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chef of the constellations RAW novel - Chapter 29
29화. 가장 독한 걸로 줘
스으윽, 소음 하나 없이 부드럽게 삼천 길드의 자동차가 ‘연성이네’ 앞에 멈췄다.
“여기까지 태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수석에 앉아있던 도연성이 밝은 표정으로 여기까지 운전해 준 윤진하에게 인사했다.
원래는 삼천 길드의 직원이 운전하기로 되어있었지만, 채하나가 연구를 더 하고 싶다며 던전에 남아있었기에 윤진하는 직원을 던전 앞에 대기시켜두었다.
‘언니, 꼭 녹옥의 연금술사랑 인연을 만들어야 해!’
자신에게 신신당부했던 천은채의 말을 생각하면 그녀가 남고 길드 직원에게 도연성을 태우고 오게 하는 게 맞겠지만. 윤진하는 일부러 반대로 했다.
도연성이 만든 보쌈 수육이 자신이 성좌에게서 받은 전설급 퀘스트 보상, 제림니르-플레스케스텍과 어째서 맛이 비슷한지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아직 못 물어봤어······.’
서해에서 서울까지 오는 와중에 결국 입을 떼지 못한 윤진하였다.
‘던전에서 몬스터를 길들인다거나 마력이 깃든 약초를 아무렇지도 않게 먹던 걸 보면 분명히 이 사람한테 뭐가 있는 게 분명한데.’
함께한 던전에서 그의 비범한 모습을 몇 번이고 목격한 윤진하는 도연성이 자신이 먹은 요리와 관련이 있다는 걸 조금 더 확신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입이 안 떨어졌다.
전투에만 들어가면 저돌적으로 몬스터들을 다진 고기로 만들어버리는 그녀답지 않은 일이었다.
‘내가 왜 이러지?’
물어보려 용기를 내려고 하다가도 뭔가 그래선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입이 저절로 닫히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주저하다 보니 어느새 가게 앞, 도연성을 내려줘야 할 시간이었다.
“그럼 전 여기서 내리겠습니다. 다음에 오시면 줄 안 서고 식사하게 해드릴게요. 지인 찬스로.”
“······감사합니다.”
자신의 속도 모르고 해맑게 웃는 도연성을 보니 윤진하는 속이 끓었다.
‘그가 떠나기 전에 물어야 해!’
결심을 굳힌 윤진하가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이번에도 불안한 기분이 엄습해서 그녀는 저도 모르게 다른 말을 꺼냈다.
“······저기, 사장님. 그거 무거울 텐데 제가 들어드릴까요?”
윤진하가 가리킨 건 도연성이 트렁크에서 꺼낸 내용물이 가득 찬 아이스박스.
언뜻 보기에도 보통 무게가 아닌 것이 차에서 꺼내자마자 차가 들썩일 정도였다.
각성자라지만 비전투계인 도연성이 들기엔 조금 힘들 터.
하고 싶은 말을 직접적으로 하진 못했지만, 조금이라도 더 함께해서 기회를 엿보려고 꺼낸 윤진하의 마지막 한 수였다.
하지만 그 한 수는 눈치 없이 해맑은 도연성의 대답으로 산산이 깨져나갔다.
“아, 괜찮습니다. 저 나름 힘세거든요.”
안을 가득 채운 아이스박스의 무게가 30kg은 거뜬히 넘을 텐데, 도연성은 아무렇지도 않게 한 팔로 그걸 들고 있었다.
‘뭐, 뭐야, 원래 힘이 저렇게 좋았나?’
식당에 도착했기 때문에 ‘전장의 축복’이 발현되어 도연성의 힘이 늘어났다는 걸 모르는 윤진하가 살짝 놀랄 정도였다.
“그러면 조심히 들어가세요!”
“······네. 즐거웠습니다.”
“저도요!”
끝까지 눈치 없이 해맑은 웃음을 남기고 도연성은 가게로 쏙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남은 윤진하는 한숨을 푹 내쉬며 핸들에 머리를 박았다.
“멍청아, 왜 물어보질 못하니. 성좌 대신 요리한 적 있냐고 묻는 게 그렇게 어려워?”
천은채가 윤진하의 이런 모습을 봤다면, ‘저 언니가 던전만 도느라고 남자를 못 만나봐서 그래. 에휴.’라고 혀를 찼을 터.
결국, 윤진하의 의문은 다음을 기약하게 되었다.
* * *
“생각보다 빨리 돌아와서 다행이다.”
나는 포근한 내 집, 내 식당의 주방으로 들어서며 씨익 웃었다.
동생놈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떤 던전은 최소 일주일, 길면 보름 이상 동안 공략을 진행한다던데, 나는 하루도 아니고 반나절 만에 돌아올 수 있었다.
공략이 아니라 약초만 확인하고 오는 일정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덕분에 낮 장사는 못 해도 밤 장사는 할 수 있겠네.”
여기서 밤 장사란 당연히 ‘신야식당(神夜食堂)’.
바뀐 인테리어에 대한 핑계에 더해서 던전을 다녀와야 했기에 낮 장사, 그러니까 ‘연성이네’ 영업은 하루 쉬었지만, 신야식당은 정식으로 열 수 있을 것 같았다.
“읏차!”
나는 내용물이 그득그득한 아이스박스를 주방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뚜껑을 열었다.
“크으, 아주 좋아.”
아이스박스 안에는 던전 ‘남국의 해안’에서 가져온 물고기와 전복, 어패류 등이 그득그득했다.
진짜 생선이 아니라 윤진하와 채하나의 말에 의하면 F급도 안 되는 몬스터였지만, 무사히 던전 밖으로 가져오는 게 가능했거든.
아무래도 바닷물을 직접 몸 안에 보관하는 해초류와 달리 몬스터들은 체액이 따로 존재해서 배를 갈라 내장을 따고 피를 빼니깐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셀키가 잡아다 준 물고기를 모두 손질해서 아이스박스에 담아왔지.
참고로 바닷가 근처라서 주변에 낚시용품점이 있어서 아이스박스는 쉽게 구할 수 있었고 말이야.
“그나저나 그 녀석, 잘하고 있으려나?”
채하나는 연구를 더 하겠다며 던전에 며칠 더 머무르기로 했다.
던전 미역 등 약초를 가지고 나갈 방법을 알았지만, 건조과정이 필수였기에 남아서 작업을 하겠다고 하더라고.
던전의 인수는 그녀가 나오면 진행하기로 했다.
어쨌든 내가 ‘그 녀석’이라고 부른 건 당연히 채하나가 아니었다.
‘셀키야, 하나 씨가 필요한 거 있다고 하면 가져다드려.’
셀키가 나를 잘 따르고 앞으로 던전을 인수하면 수산물을 잡아다 줄 일꾼이 되었다지만, 엄연히 몬스터.
내가 없는 사이에 채하나와 문제가 생기면 여러모로 곤란했다.
그래서 셀키에게 채하나를 잘 도와주라고 말해놓고 왔다.
‘꾸엉!’
워낙 영특한 녀석이었기에 내 말을 곧잘 알아듣곤 채하나가 부탁하는 대로 해초나 산호 같은 걸 가져다주더라고.
채하나도 연구에 도움이 되니 몹시 기뻐했고 말이야.
덕분에 안심하고 돌아올 수 있었다.
“그나저나 오늘은 어떤 성좌를, 아니 어떤 손님을 맞이해볼까?”
첫 손님이었던 영동 할매 이후 오픈 키친으로 가게를 개조하고 처음 받는 손님.
어찌 보면 또 한 번의 첫 손님이었다.
그래서 더 멋지게 손님을 받아야겠다는 의욕이 넘치고 있었다.
“기왕 신선한 생선이 들어왔는데, 물고기 요리를 좋아하는 손님이었으면 좋겠네.”
내가 그렇게 중얼거렸을 때였다.
원래 구석 테이블에 놓여있다가 오픈 키친의 바로 올려놓은 헤르메스 신상이 삐리삐리 소리를 내며 뱀 두 마리가 얽힌 지팡이 카두케우스를 앞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키워드 확인. ‘물고기’] [적합한 성좌를 검색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와, 이런 기능도 있었나?
단순히 예약을 잡아주는 어플 대용이 아니라 손님을 골라주는 기능도 있는 모양이었다.
사실 장사하는 입장에서 손님을 고른다는 건 건방진 소리긴 했지만,
“선착순대로 받아도 일 년은 넘게 걸릴 거 같단 말이지.”
쌓인 예약이 너무 많아서 어떤 성좌를 골라도 거기서 거기일 것 같았다.
성좌들은 시간에 대해서 관대한 편이니, 꼭 신청한 순서대로 예약되지 않아도 괜찮은 것 같고.
······카인, 스루드, 하데스 그 세 성좌만 빼고 말이지.
[적합한 성좌가 매치 되었습니다.] [‘인정받지 못한 고양이들의 왕’이 당신의 가게를 방문하고 싶어 합니다.] [예약을 수락하시겠습니까?]인정받지 못한 고양이들의 왕이라니.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전혀 성좌의 정체를 알아보기가 힘든 성좌명이네.
하긴, 지금까지 내가 성좌들의 정체를 알아낸 게 더 대단한 일이긴 했다.
대부분의 헌터는 자신의 계약한 성좌가 누구일지 추측만 할 뿐 정확한 정체는 모르는 게 보통이었으니까.
아무튼, 고양이랑 관련된 성좌라면 생선을 좋아하겠지.
“수락할게.”
[예약이 수락되었습니다. 즐겁게 식사하세요! 본 아페티(bon appétit)!]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헤르메스의 신상이 움직임을 뚝 멈추었다.
아니, 헤르메스 당신 그리스 신이잖아.
맛있게 먹으라는 인사를 왜 프랑스어로 해?
내가 느닷없이 튀어나온 프랑스어에 황당해하고 있을 때였다.
딸랑-
손님 방문 벨이 울리면서 ‘신야식당’의 문이 열렸다.
기존 ‘연성이네’의 입구가 아니라 이번에 가게를 개조하면서 오픈 키친 근처에 만든 새로 만든 문이었다.
당연히 일반 사람들은 이용도 할 수 없을뿐더러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성좌 전용 출입구.
거기를 통해 들어왔다는 건 당연히 성좌 손님, 그것도 방금 예약한 ‘인정받지 못한 고양이들의 왕’일 터였다.
“어서 오세······요.”
나는 오픈 키친에 서서 밝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아니, 하려 했다.
가게로 들어온 손님이 이족보행을 하는 거대한 고양이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안녕하시오. 내 이름은 톰, 보시다시피 고양이올시다.”
응, 고양이네. 그것도 사람만큼 덩치가 큰 고양이.
전신이 검은 털에 목과 가슴 부분만 하얀 털이 나 있는, 마치 턱시도를 입은 것 같은 고양이가 내 눈앞에서 고풍스러운 말투로 인사하고 있었다.
“하하, 주인장께서 나를 보고 많이 놀라신 모양이외다. 이해합니다. 본묘를 본 인간들은 다들 그렇게 놀라곤 하지요.”
놀랄 수밖에요.
고양이가 이족보행을 하는 것도 놀라운 데, 장화를 신고 머리엔 유럽 귀족들이나 썼을 깃털 달린 챙 넓은 모자를 쓰고 있었으니까.
저런 모자를 카발리에 햇, 총사모라고 하던가?
총사모와 장화까지 신고 있으니 영락없는 중세 유럽의 귀족처럼 보였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조금 놀랐습니다. 지금까지 뵀던 성좌분들은 모두 인간의 모습을 하고 계셔서요.”
“그럴 만도 하외다. 본묘는 근본이 고양이기도 하지만, 아직 격이 부족해 완전한 인간으로 변하는 게 익숙지가 않다오.”
격이 높으면 완전한 사람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는 건가?
아무튼, 저 고양이 성좌가 가게에 들어올 때 노란빛이 반짝였으니 아마 유일급 성좌일 터였다.
하데스나 헤르메스, 페르세포네가 무지갯빛을 뿌리는 신화급 성좌라면,
카인이나 스루드는 황금빛을 띠는 전설급 성좌였고, 그 밑으로는 영웅급 성좌들이 존재했다.
힘이 많이 약해진 영동 할매나 눈앞의 고양이 성좌는 성좌 중 최하급이라고 할 수 있는 유일급 성좌였다.
“어서 앉으세요. 저한텐 모두 대단하신 분들인걸요.”
“본묘 같은 격 낮은 성좌도 대단하오이까?”
“그럼요. 대단하시죠.”
급이랑 상관없이 내 식당에서는 모두 내 요리를 맛볼 똑같은 손님이지.
그나저나 이 고양이 성좌, 자존감이 많이 낮구나.
내 말에 감동받은 듯 눈망울이 촉촉이 젖어 빛나기 시작했다.
고양이 얼굴로 저런 눈을 하니 나도 모르게 ‘귀엽다’라고 할 뻔했다.
크흠, 안 되지. 손님에게 그런 실례를 할 순 없지.
“어떤 걸로 드릴까요?”
나는 서둘러 메뉴를 물었다.
그러자 고양이 성좌가 내 정면, 그러니까 오픈 키친의 바에 앉으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오늘은 무척이나 고단한 날이었소이다. 이 괴로움을 잊을 수 있는 독한 걸로 하나 주시오.”
“죄송하지만, 손님. 저희 가게에는 술이 없습니다.”
조만간 술도 만들어봐야 하는 데 말이야.
요즘 바빠서 이것저것 준비할 시간이 모자랐다.
내가 죄송한 표정으로 양해를 구하자 고양이 성좌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웃갸웃했다.
큭, 귀여워.
“본묘는 술을 안 먹소. 독할 정도로 진한 우유면 좋겠소이다.”
“아, 우유.”
그렇지. 고양이는 우유지.
고양이한테 술을 줄 생각을 한 내가 나빴어.
나는 서둘러 냉장고로 가서 남아있던 전투 산양 조세핀의 산양유를 가지고 왔다.
그리고 우유를 데우는 밀크팬에 따뜻하게 데워 예쁜 유리컵에 가득 채워 고양이 성좌 앞에 두었다.
고양이니깐 너무 뜨겁게 하면 못 먹을 거 같아서 딱 미지근한 정도로.
“오, 보통 우유가 아닌 듯하오? 이 냄새는, 킁킁.”
고양이 성좌는 컵 주둥이에 코를 박듯이 가져다 대어 냄새를 맡았다.
“산양의 젖이로군. 산양 특유의 육향이 난다오.”
“정확합니다. 대단하시네요, 손님.”
“후후, 본묘가 냄새는 잘 맡는 편이오.”
고양이는 후각이 뛰어나다더니, 고양이 성좌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고양이 성좌는 마치 와인이나 위스키를 마시는 것처럼 냄새를 즐기더니 드디어 산양유를 맛보기 시작했다.
역시 와인을 마시는 귀족처럼 우아하게 입안에서 가글을 하면서 마시려나?
하지만 고양이 성좌는 그런 내 기대와 달리,
할짝.
혀만 쏙 내밀어 잔에 찰랑대는 우유를 쫍쫍 빨아먹었다.
그러면서 산양유의 맛이 마음에 들었는지 먕먕 울면서 먹기까지.
“먕먕먕, 너무 맛있소이다. 먕먕먕.”
너무나 고양이 같은 모습에 나는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아야 했다.
너무 귀여워서 참기가 힘들 정도였지만, 웃으면 실례가 되기에 허벅지를 꼬집어가며 참았다.
그런 내 모습을 본 고양이 성좌가 머쓱한 나머지 헛기침을 했다.
“크, 크흠, 이건 시음을 한 것뿐이오! 본묘는 본래 호쾌하게 마시는 편이지!”
그렇게 말하곤 잔째로 들어 마시려고 했지만, 애석하게도 고양이 발은 유리컵을 잡기가 힘든 모양인지 자꾸 헛손질을 했다.
나는 간신히 웃음을 참으며 고양이 성좌에게 빨대를 가져다주었다.
“인간 중 우아함을 잃지 않으려는 상류층은 빨대로 음료를 마십니다. 손님도 어떠신가요?”
“호오, 그렇다면 본묘도 시도해보겠소.”
고양이 성좌는 빨대로 산양유를 쪼옥 빨아 마시고 나서야 다시 기분 좋은 듯 골골대기 시작했다.
영락없는 고양이었다.
그렇게 시원하게 산양유 한 잔을 다 마신 뒤, 고양이 성좌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실은 이 식당에 온 건, 맛있는 걸 먹고 싶었기도 했지만,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해서였소. 본묘가 주인장의 시간을 빼앗아도 좋겠소?”
“그럼요. 이야기를 들으면서 드실 음식을 준비하도록 하죠.”
오픈 키친의 장점이 이런 거지.
손님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친밀감도 쌓이고 손님에게 더 잘 어울리는 요리를 준비할 수 있다는 점.
내가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었다고 하자, 고양이 성좌는 한숨을 푹 내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본묘의 이름은 톰 틸드럼이오. 인간 세상에선 ‘장화 신은 고양이’로 유명하지.”
아니, 진짜 장화 신은 고양이었냐고.
나는 고양이 성좌의 정체를 알고는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
연어 스테이크, 캣닙을 곁들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