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chef of the constellations RAW novel - Chapter 176
176화. 쿠데타 선언
“어쨌든 이렇게까지 일을 벌였으니 얼마나 술을 잘 빚는지 지켜보겠어.”
디오니소스는 기이할 정도로 끈적한 시선을 보낸 뒤 자리를 떠났다.
나는 그가 떠난 뒤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신화급 성좌의 집착 어린 시선이라니.
두 번 다시는 받고 싶지 않은데.
“쟤가 왜 저러지?”
“헤르메스 님?”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내 곁으로 와서 입을 여는 헤르메스의 표정이 심각했다.
“이상한 일이라도 있는 건가요?”
“디오니소스. 쟤가 저렇게 인간에 집착한 적이 딱 두 번 있었거든.”
“두 번이요?”
“그래. 한 번은 아내인 아리아드네를 얻을 때였지.”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는 미궁 속의 괴물인 미노타우로스를 죽일 때 크레타의 공주 아리아드네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이게 그 잘 알려진 미궁에서 실을 따라 돌아온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 뒷이야기에서 테세우스는 자신을 도와줬던 아리아드네를 비정하게 버려두고 자신만 아테네로 돌아가 버린다.
그렇게 버려진 아리아드네를 디오니소스가 데려가 아내로 삼은 게 아니었나?
“겉으로는 맞아. 그런데 실상은 좀 다르지.”
헤르메스가 한숨을 내쉬며 설명해준 바에 따르면, 아리아드네에게 반한 디오니소스가 직접 성좌력을 왕창 깎아 먹으면서까지 테세우스의 꿈속에 현현했다고 한다.
‘그녀는 내 것이다. 내 아내가 될 여자다. 그러니 너는 그녀를 두고 떠나라.’
아무리 테세우스가 아테네를 대표하는 영웅이고 수많은 업적을 세웠다고 해도 상대는 올림포스를 지배하는 12 신화급 성좌 중 하나인 디오니소스였다.
스파르타를 대표하는 영웅이자, 그 업적이 뛰어나서 훗날 신들과 나란히 기간테스를 물리쳐 성좌로 인정받은 헤라클레스라면 모를까.
결국, 테세우스는 디오니소스의 협박과 강요를 이기지 못하고 아리아드네가 잠든 다음에 그녀를 섬에 버려두고 떠나야 했다.
“그리고 테세우스가 떠난 것에 좌절하던 아리아드네에게 구원자처럼 나타나서 그녀를 속이고 아내로 삼았지.”
“······그런 일이 있었군요.”
내가 알던 신화의 실제 이야기가 이랬다니.
이건 좀 충격인데.
나는 디오니소스의 진짜 성격을 살짝 엿본 것 같아서 입맛이 쓴 상태로 물었다.
“두 번째는요?”
“폴림노스라는 인간 남자였는데. 크흠, 내 입으로 말하긴 좀 뭐하네.”
무슨 이야기인지 몰라도 아리아드네랑 동급의 집착을 남자에게 보였다면, 묻기 꺼려지는 이야기겠지.
나는 듣지 않고 넘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잠깐만.
“그런 집착을 제게 보이고 있다고요?”
“응. 그게 아니면 디오니소스가 인간에게 이렇게 관심을 가지는 일은 거의 없어.”
서, 설마 아까 끈적한 눈빛으로 날 보던 게······?
내가 불길한 예감에 몸을 부르르 떨자, 헤르메스가 이상하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다. 디오니소스는 남자든 여자든 미남미녀만 좋아하는데.”
“······.”
“아마 너는 아닐 거야. 걔 취향 까다롭거든.”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네요.”
미남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하자.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서 다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내게 헤르메스가 혀를 찼다.
“쯧. 안심할 때가 아니야. 그 목적이 아니라면 더 골치가 아프니까.”
“네?”
“너는 네가 지금 성좌들 사이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자각할 필요가 좀 있어.”
“제가요?”
“그래.”
헤르메스의 말에 의하면 나는 아무것도 없는 인간으로 시작해서 딱히 영웅이 되지도, 그렇다고 유명한 것도 아니었는데 곧 성좌가 될 수 있는 규격 외의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가장 규격 외인 점은 네가 아직 한 번도 죽지 않았다는 거지.”
세종도, 헤라클레스도 죽은 뒤에야 성좌가 됐다는 걸 생각하면 살아있는 채로 성좌의 자리에 오를 게 눈에 보이는 나는 규격 외 중의 규격 외라나?
“저는 이런 걸 바라지 않았는데 말이죠.”
한 거라곤 요리해서 성좌들 밥해준 것밖에 없는데 어느 순간 정신 차려보니 곧 성좌란다.
나는 그게 불만이었다.
차라리 죽고 난 뒤에 성좌가 되면 몰라.
이대로 승천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니까.
“최후의 그걸 결정하는 건 너니깐. 마음대로 해.”
다행히도 내가 원하지 않으면 성좌가 되는 걸 최대한 미룰 수는 있는 모양이었다.
“중요한 건 그럴 가능성과 자격을 갖췄다는 것만으로도 너는 성좌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어. 특히 네가 성좌가 된 이후에 스카웃 해가려는 성계가 많아.”
하나의 성계는 해당 지역이나 민족의 신화에 속한 성좌들로 구성되는 게 보통.
나는 만약 내가 성좌가 되더라도 당연히 한반도 성좌 쪽으로 합류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가 보네?
“너는 이 좁은 땅의 신으로 남기엔 너무 많은 성좌랑 교류를 맺었거든. 거기다 성좌들을 위한 요리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누구나 데려가려고 하고 싶어 할 걸?”
“휴, 점점 성좌가 되고 싶지 않아지네요.”
난 그저 요리하길 좋아할 뿐인데 왜 이렇게 일이 꼬이는 건지.
내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신경질을 부리자 헤르메스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며 내 등을 토닥여줬다.
“성좌가 되는 건 일단 나중에 생각하고. 지금 당장은 대회에 집중해. 인간일 때를 즐겨야지.”
“감사합니다, 헤르메스 님.”
그래도 성좌 중에서 제일 나를 걱정해주는 건 역시 헤르메스······라고 생각하려는 찰나, 나는 헤르메스의 눈이 번쩍이는 걸 봤다.
“제가 빨리 대회에 참가해야 갓튜브 찍을 수 있어서 그런 거죠?”
“······들켰어?”
에휴, 말을 말자. 내가 누굴 믿어.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도원향] 한켠에 헤르메스와 그의 권속들이 마련해놓은 양조대회장으로 향했다.
* * *
“자, 이곳에 모인 양조 성좌협회 회원분들, 그리고 그 권속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 대화의 진행을 맡게 된 헤르메스라고 합니다.”
헤르메스가 분주히 대회장을 촬영하면서 동시에 개회사를 하고 있을 무렵.
나는 대회에 참가한 성좌들을 쓱 살폈다.
“이집트, 인도, 켈트, 게르만, 북유럽에 아프리카까지. 온갖 신화 속의 성좌들이 총출동했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서로 팀을 짜서 협동하고 있거나 권속들을 데리고 와서 같이 양조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디오니소스만 해도 그 주변에 거의 성좌급 격을 갖춘 권속들이 모여있었다.
“술을 원액으로 마시는 술꾼 아크라토포테스, 술에 물을 타 마시는 케라온, 만취의 여신 메테, 디오니소스의 스승이자 언제나 취해있는 실레노스.”
“저렇게 격이 높은 분들이 전부 권속이라고요? 역시 신화급 성좌라 다른 건가······.”
“정작 성좌도 아니면서 성좌를 팀으로 부리고 있는 네가 할 말이야?”
그들의 이름을 말해주는 건 날 도와주기 위해 내 팀으로 와있는 라구티스였다.
당연히 라구티엔도 함께 와 있었고,
그리고,
“마스터가 요리하시는 곳엔 언제나 제가 있어야죠.”
“고마워요, 미야.”
당장 성좌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지만, 본인의 선택으로 권속에 머물러 있는 미야까지.
이야, 이렇게 보니 우리 팀도 만만치 않네.
“제가 또 사과술 장인이거든요. 제가 만든 사이더를 마셔보면 마스터도 넘어가실걸요?”
“그건 나중에 꼭 먹어 보고 싶네요.”
맥주와 벌꿀 술의 성좌 라구티스-라구티엔 부부와 제과제빵도 잘하지만, 양조도 잘하는 미야, 그리고 [성좌의 마스터셰프]인 나까지 포함 4명의 팀이 완성되자, 여기도 나름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어떤 위대한 분의 시선을 끈 모양이었다.
“라구티스. 내 호의를 거절하더니 결국 인간에게 붙은 건가?”
디오니소스는 바로 나에게 오지 않고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라구티스를 비웃었다.
그러곤 곧장 나를 보며 입가를 일그러뜨렸다.
“감히 인간 주제에 성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같은 취급을 받고 싶어 하는 저 불손한 이를 돕다니. 라구티스, 몹시 실망이군.”
“나, 나는······.”
라구티스의 목소리가 사정없이 떨린다.
이런, 라구티스와 디오니소스의 궁합이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울먹이는 라구티스의 앞에 서며 디오니소스의 시선으로부터 그를 가려주었다.
그런 내 모습이 디오니소스의 심기를 더 불편하게 한 모양이었다.
“흥, 인간 뒤에 숨어야 할 정도로 나약한 성좌인가. 그럴 거면 성좌의 격을 포기하고 저 인간의 애완동물로 내려가는 게 어떤가?”
“말이 심하십니다.”
와, 도저히 못 참겠네.
나는 얼굴 표정이 딱딱해지는 걸 느끼며 디오니소스를 노려보았다.
적어도 지금까지 만났던 성좌들은 제멋대로고 독특하긴 했지만, 이렇게 무례한 존재는 없었다.
시황제는 빼고.
아무튼, 지금은 ‘연성이네’ 손님도 아니고 대회에서 경쟁하는 사이라지만, 여기는 내 아공간.
이렇게 나오는 꼴은 못 본다.
나는 디오니소스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아무리 협회장이라지만 지위만 믿고, 다른 이를 괴롭히는 모습이 보기 좋진 않군요. 격에 맞춰 행동하시죠.”
나도 간이 커지긴 한 모양이었다.
신화급 성좌를 상대로 이런 건방진 말을 다 하고.
디오니소스도 놀란 듯 살짝 눈을 크게 떴다가 얼굴을 차갑게 굳혔다.
“격? 감히 네가 그런 말을 하는 건가? 이 대회의 격을 망친 장본인이?”
“제가 뭘 했다는 겁니까?”
“이 대회에 네가 끼어들어서 출전하지 못한 성좌들이 있다.”
양조대회는 양조 성좌협회의 회원들에게는 자신의 서열을 높일 수 있는 얼마 없는 찬스.
하지만 TO가 한정되어 있기에 내 참가로 인해 밀려난 성좌들이 있던 모양이었다.
“예를 들어 중국의 의적과 두강은 나오지 못했지. 잘 모르나? 그러면 네가 살고 있는 이 땅의 신을 말해줄까? 철륭 역시 나오지 못했다.”
철륭 혹은 철융신.
한국 전통 신이자 가택신으로 뒷마당, 그중에서도 장독대를 수호하는 신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술의 성좌는 아니었지만, 술이 익는 독, 그러니까 항아리를 다스리는 성좌랄까.
아무튼 철융신도 양조 성좌협회에 가입했던 모양이었네.
“기존 회원들이 너로 인해 밀려나 대회에 나오지 못했지. 개중에는 이번 기회를 놓쳐 실적을 달성하지 못해 협회에서 쫓겨나는 이들도 있을 거다.”
세상에, 단순히 서열만 나누는 게 아니라 실적 미달이면 쫓아내기까지 한다고?
나는 디오니소스가 다스리는 양조 성좌협회의 살벌함에 혀를 내둘렀다.
성좌협회에서 쫓겨나면 인지도에 영향이 갈 거고 그러면 스타 코인과 성좌력도 하락할 터.
“격이 낮은 성좌에겐 그것도 치명적일 수도 있지. 네가 그걸 아느냐?”
“모릅니다.”
내가 어찌 알겠어.
내 참가로 인해 다른 성좌가 성좌의 격을 잃는 건 살짝 내 마음을 흔들어놓기에 충분했다.
나 말고도 라구티스와 라구티엔의 표정도 어두워졌다.
그걸 본 디오니소스가 입꼬리를 비틀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그렇게 되면 성좌들의 원망이 저 건방진 인간은 물론이고 너희에게도 향할 것이다. 감당할 준비가 되었는가?”
“······.”
“되지 않았다면 얼른 손을 떼고 물러나라. 그렇게만 하면 이번 일은 불문에 부쳐주지.”
라구티스와 라구티엔이 섣불리 대답하지 못하고 있자 디오니소스는 자신의 의도대로 됐다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상한 게 하나 있거든?
“안 쫓아내면 되는 거 아닙니까?”
“······뭐?”
내가 반박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지 당황하는 디오니소스를 향해 나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애초에 만들어진 술의 퀄리티로 서열을 가르고 실적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쫓아낸다는 둥, 규칙을 정한 건 디오니소스 님 아닙니까? 듣기로는 전임 협회장이 있을 땐 그런 일이 없었다던데요?”
“감히 내 앞에서 전임 협회장의 이야기를 꺼낸다고······?”
“저는 있는 것만 말씀드리는 겁니다. 전임 협회장처럼 경쟁 없이 자신이 만들고픈 술을 만들면서 다 같이 즐겁게 양조하는 협회였으면 쫓겨나는 회원도, 성좌에서 격이 떨어지는 회원도 없었겠죠.”
내 지적에 디오니소스의 표정이 처음으로 무너져내려, 분노로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규칙은 규칙이다! 협회의 규칙은 당연히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규칙을 정한 성좌의 책임 아닙니까?”
당연히 그 성좌는 디오니소스다.
내 마지막 일격에 그는 붉어진 얼굴로 나를 향해 으르렁댔다.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이 우리 협회의 일에 제멋대로 참견이구나. 기껏 배려를 베풀어서 대회에 참가할 기회를 줬건만, 그대로 내 분노를 받고 싶은 거냐?”
천벌은 받고 싶지 않지.
그런데 성좌고 사람이고 존중받으려면 존중받을 행동을 해야 하더라고.
자꾸 꼴 받게 하는데 내가 존중해줄 이유가 없잖아?
나는 성좌 앞에서 처음으로 팔짱을 끼면서 입꼬리를 쓱 올렸다.
너만 비웃음 짓냐? 나도 비웃음 지을 수 있다, 이거야.
그런 나를 보던 디오니소스의 얼굴에서 감정이 싹 사라졌다.
와우, 이거 분노가 극에 달하면 오히려 티가 안 난다는 그거 맞지?
디오니소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내가 아닌 라구티스와 라구티엔을 보았다.
“저 건방진 인간의 말이 너희의 뜻과 같나?”
아니, 나랑 시비 붙었으면 됐지, 꼭 저렇게 연대책임을 물게 하려고 하네.
내가 발끈해서 다시 나서려는 순간이었다.
“같아요. 아니 같습니다.”
꼬마 신랑이 더는 잼민이가 아닌, 어엿한 성좌의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직도 디오니소스가 무서운지 몸은 살짝 떨리고 있었지만, 자신이 두려워하던 대상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런 라구티스 옆에 라구티엔이 나란히 섰다.
“디오니소스 님이 제시하고 밀어붙였던 규칙에 의해서 □□□□□님은 협회장의 자리에서 쫓겨나 소멸하셨습니다.”
“감히 그 이름을······!”
“······저는 그분의 뒤를 이어 벌꿀 술의 명맥을 잇는 성좌로써 이 인간 요리사를 지지합니다.”
“그건 나를 협회장에서 쫓아내겠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디오니소스가 그녀를 싸늘하게 노려보면서 묻는 순간, 라구티엔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당신을 끌어내리고 당신의 규칙으로 오염된 양조 성좌협회를 바꿀 겁니다.”
폭탄 발언.
언제나 착하고 내조 잘하는 각시였던 라구티엔이 쿠데타를 선언했다.
이기면 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