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chef of the constellations RAW novel - Chapter 180
180화. 요리사가 술을 숨김
“이상한 놈이군.”
로마 신화 속 술의 신, 리베르 바쿠스 역시 디오니소스처럼 인간 출신 권속이라고 도연성을 얕보고 있었다.
원래는 별개의 존재였지만, 디오니소스와 동일 존재로 여겨져 신앙이 합쳐진 탓에 그와 사고방식도 비슷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디오니소스만큼 성격이 나쁘지 않았기에, 그는 인간 출신임에도 권속의 자리에 오르고 성좌까지 넘보는 연성을 높게 평가하긴 했다.
‘하지만 그래도 성좌를 넘보는 것과 성좌는 다르지.’
그렇기에 자신들을 이기겠다고 호언장담하는 연성을 보며 안쓰러움과 동시에 고까움을 느낀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런 그를 내버려 두고 자신의 포도주에 집중하기로 했다.
“뮈스카의 포도의 향이 좋군.”
리베르 바쿠스는 자신의 손 위에 올려진 뮈스카 포도, 즉 현재의 머스캣 포도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지금은 샤인 머스캣으로 유명한 이 뮈스카 품종의 포도는 당분이 높아서 고대 로마 시절부터 스위트 와인의 재료로 유명했다.
“거기다 시칠리아의 햇볕을 머금어 잘 말랐어.”
놀랍게도 리베르 바쿠스가 가져온 포도는 그냥 포도가 아니라 건포도였다.
정확히는 3주 이상 말려야 하는 건포도가 아니라 7일간만 말려서 수분이 적당히 날아가고 당도가 높아진 포도였다.
이렇게 일부러 말려서 당분을 높여 단맛을 극대화하는 와인을 파쑴(Passum)이라고 불렀는데 현대에선 파시토, 영어로는 스트로 와인이라고 부르는 건조 와인이 바로 그것이었다.
“자고로 와인은 달아야지.”
그리스나 중세 유럽 사람들과 달리, 로마인들은 특히나 스위트 와인을 사랑했다.
그렇기에 리베르 바쿠스가 선택한 와인도 디오니소스와 다른 달달한 와인이였다.
거기다 그가 디오니소스와 다른 점은 또 하나 있었다.
“읏차.”
리베르 바쿠스는 권속을 시키지 않고, 아니 애초에 권속을 데려오지도 않았기에 본인이 직접 반건조 포도를 밟으며 와인 제작에 들어갔다.
자신은 손만 까딱하고 있고 일은 전부 권속에게 시키는 디오니소스와는 정반대였다.
“상태가 좋군. 좋은 와인이 되겠어.”
리베르 바쿠스는 발로 으깬 포도를 아무것도 넣지 않고 그대로 발효시키기 시작했다.
그러자 포도 껍질에 포함되어있는 자연산 효모가 자연스럽게 으깬 포도를 포도주로 바꾸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약을 뿌려 재배한 포도에 설탕과 정제된 효모, 이산화황 같은 산화 방지제를 넣고 와인을 만들지만, 고대인들은, 아니 19세기까지도 이렇게 있는 그대로 와인을 만들었다.
현대에선 이러한 와인을 내추럴 와인이라 부르며 다시 이때로 돌아가자는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데,
“음? 이런 향이?”
그가 자신의 와인을 만드는 중, 연성이 처음으로 만든 술, 소곡주의 향이 그가 있는 곳까지 퍼져왔다.
과일이나 맥아로 만든 술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그윽한 곡물의 향기와 꽃향기에 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게 그 인간이 만든 술의 향이라고?”
마치 수줍은 소녀처럼 은은하면서도 그 안에는 성숙한 여인의 향기처럼 달콤함이 숨겨져 있었다.
디오니소스만큼 유명하진 않았지만, 대로마제국의 포도주의 신으로서 수많은 포도주와 술을 마셔본 그로서도 처음 느끼는 아찔한 술의 향이었다.
“놀랍군. 감히 성좌들을 이기겠다고 자신할 만해.”
리베르 바쿠스의 얼굴에서 처음에 가졌던 비웃음과 깔봄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 역시 술의 성좌, 향만 맡아도 연성이 만든 술의 대단함을 알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걸 만든 도연성이라는 존재에 대한 대단함 역시 느낄 수가 있었다.
“어지간한 성좌들은 이미 발아래에 두고 있군.”
다른 양조 성좌협회의 회원들도 그걸 느낀 건지, 수준이 낮은 성좌들은 멍하니 연성이 술을 만드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탕수수 재배에 실패한 오군은 아예 술 만드는 걸 포기하고 연성의 근처를 기웃대고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성좌들에게 닥친 충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술을 끓인다고······?”
연성이 갑자기 증류기에 기껏 만든 소곡주를 붓고 화염 속성 마정석으로 불을 피우기 시작하자 리베르 바쿠스를 비롯한 성좌들이 경악하기 시작했다.
물론 와인이나 맥주를 끓이는 건 그들에게도 어색한 일은 아니었다.
술을 한 번 데우면 술 안의 효모가 죽어 식초가 되는 걸 방지할 수도 있고, 아예 뱅쇼처럼 끓여서 도수를 낮추고 다른 향신료와 함께 먹는 술도 존재했다.
요리에 와인이나 맥주를 넣는 방식도 있었고.
“요리사라 그런가. 술을 끓이다니. 하지만 아깝군. 좋은 술이었는데.”
리베르 바쿠스는 연성이 요리사라서 술을 끓이는 무리수를 던진 거라고 생각했다.
그냥 그대로 술을 냈어도 충분히 승산이 있었는데 저런 무리수를 하다니.
좋은 술을 망쳤다며, 그가 아쉬워하고 있을 때였다.
“투명한, 술?”
증류기에서 똑똑 떨어지는 투명한 술, 소곡소주가 모습을 드러내자 리베르 바쿠스는 경악했다.
그건 다른 성좌들도 마찬가지였다.
“저게 대체 무슨 술이지? 어떻게 색이 저렇게 투명할 수가 있어?”
“저 냄새를 맡아 봐. 도수가 엄청나. 저렇게 강력한 술이 있었나?”
발효주는 그 재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탁해지거나 색을 띨 수밖에 없다.
아무리 맑고 깨끗한 화이트 와인이라고 해도 포도 속살과 같은 은은한 노란색을 띠기 마련.
그런데 순수한 알코올만 뽑아낸 증류주는 투명하고 맑은 것이 물과 별 차이가 없었다.
거기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알코올의 한계는 20도 정도.
그 이상 발효되면 술을 만드는 효모 역시 죽어버리기에 양조 성좌협회의 성좌들은 20도 이상 술을 본 적이 없었다.
20도 이상은 오로지 증류를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알코올 도수였다.
“아니, 내가 만들어서 줬는데! 다들 기억을 못 하냐!”
평소에 럼주를 만들던 오군이 억울한 듯 외쳤지만, 양조 성좌협회에서 서열도 낮고 위상도 낮은 그의 말은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애초에 그의 전성기였던 아프리카 시절에는 럼이 없었고 사탕수수 농장에서 그를 섬기던 흑인 노예들이 럼을 그에게 바친 것이 술의 성좌가 된 계기라 그의 술 빚는 실력은 사실 최약체이기도 했다.
그래서 아무도 그의 술을 제대로 먹어주지 않았다는 것이 슬픈 현실이었다.
한편, 증류주를 처음 본 리베르 바쿠스는 눈을 가늘게 떴다.
“흥미롭군. 나도 방심하면 안 되겠는데.”
디오니소스를 제외하곤 양조 성좌협회 안에서 탑5 안에 항상 들었던 그였다.
그런 그가 연성의 술을 보며 긴장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연성의 소곡소주가 대단했다는 소리기도 했다.
“흥, 술에 자신이 없으니 저런 헛짓거리를 하는 거지.”
옆에서 들린 목소리에 리베르 바쿠스가 고개를 돌렸다.
디오니소스의 권속 중 하나가 디오니소스의 포도주를 만들다 말고 도연성을 향해 비아냥거리는 소리였다.
“안 그렇습니까, 디오니소스 님?”
“······후후후.”
그런 권속의 말에도 디오니소스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묘한 미소만 짓고 있었다.
리베르 바쿠스는 그런 자신의 형제 아닌 형제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대체 어쩔 생각인 거지? 그리고 저 포도나무는······.’
리베르 바쿠스는 디오니소스의 포도나무와 화분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어디서 가져왔는지는 몰라도 평소에 디오니소스가 쓰던 아시르티코나 사바티아노, 아기오르지티코 같은 포도가 아니라 생전 처음 보는 품종이었다.
거기에 저 요상한 색채와 기운을 내뿜는 흙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졌다.
‘어디까지 갈 셈이냐, 디오니소스.’
출발은 전혀 다른 존재였지만, 이제는 하나의 신앙을 공유하는 그와 디오니소스였기에 리베르 바쿠스는 점점 이상한 모습을 보이는 디오니소스를 보며 한숨을 깊게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리베르 바쿠스의 눈에 서둘러 아공간 [도원향] 밖으로 나가는 연성의 모습이 들어왔다.
“저 인간 권속은 대회 도중에 자리를 비우는 건가.”
대회를 포기한 건가? 저렇게 훌륭한 술을 만들고도?
리베르 바쿠스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저, 저게 뭐지?”
잠시 후 돌아온 연성의 손에는 기가 막힌 냄새를 풍기는 온갖 요리가 잔뜩 담겨있었다.
* * *
지글지글, 보글보글, 치이이익.
요리의 가짓수는 많았지만,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미리 어떤 요리를 할지 다 생각해놓고 준비하고 있었으니까.
거기다 오크통 숙성은 라구티스와 라구티엔에게 맡기고 직원들 모두가 와서 도와준 덕분에 빨리 끝날 수 있었다.
“정말 통할까?”
함께 요리를 나르던 천오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어왔다.
그러면서도 눈은 요리로 향해서 침을 꿀떡꿀떡 삼키는 게 천오다웠지만.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너도 잘 알겠지만, 주안상이란 말이 있잖아?”
주안(酒案)상.
술과 안주.
즉, 예로부터 선조들은 술과 음식을 떼어놓을 수 없는 짝꿍이라고 생각해왔다.
결혼을 뜻하는 프랑스어의 마리아주, 결합을 뜻하는 영어의 페어링과 일맥상통하는 아시아의 전통이었다.
내 말에 천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술에도 음양이 있고 음식에도 음양이 있지. 적절한 조화는 몸에도 좋고.”
음양오행 사상에 따르면 만물에는 음양과 오행이 있는 법.
맥주나 막걸리, 사케나 와인은 수(水)의 기운이 강해 음의 속성을 띤다고 한다.
그래서 뜨겁게 튀기는 치킨이나 그림에 지지는 부침개, 강하게 굽는 스테이크처럼 양의 속성을 띤 음식을 먹어야 하는 법이고.
반대로 고량주, 보드카, 증류식 소주 등은 몸을 달아오르게 하는 화(火) 속성이 있어서 양의 술이라고 한다.
그래서 몸의 열을 내려주는 돼지고기가 잘 어울린다나?
내 의견이 아니라 음양오행 사상에 의하면 그렇다는 소리였다.
“뭐, 맛있으면 아무거나 같이 먹어도 되지만.”
“인정.”
나는 천오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다음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도 이번엔 꽤 심혈을 기울여서 안주를 고르고 코스를 짰어. 확실히 먹힐 거야.”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사장님.”
나와 천오의 대화에 에녹이 끼어들어 왔다.
그의 얼굴은 사뭇 심각해져 있었다.
“모든 성좌가 여길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렇네요.”
자리를 비우고 음식을 가져온 탓일까?
아니면 아까 만들었던 술의 향이 좋아서 그런 걸까.
나는 나를 향해 쏟아지는 성좌들의 견제 섞인 눈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자 라구티스가 입을 삐죽 내밀며 투덜거렸다.
“왜 이제야 와! 술 지키느라 고생했잖아.”
“지켜요?”
“그래. 다른 성좌들이 맛만 보자고 얼마나 달라붙던지.”
라구티스가 몸을 부르르 떨며 진절머리를 냈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나를 경쟁자로 여기고 염탐하러 왔거나 혹은 순수한 호기심으로 술맛을 보러온 성좌들이 있던 모양이었다.
라구티엔이 그런 신랑의 어깨를 감싸 달래며 쓰게 웃었다.
“다행히 헤르메스 님이 오셔서 중재를 해주셨어요. 공정한 규칙을 위반하면 자신이 직접 천벌을 내릴 거라면서.”
신화급 성좌의 천벌은 같은 성좌들에게도 무서웠던 모양.
그렇게 날파리처럼 꼬이던 성좌들이 모두 도망쳤다고 한다.
나중에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겠네.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오크 소곡소주는 완성이 됐나요?”
“네. 여기요.”
나는 완성된 오크 소곡소주를 라구티엔에게서 받아 확인했다.
오크통을 막아뒀던 코르크 마개를 뽑는 순간,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주향이 퍼져 나왔다.
“제대로 됐네요. 이제······.”
출품해서 다른 술들과, 아니 디오니소스의 포도주와 우열을 가리기만 하면 된다.
내가 딱 그렇게 생각했을 때였다.
“시간 종료! 술이 완성된 성좌들은 앞으로 나와서 심사받도록!
헤르메스의 목소리가 [도원향]을 가득 채웠다.
리베르 바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