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chef of the constellations RAW novel - Chapter 206
206화. 개밥바라기
[크르르르.]킁킁.
아주 오랜 시간을 굶주렸던 사냥개들은 새로 보는 음식에 처음부터 호의적이진 않았다.
그들은 냄새를 맡고, 앞발로 툭툭 그릇을 쳐보고 밥그릇 주변을 빙빙 돌면서 경계심을 잔뜩 드러냈다.
덕분에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초조함이 겉으로 티 나지 않게 애써 감춰야 했다.
“먹기 싫은 걸까요?”
”뭐든지 먹어 치우는 저 사냥개들이? 그럴 리가.“
“그치만 입도 대지 않는데요?”
내 물음에 세종대왕님이 눈을 가늘게 뜨며 사냥개들을 바라보았다.
그러곤 잠시 뒤, 긴가민가하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내 생각으로는 저게 밥인 줄 모르는 모양인 것 같군.”
“······네?”
누가 봐도 밥과 반찬과 국으로 이루어진 백반 세트인데 저게 밥인 줄 모른다고?
성좌건 행성이건 눈앞에 보이는 건 닥치는 대로 뜯어먹는 저 사냥개들이 밥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세종대왕님이 어깨를 으쓱이며 한 부연 설명은 나를 납득시켰다.
“생각해 보게. 저 짐승들에게 누가 밥을 줬겠는가?”
”아.“
그랬다.
뭐든지 먹어 치우는 짐승들이었기에 아무도 저 사냥개들에게 제대로 된 밥을 준 적이 없었던 거였다.
그러니 음식이 뭔지 알지 못하는 거지.
그래도 나는 납득이 가지 않아 중얼거렸다.
“저 개들의 주인은 밥을 주지 않았던 걸까요?”
”사냥개들의 주인? 그자가 누군가를 챙길 리 없지.“
세종대왕님의 설명에 의하면, 사냥개들을 창조한 이는 외신 중에서도 가장 위대하면서도 가장 끔찍한 창조주였다고 한다.
그 창조주는 시공간의 끝과 끝을 차지하고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자였기에 그가 창조한 사냥개들 역시 시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었다고.
하지만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그 외신에게 자신이 만든 피조물 따위, 하찮기 그지없는 존재였다.
“그럼 그렇게 만들어 놓고 그냥 방치했단 말입니까?”
”그래. 외신들을 우리와 같은 사고방식으로 생각해선 안 되네.“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짓는 내게 세종대왕님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물론 성좌들의 사고방식 또한 나와 달랐지만, 외신들의 사고는 그보다 더 다른 모양이었다.
”불쌍히 여기지 말게. 굶주림에 시달렸다고 저 괴물들이 지은 죄가 사라지는 건 아니니깐.“
“······휴우.”
물론 그것은 알고 있다.
저 괴물들은 이미 수많은 죄를 저질러 왔고 불쌍하기보다는 불쌍한 피해자들을 더 많이 만들어왔다는 것을.
하지만 요리사인 내게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밥을 먹어본 적이 없는 존재란 그 무엇보다 서글프게 다가왔다.
킁킁!
내가 그렇게 사냥개들을 불쌍히 여기고 있을 때, 오랜 탐색이 끝난 개 한 마리가 기다려 왔던 첫입을 댔다.
가장 먼저 삼킨 건, 산더미처럼 쌓여 모락모락 김을 피워내고 있는 한천 쌀밥이었다.
[크르르, 컹!]맛이 마음에 든 걸까?
첫입을 먹은 사냥개 한 마리가 몸을 부르르 떨더니 곧 한천 쌀밥에 코를 박고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그러자 곧이어 다른 사냥개들도 다가와 한천 쌀밥을 집어삼켰다.
[크르학! 크학!]밥이 뜨거운지 하늘을 보고 다시 밥그릇에 고개를 박으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사냥개들이었지만, 맛은 있는지 먹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거기다 사냥개들이 먹는 건 한천 쌀밥뿐이 아니었다.
카드득! 카드득!
사냥개들의 입 안에 들어간 오이소박이가 부서지는 소리가 시원하게 들려왔다.
김치 양념이 꽤나 매콤할 텐데도 사냥개들은 거리낌 없이 오이소박이를 씹고 삼켰다.
눈에 보일 정도로 빨리 줄어들어 가는 미역 오이냉국은 덤이었다.
“와, 미역이랑 오이를 마치 면발처럼 후루룩 빨아 먹는 괴물이라니. 오래 살고 볼 일이네.”
고작 서른 남짓 살아온 내가 할 말은 아니었지만, 나나 수백 년, 수천 년을 살아온 성좌들이나 이런 광경을 처음 보는 건 마찬가지.
내가 한 음식에 맛을 들인 사냥개들은 이제 주변에 누가 있건 없건 음식을 먹는데 몰두하기 시작했다.
[크르악! 카학!] [크르르르!]이젠 숫제 밥그릇을 두고 자기들끼리 싸우기까지.
당장이라도 우리를 물어뜯어 집어삼키려 했던 외신들의 괴물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나와 성좌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허탈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저 괴물들의 공격을 멈추기가 이렇게나 쉬운 일이었다고?”
“쉬운 일은 아니지. 저 괴물들의 입맛에 맞게 요리를 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닐 테니까.”
김유신의 물음에 거기까지 말한 계백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검과 창이 아니라 밥으로 저 괴물들을 멈출 수 있다는 것은 믿을 수 없긴 하군.”
그렇게 말하며 김유신을 슬쩍 본 뒤에 한숨을 깊게 내쉬는 계백.
백제를 멸망시킨 나당연합군도 이런 식으로 막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걸, 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러는 사이 이순신 장군님이 내 곁으로 와서 입을 열었다.
“역시 잘 먹는군. 저렇게 성좌든, 뭐든 집어삼켰겠지.”
”······누구도 저들에게 제대로 된 밥을 준 적이 없었을 테니까요.“
나는 아까 세종대왕님과 했던 말을 반복하면서 밥을 먹고 있는 사냥개들을 보았다.
주인에게 밥 한 번 얻어먹지 못하고 방치되어 굶주림에 시달린 유기견들을 말이다.
“쩝, 저 괴물들이 우리보다도 더 잘 먹네. 우리도 먹고 싶구만 말이야.”
뒤에서 한 성좌가 투덜대는 소리가 들렸다.
물론 자신들도 충무 김밥을 먹고 있지만, 밥과 국, 김치까지 갖춰진 사냥개들의 만찬을 보니 아쉬운 모양이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불만에 답했다.
“과연 저 모습을 보고도 그런 생각이 드실까요?”
“······?”
내 말과 동시에 한천 쌀밥을 집요하게 공략하던 사냥개 몇 마리가 캥! 하는 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서 무너져 주저앉아 버렸다.
옆으로 비뚜름히 누운 사냥개들의 배는 남산처럼 부풀어 올라 있었다.
[당신이 만든 ‘한천 쌀밥(???급)’이 효과를 발휘합니다.] [상대의 기운을 흡수한 한천 쌀밥이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납니다.]곤약과 한천의 주요 성분은 엄밀히 말하면 탄수화물이었다.
그건 즉, 소화된다면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다는 소리.
그런데 왜 곤약과 한천은 소화하는 칼로리가 섭취한 칼로리보다 높을 정도로 저칼로리 음식의 대명사가 된 걸까?
그것은 곤약과 한천의 탄수화물이 인간이 소화할 수 없는 ‘식이섬유’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소는 4개의 위를 이용해서 되새김질하며 식이섬유를 소화한다.
토끼는 한 번 소화과정을 거친 식이섬유 배설물을 다시 먹고 한 번 더 소화한다.
이 외에도 초식 동물은 식이섬유를 소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반면, 인간을 비롯한 대부분의 동물들은 소화하기 쉬운 과일이나 연한 잎, 그리고 고기를 먹는 식성으로 진화했기에 식이섬유 대부분을 소화하지 못한다.
“대신, 인간은 식이섬유를 다른 용도로 활용하기 시작했죠.”
식이섬유는 뱃속에서 물을 굉장히 많이 빨아들인다.
그렇게 물에 불어난 식이섬유는 먹을 때보다 부피가 많이 불어나 있는 상태.
소화가 안 되는 식이섬유가 대장으로 넘어가면서 원래 안에 있어야 할 것을 밀어내고, 그렇게 되면 아주 오랫동안 일을 보지 못했던 존재도 바로 화장실을 달려가게 만드는 기가 막힌 아이디어였다.
“그리고 원래라면 소화하지 못하는 식이섬유를 소화하려 애쓰느라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되죠.”
소화의 메커니즘은 간단했다.
위로 들어온 음식물을 위액이 녹여서 몸에서 흡수하기 쉽게 만드는 것.
그리고 이를 돕기 위해 위가 움직여서 들어온 음식물을 분해하고 소화액이랑 섞어준다.
정확히는 위 주변의 근육이 움직이는 거고, 그래서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생물은 에너지를 꽤 소모하게 된다.
그런데 사람이나 개처럼 식이섬유를 소화하지 못하는 몸이라면?
소화하지 못하는 식이섬유를 어떻게든 소화하기 위해 위가 계속 움직여야 하고 에너지 소모는 배로 늘어나게 된다.
그래서 간혹 곤약을 너무 많이 먹으면 불어난 식이섬유가 위에서 십이지장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계속 남아있게 되고, 그걸 내려보내기 위해 위가 고생을 하다 보니 위경련이 일어나기도 한다.
심하면 수술로 빼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고.
“사냥개들이 아무리 뱃속에 무한한 위장을 가지고 있어도, 뱃속에서 끝없이 불어나는 한천 쌀밥을 모조리 수용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내 자신만만한 소리와 함께 곳곳에서 사냥개들이 픽픽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쓰러진 사냥개들은 모두 배가 뽈록 튀어나와 있었다.
물이 아닌 사냥개들의 기운을 흡수한 한천 쌀이 어마어마한 양으로 불어났기 때문이었다.
[당신이 만든 ‘저칼로리 다이어트 식단(???급)의 효과로 [사냥개]들의 에너지가 급격히 고갈됩니다.] [에너지가 고갈된 [사냥개]들이 행동 불능에 빠집니다.]모든 사냥개들이 배를 채우고 그 자리에 쓰러지자마자 상태창 메시지가 떠올랐다.
누구도 막지 못했던 불패의 괴물들, [사냥개]가 내 밥 앞에 무릎을 꿇는 순간이었다.
“성좌까지 집어삼키고도 다 차지 않았던 사냥개들의 배가 이렇게 차는군.”
“직접 보고도 믿을 수가 없는 광경이야.”
성좌들이 감탄을 터뜨리는 모습에 나는 머쓱해져 코를 쓱 문질렀다.
그때였다.
“어?”
내 성안(星眼)에 잡혀선 안 될 것이 잡히고 있었다.
오로지 외신력으로 가득 차 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야 할 사냥개들의 몸속에서 한 줄기 기운이 솟구치는 게 보였다.
내 눈에 보이는 건 성좌들과 권속, 그리고 지구에 속한 일명 ‘내우주’의 존재들의 기운뿐.
외우주, 즉 우주 바깥에 존재하는 외신들의 피조물인 사냥개의 몸에서 기운이 보일 리가 없었다.
“대체 저게 뭐지?”
하지만 내 눈에는 계속해서 보이고 있었다.
마치 다 타버린 향에서 마지막으로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실낱같이 사냥개의 몸속에서 흔들리는 기운이 말이다.
나는 믿을 수 없어 눈을 껌뻑이다가 다른 성좌들에게 물었다.
“여러분, 혹시 사냥개가 원래 우리 쪽 존재였나요?”
“저 끔찍한 괴물이? 그럴 리가.”
“외신들이 창조해 냈다는 것 외에는 아무도 저 괴물들의 정체를 모르네.”
내 물음에 그럴 리 없다며 고개를 젓는 성좌들.
하지만 내 눈에 보이는 저 성좌의 기운은 [사냥개]들이 오로지 외신들에게만 속한 존재가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실낱같은 기운은 내게 마치 희망의 끈처럼 보였다.
내가 아닌 저 사냥개들의.
“도 숙수! 뭐 하는 겐가!”
“멈추게! 위험해!”
마치 홀린 것처럼 밥을 다 먹은 사냥개들을 향해 걸어가는 나를 본 성좌들이 기겁하며 말리기 시작했다.
생에 처음 느껴보는 배부름에 만족하고 있던 사냥개들도 다가오는 나를 눈치채고는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크르르, 크하악!] [크헝! 크허엉!] [도검불침] 때문에 한반도 성좌들의 신체에 조금의 생채기도 내지 못했다지만, 원래라면 시공간을 찢고 성좌들의 몸도 육편을 내버리는 사나운 입에서 나를 향한 사나운 짖음이 튀어나왔다.원래의 나라면, 흠칫하며 당장 뒤로 물러나 다른 성좌들 뒤에 섰을 테지.
하지만, 나는 조금도 겁먹지 않고 그들의 몸속에서 흔들리는 기운을 향해 똑바로 걸어갔다.
[크르르르!]놀랍게도 당장이라도 날 물을 것 같던 사냥개들은 내게 덤벼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내가 다가가자 겁먹은 듯 조금씩 뒤로 주춤대며 물러서는 게 아닌가.
역시.
나는 그 모습에 자신감을 얻고 더 빠른 속도로 사냥개들을 향해 다가갔다.
”많이 먹었어? 늦었지만, 너희를 위한 밥이었다.“
[······크르르르.]내 말과 동시에 사냥개 안에서 몇 줄기 기운이 더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다는 증거.
그리고 나는 가장 앞에서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있는 사냥개의 등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려 손을 올렸다.
“밥은 맛있었니?”
놀랍게도 외신력의 안개로 이루어진 몸이라 당연히 만질 수 없어야 했지만, 내 손에는 분명 앙상하고 깡마른 사냥개의 몸이 만져졌다.
나는 피죽도 남지 않아 갈비뼈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사냥개의 몸을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불쌍한 것들. 주인을 제대로 만나지 못해서 밥도 제대로 못 먹는구나.”
[······크르르.]과거의 이들이 저지른 업보가 있었기에 절대 고생했다고 말하진 않았지만, 나는 얌전히 사냥개들의 머리와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마치 유기견 보호소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들을 대하듯이 말이다.
그리고,
[당신이 만든 ‘저칼로리 다이어트 식단(???급)의 효과로 영원한 허기에 시달리던 [사냥개]들의 허기가 사라졌습니다.] [위대한 업적 ‘개밥바라기’를 획득합니다.] [위대한 업적의 효과로 ‘외신의 저주’를 해제합니다.] [[사냥개]가 본모습 [제강]의 모습을 되찾습니다.]메시지가 떠오르는 동시에, 뚝 하고 사냥개의 흉악한 머리가 몸에서 떨어져 버렸다.
“······어?”
내가 놀라서 그대로 굳은 채로 사냥개를 바라보자, 시커멓던 몸은 마치 달군 숯처럼 붉게, 그리고 피막으로 이루어져 있던 날개는 마치 학의 날개처럼 깃털이 자라났다.
무엇보다 머리가 떨어져 나간 곳에선 다시 머리가 자라지 않고 작은 구멍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월! 월월월! 월월월월!”
사냥개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홍익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