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chef of the constellations RAW novel - Chapter 27
27화. 던전에 가면
– 오늘 약초상에서 만나 이야기해요. 저번에는 내가 갔으니깐, 공평하죠?
녹옥의 연금술사, 채하나와의 약속.
나에겐 약초상 주인이 더 익숙한 직함이었지만 말이야.
그나저나 그냥 만나서 이야기하는 데 공평하고 안 하고 할 게 있나?
어찌 됐든 나는 채하나의 약초상이 있는 광장 헌터 마켓으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서 예상치 못한 인물을 만나야 했다.
“사장님, 여기서 뵙네요.”
“그······ 헌터분?”
“네, 윤진하라고 합니다.”
못마땅한 표정으로 입을 삐죽 내밀고 있는 채하나와 그 옆에서 활짝 웃고 있는 여성 헌터, 윤진하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윤진하라면 그 발키리?
“혹시 삼천 길드의 발키리 윤진하 헌터?”
“맞아요. 그게 접니다.”
쑥스러운 표정으로 코를 긁적이는 윤진하.
아니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 내 식당에 밥을 먹으러 세 번이나 도전했단 말이야?
이제야 깨달은 사실에 경악하고 있는 내게 윤진하가 긴장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도 함께 가고 싶습니다. 해상 던전!”
거기다 나랑 던전을 같이 가겠다니.
이것 참 어제부터 놀랄 일만 가득······.
“잠깐만요, 해상 던전이라뇨?”
놀라서 채하나를 보니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아무래도 내가 가야 할 던전은 바다가 있는 해상 던전인 모양이었다.
나, 참치잡이 배 타는 거 아니지?
* * *
“도착했네요. 덕분에 편하게 왔어요. 감사해요, 윤진하 헌터.”
“별말씀을요, 녹옥의 연금술사님.”
“······.”
정신을 차려보니 대부도 근방의 서해안에 도착해 있었다.
갑자기 나타나 합류하게 된 윤진하가 삼천 길드의 헌터 전용 차량까지 빌려준 덕분에 게이트 사태 이후 엉망진창이 된 외곽도로도 안전하고 빠르게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내 생에 첫 던전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와, 저게 던전 게이트구나.”
서해와 콘크리트 방파제 사이로 녹색과 파란색의 기운이 마치 태풍을 위에서 본 것처럼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녹색은 고급, 파란색은 희귀급.
즉, 이 던전은 고급과 희귀급 사이의 던전이므로 E~D급 사이의 던전이라는 소리였다.
······라고 윤진하가 설명해줬다.
“정보에 의하면 처음 던전 발생 때는 C급이었다는데 공략을 꽤 여러 번 한 모양이네요.”
“그러면 등급이 낮아지나요?”
“네. 보스 몬스터를 잡고 내부의 몬스터를 주기적으로 토벌하면 던전의 등급이 낮아지거든요.”
오로지 각성자만이 게이트 안으로 들어갈 수 있고 저 안에서 나오는 몬스터들과 보스를 모두 처리한 뒤, 게이트석을 파괴하면 사라진다.
대신, 게이트석을 파괴하지 않고 방치해두면 게이트 석이 자신의 마력을 소모해 새로운 몬스터를 발생시킨다.
그렇게 몬스터 토벌을 몇 번 하다 보면 던전의 등급이 낮아지는 것이었다.
“주로 던전 안에 쓸만한 재료가 있을 때 쓰는 방법이죠. 저는 전투형 헌터라서 잘은 모르지만······.”
윤진하가 슬쩍 채하나를 보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맞아요. 여기에 있는 해초를 연구하려고 작업을 해뒀어요.”
채하나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자신의 무기를 챙긴 뒤 던전 게이트로 향했다.
잠깐, 저거 석궁이지?
팔목에 거치하는 타입의 석궁이 그녀의 오른팔 위에서 빛을 내고 있었다.
역시 작고 연약해 보여도 헌터는 헌터구나.
윤진하는 삼천 길드의 에이스 헌터답게 커다란 전투 외날 도끼와 날렵해 보이는 가죽 갑옷, 그리고 이런저런 헌터 장비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내가 들고 온 건 달랑 돌칼 하나.
“······.”
물론 [최초의 검]이 전설급 아이템에 일정 확률로 즉사 효과가 있다지만, 내가 이걸 쓸 수나 있을까?
내게 있어 칼질은 재료 손질용이라고.
“걱정하지 마세요. 사장님은 제가 지켜드릴 테니까.”
“감사합니다.”
그렇게 살짝 시무룩해 있는 나를 윤진하가 자신만 믿으라며 위로해주었다.
나는 감사 인사를 하면서도 그간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그런데 윤진하 헌터님은,”
“윤진하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아, 네. 진하 씨는 왜 함께 가시는 건가요? 진하 씨도 재료 연구에 관심이 있으세요?”
나야 채하나에게 재료나 마정석 화로로 빚진 게 있으니 빚을 갚으려 한 번쯤은 와야 했지만, 윤진하가 여기에 온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보아하니 채하나랑 아는 사이도 아닌 것 같던데.
그런 내 물음에 윤진하가 난처한 웃음을 지으며 볼을 긁적거렸다.
“사실 삼천 길드에서 녹옥의 연금술사랑 접점을 만들라고 해서요. 은채, 고것이 얼마나 성화를 부리던지.”
“아, 그렇군요.”
내 생각보다 채하나가 유명한 연금술사인 모양이었다.
대한민국에서 1, 2위를 다투는 삼천 길드에서 이렇게까지 나오는 걸 보면 말이야.
“그것 말고도 이유가 하나 더 있긴 합니다만······.”
윤진하는 이것저것 체크하며 게이트 입장 준비를 하는 채하나를 슬쩍 보더니 내게 속삭였다.
“사장님께 꼭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제게요?”
뭐지?
곧 S급을 노리는 윤진하가 내게 물어볼 게 뭐가 있다는 거지?
아, 그러고 보니 우리 식당 요리를 좋아했지.
레시피나 맛의 비결 같은 걸 물어보려나?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 윤진하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건 조금 더 확신이 들면 그때 여쭤보겠습니다.”
“아, 네.”
뭔가 비장해 보였는데, 결론은 싱겁게 끝났다.
그리고 그사이 던전 진입 준비도 끝나있었다.
“들어가죠.”
채하나와 윤진하, 그리고 나까지 세 명은 던전 게이트로 진입했다.
음? 방금 살짝 노란색 기운을 본 것 같은데.
착각인가?
* * *
[D급 던전, ‘남국의 해안’ 던전에 진입합니다.]갯벌과 방파제, 그리고 살짝 탁한 서해 바닷물과 달리 게이트 안은 햇살이 쨍하게 내리쬐는 남국의 해안 풍경이었다.
눈처럼 새하얀 백사장과 당장이라도 코코넛을 떨어뜨릴 것 같은 야자수들이 눈에 띄었다.
내가 주변 풍경에 신기해하고 있을 때, 윤진하는 전혀 다른 점에서 놀라고 있었다.
“마력이 이렇게나 짙다니. 여기가 D급 던전이라고는 안 믿길 정돈데요?”
“그래서 약초들이 잘 자라죠.”
던전 안에 퍼져있는 마력의 농도에 윤진하가 혀를 내둘렀다.
채하나도 그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가 마력이 높은 편인가요?”
“네. 마력 농도만 두고 보면 A급 던전이랑 비슷할 정도네요. S급 이상 던전에 가면 해독 필터가 달린 마스크가 필수입니다.”
답답한 마스크를 끼고 격렬한 전투를 벌여야 하는 게 고역이라며 윤진하가 쓴웃음을 지었다.
“혹시 마력 중독 현상이 오면 말씀해주세요. 중화 포션을 나눠드릴게요.”
채하나도 이 던전의 마력이 높기 때문에 마력 중화 포션을 따로 제작해왔다고 했다.
마력이 그렇게 높은가? 내가 보기엔 ‘연성이네’ 주방이랑 그렇게 큰 차이가 없는데.
의아해하던 나는 곧 왜 내가 이 정도 마력에도 아무렇지도 않은지 깨달을 수 있었다.
“연성이네 주방이 과하게 높은 거였네.”
성좌들에게 요리를 해줄 때 쓰는 재료는 모두 마력을 잔뜩 품은 던전산 재료들.
그걸 마정석 화로의 불로 가열하고 마력수를 끓여 요리하니 주방에 마력이 안 퍼질래야 안 퍼질 수가 없었다.
요리를 끝내고 나면 내 몸은 물론이고 항상 주방에 넘치는 마력을 태워야 할 정도로.
[마나 번]이 있어서 다행이었네.“이쪽이에요.”
“와.”
나도 모르게 감탄이 터졌다.
채하나의 안내를 받아 백사장을 걸어 우리가 도착한 곳은 에메랄드빛 투명한 바다였다.
지금 던전에 들어와 있기에 당연히 방심하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네.
‘남국의 해안’ 던전은 연준이가 태어나기 전, 그러니까 내가 7살 때 부모님이랑 같이 놀러 갔었던 보라카이가 생각나는 풍경이었다.
이렇게 멋진 풍경을 보니 마치 휴가를 온 느낌까지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나, 식당 물려받고 10년이 넘도록 휴가 한 번 못 갔구나.
게이트 사태 이후로는 해외로 나가기가 힘들어졌기에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국적인 풍경에 나도 모르게 들뜨는 걸 느꼈다.
하지만 휴가 같던 풍경이 바뀌는 건 순식간이었다.
“퀴에엑!”
손에 물갈퀴가 달리고 피부에 푸른색 비늘이 달린 고블린 무리가 야자수 사이에서 튀어나왔다.
“해안 고블린 출현! F급이지만, 방심하지 마세요.”
윤진하가 저 고블린들이 해안 고블린이라고 불리는 아종임을 알려주었다.
처음 보는 몬스터를 보고 내가 놀라 뒷걸음친 것과 달리, 던전에 익숙한 둘은 재빨리 행동에 나섰다.
“먼저 공격할게요.”
연금술사지만, 헌터 타입은 원거리 딜러인 채하나가 팔에 장착된 석궁에 재빨리 볼트를 걸었다.
자세히 보니 화살촉에 작고 투명한 유리 앰플이 삽입되어 있었고 그 안에는 노란색의 액체가 찰랑대고 있었다.
“[앰플 사격 : 마비]”
쐐애액! 퍽!
채하나가 쏘아낸 볼트가 제일 먼저 달려오는 고블린의 바로 땅 앞에 떨어졌다.
처음에는 빗나간 건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앰플이 깨지면서 노란색 가스가 피어올라 고블린 무리를 덮쳤다.
“퀘에엑?”
“퀘엑! 퀙!”
곧바로 목을 부여잡으면서 몸을 부르르 떠는 고블린들.
그러곤 마비가 됐는지 차례차례 그 자리에 굳어 쓰러지기 시작했다.
“마무리는 제가 하죠.”
가스가 바람에 날려 사라지자 전투 외날 도끼, 그러니까 데인 엑스를 들고 있던 윤진하가 고블린 무리에게 달려가서 가차 없이 목숨을 끊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전투가 끝났다.
“와, 이게 헌터들의 전투구나. 대단하네요.”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 것 같은 전투를 보며 감탄을 내뱉자, 옆에서 채하나가 입꼬리를 올렸다.
“저 노란 가스, 연성 씨 덕분에 만들 수 있었던 거예요. 독가시풀 기억나요?”
“아, 마비 효과가 있던 풀 말이죠?”
식용으로는 부적합해서 맛만 보고 바로 버렸던 약초였다.
채하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독가시풀 즙에 마비 효과가 있다는 건 알았는데, 연성 씨가 분석해준 바에 따르면 조금만 충격을 가해도 가스가 피어오른다고 적혀 있었죠.”
“네. 그랬던 걸로 기억합니다.”
내 대답에 채하나가 눈을 반짝이며 나를 보았다.
“놀라웠어요. 어떤 연금술사도 밝혀내지 못한 성질이었거든요. 그 성질을 이용해 다른 약물과 배합해 가스탄으로 만들어봤어요.”
“그게 더 대단한데요?”
내가 독가시풀을 섭취했을 때 요리사 클래스의 스킬 [재료 분석]으로 떠오른 정보는 [마비] 효과가 있다는 것과,
[섭취 시 복부에 가스 팽만이 일어납니다. 식용으로 부적합합니다.]라는 것뿐이었는데 말이지.
그 정보를 가지고 마비 가스탄을 만들었다는 게 더 대단했다.
“마비 효과를 증폭시키는 다른 마비 약초를 섞었어요. 그 외에도 마비 효과를 중화시키고 다른 효과를 가진 약초를 넣으면 다양한 가스탄으로도 활용할 수 있어요.”
내가 칭찬을 하자 기쁜 모양인지 채하나가 살짝 상기된 얼굴로 이것저것 떠들기 시작했다.
그걸 듣다 보니 나에게도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음, 가스가 잘 일어난다니. 독성을 빼고 탄산수를 만들 수 있으려나? 아니면 질소 가스처럼 응용해서 분자 요리에 써 봐?”
“네?”
“큼, 아무것도 아닙니다.”
누구는 같은 약초를 두고 가스탄을 만드는데 나는 탄산수를 만들 생각을 하고 있다니.
어쩔 수 없잖아. 나는 요리사인데.
내게 모든 재료는 요리로 귀결된다고.
“여기에요.”
상황을 정리하고 우리는 다시 채하나의 안내를 따라 해안가를 걸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채하나는 야자수 밑에 놓아뒀던 상자를 하나를 꺼내 내용물을 체크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던전 안에서는 상태가 괜찮네요.”
그리고 그 상자를 내게 가져왔다.
“전에 왔을 때 챙겨뒀던 약초에요. 던전 밖으로 나가면 바로 상해버려서 여기 보관하고 있었죠.”
“이게 제가 분석할 재료라는 거죠?”
나는 채하나에게 상자를 건네받고 그 내용물을 살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지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거 미역이잖아?”
채하나가 내게 분석을 요청한 재료는 바로 데쳐서 쌈으로도 해 먹고 끓여서 국으로도 먹고 양념에 무쳐 반찬으로도 먹는 국민 해초 미역이었다.
‘연성이네 신야식당’ 메뉴에 미역국을 추가해도 되겠는데?
나는 서둘러 채하나에게 물었다.
“이거 더 없나요?”
“일단 해안가에 가면 파도에 밀려온 게 종종 있······.”
“다녀올게요!”
“자, 잠깐만요!”
미역으로 요리할 생각에 내가 신이 나서 해안으로 달려갈 때였다.
“위험해요! 바다 쪽은 아직 몬스터가······.”
촤아아악!
내가 백사장에 발을 내딛는 순간, 바다 근처로 다가온 나를 발견한 건지, 바닷속에서 거대한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허엉!”
어두운 회색을 띠는 매끈하고 두꺼운 가죽, 강철을 구부려 만든 것 같이 사납게 사방으로 뻗친 수염, 그리고 코끼리의 상아만큼 흉악하게 뻗어있는 엄니.
신장이 5m는 넘어 보이는 거대한 바다코끼리를 닮은 몬스터였다.
“셀키! C급 해양 몬스터가 왜 D급 던전에?”
“사장님, 뒤로 물러서요!”
채하나의 경악성과 함께 윤진하가 데인 액스를 든 채로 나를 지키기 위해 재빠르게 달려왔다.
그도 그럴 것이 셀키라는 저 거대한 바다코끼리가 당장이라도 엄니로 나를 내려찍으려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하지만 두 사람의 우려와 달리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바닷바람의 가호’가 발동합니다.] [해양 몬스터 셀키가 바다와 관련된 성좌의 힘을 알아봅니다.] [셀키가 당신에게 고개를 조아려 경의를 표합니다.]영동 할매가 준 가호 덕분에 공격받을 일이 없었거든.
괜히 허겁지겁 달려온 윤진하와 멀리서 석궁을 쏠 준비를 하고 있던 채하나만 벙찐 얼굴이 되었다.
“사, 사장님, 어떻게 하신 건가요?”
“연성 씨, 몬스터를 지배할 수 있는 거예요?”
“아뇨, 지배는 아닌데······.”
“꾸엉!”
내가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바다코끼리 셀키는 몸을 발라당 까뒤집으며 내게 배를 내보였다.
마치 쓰다듬어달라는 듯 물갈퀴로 배를 찹찹 두드리기까지.
아니, 내가 네 주인도 아닌데 왜 그러니······?
“대단해······.”
“보통 분이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덕분에 오해를 단단히 한 채하나와 윤진하의 눈빛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아니, 이거 내 능력 아닌데, 허, 허허.
“꾸엉! 꾸엉!”
내 속도 모르는 셀키의 귀여운 울음소리만 울려 퍼졌다.
던전주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