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chef of the constellations RAW novel - Chapter 175
175화. 매의 눈
술은 크게 증류주와 발효주로 나뉜다.
발효주는 지금까지 만들었던 술들처럼 당분이 섞인 곡물, 과일 등의 재료를 효모로 발효시켜서 알코올을 생성해낸 술이었다.
하지만 이 발효주의 문제는,
“알코올 함량이 최대 20%를 넘기 힘들다는 거지.”
효모가 당분을 먹고 알코올을 내뱉는 이유는 하나.
자신들과 생존 경쟁을 하는 다른 균들을 죽이기 위한 수단이었다.
알코올은 세포벽을 파괴하는 훌륭한 공격 무기였으니까.
문제는 알코올 도수가 20도 이상으로 높아져 버리면 효모도 자신이 내뱉은 알코올에 죽어버린다는 것.
그래서 발효주로는 20% 이상의 알코올을 만들 수가 없다.
“하지만 사람이란 항상 가성비를 찾는 생물이죠.”
“······술로 가성비입니까?”
내 말을 들은 에녹이 쓴웃음을 지으며 묻자 나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맥주 3잔 마시고 취할 걸, 한 잔만 마셔도 취할 수 있다면, 다들 그걸 마시겠죠?”
물론, 이건 지극히 술고래 입장에서의 가성비긴 했다.
맥주나 포도주 같은 발효주의 맛 그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도수랑 상관없이 마실 테니까.
하지만 도수가 높은 술은 또 그만한 즐거움이 있는 법.
그렇게 ‘증류’라는 신기술이 나타나게 되었다.
12세기에 아랍권에서 발명된 이 ‘증류’라는 기술은 물이 100도에 끓는 데 비해 알코올은 78도 정도에서 끓는 점을 이용해, 먼저 기체가 되는 알코올을 빼서 분리하는 원리였다.
이 원리를 이용해 발효주를 증류시켜 알코올을 뽑아내는 기술이 바로 분별증류였다.
중국의 연단술에서 영향을 받은 아랍의 연금술에서 만들어진 ‘증류’ 기술은 서쪽의 유럽과 동쪽의 아시아로 다시 퍼져나갔다.
그 결과, 와인을 증류한 브랜디, 맥주를 증류한 위스키, 곡물로 만든 밑술을 증류한 진과 보드카, 선인장의 한 종류인 용설란으로 만든 데킬라, 사탕수수로 만든 럼, 탁주를 증류해 만든 백주와 소주 등 다양한 증류주가 전 세계에서 나타났다.
“도수도 높고, 원재료의 맛이 은은하게 살아있으면서도 만드는 과정에 따라 추가적인 맛을 추가할 수도 있죠. 사람들은 전부 증류주에 빠져들었어요.”
“사장님도 좋아하십니까?”
“저는 너무 독해서 스트레이트로 먹진 못하고 희석해 먹지만요.”
탄산에 증류주를 탄 다음 레몬 하나 띄우면 맛있는 하이볼이 완성되지.
이게 또 요리랑 잘 어울리는데.
나는 입맛을 쩝 다시며 막 가게가 아닌 [도원향]으로 들어가는 천오 형제들에게 소리쳤다.
“천오야! 그거 찌그러지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조심해서 옮겨!”
“어휴, 잔소리는. 우리가 누구야? 제천대성의 분신이라고. 걱정하지 말아!”
“······그러니까 더 걱정되는 건데.”
손오공이 보통 사고를 치고 다녔어야지.
천오에게 안 들리게 중얼거리는 내 말을 듣고 옆에서 에녹이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 천오 형제가 옮기는 건 이번에 주문을 맡긴 대용량 증류기였다.
‘연성이네’ 주방에 넣을 수 없어서 [도원향]의 내 저택 옆에 따로 건물을 하나 올린 뒤 그 안에 넣기로 했다.
거기다 일반 증류기와 다르게 마력수와 마력이 깃든 알코올을 분해해 줄 수 있는 특제 도구였다.
그리고 그걸 만든 장인은,
“이 녀석아! 누가 만든 건데 그게 쉽게 찌그러지겠어?”
당연히 손기술로는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우리의 드워프 친구, 알비스였다.
“저래 봬도 그리스에서만 나오는 오레이칼코스, 그러니까 오리할콘으로 만든 거야. 증류기는 역시 구리로 만들어야지.”
오리할콘은 그리스 신들의 축복을 받은 산의 구리로 신화급 성좌들이 성좌력을 쏟아부은 결과 무지갯빛으로 빛난다는 전설의 금속이었다.
알비스는 무려 그런 오리할콘으로 내 증류기를 만들어준 것이었다.
물론 오리할콘은 성좌마켓에서 내 스타 코인으로 산 거지만.
“세상에 오리할콘으로 무기도 아니고 증류기를 만들다니. 그것도 술을 빚겠다는 녀석은 너밖에 없을 거다.”
“이번에 상대할 성좌가 보통이 아니거든요.”
어차피 내게 남는 것이 성좌력이였다.
당장 성좌가 되고 싶진 않으니 다른 성좌들처럼 성좌력을 아낄 필요도 없고 이럴 때 팍팍 써야지.
“나야 뭐, 일한 만큼 대가를 받으면 그만이니까. 대가는 준비되어 있겠지?”
알비스의 얼굴이 음산해지면서 서늘한 기운이 흘러나온다.
북유럽 신화에서 드워프들은 뛰어난 능력으로 신들에게 장비를 만들어주는 대신 신들도 주기 어려운 대가를 요구하기로 유명한 종족.
알비스도 한때 스루드를 아내로 달라고 토르에게 요구했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 알비스가 내게 원하는 대가는······.
“자, 여기요. 페일 에일이랑 브라운 에일, 스타우트가 있는데 어떤 걸 원해요?”
“전부 다! 다 주게! 으하하하, 이렇게 마력이 가득한 맥주라니! 역시 자네는 천재야!”
며칠 전에 라구티스와 함께 만든 맥주 한 통씩이면 충분했다.
한때 성좌를 아내로 맞이하고자 했던 야심 찼던 드워프의 대가로는 뭔가 모자란다는 느낌이지만, 알비스의 생각은 달랐다.
“이렇게 마력이 깃든 맥주는 성좌들도 마시기 어렵지. 그런 맥주를 손에 넣었는데 그깟 결혼이 대수냐!”
“그, 그런가요?”
“내가 충고하건대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야. 맥주도 마음대로 못 마시게 하는 아내라니! 지옥이 따로 없구만.”
“그, 그런가요?”
“당연하지! 자네도 혼자인 생활을 즐기라고!”
그렇게 말하며 알비스는 맥주통을 양 옆구리에 끼고 신이 나서 사라졌다.
그 뒷모습이 뭔가 처량한 노총각의 모습이었다는 건 절대 말해주지 말자.
본인이 독신 생활을 즐기고 있다면 그걸로 됐지, 뭐.
“자, 그러면 증류기도 도착했겠다, 한번 제대로 증류주를 만들어 볼······.”
“왕! 편지 와써!”
내가 증류 작업에 들어가려는 순간, 설기 녀석이 입에 양피지 두루마리를 물고 열심히 뛰어왔다.
[도원향] 안에서는 인간형의 모습이라 손도 쓸 수 있는데 굳이 입으로 물고 오는 건 코볼트의 습성인가.임마, 입에서 힘을 빼야 내가 편지를 받지!
나는 한참이나 설기와 힘 싸움을 하고 나서야 실랑이하며 침으로 범벅된 두루마리 편지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헥헥!”
그러자 빨리 칭찬해달라는 눈빛으로 나를 기다리는 설기 녀석.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녀석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어주었다.
“그래, 잘했다, 잘했어.”
“헤헤, 칭찬받았당!”
기뻐하는 설기를 두고 나는 두루마리 편지를 펼쳤다.
거기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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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참가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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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조 성좌협회에서 ‘술’로 경쟁할 새로운 참가 대상을 찾습니다.
행사명 : 디오니소스 배 양조대회
주최 : 디오니소스
주관 : (사) 영조 성좌협회
참가 조건 : ‘술’을 만들 수 있는 성좌
경연 종목 : 술이라면 어떤 것이든.
시상 내역 : 승자독식(Winner Take All),
– 본 대회에서 정해지는 술의 서열로 양조 성좌협회 내의 서열이 정해짐.
– 대회의 우승자는 협회장에게 무엇이든 한 가지 요구를 할 수 있음.
* 귀하는 성좌 헤르메스의 보증을 받아 협회장 디오니소스가 정한 특별 참가 대상입니다.
(사) 양조 성좌협회장 디오니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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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메스가 양조 성좌협회에서 받아 전해준 양조대회의 참가장이었다.
각오하고 있었지만, 막상 받으니 살짝 긴장되네.
하지만 그 긴장은 참가장 아래에 적힌 내용을 보고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다.
“참가 일시가 내일이고, 대회 장소가 여기라고?!”
놀랍게도 참가장에 적힌 대회 장소는 [도원향]이었다.
아니, 누구 마음대로 내 아공간에서 대회를 개최해?
* * *
그리고 그날 저녁.
헤르메스가 대회 준비를 위해 찾아오자 나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그를 잡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그러니까 여기서 대회를 여는 게 나를 위해서 저쪽에서 제안한 거라고요?”
“일단은 그래.”
한숨을 쉬며 헤르메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성좌들이 자신의 영역에서는 무적인 거 알지?”
“그렇다고 듣긴 했어요.”
성좌의 영역은 성좌 본인을 위해 모든 것이 맞춰진 영역이었기에, 성좌의 영역에서는 손님이 함부로 주인에게 시비를 걸거나 싸움을 할 수 없었다.
그랬다간 최고신이어도 목숨을 보장하기 어려우니까.
“그래서 원래 이런 대회가 열리면 대회에 참가하는 성좌의 영역은 피하게 되어 있어.”
“안전상의 이유인가요?”
“그것도 있지만, 공간 자체가 주인인 성좌를 위해 만들어졌으니 너무 불공평해져서 그래.”
예를 들어보자.
만약 디오니소스의 영역에서 양조대회가 개최된다면?
디오니소스의 영역에서 자라는 모든 포도는 디오니소스만을 위해 맛을 낼 거고, 그 영역에 있는 공기는 다른 상대의 효모균을 모두 죽여버리는 살상 가스로 바뀔지도 모른다.
사실 디오니소스가 아니라 다른 성좌들도 마찬가지.
“그래서 보통은 제삼자의 영역을 빌려서 대회를 진행하고는 해. 이번에는 내 영역에서 할 생각이었고.”
“헤르메스 님의 영역이요?”
“응.”
헤르메스의 영역이라.
상업과 전령의 신이기도 하지만, 여행자와 도둑의 신이기도 한 헤르메스였기에 나도 모르게 산적들이 사는 산채를 떠올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걸 눈치챈 모양인지 헤르메스가 발끈했다.
“아니거든? 엄청 좋은데 거든?”
“산적 산채가 아니면 유튜버 스튜디오?”
“······.”
갑자기 침묵하는 헤르메스.
뭐야, 진짜였어?
아무튼, 헤르메스는 고개를 젓고는 말을 이어 나갔다.
“내가 너랑 친하다는 이유로 디오니소스랑 양조 성좌협회가 퇴짜를 놨어. 공정성에 위배된다나?”
“흐음.”
“그러더니 갑자기 디오니소스가 제안을 하나 하더라고.”
디오니소스가 한 제안은 바로 내 영역까진 아니더라도 비슷한 공간인 [도원향]에서 대회를 열자는 것.
“누구의 영역도 아니기에 공정하고, 또 아직 성좌가 아닌 네게 유리한 전장을 고르는 게 선배들인 자신들의 배려라던데?”
“정말 그런가요?”
“아니, 분명히 무슨 꿍꿍이속이 있을 거야.”
헤르메스가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그렇지.
술에 국한되어 있긴 하지만, 하는 행동을 보면 ‘약육강식’의 화신 같은 디오니소스가 약자를 배려해줄 리가.
“어떤 속셈인지는 모르겠지만, 여기가 너한테 좋은 전장인 건 확실해.”
“그건 그렇죠.”
이 제안을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단 하나 거슬리는 점이 있다면, 손님 접대 때문에 내가 정신없어질 거라는 것.
아무리 대회라지만, 성좌들이 직접 오는 데 손님 대접이 형편없으면 그것도 문제다.
‘연성이네 신야식당’의 평판에 무리가 가니까.
그렇다고 접객에 신경을 쓰다 보면 대회에 집중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자 헤르메스가 고개를 저었다.
“대회 준비나 일꾼은 전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너는 걱정하지 말고 대회에만 신경 써.”
“감사합니다. 그래도 될까요?”
“그럼.”
헤르메스가 씨익 웃으면서 자신의 눈을 가리켰다.
“어차피 갓튜브 촬영하려면 내가 준비하고 내가 통제하는 게 편하거든.”
“······이것도 촬영하는 거군요.”
“당연하지! 이번에도 이걸로 번 스타 코인은 비율대로 정산해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갓튜브 각을 잡은 헤르메스가 신이 나서 자신의 권속들과 대회를 준비하러 갔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대회에 참가하는 수많은 양조 성좌와 그들의 대표, 디오니소스가 [도원향]을 찾아왔다.
“네가 바로 양조 성좌들의 권리를 행사하겠다고 나선 건방진 인간이로구나.”
“반갑습니다, 디오니소스 님. 작은 가게를 하고 있는 도연성이라고 합니다.”
내 소개에 마치 그리스 조각상이 움직이는 것처럼 아름다운 외모의 디오니소스가 나를 위아래로 훑더니 묘한 미소를 지었다.
“과연, 성좌의 자리를 넘볼 정도는 된다는 건가?”
“과한 말씀이십니다.”
“좋아. 네가 성좌가 된다면 양조 성좌협회에 받아주지.”
성좌는 무슨.
저는 이대로 살고 싶은데요.
거기다 양조 성좌협회에 들어갈 생각이라곤 추호도 없고요.
그러나 디오니소스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단, 그것과 별개로 여기서 지면 내 노예로 삼아야겠어.”
아니, 잠깐만.
대체 그 눈에 왜 이글이글 타오르는 탐욕이 보이는 거죠?
나는 마치 나를 잡아먹을 것처럼 번들거리는,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빛을 하고 있는 디오니소스를 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쿠데타 선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