었다.
재밌는 사실은 이대로 다른 걸 넣지 않고 숙성시키면 ‘워시’라고 부르는 싱글 몰트 위스키의 밑술이 된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맥주를 만드는 거니 추가 재료를 넣어야지.
“맥주는 벌꿀 술과 달리 재료가 다양하지. 그래서 종류도 많아.”
“어? 맥주는 보리랑 물, 효모, 그리고 홉으로만 만드는 거 아니었나요?”
“그게 무슨 소리야?”
내 말에 영문을 모르겠다며 인상을 찌푸리는 라구티스를 보며 나는 의아해했다.
현대에 들어서야 과일맥주니, 커피 맥주니 꿀 맥주니 하는 이색 맥주들이 개발되었지만, 그것도 완성된 맥주에 첨가물을 넣는 정도.
결국엔 보리, 물, 효모, 홉이라는 맥주의 4대 요소가 맥주 재료의 전부였다.
“16세기 독일에서 그렇게 정했다고 하던데요?”
1516년. 독일 남부 바이에른의 공작 빌헬름 4세는 하나의 법령을 반포한다.
모든 독일의 맥주는 보리와 물, 그리고 홉 외에는 어떤 재료도 넣을 수 없다는 ‘맥주 순수령’이 바로 그것이었다.
물론 맥주를 만들려면 효모가 필수였지만, 당시에는 세균인 효모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기에 저 세 가지만 언급되었다.
그 이후로 1993년에 독일은 효모를 포함한 4대 요소만 허용한다는 임시 독일 맥주법을 제정했고 아직도 그게 잘 지켜지고 있었다.
그런 내 설명을 들은 라구티스는 미간을 팍 찡그렸다.
“16세기? 우리 동네엔 13세기부터 기독교가 들어와서 그 이후는 잘 몰라.”
“······아.”
그렇다.
미야가 기독교 신앙 때문에 성좌에서 밀려난 것처럼 발트 지역의 성좌들도 자신들의 신앙을 기독교도들에 의해 많이 잃었다.
그러니 13세기 이후에 영향력을 잃은 라구티스가 그 이후의 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미야라는 사례가 바로 내 옆에 있었는데도 그 생각을 못 했다니.
나는 서둘러 내 무례를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말을······.”
“아냐. 그럴 수도 있지.”
표정은 전혀 그럴 수가 없는, 시무룩해진 표정을 지으며 라구티스가 입을 삐죽였다.
“내가 있을 때는 그루트(gruit)라는 걸 썼어.”
“그루트요?”
아이 엠 그루트?
아, 이게 아니지.
외계 식물 종족 이름도 아니고 탈모 샴푸 이름도 아닌 요상한 이름에 내가 의아해하자, 라구티스가 품에 숨겨놓은 주머니 하나를 꺼내서 내게 보여주었다.
“이게 그루트야.”
“허브 혼합물이군요?”
라구티스가 보여준 주머니 안에는 여러 가지 허브들이 섞여 있었다.
스위트게일, 쑥, 톱풀에 로즈마리, 노간주나무, 생강, 캐러웨이, 계피 등등.
요즘 맥주에 넣는 홉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다양한 종류의 허브가 한 데 섞여 피워내는 향이 보통이 아니었다.
“정말 다양한 재료를 썼네요.”
“그렇지? 이 그루트를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맛도 향도 달라져. 이건 내 비장의 조합이라구.”
라구티스가 뿌듯한 표정으로 자신의 조합을 자랑하며 으쓱거렸다.
근데 그럴 만도 한 것이 그 안에 담긴 허브는 전부 마력이 진하게 깃든 상급의 던전 허브들이었다.
즉, 이렇게 허브를 잔뜩 넣고 맥주를 만들면 특수효과도 잘 붙는다는 소리.
내가 그 점을 언급하자, 라구티스가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래서 예전엔 맥주가 약으로도 쓰였어.”
우리로 치면 인삼이나 말벌, 뱀을 넣고 담근 약주(藥酒) 느낌이었나 보네.
내가 신기해하지, 라구티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네가 말한 것처럼 홉만 넣은 맥주도 있긴 했지.”
홉만 넣은 맥주는 보헤미아 지방, 그러니까 지금 체코에서 13세기에 처음 등장했다고 한다.
홉만 넣기 시작한 이유는 홉이 방부제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인데, 덕분에 맥주를 다른 나라에 팔아도 상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뒤로는 오로지 홉만 넣고 맥주를 만들라는 ‘맥주 순수령’이 내려진 거고.
“우리는 둘 다 만들어 보자.”
“그렇다면 홉만 들어간 맥주는 제가 만들어 보겠습니다.”
“좋아.”
라구티스는 그루트로 만든 맥주를, 나는 홉만 넣어서 만든 맥주를 만들기로 했다.
사실 워시가 만들어진 상태에서 허브나 홉만 더 추가하면 끝이라 뭘 더 할 것도 없었지만 말이야.
정확히는 홉을 한번 끓여내서 홉 추출물을 넣는 거지만, 그 정도는 어려운 과정은 아니었다.
그렇게 추출물을 넣고 식힌 다음 [숙성의 수레바퀴]를 돌려 맥주를 숙성한 결과,
“자, 완성이다!”
그루트와 홉으로 만든 각각 세 종류의 맥주로 총 6종류의 맥주, 정확히는 에일이 완성되었다.
다른 구분은 들어간 몰트에 따라 색과 맛이 달라지는 걸로 구분했는데 페일 에일, 브라운 에일, 스타우트가 바로 그것이었다.
페일 에일은 밝은 황금색 맑고 투명한 맥주였고 맛도 깔끔한 편이었다.
브라운 에일은 갈색이 나도록 볶은 몰트로 만들어서 캐러멜 향이 살짝 나면서 고소한 향이 좋았다.
마지막으로 흑맥주인 스타우트는 커피나 초콜릿처럼 진하고 풍부한 탄 맛이 매력이었다.
“라거가 없어서 아쉽네요.”
“라거?”
“나중에 생겨난 맥주예요.”
우리에게 익숙한 시원하고 탄산이 가득한 라거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진 건 15세기 이후.
아쉽게도 라구티스가 잘 모를 맥주였다.
나는 라거에 대한 아쉬움을 삼키며 먼저 그루트로 만든 맥주를 시음해보았다.
“나쁘지 않지?”
“네. 괜찮네요. 묵직한 느낌에 허브향이 약주를 먹는 느낌이네요.”
뭐랄까. 한방 맥주 느낌?
뱅쇼나 쌍화탕, 수정과를 섞은 듯한 향에 진한 맥주의 맛이 같이 밀려온다.
들어가는 허브의 조합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낼 수 있을 것 같아서 괜찮아 보였다.
그다음은 오로지 홉만 넣어서 만든 맥주.
“음? 라구티스 님, 이 홉의 맛이 굉장히 독특한데요?”
나는 워시에 넣으려던 홉에서 나는 독특하고 기묘한 향에 놀라서 눈을 껌뻑거렸다.
맥주에 넣는 홉은 한 가지가 아니라서 홉마다 향이 다르다.
어떤 홉은 씁쓸하면서 향이 적어 보리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게 해주고, 어떤 향은 솔향이 강해서 마시면 입안이 알싸해지는 맛을 내기도 한다.
가장 유명한 홉은 꽃 향과 과일 향을 풍기는 홉인데, IPA에 이 홉을 넣어서 유명한 홉이었다.
“향이 어떻게 매번 바뀌지?”
그런데 라구티스가 준 홉은 냄새를 맡을 때마다 향이 달랐다.
그 사실에 내가 놀라고 있자 라구티스가 키득거리며 설명해주었다.
“용케 알아보네. 그거 던전 고블린 홉이야.”
“홉고블린이요?”
홉고블린은 몬스터가 아니라 권속급으로 취급받는 집요정이었다.
전에 프로듀스 알바 플래닛 999에 지원한 적도 있었지.
그런 내 물음에 라구티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고블린 홉.”
던전 고블린 홉은 고블린 주거지 근처에서 채취할 수 있는 홉인데, 고블린들이 맹수들의 접근을 피하려고 심는다나?
매번 다른 향을 내뿜기에 자신들의 고약한 냄새를 지우고 맹수들의 예민한 후각을 괴롭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맥주에 넣으면 매번 생각지도 못한 독특한 맛이 나와. 그래서 재밌지.”
“정말 재밌네요.”
한 모금 마실 때마다 맛이 바뀐다.
정말 요괴(고블린) 같은 맥주네.
그렇게 바뀌는 맛을 알아보는 재미에 빠졌더니 어느새 맥주잔이 깨끗하게 비워졌다.
“어? 취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가 오늘 꽤 많이 마셨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벌꿀 술과 맥주를 포함해서 리터 단위로 마신 것 같은데?
그리고 내 주량은 소주 반병.
아, 망했네.
갑자기 하늘이 빙빙 도는데?
알딸딸한 기운이 올라오면서 나는 뒤로 넘어갔다.
콰당!
“어머!”
“뭐, 뭐 하는 거야?”
이런, 죄송함돠.
잠시 눈 좀 붙이겠슴돠.
뒤통수가 얼얼한 걸 느끼며 나는 그대로 기절했다.
* * *
다음 날 아침.
“으으, 머리야.”
나는 머리를 울리는 이 고통이 숙취 때문인지, 아니면 넘어져서 머리를 부딪힌 탓인지 헷갈리면서 일어났다.
으윽, 속이 타는 걸 보면 숙취 때문일 가능성이 크겠네.
나는 물을 찾으려 몸을 일으키려 했다.
“마스터, 일어났어요? 여기 물이요.”
“아, 미야. 고마워요.”
나는 옆에서 미야가 건네주는 물을 깨끗하게 원샷했다.
크으, 마력수라 그런지 스며드는 속도가 장난 아니네.
······잠깐.
“미야?! 왜 내 방에 있어요?”
내, 내가 아무리 취했어도 그렇지, 엄연히 사내의 방에 그것도 잠들어 있는 사이에!
내가 허겁지겁 몸을 가리려 하자 미야가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보았다.
“여긴 마스터 방이 아니라 거실이에요.”
“아.”
내가 주방에서 취해 쓰러지자 라구티스가 나를 데리고 [도원향]까지 데려다준 모양이었다.
미야가 한숨을 내쉬곤 어제의 일을 설명해주었다.
“무슨 술을 그렇게 드셨어요? 취한 마스터를 라구티스 님이 업고 왔을 때 얼마나 놀란 줄 아세요?”
“그, 그랬어요?”
“누가 보면 아동 학대라고 했을 거예요.”
초등학교 저학년 키의 라구티스가 성인인 나를 업고 낑낑거리며 여기까지 왔을 생각을 하니 민망하고 미안하네.
내가 머쓱해져서 머리를 긁고 있자, 미야가 쪽지를 내밀었다.
“이건 뭐예요?”
“라구티스 님과 라구티엔 님이 남기고 가신 거예요.”
내가 쪽지를 받아 열어보자 거기엔 각종 벌꿀 술과 맥주의 제조 레시피가 쓰여 있었다.
어제 다 말해주려고 했는데 내가 취해서 쓰러지는 바람에 이렇게 글로 남기고 간다는 편지도 쓰여 있었다.
“정말 고마운 분들이네.”
“그래서 어떤 술을 만들지는 정했어요? 그 편지 마지막을 보면······.”
미야가 말끝을 흐리는 이유.
그건 편지 마지막에 라구티스가 써놓은 한 줄 때문이었다.
– 미안하지만, 다른 술을 찾는 게 좋겠어. 도움이 못 되어서 미안해.
이게 무슨 뜻이냐.
어제 만들었던 벌꿀 술과 맥주로는 디오니소스를 이기기 힘들다는 소리였다.
이미 □□□□□가 디오니소스에게 졌기 때문에 벌꿀 술로는 승산이 없다.
거기다 맥주는 라구티스 외에도 더 맥주를 잘 빚는 성좌들이 많다고.
마지막으로 남은 주종을 고르자면 와인인데,
“포도주로 디오니소스를 이기려고 하는 발상이야말로 미친 거지.”
자기 집에서는 개도 용감해진다고 했지.
아무리 내가 술에 기를 써보아도, 그들의 전공 분야에서 싸워서 이길 자신은 없었다.
그들은 자신의 술 만드는 기술로 성좌까지 된 이들이니까.
“어렵네요······.”
어제 함께 연구했지만, 뚜렷한 승리 방법이 나오지 않았다는 소식에 미야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두 분이 마스터를 응원한다고 상징과도 같은 아이템도 다 주고 가셨는데.”
“아이템이요?”
놀랍게도 라구티스-라구티엔 부부는 [발효 균체 군단]과 [숙성의 수레바퀴] 진품을 두고 갔다.
내가 어떻게든 디오니소스를 이길 방법을 찾을 거라고 믿는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이건 진짜 이겨야겠네.
나는 뭉클한 마음으로 그 아이템들을 보다가, 문득 어제의 일이 떠올랐다.
‘16세기? 우리 동네엔 13세기부터 기독교가 들어와서 그 이후는 잘 몰라.’
아무리 위대한 성좌들이라고 하더라도 자신들이 숭배되던 시기가 아니라면 하계에 대해 잘 모른다.
기도 올리는 사람이 없으면 인간 세상의 정보를 얻기 힘드니까.
그렇다면,
“양조 성좌들이 모르는 술로 승부하면 되는 거 아냐?”
나는 그런 술들을 잘 알고 있었다.
성좌들이 속해 있는 신화는 대부분 15세기 이전에 전승이 끝난다.
그리고 15세기 이후에 등장한 아주 멋진 술이 있지.
“증류주.”
위스키, 브랜디, 코냑, 고량주, 보드카, 안동소주 등.
듣기만 해도 속이 활활 타는 독주의 맛을 보여줘야겠는데?
야! 디오니소스, 증류주의 독한 맛을 보여주마,
폭풍 도수, 증류주가 간다!
매의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