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chef of the constellations RAW novel - Chapter 20
20화. 시루떡과 감자밥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성좌 손님이 오셨지만, 아직은 ‘신야식당’이 아닌 ‘연성이네’의 영업시간.
나는 마지막 손님인 커플 손님의 계산을 마치고 배웅해 드렸다.
“오빠, 어디서 바다 향기 나지 않아?”
“그러게. 지금부터 바다 보러 갈까?”
“벌써 해졌는데? 으휴, 짐승.”
가게를 나가는 커플 손님의 대화가 고독한 솔로의 마음을 부글부글 끓게 했지만, 왜 저런 대화가 나온 건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실제로 가게 안에는 희미한 바다의 짠내가 은은하게 퍼지고 있었으니까.
나는 고개를 돌려 바다 향기가 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뭐 해? 배고프다니까. 얼른 밥 줘.”
무슨 일인지 몰라도 축축하게 젖은 할머니의 한복 치마에서 바다의 향기가 솔솔 풍겨 나오고 있었다.
마치 치마 채로 바닷물에 빠지신 것처럼.
바다랑 관련된 성좌인가?
아무렴 어떠랴.
식당 허가를 주려고 왔던 헤르메스를 제외하면 저 할머니 성좌가 ‘신야식당’의 첫 손님.
훌륭하게 모셔야 하지 않겠어?
그러나 그런 나의 다짐은 주문을 받는 순간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뭐 드시겠어요?”
“떡.”
“······네?”
“떡 줘.”
아니 왜 식당에 와서 떡을 찾으시는 거지?
여긴 떡집이 아닌데?
“혹시 떡국 말씀하시는 걸까요?”
“아니 떡 줘.”
“떡볶이······.”
“떡 달라니까?”
큰일 났다. 말이 안 통해.
할머니 성좌는 오로지 떡을 달라며 요지부동이었다.
나는 난감한 표정으로 볼을 긁적였다.
“저기, 성좌님. 여기는 떡집이 아니라······.”
“안 돼. 첫 손님부터 제대로 대접 안 하면 부정 타. 큰일 나.”
아니 이제는 떡을 주지 않으면 부정 탄다는 말까지.
평범한 할머니가 해도 께름칙한 말인데 눈앞의 할머니는 무려 성좌.
성좌가 부정 탄다고 경고해주는데 그걸 무시하고 넘어갈 정도로 나는 무사태평하진 못했다.
“일단 만들어드릴게요, 떡.”
“그래. 부정 안 타게 조심하고.”
“······네.”
내가 떡을 만들어 오겠다는 말을 하자 흐뭇하게 웃으시는 할머니 성좌.
마치 손주를 보는 듯, 푸근한 미소였다.
나는 그 미소를 등으로 받으며 주방으로 들어왔다.
“신기한 분이시네.”
대체 정체가 뭘까?
지금까지 만나온 어마어마한 성좌들과 비교하면 격이 그렇게 높지는 않아 보이는데.
오히려 성좌라기보다는 정말 친할머니 같은······.
“아.”
그때,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하나 있었다.
‘연성아. 이 할애비는 말이야, 어렸을 때 몹시 가난하게 자랐단다. 매일매일 배가 고팠어요.’
‘응애!’
동생이 태어나고 어머니의 사랑을 빼앗겨 삐진 나를 달래려 할아버지, 그러니까 ‘연성 백반’의 1대 사장님인 도수웅 옹께서는 무릎에 8살 손자를 앉히시고 옛날이야기를 해주곤 하셨다.
‘감자밥을 해 먹을 보리쌀도 모자라서 감자가 팔 할이 넘었어. 그것도 보리쌀이 없으면 감자가 뭉쳐지질 않아서 겨우 넣은 거란다. 그렇게 감자를 으깨서 보리 쌀밥이랑 섞어 먹었지.’
문제는 그 옛날이야기가 전래동화가 아니라 당신이 어릴 적 배고팠던 시절 해 먹었던 요리 이야기라는 거였지만 말이다.
물론 어린 시절의 나는 그때부터 요리를 좋아했던 모양인지 곧잘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그러면 맛있어요?’
‘맛으로 먹었겠니? 그냥 배고프니깐 먹었지, 허허허.’
‘나라면 맛있게 만들 텐데!’
‘그으래? 우리 연성이가 나중에 할아버지 해줄 테야?’
‘응! 내가 할아버지 꼭 감자밥 해줄게!’
8살짜리 아이랑 할아버지의 감자밥 토크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집이 조금 별나긴 했다.
어쨌든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래도 일 년에 한 번 배부르게 먹을 때가 있었지. 강원도 삼척에서는 음력 2월 초하루면 영동날이라고 집집 마다 시루떡을 했어요. 아무리 가난한 집이어도 꼭 떡을 만들었지.’
‘왜요?’
‘영동 할매한테 제사를 지내야 했거든. 올 한해도 바람 잘 나게 해주세요. 하고 빌었지.’
영등신, 영동할매, 영동할망.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이 신은 바람의 신이자 어업의 신이었다.
어업을 하는 바닷사람에게 바람은 배를 뒤집을 수도 있는 무서운 존재였으니까.
그래서 어업 하기 좋은 바람을 불어다 주어 풍어(豐漁)의 신으로 불리기도 했다.
‘영동날에 영동 할매한테 제사를 지내고 나면 집집마다 자기 집에서 찐 시루떡을 나눠 먹었단다. 찹쌀로 한 떡도 있고 조나 수수쌀로 만든 떡도 있었지.’
모든 집에서 떡을 하고 나눠 먹었기에 집집마다 떡이 풍성했고, 남은 떡을 아이들은 가지고 자치기나 윷놀이로 떡을 따거나 잃기도 했다고 한다.
또 떡을 찔 때 부정을 타면 시루에 김이 올라오지 않아 떡을 망친다는 이야기도 해주셨었지.
그 외에는 영등날에 비가 오면 치마가 젖어 영동 할매가 심술을 부리게 되고, 맑고 바람이 불면 다홍치마가 예쁘게 날려서 영동 할매가 기분이 좋아진다고도 했던가?
‘바닷가 동네에선 설날이나 추석보다 영동날이 더 큰 명절이었단다. 허허, 그날만큼은 배부르게 먹을 수 있어서 이 할애비는 영동 할매한테 항상 기도를 했어요.’
진한 강원도 사투리와 젖은 치마, 그리고 자꾸 부정 탄다고 강조하는 것에 떡을 달라고 하는 것까지.
할아버지가 어릴 적에 해주셨던 이야기를 내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거라면 아마 저 할머니 성좌는,
“영동 할매겠네.”
그렇다면 만들어달라고 하는 떡 역시 시루떡일 터였다.
그래도 안전을 기하기 위해 나는 확신을 더 해줄 조언을 구하고자 했다.
“여보세요, 정 여사? 어, 나야. 장남.”
내가 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 아닌 내 어머니이자 ‘연성 백반’의 2대 사장님, 정연수 여사였다.
나야 어릴 적에 들어서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어머니는 더 잘 기억하고 계실 터였다.
돌아가신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 수는 없으니깐.
······아니, 하데스한테 부탁하면 가능은 하려나?
아무튼, 나는 어머니에게 영동 할매에 대한 이야기를 물어보았다.
– 어, 맞아. 네 할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셨어. 항상 시루떡을 만들었다고. 시루떡이랑 정화수를 올리고 기도를 하셨대.
역시 시루떡이었구나.
다행히 시루떡은 만들기도 어렵지 않고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는 종류였다.
– 그런데 갑자기 영동 할매는 왜?
“그럴 일이 있어. 아무튼, 고마워요, 엄마.”
나는 의아해하는 어머니와 통화를 끊고 바로 떡 만들 준비를 시작했다.
“배고파! 언제 먹을 수 있어?”
“금방 해드릴게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자, 배고픈 우리 영동 할매를 위해 서둘러보자고.
* * *
가장 먼저 준비할 건 팥이었다.
“마철성 씨가 준 팥부터 삶자.”
놀랍게도 마철성이 준 농작물 중에는 팥도 있었다.
일반적인 농부라면 잘 팔리는 몇몇 작물만 주종으로 삼아서 키웠을 텐데 어차피 팔리지도 않는 작물, 이것저것 다 키워보자는 심산으로 다양하게 키웠다던가?
그가 그렇게 했던 덕분에 요리에는 그렇게 잘 쓰이지 않는 던전 팥도 내 손에 들어올 수 있었다.
“일단 먼저 마력수에 팔팔 끓인 다음에,”
“끓으면 물 버리고 다시 삶아. 그래야 안 써. 쓰면 부정 타.”
으앗, 깜짝이야.
헤르메스처럼 어느새 주방으로 들어온 할머니 성좌가 내가 팥을 삶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도 헤르메스 덕분에 대놓고 놀란 티는 안낼 수 있어서 다행이네.
나는 쓰게 웃으며 할머니 성좌에게 물었다.
“만드는 거 보시려고요?”
“부정 타는지 보려고.”
“하하, 하면 안 되는 게 있을 때는 말씀해주세요.”
성좌들이 제멋대로인 거야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이렇게 보는 정도면 괜찮지.
나는 할머니 성좌가 충고한 대로, 그리고 원래 내가 그렇게 하려던 대로 팥이 끓은 물을 버리고 새로 마력수를 붓고 압력솥에 넣은 뒤 마정석 화로에 올렸다.
“약불로 은은하게 30분 정도 삶으면 팥은 될 거 같고.”
“더 안 익혀? 30분은 짧아.”
“압력솥이라 금방 익어요.”
“그래?”
이렇게 얘기하니깐 진짜 할머니랑 손자 같네.
그렇게 할머니 성좌와 도란도란 이야기하면서 나는 다음 재료를 준비했다.
“찹쌀가루를 미리 만들어놔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찹쌀부터 빻아야 했을걸.”
“잘했어, 잘했어.”
김치나 배추겉절이의 양념에 쓸 찹쌀풀을 만들기 위해 마철성에게 받은 찹쌀을 미리 갈아놓았었다.
마력이 깃든 찹쌀이었기에 믹서나 제분기에 갈지 못하고 내가 절구에 찧어서 가루로 만든 거라 조금 입자가 거칠긴 했지만.
그래도 덕분에 다른 준비 과정 없이 바로 찹쌀가루로 시루떡을 만들 수 있으니 과거의 나, 아주 칭찬해.
탈탈탈.
나는 미리 만들어놓은 찹쌀가루를 체에 곱게 쳤다.
가루 입자가 고울수록 뭉치는 부분 없이 골고루 익거든.
“이 정도면 됐나?”
“더 쳐. 고울수록 잘 익어,”
“네, 그럴게요. 그런데 이렇게 치다가 제 머리도 할머니처럼 백발이 되겠는데요?”
날리는 쌀가루에 희끗희끗해진 머리를 가리키며 말하자 할머니 성좌가 웃음을 터뜨렸다.
처음에는 자꾸 부정 탄다고 혼만 내시던 할머니가 웃으니 괜히 뿌듯해지네.
그렇게 찹쌀가루를 마저 체친 후, 나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설탕이 있었으면 더 달달한 떡이 됐을 텐데.”
아쉽게도 아직 설탕을 대용할 제품은 구하지 못했다.
단맛 자체는 과일즙이나 양파즙으로 대체가 가능하지만, 떡에 넣기는 좀 그렇거든.
단호박 시루떡이라면 더 달겠지만, 지금은 그걸 만들기엔 시간이 좀 부족하다.
그런 내 혼잣말을 들은 할머니 성좌가 고개를 저었다.
“설탕 없어도 된다. 옛날엔 그거 없이도 잘 먹었어.”
“하긴 저희 할아버지도 설탕은커녕 사카린도 구경하기 힘들었다고 하시더라구요.”
조금 슴슴해지겠지만, 또 떡이 너무 달기만 하면 맛이 덜하니까.
그렇게 할머니 성좌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압력솥이 칙칙대며 팥이 다 익었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잘 익었네. 한번 먹어볼까?”
“안 돼. 부정 타.”
팥이 잘 익었는지 확인하려 조금 떼어먹으려고 하는 순간 할머니 성좌가 내 손을 찰싹 때렸다.
이런 것도 부정을 타나?
이해는 잘 안 갔지만, 성좌님이 그렇다니깐 그러려니 해야지.
“그러면 간은 나중에 할머니가 보시는 걸로?”
“그래, 그래. 내가 볼 게 얼른 으깨.”
“네, 알겠습니다.”
나는 할머니 성좌의 말대로 팥에 던전산 암염을 살짝 뿌리고 주걱으로 꾹꾹 눌러 으깼다.
팥이 아주 잘 익었는지 고슬고슬하게 잘 부서졌다.
그렇게 한참을 으깨자 평소 시루떡에서 보던 팥가루가 완성되었다.
“이제 시루에 넣고 찌면 되겠네. 그쵸, 할머니?”
“그래. 김 잘 올라오게 쪄.”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나는 할머니에게 너스레를 떤 뒤, 시루에 보를 깔고 팥가루, 찹쌀가루, 팥가루 이렇게 삼단으로 가루로 층을 쌓았다.
그리고 솥에서 마력수가 끓자 가루를 쌓은 시루를 그 위에 올렸다.
“이거 두근거리기 시작하네.”
마력수가 끓는 마력 증기로 찐 시루떡이라니.
나부터 그 맛이 기대가 되는데?
그런 내게 할머니 성좌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밀떡은 안 만들어?”
“아, 시루본이요?”
원래 떡을 찔 때 김이 새어나가지 말라고 시루 뚜껑 틈에 밀가루 반죽을 만들어 붙여 놓는 경우가 있었다.
이러면 밀가루 반죽이 틈을 밀봉해 김을 막아주면서 동시에 익어서 그것만 떼어먹기도 했다고 할아버지가 그랬었지.
“요즘은 그릇이 잘 나와서 시루본 없이도 잘 익어요.”
“그건 좋다. 아이들이 밀떡을 떼어먹으면 부정 타서 떡이 안 익거든.”
이쯤 되니 부정 탄다는 말이 일종의 리빙 포인트처럼 들리는데?
‘시루본을 떼면 떡이 안 익는다!’ 같은 걸로 말이야.
나는 혼자서 한 생각에 피식피식 웃으며 할머니 성좌를 보았다.
“이제 익기만 하면 되니깐 테이블, 그러니까 식탁에서 기다려주세요.”
“오냐. 얼른 가져와. 오래 뜸 들이면 부정 타.”
끝까지 부정을 입에 달면서 할머니 성좌가 홀로 돌아갔다.
나는 할머니가 주방을 나가자마자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 그러면 할머니가 안 보시는 사이에 새로운 메뉴를 빨리 만들어볼까?”
할머니 성좌가 내가 예상한 대로 영동 할매가 맞다면, 이 메뉴도 분명 기쁘게 드실 터였다.
그리고 떡이 다 익을 때쯤엔 새 요리도 완성되어 함께 홀로 서빙할 수 있었다.
“자, 부정 안 타게 찐 던전 찹쌀팥시루떡과,”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끈한 찹쌀 시루떡이 할머니 성좌 앞에 놓였다.
그리고 나는 새로 준비한 요리를 그 옆에 내려놓았다.
양푼 그릇에 담긴 노랗게 익은 던전 감자와 아주 조금 들어간 보리 쌀밥, 그리고 헤르메스에게도 내었던 겉절이였다.
“저희 할아버지가 좋아하던 음식이에요. 가난할 때는 이것만 한 게 없다고 하셨었죠. 그래서 이것만이라도 배부르게 먹게 해달라고 항상 빌었대요.”
나는 감자밥을 빤히 쳐다보는 할머니 성좌를 보며 웃었다.
“그렇죠, 영동 할매?”
내 말에 주름진 미소로 빙긋 웃는 할머니 성좌.
[바람을 진정시키는 풍어의 할머니가 은은하게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역시 영동 할매가 맞았다.
영동 할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