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chef of the constellations RAW novel - Chapter 181
181화. 리베르 바쿠스
“자, 출품할 술을 가지고 얼른 앞으로 나오라구.”
헤르메스의 말에 양조 성좌협회의 회원들이 하나둘씩 술을 가지고 나왔다.
술의 성좌라고 해서 모두 술을 완성한 건 아니었다.
오군처럼 재료가 없어서 술을 못 만든 성좌도 있었고 시간이 없어서 숙성을 완료하지 못한 성좌도 있었다.
“쳇, 라구티엔 도움이 없으니 시간 안에 숙성시키기도 힘들구먼.”
“이번에는 스타 코인이 부족해서 아이템을 못 사 왔는데 결국 실패네.”
듣자 하니 모든 술의 성좌가 라구티엔처럼 시간을 돌려 숙성을 단축할 수단을 가진 건 아닌 듯했다.
시간을 돌릴 권능을 가진 성좌들은 소수에 불과하고 다른 성좌들은 아이템을 이용해서 숙성을 시키는 모양.
“이번에는 제가 도움을 주지 않았으니까요.”
라구티엔이 쓰게 웃으며 평소에는 자신이 [숙성의 수레바퀴]를 빌려줘서 이를 해결했다고 설명했다.
이번에는 라구티스와 라구티엔이 디오니소스에게 반기를 들고 내 편에 붙으면서 그녀의 도움을 받지 못한 많은 성좌가 대거 탈락한 모양.
“흠, 상품성 있는 술을 제출한 성좌는 디오니소스, 리베르 바쿠스, 닌카시와 시리스, 네프티스와 테네테스, 그리고 에기르 정도인가?”
“잠깐, 형제여.”
헤르메스가 제출에 성공한 성좌들을 나열하자 갑자기 디오니소스가 앞으로 나섰다.
그러곤 거리낌 없이 제출대로 다가가 술을 하나 집어 들었다.
북유럽 신화 속 바다의 신이자 거인인 에기르가 만든 꿀술, 미드였다.
“이런 허접쓰레기 같은 술을 제출하다니. 에기르, 내가 다 부끄럽군.”
“······.”
와, 이렇게 대놓고 면박을 준다고?
바다 거인 에기르는 모두의 앞에서 디오니소스에게 조롱을 받자 수치심에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대꾸조차 하지 못하고 수염을 부르르 떨던 에기르의 앞에서 디오니소스는 술잔을 거꾸로 들고 촤아악, 땅바닥에 쏟아부었다.
“기준 미달이다. 입에 대기조차 싫군. 실망이야, 에기르.”
“그건 당신이 내 양조용 솥을 가져갔······.”
“아, 그거? 그건 내가 잘 쓰고 있지. 그런데 성좌씩이나 되는 자가 솥이 없다고 술을 못 만들면 그것도 우습지 않나?”
“······.”
“넌 탈락이야, 에기르. 여기서 꺼져.”
디오니소스의 선언에 에기르는 항변을 하려다 이를 악물고 몸을 돌렸다.
그러곤 말없이 그대로 [도원향]을 떠났다.
아니, 이게 말이 돼?
어처구니가 없어진 내가 그를 잡으려 할 때였다.
“말렸다간 디오니소스한테 같이 쫓겨나. 지금까지 그래왔어.”
내 물음에 라구티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어떤 성좌도 에기르를 잡지 않고 있었다.
오로지 리베르 바쿠스가 에기르의 뒷모습과 디오니소스를 보면서 얼굴을 구기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헤르메스에게 물었다.
“이게 되는 거예요? 참가자가 멋대로 다른 참가자를 떨어뜨려도 되나요?”
“······저쪽의 룰이 그렇다니까 어쩔 수 없지.”
오늘 대회의 심사위원을 맡은 헤르메스가 내 질문을 받고 한숨을 내쉬었다.
“실제로 다른 성좌들이 반발하지 못할 정도로 술의 퀄리티가 떨어진 건 사실이야.”
“마셔보지도 않고 그걸 알 수 있다고요?”
“너도 대충 보이잖아. 그 성안(星眼)으로.”
아니, 보이기야 보이지.
다른 성좌들이 만든 술보다, 심지어 내가 만든 술보다도 에기르가 만든 미드는 격이 떨어졌다.
아까 이야기를 들어보니 매번 양조 성좌협회의 모임을 주최하다 보니 좋은 술을 만들 재료가 다 떨어졌다는 모양인데······.
“격이 떨어져도 맛은 좋을 수 있잖아요?”
“아니야. 쟤들은 술에 담긴 격이 더 우선하는 애들이야.”
“······.”
술을 평가하는데 맛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격으로 위아래를 나눈다고?
요리사로서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할 소리였다.
그래서 이의를 제기하려는 나를 헤르메스가 말렸다.
“일단 대회를 진행하고 나서 이의를 제기해도 늦지 않아.”
“헤르메스 님.”
“네가 이기고 난 다음에 지적하는 게 더 모양새가 살지 않겠어?”
마치 내가 질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는 듯 헤르메스가 나를 보며 살짝 윙크했다.
그 모습에 불쾌해졌던 기분이 어느샌가 사라지고 피식 웃음이 절로 나왔다.
“자, 그러면 술을 마셔보자고. 여기에 있는 술들은 적어도 깐깐한 디오니소스의 기준을 통과한 술들이니 마셔도 괜찮겠지.”
헤르메스가 다시 심사를 재개했다.
헤르메스가 심사위원이지만, 양조 성좌협회의 심사 방식은 모두가 술을 마셔보고 자신의 술을 제외한 술을 투표에 부쳐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술이 우승하는 방식이었다.
성좌의 명예를 걸고 투표하기 때문에 어쭙잖은 수작을 부리거나 야합을 하면 그대로 성좌의 격이 깎여나가는 모양이었다.
······그 말인즉슨, 디오니소스는 지금까지 오로지 실력으로 이겨왔다는 거겠지.
나는 살짝 긴장하며 가장 먼저 시음용으로 나온 리베르 바쿠스의 포도주를 들었다.
색이 투명한 화이트 와인도 아니고 피처럼 진한 레드 와인도 아닌, 그렇다고 둘을 섞은 로제 와인도 아닌, 두 색의 사이에 있는 묘한 적갈색을 띠고 있었다.
나는 우선 향을 맡았다.
“달콤한 향이 엄청나네.”
숙성까지 완벽하게 끝나있는 리베르 바쿠스의 와인은 달콤한 향이 올라오는 걸 보아 전형적인 스위트 와인이었다.
나는 조심스레 와인을 입에 머금었다.
그러자 달콤함과 동시에 상큼하면서도 진한 건포도의 맛이 입안에 퍼졌다.
크, 절로 감탄이 터지는 맛이네.
“건조 와인이로군요?”
“맞다. 포도를 말려서 달게 한 뒤 직접 밟아 으깨 양조했지.”
내 질문에 리베르 바쿠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러곤 살짝 호기심이 인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어떻지? 네 입맛에는 잘 맞나?”
음? 이 성좌는 디오니소스 편 아니었나?
굉장히 친절하게 말을 걸어오네?
디오니소스만 아니라면 무조건 적대할 생각이 없던 나였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솔직하게 감상을 말했다.
“훌륭합니다. 미야가 만드는 디저트와 함께 먹으면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치즈 케이크나 당근 케이크처럼 조금 덜 단 케이크와 잘 어울리겠네요.”
“그거 기쁜 평이로군.”
내 평에 리베르 바쿠스가 진심으로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그의 건조 와인에 대한 평은 나만 좋았던 것이 아니었고 모두에게도 대호평이었다.
그렇게 리베르 바쿠스의 와인이 좋은 평가를 받고 다음 술을 시식할 차례가 되었다.
“다음은 닌카시와 시리스의 빵 맥주다.”
“윽.”
다들 신이 나서 술을 시음하려 했지만, 나는 이미 리베르 바쿠스의 와인만으로 머리가 어찔했기에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술이 천성적으로 약한 데다, 건조 와인은 달달하면서도 도수가 높은 와인이라 시음한 것만으로도 힘들었다.
거기다 아까 소곡주 세트를 맛보기 위해서 바로 뱉었다지만 조금씩은 먹은 영향도 있었고.
“마스터, 괜찮아요?”
“솔직히 괜찮다고는 말 못 하겠네요.”
미야의 걱정 어린 물음에 내가 한숨을 쉬며 답하자, 옆에서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처구니가 없군. 술을 만든다는 자가 술이 약하다니?”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나를 한껏 비웃고 있는 디오니소스가 보였다.
“내 마차를 끄는 표범이 너보다 더 술이 강하겠어. 그런 주제에 우리와 대결하겠다고 나섰다니. 허. 기가 막히는군.”
“······.”
아니, 애초에 나는 술의 성좌도 아니고, 이 대회도 술을 만들어서 품평 받는 대회 아니었나?
술고래를 가리는 대회가 아니잖아?
이거 열받네.
술기운도 살짝 올라왔겠다, 신화급 성좌고 나발이고 한껏 들이받기 위해 내가 나서려는 찰나였다.
“그쯤 하지, 디오니소스.”
내 앞에 나선 건 리베르 바쿠스였다.
그가 나서서 나를 옹호해줄 거라곤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는지, 모두의 눈에 놀람이 스쳤다.
“호오, 리베르, 나의 또 다른 형제여. 대체 무슨 생각이지? 인간 따위를 감싸고 말이야.”
“인간이고 아니고는 상관없다. 다들 인정하고 있지 않나? 저자의 술이 뛰어나다는 걸 말이야.”
“마셔보지도 않고 뛰어나다는 걸 어떻게 알지? 혹시 미리 저 인간과 만나서 술 한 잔 즐기셨나?”
디오니소스의 조롱 섞인 대꾸에 리베르 바쿠스가 그와 똑같이 생긴 얼굴을 찡그렸다.
“장난치지 마라, 디오니소스. 술의 성좌를 자처하는 우리라면 향만 맡아도 그 술의 품질을 알 수 있는 건 당연하지 않나.”
리베르 바쿠스는 그렇게 말하고 나를 슬쩍 보았다.
“그의 실력은 인간이라고 무시당할 자가 아니다. 너도 술을 만드는 신이라면 인정할 건 인정해라.”
“······재미없군.”
디오니소스가 따분해진 얼굴을 홱 돌리자, 리베르 바쿠스는 한숨을 짧게 쉬고 네프티스를 향해 말했다.
“네프티스, 그대의 권능으로 이 자리에서 이 자가 취하지 않도록 해줄 수 있나?”
“······할 수는 있죠.”
“부탁하지.”
네프티스는 이집트 축제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숙취에 시달리지 않게 하는 권능을 가진 여신.
거기다 파라오가 마셔도 마셔도 취하지 않게 하는 축복을 내리는 여신이기도 했다.
그녀는 기분이 나빠 보이는 디오니소스의 눈치를 잠깐 보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뭐, 우리 웨프와웨트가 저 자에게 신세를 진 모양이니, 이 정도는 은혜 갚기로 괜찮겠죠.”
네프티스는 그렇게 말하고 내게 [술고래의 축복]을 내려주었다.
[‘위대한 창공의 신을 기른 양어머니’가 당신에게 축복을 내립니다.] [‘술고래의 축복’이 일시적으로 부여됩니다.] [당신은 절대 취하지 않습니다.]“이 축복은 일시적으로 그대가 아무리 술을 마셔도 기분만 좋아질 뿐 취하지 않게 하는 축복이란다.”
“감사합니다, 네프티스 님. 그리고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리베르 바쿠스 님.”
내 감사 인사를 받은 리베르 바쿠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하지 않고 다음 술을 향해 걸어갔다.
귀찮은 듯 보였지만, 쑥스러워 보인 건 내 착각이었으려나.
나는 속으로 피식 웃고는 술기운이 싹 가신 가벼운 몸으로 다음 술을 향해 다가갔다.
“걸쭉한 게 술보다는 죽 느낌이네.”
“빵 맥주보다는 묽은데 이것도 술보다는 간식 느낌?”
“이건 달달한 게 오히려 디저트 같네.”
수메르의 빵 맥주와 이집트의 맥주, 인도의 바루니까지 마셔보았지만, 리베르 바쿠스의 건조 와인 같은 충격은 없었다.
물론 잘 만든 술이긴 했지만, 그래도 현대의 술을 먹어본 내게는 조금 아쉽달까.
리베르 바쿠스의 포도주는 시대와 기술의 차이를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었다.
“격의 차이가 아닐까?”
“격이요?”
내 물음에 라구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성좌들에 비하면 리베르 바쿠스의 신격이 훨씬 뛰어나. 너도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성좌의 격을 느낄 수 있는 존재니 술에 담긴 격이 분명히 맛에 영향을 미쳤을 거야.”
그러고 보니 평범한 술을 마실 때와는 다른 미묘한 맛이 느껴지긴 했다.
단순히 마력의 맛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신격의 영향이었다니.
짐작이 간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내게 라구티스가 이어서 말했다.
“우리가 괜히 술을 평가할 때 격을 따지는 게 아니라니까. 나와 라구티엔은 그 격이 모자라서 항상 서열이 낮았다고.”
분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라구티스.
나는 그런 라구티스에게 무심코 한 마디 던졌다.
“그렇지만 그런 격의 맛이 없어도 두 분의 맥주와 벌꿀 술은 맛있었는데요?”
“그, 그래? 헤헤헤.”
내 말에 라구티스가 언제 분했냐는 듯 헤벌쭉 웃기 시작했다.
라구티스를 위로하려고 한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두 성좌의 술은 맛으로 흠잡을 데 없이 뛰어났다.
맛만 보고 따지자면 리베르 바쿠스의 와인과 비교될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시음이 쭉 이어지고 남은 술은 딱 두 가지였다.
헤르메스는 그 두 가지 술을 보며 입을 열었다.
“남은 건 디오니소스와 밥집 사장의 술인가.”
아니, 밥집 사장이 뭡니까? 밥집 사장이.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나는 괜히 입술을 삐죽이며 앞으로 나섰다.
이번에는 내 술을 마시게 할 차례였다.
“먼저 하려고?”
“네.”
“마지막이 좋지 않겠어?”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그러려면 제일 먼저 내걸 마셔달라고 했겠지.
사실, 헤르메스의 말대로 이대로 가장 마지막에 술을 내어서 긴 여운을 남기게 하는 전략이 베스트긴 했다.
하지만 왠지 기분이 이상했다.
디오니소스의 술에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든다고 해야 하나.
저 술을 맛보기 전에 내 술과 음식을 먼저 먹게 해야한다는 직감이 강하게 왔다.
그래서 먼저 나서기로 했다.
나는 색색의 보자기를 엮어 만든 식탁보가 덮여 있는 주안상을 성좌들 앞에 내려놓았다.
“제가 출품한 술은,”
촥!
식탁보가 걷어지면서 드러난 건,
“추석 명절에 어울리는 소곡주 세트와 명절 음식입니다.”
민족의 명절, 추석 음식이었다.
한가위 추석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