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chef of the constellations RAW novel - Chapter 44
44화. 먹지 말고 기다려
“지금부터 홀 접객 파트의 테스트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3라운드부터는 내가 진행을 맡기로 했다.
헤르메스가 아무리 방송 천재인 데다 상업의 신이라지만, 식당일을 전문적으로 알진 못할 테니까.
“다섯 분이시군요.”
나는 홀 접객 파트에 지원한 다섯 명의 성좌 혹은 권속을 바라보았다.
에녹이야 잘 아는 사이고, 남은 네 명의 지원자들도 범상치 않아 보였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내 말에 에녹이 제일 먼저 나섰다.
“‘최초의 살해자’ 카인의 아들이자 그분의 첫 번째 권속, 진조(真祖) 에녹 벤카인입니다. 특기는 건물 짓기지만, 섬세한 작업을 잘하니 서빙도 잘할 수 있습니다.”
음, 나무랄 데 없구만.
몇 번 만나봐서 알지만, 에녹은 흡혈귀답지 않게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격인 데다, 인간인 나에게도 경어를 쓸 정도로 착한 이였다.
보통 소설 속 진조는 거의 재앙급으로 끔찍한 존재던데.
종이 우유팩을 쪽쪽 빨아 마시던 에녹을 생각해보면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분명 손님들한테도 친절히 잘 할 타입이었다.
“흥! 식당 일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특기잖아?”
물론 그런 나와 정반대의 평가를 내리는 이도 있었다.
우락부락한 덩치에 전신에 털이 나 있는 데다 머리에는 큰 뿔이 달린 험상궂은 인상의 남자가 다음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도철이다. 모시는 분은 없고 희귀급 성좌지. 보시다시피 힘 하나는 끝내주지. 뭐든지 다 나를 수 있으니 나를 뽑아라.”
도철이라. 잘 모르는 성좌네. 기억이 날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성좌를 하도 많이 봐서 그런가? 관상만 봐도 약간 싸함이 느껴진다.
태도나 말투도 싸가지가 없는 게 절대 뽑아선 안 될 느낌인데?
일단 테스트까지 예의주시해야겠네.
그리스의 전통 의상, 키톤을 입은 아름다운 여성이 다음 차례로 자신을 소개했다.
“타르포라고 해요. 미욱하지만 가을과 수확의 여신이라고도 불리고 있죠. 페르세포네 님과 아프로디테 님, 헤라 님을 모시며 식사 시중을 든답니다. 여신들을 모시듯 손님들을 모실 자신이 있어요. 잘 부탁드려요.”
페르세포네나 아프로디테, 헤라를 섬겼다고 하니 당연히 그리스 신화 쪽 권속인 모양이었다.
아니, 성좌인가? 성좌라고 생각될 정도로 그녀에게선 고아한 기품과 격이 느껴지고 있었다.
거기다 여신들의 식사 시중을 들었다니, 스킬적인 면에선 문제가 없겠네.
다음은 중국 옷을 입은 뚱뚱한 남성이었다.
“왕시라고 합니다요. 샤오얼이라고도 부릅지요.”
“샤오얼?”
“여기 말로 하면 점소이라는 뜻입니다, 헤헤. 시(示)를 세로로 쓰다가 이소(二小)로 보여서 왕이소, 또는 왕소이로 불리다가 샤오얼이 되었습니다요.”
점소이라면 무협 소설에 나오는 중국 객잔의 웨이터를 말하는 건가?
그 점소이의 ‘소이’가 왕시라는 이름에서 나온 건 처음 알았네.
그나저나 점소이라니, 또 전문가가 나왔잖아?
“이 점소이란 어떤 존재냐? 아십니까?”
왕시는 마치 연극을 하듯 과장된 몸짓과 익살스러운 말투로 자신의 소개를 이어나갔다.
“바로 식당의 매출을 책임지는 존재입죠. 잘 나가는 점소이는 주방장보다 더 많은 돈을 받는다는 걸 아십니까? 그게 다 점소이가 손님을 끌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그렇군요.”
“매일매일 들어오는 식재료가 다르니 매일 만들어지는 요리도 다른 법! 그날그날 가능한 요리가 어떤 건지 모두 외워야 하는 게 바로 점소이의 소양이올시다.”
“······.”
“그것만이냐? 아니올시다. 들어오는 손님마다 돈은 얼마나 있는지! 여성 일행 앞에서 잘 보이고 싶은지! 아니면 스님이라 풀떼기만 먹는지! 착, 한눈에 알아보고 메뉴를 먼저 추천하는 눈치가 있어야 합니다요.”
“잘 알겠으니 다음 지원자분······.”
“아직 아직 멀었습니다. 점소이는 길고 긴 주문을 줄줄이 외워서 주방장에게 알려줘야 하는데 그냥 알려주면 또 점소이라 할 수 없습죠. 기일고 기인 손님의 주문을~ 노래로오 불러야~ 다들 즐거워하지 않겠습니끄아~”
그렇게 즉석에서 노래를 부르는 왕시를 보니 다시 머리가 아파졌다.
그래, 노래 잘하는 거 좋지.
메뉴를 기억한다거나 눈치가 좋은 것도 다 홀 접객에 최적화되어있고.
그런데 말이 너무 많아. 손님들이 말 듣다 지쳐서 식욕부터 떨어지겠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마지막 지원자를 보았다.
“카롤루스 마르텔 님?”
“그것이 나다.”
“설마 프랑크 왕국의 그분?”
“그래, 그것이 나다.”
“샤를마뉴 대제의 할아버지?”
“그것 또한 나다.”
호화로운 옷 위로 망토를 두른 채 멋진 콧수염을 자랑하는 중년의 백인 남성.
프랑크 왕국의 카롤링거 왕조를 연 피핀 3세의 아버지이자, 그 유명한 샤를마뉴 대제의 할아버지였다.
아니, 왜 이 귀한 분이 이런 누추한 곳에······, 라고 말할 뻔하다가 다른 성좌나 권속들을 보고 서둘러 말을 바꿨다.
“식당에 지원한 거 맞으시죠?”
“원하지 않았지만, 그것도 맞다.”
“위엄있으신 건 좋은데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사정을 잘 알 수가 없어서요.”
“······미안하군.”
카롤루스 마르텔은 콧수염을 슥슥 정리하더니 입을 열었다.
“내가 보필하는 분이 나를 이리로 보내셨다. 내 직업을 잘 살리면 이곳에서 일할 수 있을 거라고.”
“직업이 뭐였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나는 궁재였다.”
궁재(宮宰)라면 왕의 집사장이자 재상을 말하는 거 아닌가?
설마 ‘집사’라서 홀 접객으로 지원을 보낸 거야?
“대체 모시는 분이 누구시길래······.”
“내 손자이자 전설적인 황제, 샤를마뉴다.”
“아, 그렇군요. 크흠.”
“참고로 먹을 걸 아주 좋아하지.”
“······.”
나는 할 말을 잃고야 말았다.
이거 패륜아냐?
먹을 게 얼마나 좋으면 자신의 할아버지를 권속으로 부리면서 식당에 가서 일하라고 보낼 정도일까.
내가 안쓰럽다는 눈빛을 보내자 카롤루스 마르텔도 마찬가지라는 듯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내게 다가와 조용히 속삭였다.
“그냥 탈락이라고만 해주게. 손자 녀석 부탁이라 왔지만, 식당 일을 하고 싶진 않으니까.”
“알겠습니다. 탈락이니 돌아가세요.”
“고맙군.”
카롤루스 마르텔은 안도한 표정을 짓고는 훨씬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돌아갔다.
한 명이 자진 탈락했으니 이제 남은 건 4명이네.
“그럼 이제 홀 접객 파트 테스트를 시작하겠습니다.”
나는 그들 앞에 준비한 것을 하나씩 꺼내어 놓았다.
“얼마 전까지 ‘연성이네’에서 제일 인기가 많았던 메뉴, 보쌈 정식 스페셜입니다.”
꿀꺽.
자신 앞에 놓인 요리를 본 지원자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요리했던 거라 아직도 김이 폴폴 나고 향도 장난이 아니거든.
나는 보쌈 정식 스페셜을 앞에 둔 지원자들을 향해 딱 한 가지를 요구했다.
“30분 동안 앞에 두고 요리에 손대지 않으시면 통과입니다.”
내 말에 지원자들이 벙찐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니, 이거 중요한 테스트라니까?
식당 주인들이 제일 경계하는 게 바로 음식 가져다주는 사람의 빼먹기라고.
나는 식당에 걸린 시계를 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 * *
놀랍게도 네 명 중 두 명, 즉 50%가 이 테스트에서 떨어졌다.
아니, 손님의 음식에 손대지 않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인데 이걸 안 지킨다고?
나는 한숨을 쉬며 둘에게 탈락을 고했다.
“그럼 두 분은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제길! 이걸 어떻게 참으라고!”
도철이 분하다는 듯 씩씩대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입안에는 보쌈 고기를 가득 집어넣은 채로 말이야.
도철이 떨어지는 데에는 30분도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테스트를 시작한 지 3분 만에 자기 걸 먹어치우더라고.
지금 도철이 먹고 있는 건 통과한 다른 지원자들의 고기였다.
“너, 후회할 거다. 내가 어떤 존재인지 알아? 나 사흉이야! 사흉!”
아, 기억났다.
사흉 중 하나, 도철.
고대 중국에서 두려워했던 네 가지 괴물 중 하나로 식탐이 엄청나고 일하기 싫어해 남의 것을 빼앗는 도적 같은 괴물이었지.
“어이, 사흉이 뭐?”
“히익! 잘못했습니다!”
으르렁대던 도철의 턱밑에 헤르메스의 지팡이, 카두케우스가 불쑥 들이 밀어졌다.
안 그래도 사흉 중에 가장 약했던 괴물이 도철이라고 했던가?
신화급 성좌의 위협에 희귀급 성좌였던 도철은 그대로 줄행랑을 놓았다.
헤르메스는 그렇게 도철을 쫓아 보내고 다음 탈락자를 째려보았다.
“너는 안 가고 뭐 하냐?”
“헤헤헤, 패자부활전이라도 있지 않을까 해서 남아있으려고 합니다요.”
놀랍게도 다른 탈락자는 전설 속의 점소이, 왕시였다.
도철처럼 식탐에 져서 보쌈을 먹은 건 아니지만, 테스트 종료 1분을 남기고 몰래 한 점 집어먹다가 걸려 탈락했다.
살짝 아쉽긴 했다.
말이 너무 많긴 했지만, 그래도 홀 접객의 스페셜 리스트이니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내 표정을 보고 헤르메스가 피식 웃었다.
“아쉬워하지마, 이놈 스파이야.”
“네? 스파이요?”
갑자기 스파이라니?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왕시가 새파랗게 질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이고,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요, 저는 선량한 지원자입니다!”
“내 권속들이 방금 알아냈어. 저놈, 중국 주방의 신 조군(灶君) 장단의 권속이야.”
“조군 장단이라면······.”
요리의 신이라서 나도 대충은 안다.
음식을 몹시도 좋아한 관리 장단은 조강지처 버리고 어린 여자랑 바람을 피우다가 천벌을 받아 가정도 잃고 관직도 잃고 눈이 먼 채로 구걸을 하러 다니게 되었다.
그러다 우연히 들른 집에서 예전처럼 융숭한 대접을 받았는데, 알고 보니 자신이 버린 조강지처의 집이었다더라.
그에 부끄러움을 느낀 그는 집안의 화덕에 몸을 던져 자살하는데 이를 안쓰럽게 여긴 옥황상제가 자신의 심부름꾼이자 부엌의 신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래서 생전에 자신이 좋아하던 음식을 매일 볼 수 있게 됐다던가.
헤르메스도 그 사연을 아는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오입쟁이 놈이 성좌들의 세계에서 중국 요리 가게를 크게 하거든. 아마 요즘 인간 요리사의 가게가 잘 나가고 자신들 매상이 떨어지니까 염탐꾼으로 자기 가게 점소이를 보낸 모양이야.”
세상에.
요리의 신이 내 가게 비밀을 빼먹으려고 스파이를 보낸단 말이야?
내가 어이가 없어서 왕시를 바라보자 그는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무영신보(無影神步)!”
무협지에서 흔히 하오문의 무공으로 나오는 경공을 펼쳐서 달아나버렸다.
점소이라더니 하오문 소속이기도 했나 보네.
헤르메스는 혀를 차며 왕시가 도망치는 모습을 보더니 나에게 사과했다.
“미안하다, 저런 놈은 진즉에 걸렀어야 했는데.”
“괜찮습니다. 어차피 떨어졌는데요. 그리고 아시잖아요?”
내 요리는 [성좌의 요리사]라는 클래스의 효과 덕분에 특별해지는 거니까.
보쌈 수육 한 점 먹었다고 그 비결을 따라 할 수 있겠어?
나는 피식 웃음을 지으려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눈을 가늘게 뜨고 헤르메스를 바라보았다.
“······설마 갓튜브 각을 위해서 일부러 그런 건 아니시죠?”
“나를 뭘로 보고! 나 상업의 신이야! 동종 업계끼리 선 넘는 짓을 제일 싫어한다고!”
진지하게 화를 내는 헤르메스를 보니 일부러 그런 건 아닌 것 같네.
“하하, 농담이었어요. 화 푸세요. 이거 드시고요.”
“앗싸, 고구마 맛탕이다!”
달달한 고구마 맛탕에 화가 사르륵 풀려버린 헤르메스를 뒤로하고 나는 테스트에서 통과한 두 명의 지원자, 에녹과 타르포를 보았다.
“두 분은 통과입니다. 4라운드에서 뵐게요.”
“알겠습니다.”
“후후후, 통과해서 기쁘네요.”
깍듯한 흡혈귀 에녹과 고상한 여신 타르포.
둘 중에 누가 뽑힐지는 4라운드인 면접 때 보면 알겠지.
“자, 다음은 주방 보조 파트 테스트를 하러 가죠?”
“그 파트 지원자가 9명으로 제일 많지? 거기는 무슨 테스트를 할 거야?”
“헤르메스 님, 한국에서 식당 할 때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일이 뭔지 아세요?”
“응? 몰라.”
헤르메스가 입안에 고구마를 잔뜩 채운 채로 고개를 젓자 나는 히죽 웃으며 대답해줬다.
“바로 김장입니다.”
지원자가 9명이나 그것도 어지간하면 체력이 떨어지지 않는 성좌 혹은 권속들로 있었다.
마침 김장을 하려고 했는데 공짜 일꾼들이 있다?
이건 못 참지.
“간단하게 500포기만 담글까? 아냐, 천 포기는 해야······.”
“가끔 보면 성좌보다 인간인 네가 더 무섭다. 아버지가 번개 안 날리면 다행이겠네.”
성좌들을 데리고 김장 천 포기를 생각하는 나를 보며 헤르메스가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에헤이, 이게 다 테스트라니까?
여신이었던 마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