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chef of the constellations RAW novel - Chapter 182
182화. 한가위 추석상
“추석?”
“명절?”
내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술의 성좌들.
나는 웃으면서 추석 명절 코스의 첫 번째 술과 음식을 내어놓았다.
“상을 놓아주세요.”
내 말에 에녹과 천오, 천육, 천칠, 천팔 형제가 각각 성좌들에게 주안상을 내려놓았다.
조선, 아니 그 이전부터 연회나 잔치에서 손님 앞에 1인 1상을 놓는 것이 우리네 전통이었다.
“식전주와 식전 음식으로는,”
각 위에는 밥그릇을 축소한 듯한 작은 그릇에 차 있는 뽀얀 술과 초콜릿처럼 진한 갈색의 큐브가 담긴 접시가 올려져 있었다.
“소곡주를 거르고 남은 술지게미를 활용한 막걸리와 도토리묵입니다.”
원래 막걸리는 이렇게 청주를 거르고 난 술지게미에 물을 부어 체로 거른 술을 일컫는 말이었다.
아무렇게나 체에 막 걸렀다고 해서 ‘막걸리’라는 이름이 붙었지.
최근에 상품으로 나오는 막걸리는 멥쌀에 누룩을 넣고 아예 단양주로 빚은 탁주로 전통적인 막걸리와는 차이가 있었다.
물론 맛에도 차이가 있고.
“이미 술이 된 재료에 물을 부어서 남은 술을 추출한 거라 도수가 낮고 조금 걸쭉합니다. 맛도 달지 않고 시큼한 편이죠.”
옛날에는 청주를 제사용으로 쓰고 남은 술지게미에 물을 부어서 가난한 백성들이 맛과 상관없이 취하려고 마신 술이 바로 막걸리였다.
“쓰레기 술이로군.”
아니나 다를까, 술로 서열을 나누는 데 환장한 디오니소스가 바로 독설을 날려왔다.
“물론 술 자체의 품질을 놓고서 보면 그렇게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허나,”
나는 그런 디오니소스를 보며 입꼬리를 올리며 응수해줬고 말이야.
“어떤 품질이든 어떤 맛이든, 그 술이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요리와 함께 적절한 목적으로 나오면, 그 술이야말로 명주(名酒) 아닐까요?”
“뭐? 그게 무슨 궤변이지?”
“일단 드셔보시죠.”
나는 인상을 찌푸리는 디오니소스를 무시하고 다른 성좌들에게 막걸리를 권했다.
그러자 성좌들이 잔을 들어서 막걸리를 입에 가져갔다.
“으음, 확실히······.”
“이거 영 텁텁하고 시큼하기만 하고.”
“맛이 없는데?”
이어지는 성좌들의 혹평.
그리고 나는 그걸 시원하게 인정했다.
“정확하십니다.”
“······?”
의아해하는 성좌들을 향해 나는 막걸리와 같이 나온 도토리묵을 권했다.
“이번에는 한 번 음식을 먹고 다시 드셔보시죠.”
오크통의 재료가 되었다는 ‘소망의 도토리’ 같은 거창한 도토리는 아니었지만, 같은 성좌에게 구매한 통통한 도토리를 갈아서 앙금을 띄우고 끓이고 식혀서 도토리묵을 만들었다.
그걸 정육면체 모양으로 썰고 막걸리 식초와 매콤한 던전 고춧가루 양념으로 무쳐낸 도토리묵 무침이었다.
“음? 고소하고 쌉사름한 젤리로군.”
“양념이 독특하네요. 매콤 새콤해요.”
도토리묵 무침의 반응은 막걸리와 달리 호평이었다.
나는 웃으며 다시 막걸리를 권했다.
“도토리묵을 드시고 다시 막걸리를 드셔보시죠.”
“술맛을 음식 맛으로 가리려는 건가? 그런 얍삽한 수를······. 읍!”
도토리묵을 먹은 뒤 막걸리를 다시 마신 성좌가 투덜대던 걸 멈추고 눈을 부릅떴다.
“술이 맛있어졌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먹어봐. 이건 먹어봐야 알아!”
그 성좌의 호들갑에 다들 의아해하면서도 묵을 먹고 막걸리를 다시 입에 가져갔다.
그리고 모두 마찬가지로 놀라기 시작했다.
“이거, 향이 좋은 술이었잖아?”
“아까 그 향긋한 술의 맛과 향이 남아서 느껴져.”
소곡주를 발효시켰던 술지게미였기에 진짜 소곡주에 비하면 약했지만, 당연히 이 막걸리에도 소곡주의 향과 맛이 남아있었다.
남아있던 향과 맛이 도토리묵 무침의 떫고 시큼, 매콤한 맛으로 깨어난 미각에 잡힌 것이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새콤해서 입에 자꾸 침이 고여.”
“이거 더 없어? 아무리 식전 음식이라지만, 양이 너무 적어!”
요즘 시판되는 막걸리와 달리 옛날 막걸리는 시큼한 것이 정석.
식전주와 식전 음식의 기본은 입맛을 돋우어 본 요리를 더 맛있게 먹게 해주기 위함이었다.
그런 면에서 시큼털털한 막걸리와 도토리묵 무침은 완벽한 식전 요리였다.
“완전 맛있네, 이거.”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그릇과 잔을 싹싹 비운 헤르메스에게 나는 엄지를 치켜들어주었다.
헤르메스는 됐다는 듯 손을 내젓고는 내게 물었다.
“신기하네. 술을 마시면 음식이 땡기고, 음식을 먹으면 술이 땡겨.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정확하게 보셨네요. 술과 음식의 궁합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거죠.”
나는 궁금해하는 헤르메스와 다른 성좌들을 향해 설명에 나섰다.
“예전부터 인간들은 음식과 술의 조화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술과 음식은 따로 노는 게 아니라 서로의 맛을 더 끌어내 주는 좋은 파트너죠.”
내 말에 몇몇 성좌는 고개를 끄덕이고 몇몇은 시큰둥했다.
하긴, 빵 맥주처럼 그 자체로 식사가 되는 술은 마리아주, 페어링, 주안과는 거리가 멀긴 하지.
그래도 대부분의 술은 음식과 같이 먹는 편이 더 좋다는 게 내 지론이었다.
“술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그에 어울리는 음식도 함께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술의 반쪽 면밖에 보지 못하는 걸 수도 있으니까요.”
내 말에 생각이 깊어진 성좌들을 보며 나는 다음 코스를 내었다.
“다음은 소곡주와 판금 갑오징어 숙회 무침을 준비했습니다.”
자, 단짠단짠 치트키 나가니까 혀 꽉 붙들어 매고들 계시라고!
* * *
한산소곡주는 충청남도 서천 지역의 전통주였다.
참고로 내 아공간 중 하나인 [서천 꽃밭]이 있던 그 지역 맞다.
서천은 서해랑 맞닿아 있는 곳이라 해산물도 유명했는데, 그중에 특히 쭈꾸미가 유명했다.
그래서 서천 사람들은 쭈꾸미 무침, 혹은 바다에서 잡은 싱싱한 회무침과 소곡주를 같이 먹곤 했었다.
“제가 가진 아공간에서는 쭈꾸미를 구하기 힘들어서 판금 갑오징어로 대체했습니다.”
쭈꾸미는 뻘 지역에서 주로 살기 때문에, [남국의 해안]에서는 잡히지가 않더라고.
그래서 같은 두족류이자 충무 김밥을 만들 때 썼던 판금 갑오징어로 무침 재료를 대신했다.
“자, 여기 판금 갑오징어 숙회 무침이 나갑니다.”
잘 데쳐서 탱글탱글 씹는 맛이 있는 판금 갑오징어 숙회를 매콤하고 짭짤한 양념에 무쳐낸 뒤, 접시에 담아서 에녹과 천오 형제들에게 건넸다.
그러자 각 성좌 앞의 주안상에서 막걸리 잔과 도토리묵 접시가 치워지고 소곡주 잔과 판금 갑오징어 숙회 무침 접시가 올려졌다.
참고로 소곡주 잔은 밥그릇처럼 널찍하고 큰 잔이었다.
“제가 한 잔씩 올리겠습니다.”
나는 모두의 상에 술과 접시가 돌아간 걸 확인하고 소곡주를 담은 병을 들고 일어났다.
그리고 상을 돌아다니며 한 잔씩 잔에 소곡주를 채워주었다.
“역시 향이······.”
“정말 맛이 궁금해지는 향이군. 이렇게 좋은 향은 드물지.”
“향으로만 벌써 취하는 것 같아요.”
소곡주가 넓은 잔 바닥에 부딪히며 채워질 때마다, 향이 폭발적으로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향이 좋죠? 좋은 재료에 물을 최대한 적게 넣고 오랜 정성을 들여서 맛과 향을 이끌어낸 술입니다. 맛도 좋을 겁니다.”
달콤하고 고소한, 그러면서도 어딘가 꽃과 과일의 향과 닮아 있는, 마치 한가위 추석 명절 상과도 같은 복합 선물 세트 향기였다.
나는 술을 모두 따르고 성좌들에게 술을 권했다.
“입 안에 가득 채운다는 느낌으로 드셔보세요.”
내 조언에 따라 성좌들이 소곡주를 입 안 가득 채웠다.
그러자 바로 커지는 성좌들의 눈 크기.
예상했던 반응에 나도 웃으면서 소곡주를 입안 가득 머금었다.
아까 먹지 못하고 뱉어서 아쉬웠거든.
“으음.”
입안에 가득 물자마자 소곡주의 향기가 입천장을 통해 코로까지 퍼져 나왔다.
증류주에 비하면 도수가 높지 않은 술임에도 불구하고 그윽한 술 향기가 얼굴 전체를 떠도는 느낌이었다.
“으음, 으음.”
맛은 또 어떤가.
달달하면서도 감칠맛이 그득하고 꽃과 과일의 향긋함이 맛으로도 느껴진다.
나는 충분히 그 향기와 맛을 즐기다가 입안에 물고 있던 소곡주를 꿀꺽 넘겼다.
마지막까지 끈적하게 남아있는 향과 맛이 입안을 맴돌았다.
“크으, 이렇게 좋은 술을 마시고 난 뒤에는 안주를 먹어야죠. 자, 판금 갑오징어 숙회 무침을 한 점씩 드셔보세요.”
달달한 술을 먹은 뒤에 바로 먹는 매콤하고 짭짤한 회무침.
그야말로 단짠단짠의 정석이었다.
내가 이 완벽한 조합에 몸을 부르르 떨자, 아직도 살짝 의심하던 성좌들은 참지 못하고 너도나도 판금 갑오징어 숙회 무침에 손을 뻗었다.
“매워! 짜! 그런데 맛있어!”
“이 요리를 먹고 다시 술을 먹어봐요. 맵고 짠 맛이 사라지고 다시 향긋한 술맛만 남아요.”
“신기하네. 달달한 술을 먹으니 이 음식이 다시 땡기는데?”
아아, 그것이 바로 단짠단짠이라는 것이다.
달콤한 맛은 짠맛을 부르고 짠맛은 다시 달콤함을 부르는 법.
단짠단짠의 마성에 빠진 성좌들은 소곡주와 판금 갑오징어 숙회 무침을 번갈아 먹으며 그 매력에서 빠져나오질 못하고 있었다.
“이야, 술과 음식의 궁합이라는 게 이렇게 중요한 건지 이제야 알겠네.”
“내 와인과도 잘 어울릴 수 있을까?”
헤르메스 역시 신이 나서 술잔과 접시를 비워댔고 리베르 바쿠스는 마찬가지로 달콤한 맛인 건조 와인과 어울리는 안주를 고민하고 있었다.
곧바로 술과 음식의 조합을 궁리하는 아주 좋은 태도였다.
반면, 디오니소스는 판금 갑오징어 숙회 무침을 딱 한 입 먹곤 마치 고무를 씹는다는 표정으로 표정을 찡그렸다.
“······흥.”
그러곤 술도 음식도 더는 입에 대지 않고 팔짱을 껴버렸다.
술의 신이라서 술만큼은 공정한 평가를 할 줄 알았는데, 저러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거 아냐?
“걱정하지 마세요. 디오니소스가 부정해도 이 술과 음식을 맛이 없다고 할 성좌는 아무도 없을 테니까요.”
벌써 조용히 소곡주를 다섯 잔이나 마신 라구티엔이 살짝 홍조가 오른 얼굴로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옆에서 이미 취한 듯 ‘우리 각시가 제일 예쁘다!’라고 외치는 라구티스까지.
이거, 신혼 술로도 인기가 좋겠는데?
나는 귀여운 부부의 모습에 피식 웃고는 다음 상을 들고 오게 했다.
“다음은 소곡소주입니다.”
소곡소주가 들어오자 성좌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아무래도 그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증류주라는 새로운 술이라서였을까.
방금까지 소곡주 맛에 취해 풀어져 있던 성좌들의 태도와 기세까지 달라져 있었다.
디오니소스는 숫제 내 소곡소주를 원수라도 된 듯 노려보고 있기까지 했다.
저들이 저 정도로 진지하면 나도 대충할 수는 없지.
“이 술은 기존의 술을 가열해, 알코올만 뽑아낸 술입니다. 원주(原酒)의 향과 맛은 남아있는 채로 만드는 강한 독주지요.”
물론 50도가 넘는 술들도 흔하고 8~90도가 되는 술도 이 세상에 존재하긴 했다.
소곡소주의 도수는 45도로 아주 독하지는 않지만, 독주의 즐거움과 부드러움을 같이 느낄 수 있는 적당한 도수를 가졌다.
“우선, 안주와 먹기 전에 소곡소주를 한 번 드셔 보시기 바랍니다.”
내 권유에 성좌들이 이제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작은 소주잔에 담긴 소곡소주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터져 나온 건 각양각색의 반응이었다.
“부, 불? 술 속에 불이 있어요!”
“아냐, 이건 독이야. 저자가 우리를 독살하려고!”
아, 소주의 소가 불사를 소(燒) 자니 아예 틀린 말은 아니네.
물론 맛이 불타는 게 아니라 불로 태워서 만든다는 의미에서 붙은 한자지만.
아무튼, 독한 술을 처음 먹어본 성좌들은 속을 후끈하게 훑고 지나가는 알코올의 위력에 당황하기도 했고,
“술 자체에는 맛이 옅지만, 향은 아까보다도 더 풍부하게 올라오는군.”
“같은 술로 만든 것이 맞나? 어떻게 아까와 전혀 다른 향이 올라오지?”
소곡소주의 향에 진지하게 탐구하는 성좌들도 있었다.
그들의 말대로 곡물과 꽃의 향이 소곡주의 메인이었다면, 소곡소주는 청량한 과일 향이 더 깊게 남는 술이었다.
소곡주를 증류해 만든 소곡소주임에도 불구하고 향과 맛이 전혀 다르다는 게 바로 이 소곡주 세트의 매력이었다.
“······증류주라.”
계속 시큰둥했던 디오니소스마저도 이 소곡소주의 맛과 향에는 놀란 듯 홀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매일 와인만 먹다가 처음 증류주를 먹어봤으니 놀랄 수밖에.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씨익 웃고는 손뼉을 짝짝 쳤다.
“자, 그럼, 이 소곡소주에 어울리는 안주를 내오겠습니다.”
내 신호와 함께 이번에는 개인상이 아닌 커다란 잔칫상이 들려왔다.
그 위에 올려져 있는 건,
“산적 꼬치전, 동그랑땡, 표고버섯 전, 떡갈비, 명태전, 소고기뭇국, 잡채, 나물무침, 송편 등. 추석 명절 음식 세트입니다.”
화끈한 소곡소주와 잘 어울리는 기름진 명절 음식들이었다.
온 더 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