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chef of the constellations RAW novel - Chapter 24
24화. 신들의 경쟁(3)
먼저, 카인의 어필.
“그분께 내쫓기고 나는 나를 해하려는 사람들을 피해 ‘놋’이라는 땅에 최초의 도시 ‘에녹’을 짓고 살았지. 축성 기술에 있어서는 날 따라올 사람이 없다.”
거기다 카인의 자식 중에 ‘최초’의 대장장이를 비롯해 여러 직업군이 나왔다고 한다.
“네가 원하는 어떤 시설이라도 만들어줄 수 있지.”
자신만만한 카인의 주장을 공격하는 건 스루드였다.
“지금 주방이 필요하다는 말 못 들었어요? 인간 요리사, 내가 소개해줄 드워프들은 건축뿐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보물들을 만들어 냈어.”
오딘의 궁니르나 스루드의 부친인 토르의 묠니르를 비롯해 각종 특별한 능력을 지니면서도 아름다운 보물들이 모두 드워프들의 작품이라나?
“가끔 인간 요리사를 보니 주방용품에도 애를 먹더라고. 드워프의 손재주라면 마법이 깃든 주방용품을 만들 수 있을 거야.”
오, 이건 솔깃한데?
연금술사들이 쓰는 마정석 화로를 도입한 뒤로 요리가 쉬워졌지만, 동시에 주방용품들이 그 막대한 화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쉽게 망가졌다.
드워프가 만들어주는 요리도구라면 튼튼하고 오래 쓸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스루드의 말에 흥미가 돋는 표정을 짓자, 카인이 다급하게 외쳤다.
“드워프들은 터무니없는 대가를 요구하는 걸로 유명하지. 무슨 요구를 할 줄 알고! 쉽게 받아들여선 안 된다.”
“대가는 당연히 제가 부담할 거거든요? 발키리들이랑 소개팅시켜준다고 하면······.”
다시 으르렁대는 스루드와 카인.
하데스는 그런 둘을 보며 혀를 찼다.
“성좌의 관점에서밖에 보지 못하고 있군. 현실적으로 생각해라. 인간의 식당은 인간이 고쳐야지. 저승에서 부른 건축가들이야말로 이 일에 가장 적격이다.”
하데스의 지적에 이번엔 발끈한 스루드와 카인이 나서서 그의 주장을 반박했다.
“현실적이라고? 죄다 죽어서 육체도 없는 영혼들이 어떻게 현실에서 집을 짓는다는 거지?”
“맞아요. 그리고 몇몇은 그리스 저승에 있는 영혼들도 아니잖아요.”
그러자 자신이 그 정도도 예상하지 못했겠냐면서 코웃음을 치는 하데스.
“일꾼이야 현실 지구의 인간을 돈으로 사면 되고, 저승의 신들끼리는 다 상부상조하기로 약속이 되어있다.”
들으면 들을수록 정말 가관이었다.
겨우 주방 하나 고치는 일인데 이대로 놔두다간 서로 자기 자랑하느라 밤이 샐 판국이었다.
나는 헤르메스에게 SOS 신호를 보냈다.
‘어떻게든 해 봐요.’
‘기다려. 내가 딱 해결해줄게.’
내 눈치를 받은 헤르메스는 자신만 믿으라는 듯 씨익 웃은 다음 앞으로 나섰다.
“모두가 서로 주방을 고치겠다고 하지만, 주방을 계속 뜯어고칠 수는 없는 노릇이죠? 그러면 이렇게 합시다.”
“어떻게 하자는 거지?”
하데스의 물음에 헤르메스가 양손을 펼쳐 식당 전체를 가리켰다.
“주방만 고칠 게 아니라 여길 전부 뜯어고치죠. 세 분이 나눠서 하면 딱이겠네요.”
“그거 좋군.”
“저도 찬성이에요.”
“동시에 솜씨를 겨루면 승부 내기도 쉽겠군.”
“자, 잠시만요!”
아니,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야?
주방만 고쳐달라니까, 갑자기 왜 식당을 통째로 고치겠다는 이야기가 된 거지?
말리라니까 왜 일을 더 부추겨!
내가 황당하다는 듯 헤르메스를 보자, 그는 눈을 찡긋거리며 입을 열었다.
“너에게도 나쁜 일은 아닐 거야. 사실 여긴 성좌들이 있기에 좋은 곳은 아니거든. 업그레이드가 좀 필요해.”
업그레이드?
의아해하는 내 얼굴을 보고 헤르메스가 황급히 덧붙였다.
“아, 오해하지는 마. 인테리어나 시설이 불편하다는 건 아니니까. 다만, 우리가 머물기엔 ‘격’이 좀 부족하다는 거지. 아무래도 네 요리랑 달리 이 가게는 전부 마력이 없는 것들로 만들어졌잖아?”
성좌들이란 요리도 마력이 들어간 재료로만 만들어진 걸 먹는 존재들이었다.
그런 성좌들에게 평범한 인간의 건물인 ‘연성이네’는 오래 있기엔 불편하고 거슬리는 장소라는 게 헤르메스의 설명이었다.
······대충 아무것도 없는 집에서 신문지만 깔아놓고 짜장면을 먹는 느낌이려나?
“그것보단 수수깡으로 만든 집에서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불안함을 안고 밥을 먹는 느낌에 가깝지. 실제로 우리가 조금만 실수해도 여긴 가루가 될 테니까.”
신야식당 스킬의 힘으로 식사 외의 신력 행사는 있을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안한 건 마찬가지라고 한다.
손님이 안심하고 밥을 먹을 수 없다면 식당 개조에 관한 것도 납득이 가네.
밥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먹어야 제일 맛있으니까.
헤르메스는 거기다 한마디 더 덧붙였다.
“거기다 지금이야 성좌 한 명씩 밖에 못 오지만, 앞으로 좌석이 늘어나면 두 명 이상씩 올 수도 있잖아? 예를 들면 연인이라든가······.”
커플끼리 왔는데 식당이 부실해 보이면 데이트가 실패한다는 소린가.
나는 물끄러미 헤르메스를 바라보다 불쑥 물었다.
“데리고 오고 싶은 분이라도 계신가 보네요?”
“하하, 쪼끔?”
“······.”
쪼끔 이라고 표현하는 걸 보니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인가 보네.
그러고 보니 신화에 따르면 아레스랑 헤르메스가 제우스 아들답게 여기저기 연인이 많다는 이야기가 있었지.
미청년 혹은 미소년이라는 이미지랑 다르게 다산의 신이기도 했으니까.
괜히 울컥하지만,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아무튼, 식당을 고치는 거에는 동의하는 거지?”
“네. 하지만 주방을 제외한 가게 내부의 모습은 지금 그대로 유지했으면 합니다.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오던 거라 그대로 가져가고 싶거든요.”
새로운 손님인 성좌들을 위한 것도 좋지만, 기존 고객들을 실망시킬 수는 없지.
성좌들이 내 조건을 받아들인 뒤에는 구획 분배가 시작되었다.
“카인은 도시를 짓는데 특화되었으니 가게의 외벽을 고쳐주시고.”
“그러도록 하지.”
“스루드는 손재주 좋은 드워프들이 있으니 여러 집기가 있는 주방을 담당해주시죠?”
“맡겨만 주세요.”
“큰아버지는, 주방을 제외한 가게 내부를 바꾸는 게 좋겠네요. 있는 그대로를 유지하면서 격을 올리는 게 어렵겠지만요.”
“어려운 대신 제대로 성공시키면 내게 가산점이 더 있겠지? 오히려 좋다.”
역시 조율의 신답게 깔끔하게 파트를 분배하는 헤르메스.
그렇게 모든 성좌가 동의하고 일이 마무리될 때쯤엔 이미 시간이 자정을 넘긴 뒤였다.
시간을 힐끔 확인한 헤르메스는 올라가라며 내 등을 떠밀었다.
“자, 지금부터는 세 성좌한테 맡기고 너는 잠이나 자도록.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은 들어와서 볼 생각 말고.”
그러면서 헤르메스는 다시 작게 덧붙였다.
“네가 없어야 성좌들끼리 싸우는 갓튜브 각이 나오거든.”
“······알겠습니다.”
갓튜브인지 뭔지는 못 들은 걸로 하자.
그나저나 정말 믿고 맡겨도 되겠지?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식당을 성좌들에게 맡기고 2층 내 집으로 올라갔다.
* * *
다음 날 아침.
공사한다는 것치고는 밤새 아래층이 몹시 조용했다.
물론 성좌들이 나선 거니 소음이 안 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영 불안하단 말이지.
공사가 잘 되고 있나 들여다보고 싶었지만, 간밤에 헤르메스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신화 보면 알지? 보지 말라는 거 보면 아주 뭐 되는 거야. 그러니 관심 뚝 끄고 내일 이 시간까지 기다려.’
신화 속 인물들처럼 호기심을 못 이겨 석상이 되거나 짐승으로 변하고 싶진 않았기에 식당을 보고 싶은 마음을 애써 참아 눌렀다.
“내가 식당 주인인데, 뭔가 억울하네.”
그래도 오늘 저녁까지만 참으면 되니까.
여하튼 간단하게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2층이 내 집이라지만, 식당과 바로 연결되지 않고 외부로 계단이 연결된 구조라서 공사 현장을 보지 않고 내려올 수 있었다.
창문으로 살짝 엿볼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걸 막기 위함인지 검은 천으로 가게 창문이 모두 막혀 있었다.
“역시 보면 안 되겠지?”
아쉬운 마음에 내가 창문 근처에서 서성이고 있을 때였다.
“뭐냐, 인간 애송이! 거슬리게 하지 말고 얼른 떠나!”
가게 안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지금 식당 안에 누가 있는 거야?
“누, 누구세요?”
“누구긴! 나는 니다벨리르에서 온 드워프 알비스다! 팔자에도 없는 주방 개조를 위해서 왔지. 짜증나니까 얼른 꺼져!”
진짜 드워프가 왔구나.
내가 놀라서 입을 벌리고 있을 때였다.
“혹시라도 안을 엿보거나 문을 열 생각하지 마! 그랬다간 주방이고 뭐고 다 박살낼 거야!”
아니, 스루드님. 저런 사람, 아니 드워프들한테 수리를 맡겨도 되는 겁니까?
내가 혀를 내두르며 가게에서 멀어질 때, 이번엔 낯빛이 파리한 미청년이 나에게 다가왔다.
“당신이 이 식당의 주인이군요.”
오늘은 정기 휴일이라서 손님이 올 일은 없을 텐데 가게 주변에 있는 생전 처음 보는 얼굴이라.
나는 살짝 경계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
“누구시죠?”
“저는 카인 님의 권속이자 아들인 에녹이라고 합니다. 최초의 흡혈귀죠.”
“아, 그러시구······, 네?”
지금 내가 뭘 들은 거지? 최초의 흡혈귀라고?
당황하는 나를 보며 에녹은 놀랄 줄 알았다며 어깨를 으쓱였다.
“흔한 이야기지 않습니까. 카인의 후예는 괴물의 시초라고. 그 이야기대로 저는 흡혈귀들의 시초인 진조(真祖)입니다.”
“그, 그렇군요.”
나도 그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긴 한데, 내가 진짜 만날 줄은 몰랐지.
그것도 흡혈귀의 시초나 되는 사람, 아니 권속을 말이야.
“사실 사장님을 만나면 불만이라도 털어놓으려고 이렇게 말을 걸어봤습니다.”
“네?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요?”
내 물음에 에녹은 힘없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진조라 햇빛 아래서도 활동은 가능하지만, 이렇게 대낮부터 일하는 건 저라도 좀 힘들거든요.”
“그, 그러시겠죠? 흡혈귀니까?”
“그런데 아버지가 다른 성좌한테 질 수 없다면서 억지로 끌고 온 참입니다. 참, 누구 때문인지. 하하하.”
아니, 그렇게 힘 빠진 얼굴로 억지로 웃으면 내가 잘못한 거 같잖아요.
잘못은 댁네 아버지가 했는데.
······라고 말은 못 하고 난처하게 웃고 있자, 에녹도 쓰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도 저는 그나마 나은 편입니다. 저 니다벨리르의 드워프들은 햇볕을 받으면 돌이 된다나. 그래서 가게 안에서 차양막을 쳐놓고 일해야 한다는군요. 후우, 대체 그 우선 예약권이 뭔지.”
“······하하하.”
햇빛을 받으면 돌이 되다니.
그래서 아까 드워프가 그렇게 문을 열지 말라고 한 거였구나.
그나저나 뭔가 일이 점점 커지는데.
내 식당에서 밥 한번 먹는 게 이렇게 큰 문제가 될 일이었나?
“그냥 그렇다는 겁니다. 그럼 저는 가서 성벽, 아니 담장을 쌓아야 해서 이만······.”
강렬한 햇빛 아래 비틀거리며 다시 일하러 가려하는 에녹의 뒷모습이 참 안쓰러워 보였다.
원망하려면 한낱 식당 주인인 나 말고 고기에서 풀 맛이 나길 원하는 아버님을 원망하세요.
그래도 우리 식당을 위해 저렇게 고생하는데 뭐 맛있는 거라도 만들어줘야 하나? 새참 같은 거라던가.
“잠시만요, 에녹 씨!”
“네? 무슨 일이시죠?”
내가 불러서 세우자 에녹이 무슨 일이냐는 듯 힘빠진 얼굴로 날 보았다.
“빨리 말해주시면 감사하겠네요. 햇빛 아래 오래 있으면 기분이 별로라서······.”
“아, 네. 혹시 어떤 음식을 좋아하십니까?”
“피요.”
“······.”
아, 그렇지. 흡혈귀라고 했지. 그것도 흡혈귀의 시조, 진조.
그럼 당연히 피를 좋아하겠네.
그러면 선짓국을 해줘야 하나?
내가 잠시 당황해하자, 에녹이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정확히는 혈액을 기반으로 하는 체액을 먹는다고 해야겠군요. 그래봤자 피 아니면 우유지만요.”
“······.”
“그래도 다른 걸 못 먹는 건 아닙니다. 아버지랑 다르게 식물도 잘 먹습니다. 다만, 이걸 먹지 않으면 그, 성격이 좀 흉악해집니다.”
에녹은 그렇게 말하고는 품속에서 종이 우유 팩을 꺼내 빨대를 꽂고 쪼옥 빨면서 떠났다.
일단 유제품도 된다는 거지?
나는 에녹의 입맛 취향을 메모한 뒤, 다시 가게로 향했다.
“뭐야! 오지 말라고 했잖아!”
그러자 다시 울려 퍼지는 드워프 알비스의 카랑카랑한 목소리.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물었다.
“뭐 하나만 물어볼게요, 혹시 좋아하는 음식이 있나요?”
“음식? 당연히 술이지!”
아, 이런. 술은 지금 준비되는 게 없는데.
내가 술 말고 다른 건 없냐고 묻자, 잠시 고민하던 알비스가 다시 대답했다.
“과일도 좋고 견과류도 좋지만, 버섯이다! 향기 좋은 버섯은 그야말로 신들의 진미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지!”
“오케이, 버섯이란 말이죠?”
뭔가 고기를 뜯을 것 같은 이미지였는데 의외로 채식에 가까운 식성이네.
그래도 조사한 덕분에 일꾼들에게 만들어줄 새참 메뉴가 막 떠오른 참이었다.
“우유 버섯 리조또.”
고소하고 진한 우유와 감칠맛 나는 버섯의 풍미, 그리고 부드러운 쌀까지.
모두가 좋아하는 메뉴일 테니까.
산양유 버섯 리조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