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chef of the constellations RAW novel - Chapter 212
212화. 초대 사장님
“할아버지?”
‘연성이네, 아니 정확히는 ‘연성백반’을 세운 1대 사장님, 도수웅.
그러니까 내 할아버지가 흐뭇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래, 할애비다. 그새 내 얼굴을 까먹은 게냐?”
“······그럴 리가요.”
13년 전, 아들이 마력 중독 후유증 탓에 사망한 후, 마력 중독을 치유할 수 있는 레시피를 연구해 [약선구급방]을 남기고 내 할아버지 도수웅은 세상을 떠났다.
아들을 먼저 보내야 했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회한으로 돌아가시기 전의 할아버지는 보기 힘들 정도로 늙고 핼쑥하셨었지.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할아버지는 마치 아버지가 살아계셨을 때처럼 정정하고 건강한 모습이었다.
어머니에게 연성이네 사장 자리를 넘기기 전, 아직 한참 현역으로 요리하고 계셨을 때의 그 모습대로 말이다.
“아니, 할아버지가 여긴 어떻게······.”
나는 반가움과 동시에 당혹스러움에 눈을 껌뻑였다.
이곳은 [판테온] 안에 있는 공간.
성좌는커녕 평범한 인간으로 살다 인간으로 죽은 할아버지가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내가 당황하고 있을 때, 할아버지 뒤에서 또 다른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영동 할머니?”
“호호호, 오랜만이구나, 인간 아이야. 아니, 이제 어엿한 성좌니 나으리라고 불러드려야 하나?”
짓궂은 농을 하는 영동 할매를 보고, 성안(星眼)으로 두 분의 기운을 살피고 나자, 나는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영동 할머니의 권속이었군요?”
“그리되었지. 어릴 때부터 나를 믿어준 이 꼬마를 권속으로 들이지 않으면 누굴 권속으로 들여.”
“아휴, 할머니. 저도 손주가 저렇게 장성한 나이인데 꼬마는······.”
와, 할아버지가 쑥스러워한다.
주방에선 카리스마 있는 주방장으로, 가정에서는 근엄한 가장이었던 할아버지가 마치 8살 어린아이처럼 머리를 긁적이는 모습이라니.
나는 처음 보는 할아버지의 모습과 그걸 흐뭇하게 바라보는 영동 할매의 모습에 놀라면서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그때 머릿속을 스치는 기억이 하나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제가 만든 시루떡이랑 감자밥을 할아버지랑 나눠 드신다고 했었죠?”
“그랬지.”
갑자기 할아버지랑 나눠 먹는다기에 무슨 소린가 했는데, 그때 이미 할아버지가 영동 할매의 권속이었다면 납득이 갔다.
내가 만든 시루떡과 감자밥을 할아버지도 드셨다니.
나는 벅차오르는 마음에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꼭 안아드렸다.
“할아버지, 이렇게 보게 될 줄 몰랐지만, 만나서 정말, 정말 기뻐요.”
“허허, 우리 손주, 이 할애비가 여기서 다 보고 있었단다. 지금까지 잘했어. 잘 해왔어.”
할아버지는 나를 안아주시며 주름진 손으로 내 등을 두드려 주었다.
마치 내가 어릴 적 할아버지 품에 안겨 국밥을 먹었던 때로 돌아간 거 같아서 코끝이 괜히 찡해진다.
“어땠어요, 할아버지? 제 솜씨가?”
“말해 뭐하겠느냐. 누구 손주인데. 허허허.”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내 등을 탕탕 내려치는 할아버지.
나는 전혀 아프지 않았지만, 괜히 아픈 척 엄살을 부리며 같이 웃었다.
“그럼, 조손이 같이 있는 시간을 방해하지 않게 나는 이만 물러가도록 하지. 꼬마야, 도 성좌를 잘 보필하거라.”
“할애비가 손주를 보필하는 일이 어딨습니까! 할애비가 가르치는 거지요. 허허허.”
하긴, 요리 실력만 따지면 난 아직도 할아버지 손맛 따라가려면 멀었지.
당장 정 여사 본인도 할아버지 손맛은 절대 못 따라잡는다고 했으니까.
그런 할아버지가 당신은 권속이고 손자인 나는 신화급 성좌였지만, 그런 것과 상관 없이 나를 가르치겠다는 말에 영동 할매가 피식 웃었다.
“퍽이나. 그럼 애써라.”
“들어가십쇼.”
“들어가세요.”
나와 할아버지는 영동 할매를 배웅한 다음에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그나저나 할아버지, 그럴 땐 다 만들면 된다는 말은 무슨 말이에요?”
“무슨 소리긴. 이것저것 다 만들면 해결되는 일 아니냐.”
할아버지의 조언은 명확하고 간단했다.
이 성좌, 저 성좌 취향에 다 맞추는 어려운 요리를 고민할 게 아니라 그냥 각각 성좌의 취향에 맞는 요리‘들’을 만들어라.
나도 그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 성좌들이 너무 많아요. 그리고 그 많은 요리들을 모든 성좌에게 주기도 어렵고요.”
성좌들의 취향이 정말 전부 다르지는 않을 테니, 18,000가지의 요리를 할 필요는 없겠지.
그보다 적은 수, 예를 들어 100가지 요리를 만든다고 치면 그중 하나쯤은 먹을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100가지 요리를 모든 성좌에게 일일이 나눠주는 건 어려웠다.
그런 내 말에 할아버지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 똘똘하던 내 손주가 이런 팔푼이가 되었을꼬.”
“네?”
“왜 네가 그 많은 요리를 일일이 가져다줄 생각을 하는 게야. 그냥 알아서 가져가게 하면 되는 거지.”
“······아.”
할아버지의 말이 내 뒤통수를 후려쳤고 나는 그 충격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매번 ‘신야식당’ 오픈 키친 바에서 손님의 주문을 받고 그에 맞는 요리를 만들어서 제공한 탓에 이번에도 당연히 모든 성좌에게 그렇게 요리를 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니면 낮 장사를 할 때처럼 품목을 정해놓고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그때 조리해서 내주면 된다고 생각했었고.
그런데 할아버지의 말은 곧,
“뷔페식으로 하라는 거죠?”
100가지 요리를 미리 만들어 놓고 뷔페식으로 진열한 다음
“그렇지. 이 할애비도 처음 ‘연성백반’을 시작할 땐 그리 했단다.”
삼척 촌 동네에서 먹고 살기 위해 무작정 상경한 젊은 시절의 할아버지는 포장마차를 운영하며 돈을 모았다고 한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꿈이었던 가게를 차리기에는 포장마차 벌이가 시원치 않았고 삼천 은행의 주인이었던 천 회장, 즉 국밥 할아버지에게 투자를 받았다.
그 돈을 받아서 처음 차린 가게가 바로,
“함바집이었지.”
“건설 현장에서 밥을 해주는 식당이죠?”
“그래. 그때는 거기가 제일 장사가 잘됐어.”
어딜 가나 건물이 올라가고 있던 서울에서 함바집을 제대로 운영하기만 해도 목돈을 쥘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공사장을 전전하며 함바집을 운영했고 많은 돈과 함께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고 한다.
“공사판에 가면 전국 팔도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모두 모여있지.”
“다들 돈을 벌기 위해서 서울에 올라온 사람들이었군요?”
“그래, 이 할애비처럼 말이다. 그런데 누군 고향이 충청이고 누군 경상, 누군 전라, 누구는 제주도니 서로 입맛이 다 달랐다는 게 문제였다.”
강원도 출신이던 할아버지가 고향식으로 음식을 하면 싱겁다는 항의가 나왔고, 전라도나 경상도 식으로 하면 짜고 자극적이라는 항의가 나왔다고 한다.
“모두가 자기 고향식으로 요리를 해달라고 투덜대니 내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지.”
“다 만들어서 알아서 먹게 하자?”
“그래. 다양하게 만들어서 쌓아놓으면 그중 하나쯤은 입맛에 맞는 게 있겠지.”
일명,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 해봤어.’ 전략.
할아버지는 그 전략에 충실하게 임해서 심지어 김치 하나도 팔도식으로 모두 만들어 제공해 주었다고 한다.
그 결과, 반응은 대호평.
한 곳만이 아니라 주변의 건설 현장 노동자들이, 그리고 동네 사람들마저 소문을 듣고 찾아올 정도로 장사가 잘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렇게 ‘연성백반’을 차릴 종잣돈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그러니 너도 이것저것 다 맞춰줘야 할 때는 그냥 다 만들어 버리려무나.”
“뷔페······, 그러고 보니 뷔페의 기원이 바이킹이라는 이야기도 있죠.”
전설에 따르면 중세 시대, 바이킹들은 자신들이 노략질해 온 음식들을 함께 나누어 먹었다는 풍습에서 뷔페가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아직도 뷔페를 ‘바이킹’이라고 부른다나?
물론 이 이야기가 근거가 없다거나 일본에서 마케팅을 위해 만들어 낸 가짜 전설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최초의 뷔페식 음식 풍습인 스모가스보드(Smörgåsbord)가 바이킹의 후예들이 살고 있는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유래되었다는 것.
“앞으로 외신들과 본격적으로 싸울 전사 성좌들을 위한 식사에는 잘 어울리겠어요.”
내 말에 할아버지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이셨다.
하지만 아직 내 생각에는 그걸로도 조금은 아쉽거든.
“하나 더 추가하죠.”
“어떤 걸 말이냐?”
“용맹한 싸움만으로는 우리의 승리를 확신할 수 없어요.”
나는 아까 보았던 최고신들의 단합이 되지 않는 추잡한 모습들을 떠올렸다.
민주적인 투표로 미야가 신들의 여왕이 되었다지만, 제우스나 오딘, 옥황상제 같은 자들이 진심으로 미야를 따를까?
그들이 이끄는 성계의 성좌들은 당연히 자신들의 최고신을 따를 게 분명하니 지금 상황으로는 힘들었다.
“그러니 지금 필요한 건 화합이에요.”
청나라 시기, 지배 민족인 만주족과 피지배 민족인 한족 사이의 갈등을 봉합하고 화합시키기 위해 강희제가 고안해 낸 방법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만주족과 한족의 요리 중 최고로 진귀한 요리를 모아서 두 민족의 대표들을 모아서 잔치를 벌이는 것.
만주족과 한족의 요리가 모두 모인 잔치, 혹은 만주족과 한족 모두가 자리해서 먹는 음식이라는 의미에서 후대에 이 요리는 만한전석(滿漢全席)이라고 불렸다.
청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황제였던 강희제가 고안한 궁중 요리답게 이 잔치에서는 수십 가지에서 수백 가지의 요리가 3~4일에 걸쳐서 계속 제공되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초호화 궁중 요리.
물론 지금은 문화대혁명으로 그 진위 여부도 가리기 힘들 정도로 근거자료가 남질 않았지만, 서로 갈등의 골이 깊은 두 민족의 화합을 위해 다양한 요리를 모았다는 건 확실했다.
“화합을 위한 요리로 서로 싸우기 바쁜 최고신들을 단결시키겠다는 소리구나.”
“네. 이 전쟁은 서로 힘을 합치면 합칠수록 더 적은 피를 흘리고 끝날 테니까요.”
그리고 저 콧대만 높은 최고신들이 자존심만 내세우면 미야의 짐만 늘어나니까.
이런 걸로라도 도와야지.
“전투를 고무하기 위한 뷔페와 화합을 위한 만한전석이라. 역시 이제 연성이 네가 이 할애비보다 낫구나.”
“다 가르침이 뛰어나서 그렇죠.”
나는 할아버지의 칭찬에 히죽 웃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할아버지가 어머니를 가르치고 내가 어머니에게 배웠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법.
할아버지의 가르침이 좋았기에 내가 이렇게 성좌들의 요리사가 될 수 있었던 거지.
“그럼, 거기에 들어가는 요리는 어떤 걸 할 셈이냐?”
나는 씨익 웃으며 할아버지에게 이번에 만들 요리를 설명했다.
“제가 지금까지 만들었던 모든 요리요.”
성좌들이 모두 모여 성좌 어셈블을 외쳤다면, 나도 모든 요리를 모아서 요리 어셈블을 외쳐야지.
지금까지 내가 만들었던 모든 요리가 한데 모인 도연성 스페셜이 바로 ‘바이킹-만신전석(萬神全席)’이었다.
그리운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