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chef of the constellations RAW novel - Chapter 23
23화. 신들의 경쟁(2)
성경에 등장하는 최초의 살인자, 카인.
토르의 딸이자, 발키리 스루드.
저승의 신이자 그리스 신화의 3대 주신 하데스.
그리고 전령의 신이자 올림포스 12신 중 하나인 헤르메스까지.
이름만 들어도 놀라운 성좌들이 지금 내 식당에 와 있다는 걸 다른 사람들이 알면 어떤 생각을 할까?
그것도 내 요리를 먼저 먹겠다고 다투고 있다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몰라도 나는 일단 한숨부터 나온다.
“다들 진정하시고 이것 좀 드셔보세요.”
할아버지 왈, 사람이 싸우는 이유는 다 위장이 공허하고 머리에 당이 부족해서 그런 것.
즉, 배부르면 사람들은 싸우질 않는다는 것이 우리 할아버지의 지론이었다.
나는 ‘연성이네’ 초대 사장님의 지론을 따라 성좌들의 배부터 채우기 위해 먹을거리를 내왔다.
“오, 이건 뭐야? 처음 보는 음식이네?”
유일하게 이 식당에서 밥을 먹어본 성좌이자, 이 우선 예약권 쟁탈전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는 헤르메스가 가장 먼저 음식에 관심을 가졌다.
“시루떡이라는 음식이에요. 붉은 팥이 부정과 귀신을 내쫓고 복을 불러온다고 해서 이사를 하거나 새로 가게를 냈을 때 주변에 돌리는 음식이죠.”
“떡?”
“쌀로 만든 빵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쫄깃하고 맛있죠.”
내 설명에 흥미가 생겼는지 헤르메스가 냉큼 시루떡을 집어 먹었다.
“오! 맛있어! 역시 여기에 오면 신기한 걸 많이 먹게 된다니까?”
입 한가득 시루떡을 오물대며 희희낙락하는 헤르메스를 보며 나도 피식 웃었다.
어제 만든 시루떡은 영동 할매에게 모두 싸드렸지만, 새로 떡을 찌길 잘했네.
헤르메스가 처음 먹어보는 시루떡의 맛을 극찬하자, 지금까지 으르렁대던 다른 성좌들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신기해! 고소하면서도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데?”
“저승의 존재를 쫓아낸다는 점은 마음에 안 들지만, 맛은 훌륭하군. 페르세포네한테도 가져다주고 싶을 정도야.”
스루드와 하데스에게도 시루떡은 대호평이었다.
맛있게 시루떡을 먹는 그들을 보면서 흐뭇하게 웃고 있을 때, 살짝 실망한 카인의 얼굴이 내 눈에 들어왔다.
“인간 요리사, 저건 내가 먹을 수 없는 것들 아닌가?”
땅에서 자라는 팥과 쌀.
모든 땅에서 거부 받으며 땅에서 자란 농작물을 먹지 못하는 카인에게 시루떡은 만지기만 해도 썩어 부스러질 터.
카인이 먹을 수 없는 것도 당연했다.
“네. 그래서 식물을 드실 수 없는 카인 님께 다른 간식을 준비했습니다.”
나는 시루떡 대신 카인용으로 준비한 전투 산양유로 만든 리코타 치즈를 내밀었다.
치즈는 동물의 젖으로 만든 거니 카인도 문제없이 먹을 수 있겠지.
만들 때 던전 귤의 즙을 조금 넣긴 했지만, 그건 치즈를 엉기게 만드는 용이라 상관없을 터였다.
다행히 카인의 입맛에는 잘 맞는 모양이었다.
“신선하고 부드럽군. 내가 하계에 있을 때 먹던 치즈와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별미야.”
아, 성경에 나온 치즈, 그러니까 ‘엉긴 젖’은 렌넷으로 만든 전통 치즈일 테니 당연히 맛이 다르겠지.
발효를 거쳐 구릿한 냄새와 맛, 꾸덕꾸덕한 식감을 가진 전통 치즈와 달리 리코타 치즈는 숙성이나 발효 없이 먹는 생치즈 종류였으니까.
그렇게 성좌들은 입이 즐거워지자 서로 으르렁대던 걸 멈추고 먹는 것에 집중했다.
“이야, 교섭의 신은 네가 해도 되겠다.”
모두 먹느라 싸우는 걸 잊자 헤르메스가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실실 웃었다.
신은 무슨, 살기 위해 발버둥친 거지.
휴, 어쨌든 다들 싸움을 멈춰서 다행이야.
거기다 시루떡이나 치즈 조각은 돈을 받고 판매하는 게 아니라서 1명의 성좌에게만 팔 수 있다는 조항에 걸리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역시 요리는 모든 문제를 해결해준다니까.
하지만 다시 문제를 끄집어내는 것 역시 요리였다.
“한 조각이 남았군.”
“양보 못 해요.”
“나는 어차피 못 먹는 거, 맘대로들 하던지. 대신 치즈에는 손대지 마.”
하나 남은 시루떡 조각을 두고 스루드와 하데스가 다시 으르렁대기 시작했다.
카인은 그 와중에 시루떡에는 관심 없다는 듯 치즈 그릇을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렇게 마지막 시루떡 조각을 두고 대치가 이어지는 가운데 승자는,
“아무도 안 먹으면 내가 먹지, 뭐.”
“앗! 내 떡!”
“헤르메스, 네 이놈!”
낼름 시루떡을 주워 먹은 헤르메스였다.
눈뜨고 떡을 빼앗긴 하데스와 스루드가 눈에서 불을 내뿜기 시작했지만, 헤르메스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손에 묻은 팥고물을 쪽쪽 빨며 히죽 웃었다.
“그러게 맛난 게 있으면 얼른 드셨어야지.”
“너는 애초에 이 경쟁에 참여할 이유도 없거늘! 왜 여기 온 것이냐!”
“큰아버지, 나도 오고 싶어서 온 게 아니거든요?”
하데스가 미간을 찌푸리며 호통을 치자, 헤르메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제가 분명 갓튜브 영상에 하계인 괴롭히지 말라고 했는데 세 분이 성좌 메시지로 내내 닦달했다면서요? 그걸로도 모자라 이제는 한자리에 강림하기까지. 저도 신고받고 나온 거라구요.”
입으로 삐뽀삐뽀 소리를 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는 헤르메스.
아니, 잠깐, 날 괴롭히면 안 되는 거였어?
그런데도 나한테 그렇게 메시지 폭탄을 날렸던 거야?
내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세 성좌를 바라보자 그들 모두 시선을 돌리며 딴청을 피웠다.
“크흠, 원래는 안 되지만, 우리는 그 전부터 메시지를 주고받았으니까······.”
카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스루드와 하데스.
아니, 마치 심심하면 연락하는 친구 사이인 것처럼 말하지 말아 줄래요?
헤르메스조차도 절레절레 고개를 저을 정도였다.
“아무튼, 이렇게 모였으니 누가 더 먼저 이 식당에서 밥을 먹느냐를 가려보죠. 상업 성좌연합의 일원이자 교섭과 조율의 신인 나 헤르메스가 공평히 판정을 볼 테니까요.”
헤르메스가 심판을 본다는 말에 다른 세 성좌가 납득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교섭의 신이자 여러 권능을 가진 헤르메스니까 믿을 만하겠지.
나는 새삼 이런 어려운 일에 나서주는 헤르메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아싸, 갓튜브 각 나왔네.”
······라고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말이다.
갓튜브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헤르메스도 순수한 마음으로 여기 온 건 아니라는 소리네.
빤히 쳐다보는 내 시선에 헤르메스가 헛기침을 하곤 다시 말을 열었다.
“그럼 어떤 종목으로 우열을 가려볼까요? 역시 싸움?”
“······설마 여기서 세 성좌 분들이 싸우거나 그런 건 아니겠죠?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성좌가 우선 예약권을 얻는 다거나, 그런 거요.”
전설급, 신화급 성좌들이 지구에서 싸운다고?
그런 건 내 쪽에서 사양할래.
가게가 무너지는 건 기본이고 아마 서울이, 아니 대한민국이 끝장나지 않을까.
그런 내 우려에 헤르메스가 피식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에이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 성좌들이 하계에 간섭하는 데엔 한계가 있다고. 그리고 이 정도 되는 성좌들이 설마 그런 것도 몰랐을까······.”
다른 성좌들을 보며 급속도로 말끝이 흐려지는 헤르메스.
카인, 스루드, 하데스는 헤르메스의 말에 괜히 다른 곳을 보며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헤르메스는 그런 성좌들에게 당황해서 외쳤다.
“설마 진짜 그러려고 했어요?”
“큼, 하계에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해결하려고 했지.”
“전투로 승패를 결착 짓는 게 제일 쉬운 방법 아닌가요?”
“어차피 죽은 인간들의 영혼은 다 내 소속이니 그때 잘해주면 되는 거 아니냐.”
아니, 이게 말이야 당나귀야.
인간과는 전혀 사고방식이 다른 성좌들의 대답을 들으며 나는 이마를 짚었다.
이대로 두면 ‘요리로 세계를 멸망시킨 자’ 타이틀을 얻게 될 판이었다.
“하계에서 여러분이 싸우는 순간 인과율이 발동해서 성좌들의 영역 너머 공허로 떨어지고 싶으시다면 그러시던가요.”
‘공허’를 언급하는 헤르메스의 경고에 세 명의 성좌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아쉽네. 전장에서 활약하는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우습군. ‘최초의 살인자’ 앞에서 그런 건방진 말을 해도 되는 건가?”
“살인도 결국, 거대한 죽음의 일부. 너야말로 저승을 다스리는 내 앞에서 건방을 떠는구나.”
“저승의 신은 죽나 안 죽나 한번 시도해 볼까?”
아니, 이 성좌들이?
싸우지 말라니깐 더 난리네.
“안 됩니다. 여기서 싸우시는 분이 계신다면 절대 그분께는 요리해드리는 일 없을 겁니다.”
단호한 내 말에 세 성좌의 얼굴에 아쉬움이 스쳐 지나갔다.
그때 헤르메스가 묘안이 떠올랐다는 듯 밝게 외쳤다.
“그럼 각 성좌가 계약한 헌터들끼리 대리전이라도······.”
“절대 안 됩니다.”
헤르메스의 제안에 다들 떠오르는 헌터들이 있는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지만, 난 다시 못을 박았다.
“제 요리는 손님을 웃게 만드는 음식이지 싸우게 만드는 게 아니에요.”
그 결과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 혼란스러운 표정이 된 세 성좌.
헤르메스 역시 난감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그러면 혹시 원하는 거라도 있어? 서로 승부를 겨뤄서 우열을 가리지 못한다면 네가 내거는 조건을 더 잘 들어주는 성좌가 이기는 걸로 하자.”
“원하는 거라······.”
헤르메스의 말을 듣고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내가 원하는 거?
나는 신화 속에서 신들이 필멸자인 인간들에게 들어주는 소원을 떠올려보았다.
막대한 재물이나 강력한 힘, 아름다운 이성, 혹은 엄청난 지위나 명예 등.
하지만 신화 속에선 하나같이 부작용이 따랐던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마냥 좋다고 선택하기 어려운 것들.
거기다 나는 내 식당을 가지고 요리를 하는 지금의 내 삶에 만족하기도 해서 굳이 저런 대단한 것들을 요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흐음······.”
내가 고민하면서 신음을 흘릴 때마다 우선 예약권이 걸린 성좌들이 침을 꼴깍 삼키며 집중한다.
그렇게 잠시 고민하던 나는 이게 보상이라고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원하는 게 하나 떠오르긴 했다.
“아, 그러면 주방을 오픈 키친으로 바꿔줄 수 있나요?”
조리하는 구역이 손님들한테 개방되고 손님과 요리사가 간단히 대화를 나누면서 식사를 즐길 수 있는 오픈 키친.
사실 전에도 몇 번 생각은 했던 방식인데, 이번에 헤르메스나 영동 할매에게 요리를 해주면서 더 하고 싶어졌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요리를 하는 게 나름 재밌었거든.
다만, 가게를 뜯어고치려면 식당을 한동안 닫아야 하니, 내 요리를 찾아주는 손님들께 미안해서 할 엄두를 못 냈었다.
“흐음, 그러니깐 하루 만에 바꿔 달라는 소리지?”
“네. 내일이 딱 ‘연성이네’의 정기 휴일이니까요. 하루 만에 바꿔주신다면 좋을 거 같습니다. 어려울까요?”
“어렵냐는데요? 포기하실 분 계십니까?”
내가 내건 조건에 헤르메스가 히죽 웃으며 다른 성좌들을 보았다.
헤르메스의 말이 끝나자마자 세 성좌가 능력 자랑을 시작했다.
헤르메스의 말이 그들의 자존심을 건든 모양이었다.
역시 교섭과 조율의 신, 헤르메스.
“나 카인, 도시 ‘에녹’을 건설한 인류 최초의 도시 건설자로서 그 어떤 적이 오더라도 무너지지 않는 식당으로 만들어주지.”
“내게 환심을 사려는 아주 유명한 드워프가 있거든? 인간 요리사, 내게 맡겨. 우리 신화의 드워프는 못 만드는 게 없어!”
“흥, 구식 도시와 탐욕스러운 드워프의 물건보다 인간 명인들이 만드는 게 더 낫지. 내 저승에서 유명한 건축가들의 영혼을 불러와 가게를 모두 바꿔주겠다.”
하데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건축가 명단은 어마어마했다.
미궁을 지은 다이달로스, 아테네 신전을 건설한 페이디아스, 성베드로성당을 지은 미켈란젤로, 귀스타브 에펠, 가우디까지.
“말만 해라. 동향 사람이 좋다면 이 땅의 건축가 김중업이나 김수근을 불러다 주도록 하지.”
아쉽게도 계단식 피라미드의 창시자 임호텝은 이미 성좌가 되어서 자신이 부르질 못한다나?
이 상황을 끌어낸 헤르메스가 뿌듯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어때? 가능하고도 남겠지?”
가능하다마다요.
아니, 오히려 저 양반들이 내 가게를 마개조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내 가게를 뜯어고치는데 진심이 된 성좌들을 보면서 한숨부터 나왔다.
신들의 경쟁(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