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chef of the constellations RAW novel - Chapter 203
203화. 범 내려온다
연회는 계속되고 있었다.
푸짐하게 만들어 놓은 음식과 술 덕분에 성좌들과 권속들은 즐겁게 먹고 마셨고, 흥이 올라 우륵과 왕산악, 처용 다음에도 음악과 춤이 끊이질 않았다.
그 와중에 남해 용궁에서 왔다는 용궁 악단이 흥겨우면서도 디지털 사운드가 포함된 연주와 노래를 신나게 부르고 있었다.
도미와 넙치가 베이스와 기타를 잡고 문어가 드럼을 치고 돌고래가 노래하는 모습이라니.
장관이었다.
“범 나려온다. 범이 냐려온다! 송림 깊은 골로 한김생이 내려온다!”
음? 저 노래 굉장히 익숙한데?
내가 어릴 때 나왔던 밴드의 노래로 어린 내가 엄청나게 좋아해서 매일 틀어달라고 했던 기억이 있었다.
심지어 동생이 어머니 배에 있을 때도 매일 틀어달라고 해서 태교를 이 노래로 하게 됐었지.
연준이 녀석이 헌터가 된 게 내 노래 선곡 때문이라고 가끔 정 여사가 푸념한 적도 있었다.
내 추억의 노래가 여기서 연주되고 있자 신기해서 나는 악단의 주인인 남해 용왕에게 찾아갔다.
“용왕님, 저 노래 혹시······.”
“눈치챘나? 지상의 노래가 워낙 좋길래 내가 가져오라고 했지. 으허허허.”
껄껄 웃으며 노래에 맞춰 덩실덩실 어깨를 들썩이는 남해 용왕님.
아니, 이 노래 가사가 수궁가에서 따온 건 아시는 거죠?
수궁가는 별주부전을 판소리로 만든 작품의 이름.
용왕님이 토끼에게 속아 약을 구하지 못하고 죽은 이야기가 그 내용이었다.
즉, 이 용왕님, 지금 자기가 죽어서 성좌가 된 노래를 좋다고 듣고 있단 소리였다.
“얼씨구! 좋다!”
······뭐, 본인이 좋으면 그만인가.
나도 별주부, 그러니까 수궁가의 주인공인 자라와 토끼, 그리고 이 노래의 주인공 호랑이가 둠칫둠칫 춤추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신나긴 하거든.
이런 모습을 어디서 또 볼 수 있겠어?
그렇게 내가 즐겁게 이 연회를 보고 있을 때였다.
쩌저적!
마치 하늘이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천둥인가?”
“단군께서 영역을 조종해 이런 여흥 거리까지 만들어 주신다니.”
옆에서 성좌들이 껄껄 웃음을 터뜨렸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나는 이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으니까.
인생에 딱 한 번 들었지만, 절대 잊을 수 없는 소리였다.
왜냐면, 그 소리가 바로 서울 하늘에 게이트가 열릴 때 났던 소리였으니까.
“모두 대피해요!”
이것저것 재고 할 것 없이 나는 그 자리에서 냅다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밴드의 연주도 끊기고 성좌와 권속들의 놀란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반은 ‘너 때문에 흥이 깨졌으니 책임져.’라는 표정이었고 반은 ‘무슨 일이지?’라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심정을 신경 써 줄 여유는 없었다.
나는 이를 악물며 균열이 점점 커지고 있는 하늘을 가리켰다.
“적이 옵니다.”
지구에 끔찍한 재앙을 불러일으켰던 게이트가 단군의 영역인 [아사달]에도 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게이트에서 처음 고개를 내민 건, 시커먼 연기로 뒤덮인, 끔찍한 외모를 가진 개 형상의 괴물이었다.
* * *
닥치는 대로 삼켜도 달래지지 않는 끝없는 기아.
털 하나 없이 거친 가죽이 뼈에 달라붙을 정도로 마른 몸.
얼핏 보면 개, 혹은 범을 닮았지만,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고 흉악한 외모.
시공간의 틈을 떠도는 검은 짐승들은 끊임없이 집어삼켜 자신의 허기를 채울 먹잇감을 찾아 헤맸다.
그것들은 마치 악마의 그것처럼 불길한 피막으로 둘러싸인 날개로 공허의 우주를 유영했고,
앙상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괴력으로 가득 찬 다리는 먹잇감이 포착되었을 때, 상상도 하지 못할 속도로 공간을 찢고 내달릴 수 있었다.
그리고 희생감의 여린 살점을 물어뜯을 끔찍한 이빨들이 입안 가득 촘촘히 나 있는 네발짐승.
외신들이 만들어 낸 가장 끔찍한 피조물 중 하나가 바로 이들, [사냥개]였다.
[크르르르.] [크흐악, 크학!]외신들의 위대한 지도자가 심심풀이로 만들어 낸 이 끔찍한 애완견들은 끝없는 허기와 갈증으로 항상 미쳐있어서 외신들에게도 골칫거리였다.
그래서 외신들조차 [사냥개]들을 시공간의 틈에 집어넣어 격리시켜야 할 정도였다.
그렇게 격리된 사냥개들은 주로 시공간의 틈을 넘어서 여행하는 필멸자나 약한 권속들을 잡아먹고 살았다.
가끔, 운이 나쁜 성좌조차 그들에게 잡아먹힐 때가 있었다.
그러자 성좌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시공간을 이동하는 이들을 보호하라.’
최고신 회의에서 나온 명령으로 성좌들은 시공간을 넘어 여행할 때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아이템인 [시간의 모래시계]를 지참하기 시작했다.
사냥개들이 있는 시공간의 틈, 즉 공허의 우주에서 가져온 모래가 담겨 있었기에, 사냥개들은 이를 가진 이들의 냄새를 맡을 수가 없었다.
[크르르하악!]그 때문에 [사냥개]들은 아주 오랜 시간을 굶주려야 했다.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으며 언젠가 시공간의 틈을 지나갈 운 없고 부주의한 여행자를 잡아먹을 꿈을 꾸며.
오랜 시간이 지나 성좌와 외신의 전쟁이 터지자, 외신들은 이 굶주린 개들을 모두 시공간의 틈에서 해방시켰다.
영원히 채워질 수 없는 [사냥개]의 허기가 성좌들의 세계를 닥치는 대로 씹어 삼키길 바라면서.
그리고 그런 괴물들의 코와 귀에, 축제 중인 [아사달]이 포착된 순간, [사냥개]들은 참지 않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사냥개]다!”
게이트에서 고개를 내민 괴물을 본 성좌들이 비명을 질렀다.
비교적 젊은 성좌, 그러니까 조선시대 이후의 성좌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지만, 오래된 성좌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모두 도망쳐!”
“[사냥개]가 잡으러 온다! 걸리면 끝장이야!”
“단군! 단군을 찾아! 영역에서 저 개들을 내쫓아야 해!”
저 괴물의 정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성좌들의 반응을 보니 굉장히 위험한 놈들인 건 알겠다.
거기다 아직 한 마리도 채 게이트에서 나오지 못했지만, 미친 듯이 몸부림치며 게이트에서 빠져나오려는 저 광기를 보니 보통 놈은 아닌 것 같았고.
거대한 범이 내려오는 듯한 광경이었다.
“단군께서 충격에 쓰러지셨습니다!”
이어진 비보.
영역의 절대적인 주인으로서 침입한 괴물들을 내쫓아야 할 단군이 기절한 채로 발견되었다.
그 모습을 본 이순신 장군님이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외부에서 강제로 영역을 뚫고 침입한 충격이 컸던 모양이군.”
“거기다 외신력으로 그걸 뚫었을 테니까요.”
나는 장군님의 말에 동의하며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영역은 성좌 그 자체와 연결되어 있다.
나도 [연성이네]를 내 영역으로 창조하면서 느낀 거지만, 영역은 마치 내 영혼과 몸 안에 생겨난 공간이라고나 할까.
영역의 주인인 성좌가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도 영역이 성좌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영역에 구멍이 뚫렸다?
거기다 성좌력을 흩어버리는 외신력에 의해 공격당했다?
아무리 신화급 성좌라고 하더라도 버티기 힘든 충격일 터였다.
“저 [사냥개]들이 아프리카의 성좌들을 모두 집어삼켰다고 하더군.”
어느새 우리 옆에 온 심각한 표정의 광개토대왕 님이 새로운 정보를 알려주었다.
허기에 미쳐 날뛰는 [사냥개]들이 아프리카의 성좌들을 모조리 집어삼켰다고.
신앙이 약해져 격이 떨어졌다고는 하나, 하나의 성계를 몰살시킨 괴물들이 이곳에 온 것이었다.
“저 괴물 같은 짐승들에게는 칼도 화살도, 총탄도 먹히질 않는다고 들었다.”
“공격이 안 먹힌다고요?”
놀란 내 반문에 광개토대왕이 이를 악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약해졌다지만, 아프리카 성계가 맥없이 무너진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저 괴물들은 본체가 없이 연기로 이루어져 있어. 어떠한 물리 공격도 먹히지 않아.”
실체가 없지만, 적을 물어뜯고 삼키는 것은 가능하다는 사기적이고 치사한 괴물들이었다.
저들을 내쫓을 방법은 영역의 주인인 단군 할아버지가 정신을 회복하는 방법뿐이라나.
“이제 어쩌죠?”
“우선 성좌들을 모두 대피시켜야겠지. 하지만 그럴만한 영역이······.”
내 물음에 세종대왕님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구었다.
[아사달]이 한반도 성좌와 권속들의 대피소로 정해진 이유는 그 수용력 때문이었다.고조선의 수도였던 아사달을 그대로 영역으로 삼았기 때문에 많은 성좌와 권속들이 와도 괜찮았던 것.
“제 [거북선]은 전투함이라 많은 이들을 들일 수가 없습니다.”
“내 [집현전] 역시 마찬가지라네.”
“내 영역은 [개마무사]라서 누굴 들일 수조차 없군.”
[거북선]과 [집현전]은 공간 자체가 넓지 않았고, 광개토대왕의 영역, [개마무사]는 공간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군대를 소환할 수 있는 일종의 병영이라고 한다.이런 영역이 있는 줄은 또 처음 알았네.
“내 [참덕전]은 공간이 넓긴 하지만, 내 격이 모자라서 힘들 걸세.”
왕건 역시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고려의 첫 왕궁을 영역으로 가진 왕건이었지만, 왕건은 겨우 전설급 성좌를 유지할 정도로 격이 부족하다고 했다.
이렇게 많은 성좌가 들어오면 영역이 유지되지 못하고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여기서 적들과 맞서 싸워야겠습니다.”
이순신 장군님이 침통한 표정으로 큰 칼을 비껴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피난시켜야 할 성좌들이 뒤에 있는 채로 싸운다면 피해가 커지겠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기에 내린 결정이겠지.
하지만, 적절한 영역이 하나 더 있짆아?
“[연성이네]로 모두를 모시죠. 저도 나름 신화급 성좌고, 제 영역은 충분히 넓으니까요.”
[연성이네]는 무려 아공간 다섯 개를 합쳐서 만든 영역이었다.지금 여기에 있는 성좌들이 다 들어온다고 해도 좁을 일은 없었다.
거기다 식당 ‘연성이네’도 재현해 놨으니 편히 쉴 공간도 있을 거고.
“자네······.”
내 제안에 이순신 장군님의 표정이 흐려졌다.
세종대왕님도 고개를 저으며 나를 만류했다.
“단군께서 쓰러진 것을 보지 못했나? 우리가 자네의 영역으로 간다면 저 [사냥개]들이 자네의 영역을 뚫고 들어가려고 할 걸세.”
그렇게 되면 나도 단군 할아버지와 똑같이 충격으로 쓰러질 수 있다는 우려였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사이 여러분이 저 괴물들을 물리쳐 주실 거라 믿으니까요.”
“장수의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긴 속이 쓰리지만, 우린 이길 방도가 없네.”
이순신 장군님의 말에 광개토대왕과 다른 장군 성좌들도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전장에 나가는 장수가 지을 표정이 아니었지만, 물리 공격이 먹히지 않는 괴물들로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단군 할아버지가 정신을 찾을 때까지 시간을 버는 것뿐이었다.
“에헤이, 다들 포기가 너무 빠르시네.”
“뭐라고?”
나는 놀라는 성좌들을 향해 배를 두드리며 히죽 웃었다.
“제가 어떤 성좌인지 그새 잊으셨어요?”
“자네는 요리 성좌······.”
“그것도 아주 특별한 요리를 만드는 성좌죠.”
내 요리에 아무런 효과도 안 붙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본데, 그럼 섭섭하지.
물론 이런 일이 있을 걸 예상하고 만든 건 아니지만, 놀랍게도 딱 적절한 효과가 붙어버렸다.
[당신이 만든 ‘비어비어 세트(신화급)’가 탄생했습니다.] [해당 코스를 먹은 존재에게 강력한 특수 효과가 발생합니다.] [유니크 특수 효과 [도검불침], [용감무쌍], [치질 치료]가 적용됩니다.] [유니크 특수 효과는 모든 성계에서 오로지 당신만이 부여할 수 있게 됩니다.]이순신 장군님이 거북선을 띄우기 위해 사용했던 비어(飛魚)는 예로부터 그 특별한 효능이 기록되어 있었다.
비어를 먹으면 창과 칼에 찔려도 상처를 입지 않고, 두려움이 사라진다.
그래서 [도검불침]과 [용감무쌍]이라는 유니크 특수 효과가 붙었다.
······치질이 치료된다는 효과도 기록되어 있었기에 [치질 치료]도 붙었지만 말이야.
아무튼 신화급 성좌가 되어 만든 요리기에 유니크 특수 효과가 셋이나 붙었고, 그 효과가 딱 지금 상황에 적합하니 괜찮지 않을까?
내 설명을 들은 장군 성좌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거라면 충분히 싸울 수 있을 것 같군.”
“고맙네. 뭐 하는가, 다들 움직이자고!”
장군 성좌들은 전투 준비를, 비전투 성좌들은 서둘러 내 영역 [연성이네]로 대피를 시작했다.
그리고 대피가 다 되어갈 때쯤, 드디어 게이트를 빠져나온 [사냥개]들이 우리를 덮치기 시작했다.
[크르르르!] [크하악!]사냥개의 흉악한 이빨로 가득 찬 입이 가장 앞에 서 있던 고구려의 장군, 연개소문의 팔을 물었다.
원래라면 외신력에 의해 성좌력의 보호막이 사라지고 그대로 살이 찢겨나갔어야 했지만,
깡!
하는 소리와 함께 연개소문의 팔에는 아무런 생채기 하나 없었다.
“크하하하, 내래 네놈들을 모조리 죽여주갔어!”
그 말과 동시에 연개소문의 등에서 뽑혀 나온 다섯 자루의 칼이 사냥개의 몸을 난도질했다.
물론 실체가 없는 괴물들이라 죽지는 않았지만, 고통스럽기는 한 듯 비명을 지르며 물러나는 사냥개들.
그 모습을 본 전투 성좌들의 사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필사즉생(必死則生) 필생즉사(必生則死)라 하였다!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려고 하면 죽는 법. 모두 저 개새끼들을 때려잡으러 가자!”
때를 놓치지 않고 이순신 장군님이 모두의 사기를 높이는 연설을 하며 거북선을 출발시켰다.
그렇게 [용감무쌍]의 효과로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한 한반도 성좌 올스타와 [사냥개]들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 * *
“자네는 피하지 않는가?”
비전투 성좌를 대피시키던 세종대왕님이 마지막으로 단군 할아버지를 내 영역으로 들여보내며 내게 물었다.
나는 대피가 진행되는 동안 생각하고 있던 걸 세종대왕님께 물었다.
“쟤들이 저렇게 날뛰는 이유가 배고파서라고 했죠?”
“그렇네. 잠깐, 자네 혹시······?”
세종대왕님의 놀란 얼굴에 나는 빙긋 웃었다.
그야, 배고픈 이를 배부르게 먹게 하는 건 내 역할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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