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chef of the constellations RAW novel - Chapter 2
2화. 땅을 갈지 못하는 농부
공물은 신에게 바치는 물건이라는 사전적 의미대로 성좌들에게 바치는 일종의 퀘스트였다.
게이트 사태가 열리고 인류가 멸망의 기로 앞에 선 그 순간, 지구에는 형언할 수 없는 규격 외의 존재들이 나타났다.
흔히 우리가 예전에 ‘신’이라고 불렀던 그 존재들은 자신들을 성좌라고 소개하며 인류에게 기회를 주었다.
그게 바로 최초의 각성이었다.
최초의 각성자들이 게이트에서 건너온 몬스터들과 던전을 해결하고 인류를 구원한 이후로도 성좌들은 여전히 지구에 머물렀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헌터들 중에서도 특출난 이들에게 다가가 ‘계약’을 맺었다.
– 우리가 원하는 공물을 바치면, 너희에게 더 큰 힘을 주겠노라.
성좌들이 바라는 건 돈이나 보석같이 인간들이 귀하게 여기는 물건이 아니었다.
자신들의 후원을 받는 헌터들의 용맹스러운 행동, 뛰어난 명성이야말로 성좌들이 원하는 공물이었다.
가끔은 성좌들의 사적인 부탁이 공물이 되기도 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땅을 갈지 못하는 농부가 당신의 요리를 원합니다.] [땅을 갈지 못하는 농부가 당신에게 요리를 공물로 바칠 것을 요구합니다.]“공물로 요리를 달라고 하는 성좌가 있을 줄이야······.”
나는 눈앞에 떠오른 성좌의 메시지에 기가 막혀서 중얼거렸다.
몬스터를 잡는 것도 아니고 던전을 공략하는 것도 아닌, 코카트리스 삼계탕을 공물로 달라니?
[땅을 갈지 못하는 농부가 입맛을 다십니다.]······혹시 저 성좌의 진명(眞名)이 식신이 아닐까.
그때였다.
내가 어이없어 할 뿐 대답하지 않자 느닷없이 상태창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땅을 갈지 못하는 농부가 대답을 재촉합니다.] [경고. 성좌를 진노케 할 경우 ‘천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천벌.
계약한 성좌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거나 공물을 잘못 바쳤을 때 헌터에게 내려지는 영구적인 디버프였다.
천벌을 받은 헌터는 심각한 능력 장애를 겪으며 이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는 거의 불가능한 수준의 공물이 필요했다.
때문에, 대부분의 헌터들은 천벌을 받으면 그대로 몰락해서 하급 헌터의 삶을 살거나 은퇴해야 했다.
성좌들에게 선택받는 헌터들의 대부분이 상급, 즉 A급 이상의 헌터들이었기에 D급 이하의 헌터들로써 사는 삶을 견디지 못하고 은퇴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니, 그러니깐 그런 천벌을 왜 나한테 내리냐고.
나는 성좌랑 계약도 안 맺었는데?
내 표정에 황당함이 드러나서였을까, 상태창의 내용이 다시 갱신되었다.
[땅을 갈지 못하는 농부가 대신 공물을 바치면 신의 보상이 있을 거라고 선언합니다.]“공물을 바치겠습니다.”
그러면 말이 달라지지.
초월한 존재, 성좌의 보상은 세상에 나타날 때마다 매번 무수한 이야기와 전설을 만들어냈다.
그런 보상을 준다는 데 거부하면 그게 바보지.
[땅을 갈지 못하는 농부가 몹시 흡족해합니다.]성좌도 내 빠른 결정에 만족한 듯 보였다.
그럼 이제 성좌가 강림해서 내 코카트리스 삼계탕을 가져가는 건가?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변화는 없었다.
[땅을 갈지 못하는 농부가 어서 공물을 바치지 않고 뭐하냐고 묻습니다.]내가 바쳐야 하는 거였어?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성좌가 있을 법한 위쪽을 바라보았다.
보이는 건 식당 주방의 천장이긴 했지만, 아무튼 저 위에 있겠지.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고 나는 바치는 방법을 모르는데?
“······그런데 어떻게 바치죠?”
내 물음에 잠시 상태창이 흐릿해지며 깜빡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왠지 할 말을 찾아 더듬거리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아, 이거 보나 마나 성좌도 당황한 거네.
내가 성좌도 당황할 수 있다는 사실에 신기해하는 사이 새로운 상태창이 떠올랐다.
[땅을 갈지 못하는 농부가 당신에게 ‘제단’을 설치할 것을 권합니다.] [알림. ‘제단’은 계약하지 않은 인간과 성좌가 소통하기 위해 사용해왔던 유구한 전통을 지닌 수단입니다.]아, 그렇구나.
하긴 옛날 신화나 이야기만 봐도 신에게 공물을 바치려면 제단은 필수였지.
“그래서 그 제단은 어떻게 설치하는데요?”
내 물음에 다시 흐릿해지는 상태창.
또 당황했네, 이거.
그 뒤로 나는 상태창이라는 간접적인 소통 수단 덕분에 제단을 설치하는 법을 아주 긴 시간 동안 어렵게 들어야만 했다.
* * *
“휴, 끝났네.”
화덕을 만들까 해서 사놨던 벽돌을 식당 뒤쪽 주차장 한켠에 쌓아 제단을 만들었다.
중노동이 따로 없네, 이거.
비지땀이 줄줄 나는 중노동을 시킨 성좌 ‘땅을 갈지 못하는 농부’는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상태창을 띄우며 잔소리를 해댔다.
[땅을 갈지 못하는 농부가 벽돌의 각도가 미묘하게 어긋났다며 당신을 타박합니다.] [경고. 올바르게 설치되지 않은 제단은 공물을 손실시키거나 잘못된 성좌에게 공물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정말 먹고 싶은 모양이네.
나는 아직도 주방에서 끓고 있을 코카트리스 삼계탕을 떠올렸다.
완성된다고 하더라도 마력의 과잉으로 못 먹을 물건일 텐데 성좌들에게는 다른 건가?
이렇게 나를 닦달해가면서 공물을 바치게 할 정도니.
하지만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각성한 클래스가 [요리사]여서가 아니라, 원래부터 요리사였던 나였다.
요리사에게 내 요리를 찾아주는 이가 있다는 건 언제나 기쁜 일이었으니까.
물론 그 존재가 사람이 아니라 성좌라는 게 아직도 조금 당황스럽다만.
그래도 내 요리를 기다리는 이를 위해 나는 기쁜 마음으로 제단의 설치를 끝냈다.
[땅을 갈지 못하는 농부가 완벽한 제단의 설치에 흡족해합니다.] [땅을 갈지 못하는 농부가 어서 공물을 바치라고 재촉합니다.]어휴, 재촉하기는.
동생에게, 그리고 헌터들에게 전해 들었던 위대한 성좌가 이래도 되나 싶네.
“조금만 기다리시죠. 교양 없게 냄비째로 드실 건 아니잖아요?”
조리를 했다고 다 요리가 아니다.
요리의 완성은 플레이팅. 즉, 보기 좋게 그릇에 담아내는 것까지가 요리였다.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는 말도 있으니까.
배고프다고 냄비 채로 먹는 건 거지들이나 할 행동이라고 할아버지가 항상 가르쳐주셨었다.
······그렇다고 그걸 성좌에게 그대로 전할 용기는 없지만.
“잠시 기다리시면 제대로 그릇에 담아 가져오겠습니다.”
나는 여전히 조급해하는 성좌의 메시지에 한숨을 푹 내쉬면서 식당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 방금 성좌한테 밥 재촉하지 말라고 혼낸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순간 천벌을 받는 게 아닐까 오싹해졌지만, 금세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성좌라고 해도 테이블 매너는 있어야지.”
밥상머리 앞에서는 누구나 임금처럼 행동하라.
그게 삼대째 식당을 해온 우리 집안의 가훈 중 하나였다.
실제로 버릇없는 진상 손님이 오면 그 사람이 누구든 소문이 어떻게 나든 상관하지 않고 내쫓아서 다시는 오지 못하게 하는 게 우리 식당 전통이기도 했고.
별점? 악플? 그런 거에 연연한다고 무너질 우리 식당이 아니지.
성좌의 엉덩이를 걷어차 쫓아내는 상상을 하며 나는 피식 웃으며 찬장에서 뚝배기 하나를 꺼냈다.
“역시 삼계탕은 뚝배기에 담아서 먹어야지.”
······라고 중얼거리던 나는 흠칫 움직임을 멈춰야 했다.
“아, 여기에 코카트리스가 들어갈 리가 없겠네.”
코카트리스의 몸통은 60cm가량.
커봤자 직경 30cm가 고작인 개인용 뚝배기에 들어갈 리가 없었다.
사람이 먹으면 죽는 요리라 누구에게 줄 생각을 하지 않고 요리한 거라 적당한 그릇을 준비하지도 않은 내 실수였다.
“이를 어쩌나······.”
방금까지 성좌를 혼냈던 내가 이제 와서 냄비 채로 먹으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잠시 고민에 빠져 있던 나는 곧 대안을 떠올렸다.
“식당에 가마솥이 있었지.”
냄비 채로 먹으면 안 된다고 했지만, 지금 쓸 가마솥은 조리 도구가 아닌 요리를 담는 그릇이라고 생각한다면 나쁘지 않을 터.
일단 뚝배기도 원래는 조리용이지만 음식을 뜨겁게 유지하기 위해 식기로도 쓰는 거니까.
가마솥을 조금 큰 뚝배기라고 생각하자.
나는 주방에서 찾은 가마솥에 코카트리스 삼계탕을 옮겨 담았다.
“끄윽.”
물론 뜨거운 삼계탕으로 가득 찬 가마솥을 옮기는 건 제단을 만드는 것보다도 더 힘들었다.
각성자였지만, 전투 계열이 아닌 터라 내 육체는 일반인과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으아아아!”
나는 젖 먹던 힘까지 끌어올려 가마솥을 든 다음 제단 위로 올렸다.
마지막에 허리에서 묘한 소리가 난 걸 보면 당분간 근육통으로 고생 좀 하겠는데.
어찌 됐든 고생 끝에 완성된 코카트리스 삼계탕을 제단 위로 올릴 수 있었다.
“자, 다 됐습니다.”
[땅을 갈지 못하는 농부가 당신의 정성에 흡족해합니다.] [땅을 갈지 못하는 농부가 당신에게 기도를 올리라고 합니다.] [알림. 공물을 올리기 위해서는 해당 성좌를 향한 진심 어린 기도가 필요합니다.]기도까지 하라고?
별걸 다 시킨다고 투덜대면서도 나는 두 손을 모았다.
믿는 종교는 없지만, 그래도 기도라고 하면 이 자세가 보편적이니까.
나는 눈을 감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땅을 갈지 못하는 농부님께 주문하신 코카트리스 삼계탕을 올립니다. 맛있게 드세요.”
기도문이 아니라 음식 서빙할 때 하는 멘트에 더 가까웠지만,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으니깐 괜찮겠지.
그러자 놀랍게도 제단에서 화아악 황금빛 불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화르륵!
그리고 그 불꽃은 천천히 코카트리스 삼계탕을 가마솥째 휘감아 태우기 시작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신성한 기운이 느껴지는 황금빛 불꽃을 보며 나는 감탄을 터뜨렸다.
“이게 성좌의 불꽃이구나.”
이 불꽃은 성좌들이 계약한 헌터와 소통할 때 나타난다는 현상.
그 불꽃의 색은 성좌의 격에 따라 달라진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황금색이 전설급 성좌던가? 꽤 격이 높은 성좌인가 본데?
지금까지 한 행동을 보면 전혀 그렇게 안 보였는데 말이야.
어린아이처럼 먹을 걸 보채며 칭얼대는 성좌를 떠올리며 내가 피식 웃을 때였다.
[땅을 갈지 못하는 농부가 당신의 요리를 한 입 맛 봅니다.] [땅을 갈지 못하는 농부가 뛰어난 맛에 감탄하며 당신을 자신의 영역으로 초대합니다.]“······네?”
갑작스러운 메시지와 함께 가마솥을 태우던 황금빛 불꽃이 거세게 폭발하며 나를 덮쳐왔다.
“으아아악!”
눈을 멀게 하는 눈부신 불꽃에 타버리는 줄 알았던 눈을 뜨자 나는 식당 주차장이 아닌 삭막한 황무지 위에 서 있었다.
“내 영역에 온 걸 환영하지, 인간 요리사.”
그리고 내 눈앞에는 살짝 어두운 피부에 황금빛 눈을 가진 미형의 남자가 식탁 앞에 앉아 있었다.
마치 조각 같은 외모를 지닌 남성이었지만, 그 눈빛에 흐르는 섬뜩한 기운이 왠지 모르게 내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고 있었다.
“서, 성좌 땅을 갈지 못하는 농부신가요?”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나를 이곳으로 부른 성좌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만든 사람을 부르지 않을 수가 있어야지.”
그의 말에 시선을 따라 내려가 보니, 놀랍게도 그 식탁 위에는 방금 내가 공물로 바쳤던 코카트리스 삼계탕이 놓여 있었다.
“내 진짜 이름은 카인이다. ‘최초의 살인자’라는 이명으로도 불리고 있지.”
잠깐, 카인? 성경에 나오는 그 아벨과 카인 중에 형?
거기다 최초의 살인자라는 저 무시무시한 이명은 대체 뭐야?
성좌의 영역으로 초대받아 성좌를 직접 보게 된 이 말도 안 되는 상황 속에서 나는 입도 열지 못하고 잔뜩 얼어 있었지만, ‘카인’은 황홀한 표정으로 내 삼계탕을 먹고 있었다.
“죽여주는군. 고기에 스민 마력의 맛이 내 혀를 농락하고 있어. 거기다 은은히 풍겨오는 이 약 냄새가 또 싫지 않단 말이지.”
말을 하면서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 숟가락.
아니 최초의 살인자께서 죽여준다는 말을 하니깐 오금이 저려오는데요.
한 숟갈씩 퍼먹는 게 감질났던지 카인은 어느 순간 숟가락을 집어던지고 양손으로 닭 다리, 아니 코카트리스 다리를 잡고 뜯었다.
“새에게 다리가 왜 두 개 달려있는지 아나?”
“네?”
“그건 닭 다리를 뜯는 행복이 꿈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지. 이 행복을 다시 한번 느껴보라는 신의 뜻이란 소리야.”
“······.”
뼈를 깨끗이 발골하고 손가락까지 쭉쭉 빤 다음에 가마솥째로 삼계탕 국물을 원샷하는 성좌라니.
“크어어!”
가마솥을 뚝배기처럼 완뚝하고는 탕! 하고 식탁에 내려놓는 카인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행복, 그 자체였다.
“인간 요리사. 완벽한 요리였다.”
[성좌를 만족시킨 요리를 만들어냈습니다.] [위대한 업적이 당신의 클래스를 진화시킵니다.] [당신의 클래스가 ‘성좌의 요리사’가 됩니다.]성좌의 요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