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chef of the constellations RAW novel - Chapter 205
205화. 누렁아, 밥 먹자
한천 쌀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한천으로 만든 우뭇가사리묵을 실처럼 잘라 말리면 실한천이 된다.
이 실한천을 쌀알 크기로 송송송 잘라 주면 멥쌀보다 좀 더 투명한 크기의 한천 쌀이 된다.
물론 진짜 쌀은 아니고 쌀을 대신해서 먹는 극도의 저칼로리 대체 쌀이다.
원래 이런 활용은 곤약으로 만드는 곤약 쌀이 먼저였다.
하지만 곤약을 만들 곤약 감자 혹은 구약 감자라고 부르는 식물의 대용품을 못 찾았기에 아쉽지만, 양갱을 만들 때 썼던 한천으로 곤약을 대신했다.
곤약보다 한천이 칼로리가 더 낮으니 오히려 이쪽이 좋을지도?
“우선 일반 쌀을 물에 충분히 불려서 밥을 해주세요.”
내 지시에 몇몇 성좌들이 자청비의 쌀로 밥을 하러 갔다.
내게 [자청비의 오곡 세트]를 팔았던 성좌 자청비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었다.
본인의 쌀이니 누구보다 맛있게 밥을 지어주겠지.
“잠깐, 한천 쌀로 밥을 하는 게 아니었나? 왜 평범한 밥을 짓는 건가?”
세종대왕님이 내 지시에 의아해하며 물어왔다.
그 질문에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한천 쌀로만 밥을 지으면 맛이 없거든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한천 쌀만으로는 밥을 할 수가 없다. 이건 곤약 쌀도 마찬가지.
한천 쌀이나 곤약 쌀로만 밥을 하면 식감도 이상해지고 당연히 밥맛도 나지 않는다.
대신 칼로리는 극단적으로 떨어지겠지.
“그럼 더 좋은 거 아닌가?”
“아무리 칼로리를 떨어뜨리고 배부르게 하려는 목적으로 만드는 요리라도 저는 맛을 추구하고 싶습니다.”
요리에 맛이 없어도 배만 부르면 괜찮다?
‘그런 건 요리가 아니다.’라는 극단적인 이야기까진 하지 않더라도 맛이 없는 요리는 요리사의 존재를 부정하는 소리였다.
요리사란 애초에 맛이 있는 요리를 손님에게 내고 그 가치를 인정받는 사람들이니까.
“자네, 괴물들한테 인정받고 싶나?”
“괴물들한테 인정받고 싶은 게 아니라 제 요리를 먹는 존재라면 누구나 맛있는 요리를 먹을 자격이 있습니다.”
솔직히 일부러 맛이 없는 요리를 주는 건 내게 독이 든 요리를 주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는 말씀.
“거기다 혹여나 맛이 없어서 저 괴물들이 입도 안 대면 어찌합니까?”
“그놈들이 먹을 걸 가린다고?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만.”
세종대왕님이 내 말에 질린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지만, 모르는 말씀.
아버지가 데려와서 길렀던 진돗개 똘이 녀석은 입맛이 까다로워서 고급 사료를 줘도 입에 대지 않을 때도 많았다.
심지어 할아버지가 만든 돼지국밥 국물에 사료를 토렴해서 줬는데도 안 먹더라니까?
그때 할아버지의 자존심이 박살 난 표정을 내 평생 딱 한 번 봤었다.
고급 사료에 간을 하지 않은 진한 돼지고기 육수, 그리고 큼지막한 돼지고기까지 거부한 똘이의 입맛을 찾아준 건,
‘하하, 이놈의 똥개 녀석이 밥투정을 하네?’
괴물 같은 체력을 자랑하던 소방관 출신 헌터, 내 아버지 도대경이였다.
아버지의 산책이라 쓰고 지옥 행군이라 읽는 10km 30분 컷 산책을 다녀오면 제아무리 입맛 까다로운 똘이도 미친 듯이 밥그릇에 주둥이를 처박더라고.
아무튼, 우리 똘이도 그렇게 밥투정을 했는데 저 사냥개들도 안 하리란 보장은 없었다.
그러니 칼로리는 낮추면서도 최대한 맛있게 해야지.
“밥이 어느 정도 됐으면, 잘라놓은 한천 쌀을 그 위에 얹고 함께 뜸을 들여주세요. 비율은 쌀이 1, 한천 쌀이 2입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한 번 더 당부했다.
“절대 뜸을 오래 들이지 마세요. 그러면 한천이 다 녹아버릴 겁니다.”
원래 한천 밥은 이렇게 한천 쌀을 만들어서 하는 것이 아니었다.
쌀에 한천 가루를 조금 넣고 밥을 지어 조금 더 탱글탱글한 밥을 만드는 게 한천밥.
그 이유는 곤약 쌀과 달리 한천 쌀은 밥 짓는 열과 수분에 녹아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되면 죽도 밥도 아닌 끈적한 쌀양갱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이렇게 뜸 들일 때 데워주는 식으로 한천 쌀을 익힐 생각이었다.
“애초에 한천은 물에 불리기만 하면 바로 먹어도 되니까.”
그렇게 한천과 쌀이 섞인 한천 쌀밥이 만들어지는 사이, 나는 오이소박이를 만드는 현장으로 갔다.
“오이소박이는 여러분만 믿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게나.”
“맡겨 주시와요.”
내 말에 오이소박이 담당 성좌들과 권속들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이소박이의 역사는 1766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라는 책에 ‘황과담저법(黃瓜淡菹法)’이라는 이름으로 수록되어 있었다.
즉, 조선 후기 출신 성좌나 권속들은 오이소박이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소리.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레시피가 좀 달라졌을 테니 나는 한 번 더 설명하기로 했다.
“던전 오이를 깔끔히 손질한 뒤, 4등분을 해서 밑동만 남기고 십자로 칼집을 내줍니다.”
오이는 꼭지를 떼고 표면의 가시를 칼등으로 긁어서 제거해 준 뒤, 깨끗한 물에 씻으면 손질 끝이었다.
그런 다음 칼집을 내서 김칫소를 넣어 줄 공간을 만들어 주면 다듬기 끝.
그다음은 소금물에 절여주면 된다.
나는 모두가 던전산 암염을 녹인 소금물에 손질한 오이를 절이는 걸 확인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그동안 소박이에 들어갈 김칫소를 준비해 보죠.”
던전산 양파와 부추를 잘게 썰어주고 고춧가루, 액젓, 다진 마늘, 다진 생강을 넣은 김치 양념을 만들어 골고루 섞어준다.
내 지시에 김칫소를 만들던 권속 중 하나가 손을 들고 질문을 해왔다.
“나으리요, 풀은 안 쑤능교?”
“찹쌀 풀 말씀이죠?”
보통 김치를 담글 때는 찹쌀 풀이나 밀가루 풀을 쑤어서 양념에 함께 넣는다.
그렇게 되면 풀의 끈적끈적함 때문에 배추나 무 등 김치 메인 재료에 양념이 골고루 묻게 되고, 또 유산균의 먹이로 찹쌀이나 밀가루의 당분이 쓰이기에 발효가 잘된다.
하지만 지금은 당장 사냥개들이 먹을 오이소박이를 만드는 중.
굳이 발효까지 해서 먹일 필요는 없었다.
“오이소박이는 여름에 만들어 겉절이식으로 더 자주 먹으니까요.”
오이는 수분이 많아서 쉽게 무르는 채소.
때문에, 조금만 실수해도 오이가 금방 물러 식감이 나빠지고 물이 빠져나와 김치가 싱거워진다.
그래서 발효시켜서 오래 보관하기보다는 빨리 만들어서 빨리 먹는 게 더 좋은 김치기도 했다.
“완성된 김칫소를 칼집을 낸 오이에 꾹꾹 눌러 담고 한 번 더 무쳐주시면 됩니다.”
내 지시에 일사불란하게 소를 오이 속에 집어넣는 성좌와 권속들.
김칫소를 오이에 박아 넣는다고 해서 오이소박이란 이름이 붙었다지?
나는 그렇게 오이소박이도 잘 진행되는 모습을 보며 마지막으로 내 일을 하기로 했다.
“냉국은 혼자서도 충분히 만들 수 있으니까.”
미역 오이냉국은 만드는 법이 정말 간단했다.
백오이를 쓴 오이소박이와 달리 청오이를 가늘게 채 썰어준다.
적양파도 비슷하게 채 썰어준 뒤, 미리 불려놨던 미역도 적당한 크기로 썰어준다.
“여기서 간장으로 살짝 버무려서 간을 해준 다음에 마력수를 부어주는 거지.”
여기에 소금과 깨, 식초를 대신한 던전 귤즙을 넣고 매콤한 맛을 살려줄 폭렬초와 던전 고추를 살짝 썰어서 넣는다.
그러곤 후릅, 맛을 본다.
“크, 이거지. 이제 차갑게 식히기만 하면 되겠네.”
차갑게 식히는 것도 어렵지 않다.
일반 냉국이라면 얼음을 동동 띄우겠지만, 나한테는 마력 빙정이 있으니까.
마력 빙정으로 시원하게 식힌 대용량의 냉국을 들고나오자 다른 요리도 모두 완성이 되어 있었다.
“이야, 많긴 많네요.”
산더미처럼 쌓여서 김을 모락모락 피우고 있는 한천 쌀밥.
매콤하고 시원한 냄새를 풍기고 있는 오이소박이.
그리고 내가 만들어 온 시원한 미역 오이냉국까지.
“자, 저 배고픈 괴물들의 배가 터지도록 먹여주고 옵시다.”
끝없는 허기와 영원한 굶주림이라고?
요리사의 자존심을 걸고 배부르게 해주마.
나는 히죽 웃으며 음식을 들고 [연성이네]를 나가 [아사달]로 향했다.
* * *
“정말 끝도 없군!”
김유신의 칼날이 번뜩이며 사냥개 세 마리의 목을 동시에 날렸다.
그 모습을 보더니 옆에서 계백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젊었을 때 말 목 자르던 솜씨는 여전하구만?”
“내가 그 말 하지 말랬지! 내가 그 말을 얼마나 아꼈는데!”
어머니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었지만, 자신이 자주 가던 천관녀의 집으로 인도한 죄밖에 없는 충직한 말의 목을 자른 건 김유신에게 큰 한으로 남아있었다.
그의 아픈 점을 건든 계백에게 김유신은 복수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넌 처자식을 벴잖아?’라고 말하는 건 인성이 쓰레기로 보였으니까.
그래서 자신의 분노를 사냥개들에게 쏟아부었다.
“에라이! 이 썩을 똥개들! 왜 안 죽는 거야?”
김유신과 같은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연성이 만들어 준 요리의 유니크 특수 효과, [도검불침]으로 피해를 줄일 수 있었지만, 그건 상대 역시 마찬가지.
아무리 공격해도 조금의 상처도 입지 않는 사냥개들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상처 입히지 못하니 결국 이 전투는 지루한 체력전이 되어버렸다.
“헉헉, 이러다 특수 효과가 사라지기 전에 내가 먼저 쓰러지게 생겼다.”
“조금만 버티게! 여기서 기절했다간 저놈들의 한 입 거리가 될 테니까!”
“쟤들이 우릴 못 먹는데?”
“······그러면 저놈들의 개껌이 되겠지.”
지친 건 성좌들만이 아니었다.
[사냥개]들도 자신들이 태어난 이후 처음으로 느껴보는 무력함에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크르헝?] [크르르아! 크롸!]씹어도 이빨 하나 들어가지 않으며, 발톱으로 긁어도 생채기 하나 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들의 이빨과 발톱이 빠지면 빠졌지.
거기다 성좌들이 공격해 올 때마다 다치진 않았지만, 연기로 흩어졌다가 다시 뭉쳐야 했기에 에너지 소모가 심각했다.
안 그래도 배가 고픈데 더 배가 고파졌다는 소리였다.
“헉, 헉, 그만! 그만 좀 하자 이 똥개들아! 좀 쉬자고!”
[크롸롸롸!]끝없이 이어지는 전투에 지쳐 참다 참다 못한 고함 소리가 양쪽 진영에서 터져 나왔다.
그리고 양쪽은 서로를 보며 놀라 입을 다물었다.
“······.”
[······.]서로를 바라보는 두 진영은 전쟁이 시작된 이후 눈빛의 대화였지만, 처음으로 의견을 나눌 수 있었다.
‘야, 너두?’
‘응, 나두.’
지치고 배고파서 못 해 먹겠다는 점에서 의견이 일치한 성좌와 사냥개들이 공격을 멈추고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났다.
서로 약속한 듯, 적당히 거리를 벌린 뒤에는 각자 땅에 주저앉기까지 했다.
“으아, 더럽게 힘들어서 못 해 먹겠다!”
[크르헝, 컹!]서로 철천지원수였지만, 묘하게 공감대가 형성된 양쪽 진영은 기습도 없이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쾌활한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어? 때마침 쉬고 계셨네요? 잘 됐다. 밥 먹고 하죠?”
그것은 산더미 같은 음식을 들고 오는 신화급 성좌, ‘행복을 먹게 하는 주방의 지배자’ 도연성이었다.
* * *
아니, 얼마나 힘들었으면 다들 저렇게 주저앉아서 쉬고 있냐.
하긴 서로가 서로를 죽이지 못하는 상태에서 끝없이 싸우는 건 지옥이나 마찬가지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끝없이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지옥이 있을 정도로 결과가 없는 단순 반복은 끔찍한 일이었다.
북유럽의 에인헤랴르가 끝없는 전투를 반복한다지만, 스루드한테 들어보니 그 에인헤랴르들도 죽고 다음 날 부활하는 거지, 아예 안 죽지는 않거든.
“마침 잘됐네요. 배부터 채우죠.”
어떻게 적들의 음식만 만들 수 있겠어.
나는 사냥개들을 위해 만든 요리가 아닌, 한반도 성좌들을 위해 만든 요리도 내놓았다.
다행히 [연성이네]로 대피한 성좌와 권속이 많아 일손은 넘쳐났기에 시간 내에 맞출 수 있었다.
“오랜만에 먹는군.”
이순신 장군님이 한 번 먹은 적이 있는 ‘충무 김밥’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자신의 시호를 따서 만든 김밥이라 더더욱 만족해하시는 것 같네.
그렇게 우리 쪽 성좌들에게 충무 김밥을 나눠주고 있을 때였다.
[크르르르!]음식의 냄새를 맡은 사냥개들이 섬뜩한 소리를 내며 다시 몸을 일으켰다.
지쳐서 잠시 휴전했다지만, 사냥개들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끝없는 허기와 굶주림.
눈앞에서 음식을 먹고 있는 성좌들을 향한 증오와 질투가 사냥개들의 새카만 눈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다시 달려들 것 같은 사냥개들의 모습에 성좌들도 긴장하기 시작했고.
그리고 그때, 내가 움직였다.
“어휴, 기다려 봐. 너희도 줄 테니까.”
[······크헝?]내 말에 당장이라도 성좌들을 덮치려던 사냥개들이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우리한테 밥을 준다고? 너희를 잡아먹으려던 우리에게?’라는 듯한 사냥개들의 표정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배고픈 자라면 누구나 배불리 먹이라는 게 우리 집안의 신념이거든.”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들었는지 사냥개들의 귀가 축 처졌다.
그 모습을 본 광개토대왕이 헛웃음을 터뜨릴 정도였다.
“저 끔찍한 공허의 괴물들을 당황하게 한 건 네가 유일할 거다.”
“그것만 그럴까요?”
저들에게 밥을 주는 것도 아마 내가 유일하겠지.
나는 한천 쌀밥과 오이소박이, 그리고 미역 오이냉국을 녀석들의 앞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히죽 웃었다.
“많이 먹어라. 그동안 배 많이 고팠지?”
경계하며 나를 노려보던 사냥개들.
그러나 결국 그들을 움직이는 배고픔에 이기지 못하고 한 마리, 두 마리 씩 나와서 음식으로 달려들었다.
“역시 잘 먹는군. 저렇게 뭐든지 집어삼켰겠지.”
이순신 장군님이 내 옆에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나는 허겁지겁 밥을 먹는 사냥개들을 보며 다른 모습을 떠올리곤 고개를 저었다.
“······아무도 저들에게 제대로 된 밥을 준 적이 없었을 테니까요.”
성좌와 성계, 우주를 집어삼키는 탐식의 사냥개들.
하지만 내겐 방치되어 굶주림에 시달린 유기견으로 보일 뿐이었다.
개밥바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