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chef of the constellations RAW novel - Chapter 201
201화. 한반도를 빛낸 위인들
“······이게 맞나?”
나는 거북선 갑판으로 나오자마자 본 [아사달]의 광경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장하다! 한반도의 아들, 도연성!] [한반도 2번째 신화급 성좌 도연성을 환영합니다!] [단군 이래 최고의 쾌거!]라는 현수막이 사방에 널려있고 새 떼처럼 모여있는 성좌와 권속들이 손에 태극기를 들고 열심히 흔들고 있었다.
잠깐, 저거 들고 있는 꽃목걸이, 나한테 걸어주려고 들고 있는 거 아니지?
나는 당황한 얼굴로 이순신 장군님께 속삭여 물었다.
“장군님? 이게 다 뭡니까?”
“뭐긴 뭐겠나. 다 자네를 반기는 환영식이지.”
진짜 나 때문이라고?
아니, 아무리 내가 신화급 성좌가 되었다고 해도 그냥 평범한 요리사일 뿐인데······.
“······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자네가 이룬 위업을 이젠 슬슬 인정하게나.”
웃으며 내 등을 두드려 주는 이순신 장군님.
그래도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아서 버벅대고 있는 내게, 두 아리따운 여성분이 꽃목걸이를 들고 가져와서 걸어주었다.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논개라고 해요.”
“소녀, 계월향이라고 하옵니다.”
임진왜란 때 왜장을 껴안고 동반 자살한 그 논개? 그리고 평양의 논개라고 불리는 계월향?
갑자기 등장한 역사 속 네임드 위인들의 등장에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성안으로 기운을 살펴보니 성좌가 아니라 권속이었지만, 한국 사람이라면 저 둘의 이름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잖아?
“왜놈들의 콧대를 눌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속이 얼마나 시원했는지요.”
“······네?”
“저길 보시지요.”
일본의 콧대를 꺾었다는 게 무슨 소리지?
내가 의아해하자, 계월향이 살포시 웃으며 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녀가 가리킨 곳에 있는 현수막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일본도 하나밖에 없는 신화급 성좌! 한반도에선 무려 두 명!] [꼴찌에서 2등이어도 좋으니, 일본만 이기자!]스포츠에서 한일전이 되면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생각은 조상님들도 마찬가지였나 보네.
신화급 성좌의 수로 일본을 이겼다는 사실에 조상님들이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논개와 계월향도 임진왜란 당시 왜군에 고통을 당했기에 일본의 콧대를 눌러준 내게 고마워하고 있었고.
나는 그 모습을 보곤 이순신 장군님께 물었다.
“일본에 신화급 성좌가 하나밖에 없나요?”
“그렇다네. 아마테라스라는 태양신 외에는 신화급 성좌가 없지.”
“그건 신기하네요.”
일본에 있다는 800만 신들의 대표이자 일본 황실의 시조라고 일컬어지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가 신화급 성좌라는 점은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외에도 일본 신화에는 꽤 유명한 신들이 많았다.
일본을 창조했다는 이자나미, 이자나기 부부라던가 머리가 여덟 개가 달린 괴물 뱀, 야마타노오로치를 물리친 스사노오라던가.
그런 내 질문에 논개가 코웃음을 치며 입가를 비틀었다.
“작은 섬의 부부 신과 사고만 치고 다니는 망나니 신이 어찌 신화급 성좌가 되겠습니까.”
논개가 해준 이야기에 따르면 일본 땅을 만들고 최고신 삼 남매를 태어나게 한 이자나기, 이자나미 부부 신은 일본의 아와지섬이라는 작은 섬의 신이었다고 한다.
훗날 아와지 출신 사람들이 권력을 잡아서 창세신의 반열에 올랐지만, 그게 전부일 뿐, 그 이후로 신화 속에서 영향을 조금도 미치지 못했다고.
그리고 천둥과 폭풍의 신이자 영웅신이며 최고신 아마테라스의 남동생인 스사노오의 경우에는,
“그 친구, 한반도 출신이야.”
“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일본의 최고신 삼 남매 중 하나가 한반도 출신이라니?
내가 놀라자, 이순신 장군님이 껄껄 웃음을 터뜨리며 설명을 해주었다.
“원래 한반도, 특히 신라에 살던 우리 백성들이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신앙도 같이 건너간 경우네.”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올 때 일본이 아닌 한반도, 그중에서 신라의 소시모리에 내려온 스사노오는 훗날 일본으로 건너가 신이 되었다고 한다.
즉,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도래인들이 일본에서 세력을 키우면서 자신들의 신이 자연스럽게 메인 신화에 포함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의외로 일본 쪽 성좌 중에 그런 경우가 꽤 있지.”
곡식과 농사, 풍요의 신이자 여우의 신으로도 유명한 이나리 역시 비슷한 케이스라나?
아무튼 덕분에 유명하기는 하지만, 한반도 출신에다가 사고뭉치로 유명했던 스사노오도 신화급 성좌는 못 되었다고 한다.
“나머지 신들은 그 숫자가 워낙 많은 탓에 신앙이 분산되어 등급이 고만고만하옵니다.”
계월향의 설명대로 일본의 신화 속에는 권속이나 신수들을 포함한 숫자지만, 800만이나 되는 신들이 존재했다.
덕분에 한 성좌에게 바쳐지는 믿음의 수도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불교에 대한 믿음도 강했으니, 신앙은 더더욱 분산 됐을 거고.
“아무튼, 자네는 그런 왜국을 이기게 해준 장본인이니 모두가 좋아할 수밖에.”
“하, 하하······.”
“저길 보게나. 한반도 성좌 연합의 수장 네 분께서 모두 자네를 환영하기 위해 오고 계시네.”
그의 말대로 거북선 앞에서 네 명의 성좌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명은 내게 익숙한 세종대왕님이셨고, 남은 세 명은 일단 외모만 봐서는 감이 오질 않았다.
“자, 가서 인사드리게.”
나는 이순신 장군님에게 등 떠밀려 거북선에서 하선한 다음 네 명의 성좌 연합장에게 다가갔다.
우선 얼굴을 아는 세종대왕님께 먼저 인사를 드렸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전하.”
“허허허. 그때는 솜씨 좋은 숙수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우리 한반도 성계의 큰 경사가 되어 만나게 됐군.”
인자한 표정으로 흐뭇하게 웃고 있는 세종대왕님.
나는 인사를 마친 뒤, 그 옆에 서 있는 성좌에게도 인사를 드렸다.
“처음 뵙겠습니다. 도연성이라고 합니다.”
“반갑군. 나는 광개토대왕이다.”
와.
한반도 성좌 연합의 수장이라고 해서 보통이 아닐 거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삼국시대 끝판왕이 나오시네.
나는 개마무사 갑옷을 입고 날카로운 인상을 한 광개토대왕 님께도 고개를 꾸벅 숙였다.
다음은 그 옆에 있는 성좌였다.
“내 이름은 왕건. 고려국의 첫 번째 대왕이지.”
황제만 입을 수 있는 황금 곤룡포를 입고 있는 후덕한 인물이 바로 고려 태조 왕건이었다.
신기하게 드라마에 나왔던 왕건 배우랑 비슷할 정도로 선하고 멋지게 생긴 분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이렇게 반가울 데가. 내가 단군왕검이니라.”
놀랍게도 후덕한 인상에 배가 남산만큼 나온 이 중년 아저씨가 단군이었다.
아무리 상상화라지만, 지구에 있을 때 봤던 단군 영정이랑은 정말 천지 차이네.
내가 생각지도 못한 배불뚝이 단군 할아버지를 보며 놀라고 있자, 단군 할아버지는 껄껄 웃으면서 내 손을 잡았다.
“내가 이 땅에 터 잡은 지 반만년이 다 되어 가는 데도 신화급 성좌가 나오질 않아 얼마나 초조했는지 아느냐? 그런데 네가 이렇게 나타나 주는구나. 고맙다, 고마워!”
“과찬의 말씀입니다.”
단군 할아버지의 격한 칭찬에 나는 머쓱해져 머리를 긁적였다.
나 말고도 유명한 분들이 모두 여기에 있는데, 내가 이렇게 환대받는 게 영 어색하단 말이지.
그런 내 반응을 본 단군 할아버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다, 아니야. 네가 큰일을 해준 것이다. 한반도 성좌들 모두 네게 고마워하고 있을 것이니라. 안 그렇느냐?”
단군 할아버지의 말에 태극기를 흔들며 맹렬히 화답해 주는 한반도 출신 성좌들.
“자, 보거라. 저기 마고 할미와 선문대 할망도 기뻐하고 계시지 않느냐.”
손톱이 새 부리처럼 길고 할미라고 하기엔 젊고 아름다운 여성인 마고 할미는 한반도 무속신앙의 창세신이자 가장 유명한 여신이었다.
제주도 무속신앙에서 마고 할미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선문대 할망도 그 곁에 있었다.
둘 다 거인 신이라 머리가 하늘을 뚫고 올라가 턱만 겨우 보일 정도였다.
도대체 턱 위가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기뻐하고 있는 걸 아는지.
내가 의아해하는 사이 단군 할아버지는 말을 다시 이어나갓따.
“저기 천지왕과 그 아들들인 대별왕, 소별왕도 있구나.”
선문대 할망과 마찬가지로 제주도 무속신앙에서 옥황상제와 같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천지왕.
그리고 그의 아들들로 이승과 저승을 나누어 다스리고 있는 대별왕과 소별왕이 내게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단군 할아버지의 한반도 성좌 소개는 그 뒤로도 계속되었다.
이미 내가 잘 알고 있는 자청비나 단종, 영동 할매도 있었고, 삼신할미, 바리데기, 해모수, 김유신, 고주몽 등 들어본 적 있는 한국 신화의 레전드들이 모두 이곳에서 날 환영해 주고 있었다.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대단하신 분들이 저를 위해······.”
“재밌는 친구로다. 신화급 성좌임에도 이렇게 겸손하다니. 이런 인재야말로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할 터.”
홍익인간 뜻을 펼칠 인재라며 나를 격하게 반가워하던 단군 할아버지는 자신의 곁에 있던 여성을 마지막으로 내게 소개해 주었다.
“그리고 여기 이분이 내 어머니시지.”
거대한 곰의 가죽을 둘러쓴 할머니 한 분이 단군 할아버지와 나를 번갈아 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마치 집에 놀러 온 아들의 친구를 보며 웃는 느낌이었다.
아니, 그나저나 저분이 웅녀라고?
삼칠일, 그러니까 21일 동안 마늘과 쑥을 먹고 인간으로 변신한 단군 신화의 그 웅녀?
나는 눈을 끔뻑거리다 곧 웅녀의 주변을 살펴보았다.
웅녀가 있으면 도망친 호랑이나 환웅 같은 이도 있지 않을까?
그런 내 의문을 알아차린 듯 단군 할아버지가 사람 좋게 웃었다.
“내 아버지인 환웅과 할아버지인 환인은 지금 이곳에 없느니라.”
“그런가요?”
여기서 단군 신화의 내용을 복습해 보자면, 하늘신인 제석 환인의 아들 환웅천왕은 풍백, 우사, 운사 등을 비롯한 천상의 인물 3천 명과 함께 태백산 신단수를 통해 한반도에 내려왔다.
환웅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호랑이와 곰에게 마늘과 쑥을 주며 동굴 속에서 햇빛을 보지 않은 채 백 일 동안 먹으면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말해준다.
호랑이는 그러지 못했지만, 곰은 그 약속을 지켜 삼칠일, 그러니까 21일 만에 인간 여성으로 변할 수 있었고 웅녀라고 불렸다.
그 웅녀와 환웅이 결혼해 낳은 아이가 단군이며, 단군은 장성해서 평양에 도읍을 정하고 고조선을 개국했다.
그런 환인과 환웅이 지금은 [아사달]에 없구나.
“한반도 성계의 수장인 환웅은 최고신 회의에 갔고 환인께서는 이곳이 아닌 천신(天神) 성좌 연합에 가 계시니라.”
“한반도 성좌 연합의 수장은 단군이신 줄 알았는데 환인과 환웅 두 분이 아직 현역이신가 보군요.”
사실 환인과 환웅이 단군보다 윗줄의 성좌이긴 해도 단군 신화 이후로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기에 큰 영향력은 없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역시 근본은 근본이구나.
라고 내가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크흠, 큼.”
단군 할아버지가 갑자기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헛기침하는 게 아닌가.
어찌나 빨갛던지 그 모습이 마치 홍익인간처럼 보였다.
널리 홍(弘) 자가 아닌 붉을 홍(紅)자를 쓴 홍익인간 말이야.
그러자 이순신 장군님이 옆에서 웃음을 터뜨리며 입을 열었다.
“원래는 단군왕검께서 하셨어야 하는 일들이지. 그런데 단군께서 고집을 부려 그 두 분이 대신 밖으로 나가셨다네.”
단군이 오늘 꼭 [아사달]에서 날 만나야겠다며 고집을 부린 탓에 환인과 환웅이 단군의 대타로 일을 나갔다는 거야?
아니 대체 왜?
내 궁금함에 이순신 장군님이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이게 다 자네 요리가 평소에 먹기 힘들기 때문일세.”
“네? 저 때문인가요?”
“그렇느니라! 네 가게는 어찌 그렇게 예약하는 것이 힘든 것인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단군 할아버지도 ‘연성이네 신야식당’에 와 보고 싶어서 몇 번이고 시도를 해보았다고 한다.
결과는 끝없이 늘어진 지원자들과 예약 행렬에 밀려 실패.
“가게 주인이 내 후손임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성좌 연합의 수장인 내가 먹질 못하는 건 말이 되지 않는가.”
원통한 표정을 지으며 주먹을 부르르 떠는 단군 할아버지.
우와, 천하의 단군 할아버지를 삐지게 만든 한국인은 나밖에 없겠지.
삐진 건 단군 할아버지뿐만이 아니었다.
영동 할매, 세종대왕, 단종, 그리고 조정 경기 때 내 요리를 먹어본 성좌들을 제외하곤 아무도 식당에 와본 적이 없었다.
다들 먹어보고 싶었다며 불만 섞인 표정으로 한마디씩 하자 [아사달]은 금방 시끌벅적해졌다.
“여러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는 그런 성좌들에게 선언한 뒤, 이순신 장군님을 슬쩍 보았다.
거북선 선원은 날 포함해서 20명.
원래 역사에선 150여 명이 들어갔지만, 이순신 장군님의 영역이 되어 저절로 움직이는 [거북선]에 그리 많은 선원은 필요 없었다.
그런데 내게 주어진 비어의 양은 20인분이 아니라 200인분에 가까웠단 말이지.
어쩐지 거북선 선원들이 먹기에는 비어의 양이 너무 많더라.
빙긋 웃는 이순신 장군님을 보며 나는 모두에게 힘찬 목소리로 외쳤다.
“오늘은 여러분 모두가 드실 수 있는 비어(飛魚) 파티가 열릴 거니까요!”
내 말에 기쁨의 함성을 내지르는 한반도 성좌들.
마치 지금이 전쟁 중이라는 걸 잊은 듯한 기쁨이 그들의 얼굴에 서려 있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지?
그 금강산이 있는 우리나라 조상님들에게 한 번 제대로 효손 노릇 좀 해봐야겠다.
비어비어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