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chef of the constellations RAW novel - Chapter 5
5화. 전설급 퀘스트
“사장님, 잘 먹었습니다.”
“다음에 또 오세요.”
딸랑-
마지막 손님이 가게를 나가자 나는 식당을 정리하고 스마트폰을 꺼내 아까 낮에 검색했던 요리를 다시 검색했다.
플레스케스텍(Fløskesteg).
간단하게 말하면 돼지고기에 칼집을 내고 소금과 허브로 밑간한 뒤 오븐이나 에어프라이어에 통구이로 구워버리는 통삼겹살구이였다.
그렇게 구우면 겉은 돼지기름으로 튀긴 듯 바삭하게 구워지고, 속은 육즙이 촉촉하게 살아있는 수육처럼 익는다.
이걸 양배추랑 함께 싸 먹는 바이킹식 보쌈 요리였다.
“생각보다 꽤 전통이 깊은 요리네.”
바이킹의 나라, 덴마크에서는 중세 때부터 돼지고기를 즐겨 먹었고 최대 명절인 크리스마스에는 꼭 이 플레스케스텍을 먹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옛날 신화에 나오는 성좌들의 입맛에도 맞지 않을까?
“거기다 전사의 요리라면 역시 고기지.”
몸을 단련하기 위해선 단백질이 필수고 소모한 열량을 보충하기 위해 지방도 필요했다.
돼지고기, 특히 삼겹살은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한 음식이니까.
“문제는 이 돼지고기를 어떻게 구하냐는 건데.”
당연히 동네 정육점에서 사 오는 삼겹살은 불가능했다.
카인의 말로는 마력이 깃든 재료들만으로 요리해야 성좌들이 먹을 수 있다는 듯했다.
나는 우선 요리에 필요한 재료들을 종이에 쭉 적어보았다.
“돼지고기 삼겹살이랑, 소금, 후추 같은 향신료, 냄새를 없애줄 월계수 잎······.”
생각보다 많은 재료가 필요하진 않았다.
아주 옛날부터 먹은 요리라고 하니 재료가 이것저것 들어가진 않는 모양이었다.
“소금은 전에 썼던 던전산 암염이 남아있고 향신료로 쓸 허브도 이것저것 구하면 될 거 같은데, 문제는 역시 돼지고기네.”
인간이 기른 돼지고기가 안 된다면 던전의 몬스터로 대체해야 했다.
삼계탕에 넣을 닭 대신 코카트리스 고기를 사용한 것처럼 말이지.
하지만 문제는 돼지 관련 몬스터는 잡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멧돼지 계열 몬스터는 죄다 덩치가 크고 강력하니까.”
현실에서도 멧돼지는 손쉽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맹수였다.
그런데 던전에서 마력을 흡수하면서 몬스터로 자란 멧돼지?
멧돼지 계열 몬스터 중 가장 약한 레드 보어의 별명이 ‘초보 절단기’였다.
겨우 멧돼지라고 쉽게 여기고 공략에 나서는 초보 헌터들을 손쉽게 쓰러뜨려 초보 헌터들의 재앙과도 같은 존재.
“이걸 고기를 살리면서 잡을 수 있을까?”
물론 강한 헌터들은 레드 보어를 충분히 잡고도 남는다.
하지만 고기를 구하는 용으로 사냥하는 건 그냥 몬스터를 잡는 것과 그 난이도가 천지 차이.
내장이 터지지 않고 살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잡아야 하는 고난이도의 사냥이었다.
공격 스킬로 마구 베고 태우고 지져버리는 헌터들의 싸움 속에서 몬스터의 고기가 성할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았다.
코카트리스의 경우는 ‘석화의 눈’을 피하기 위해 목을 빨리 쳐내는 사냥법이 발달해 있어서 고기를 구하는 게 상대적으로 쉬웠지만······.
“이건 헌터들에게 부탁해도 안 해줄뿐더러 돈이 어마어마하게 들 것 같은데.”
당연히 내겐 부탁할 헌터 지인도 없는 데다 그럴 돈도 없었다.
동생의 얼굴이 잠깐 스쳐 지나갔지만, 저번에 재료 구해달라고 부탁한 것만으로도 질색하던 녀석이니 또 부탁하긴 힘들겠지.
[전장을 누비는 힘의 처녀가 언제 요리를 시작하냐고 당신을 재촉합니다.]“사실 그게······.”
나는 눈이 빠져라 내 요리를 기다리고 있는 성좌에게 이런 사정을 설명했다.
재료 구하기가 힘들다고 하면, 알아서 포기하고 물러나지 않을까? 라는 기대도 살짝 했지만,
[전장을 누비는 힘의 처녀가 재료는 자신이 구해다 주겠다고 자신합니다.]내 요리를 먹고 싶다는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찬 모양인지 포기하는 일 따위는 없었다.
잠깐, 그런데 이 재료를 성좌가 직접 구하는 건 아니겠지?
[전장을 누비는 힘의 처녀가 성좌가 직접 이런 일에 나서면 격이 떨어진다며 고개를 젓습니다.] [전장을 누비는 힘의 처녀가 자신에게는 부탁할 친구가 많다고 자랑합니다.]누구한테 부탁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고생 좀 하겠네.
나는 성좌 대신 고생할 누군가를 향해 애도를 보낸 뒤, 힘의 처녀에게 주의사항을 덧붙였다.
“내장을 건드리면 안 됩니다. 내장이 터져서 내장즙이 살에 묻어버리면 냄새가 고약해서 먹을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불이나 전기로 공격하면 살이 익어버리니깐 그것도 좋지 않구요.”
[전장을 누비는 힘의 처녀가 걱정하지 말라고 가슴을 탕탕 칩니다.] [전장을 누비는 힘의 처녀가 너무 세게 친 나머지 콜록댑니다.]아니, 그런 것까지 알려줄 필요는 없어요.
카인부터 힘의 처녀까지 성좌에 대한 내 이미지가 와르르 무너지고 있었다.
* * *
그날 저녁.
성좌들과 계약한 헌터들 사이에 새로운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 퀘스트 들었어? 무려 전설급 퀘스트라던데?”
“전설급 퀘스트? 그런 게 있기나 했어?”
“성좌가 직접 퀘스트를 내건 모양이야.”
성좌와 계약한 헌터들은 성좌가 내려준 퀘스트를 깨는 식으로 공물을 바칠 수 있었다.
보통 성좌의 권속들이 퀘스트를 거는 경우가 많았고 그 경우에 퀘스트 등급은 최대치가 에픽급이었다.
그런데 전설급이라니.
그 말인즉슨, 성좌가 직접 퀘스트를 내렸다는 소리였다.
거기에 전설급은 게이트 사태 때 최초의 헌터들이 성좌들에게 받은 퀘스트와 동급.
사람들이 관심을 안 가지는 게 이상한 퀘스트였다.
“전설급이라면 보상도 어마어마하겠네?”
“전설급 아이템이라도 받으면 완전 로또 맞는 건데 말이야.”
당연히 퀘스트의 난이도가 높을수록 보상도 올라가는 법.
전설급 퀘스트의 출현과 그에 어울리는 보상에 헌터들은 흥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동료들을 냉정하게 비웃는 이들도 있었다.
“어떤 성좌인지는 몰라도 계약한 헌터들만 좋은 거지.”
“그러니까. 어차피 퀘스트라는 게 계약한 헌터들만 받을 수 있는 거잖아?”
성좌가 부여한 퀘스트는 그 성좌와 계약한 헌터들만이 수행할 수 있는 게 보통이었다.
때문에, 이렇게 보상 좋은 퀘스트가 생겨나도 다른 헌터들에겐 그림의 떡일 뿐.
하지만 들려오는 소문은 조금 달랐다.
“그게 말이지, 이번에는 헌터라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는 데?”
“그게 진짜야? 성좌랑 상관없이 퀘스트를 받을 수 있다고?”
“퀘스트 내용이 그 정도로 어려운 모양이야.”
“전설급 보상이면 아무리 어려워도 무조건 고해야지. 그 내용이 뭔데?”
그렇게 헌터들의 관심이 퀘스트에 쏟아졌을 때, 세계 헌터 관리 기구에서 공식적인 퀘스트 내용이 발표되었다.
==================
퀘스트 : 제림니르 토벌
퀘스트 등급 : 전설급
퀘스트 내용
– S급 던전 ‘블러디 보어의 굴’의 보스 몬스터 제림니르 토벌.
– 제림니르의 내부 장기와 근육을 온전한 상태로 잡을 것.
– 토벌된 제림니르의 시체를 고스란히 공물로 바칠 것.
퀘스트 보상 : 미정(전설급으로 추정)
=================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난이도야?”
몬스터를 잡는데 근육과 내장을 온전하게 두고 잡으라니.
칼로 찔러도 근육이 상하고 마법을 써도 근육이 손상되는 건 당연한 일.
이 소리는 헌터들의 손발을 묶고 싸우라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대체 무슨 목적으로 이렇게 잡으라는 거지?”
헌터들은 그 목적이 온전한 돼지고기를 구하기 위해서라는 건 생각지도 못했다.
보상에 대한 욕심에 도전하려는 헌터들은 이 말도 안 되는 난이도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퀘스트에 도전하는 걸 포기했다.
물론 실력에 자부심이 있는 헌터나 길드는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전설급 퀘스트다. 보상도 당연히 전설급. 이건 꼭 우리 길드가 가져간다.”
“다른 길드가 채가기 전에 서둘러!”
세계 각국의 이름 있는 길드와 랭커들이 움직일 때, 혼자서 조용히 움직이는 헌터가 한 명 있었다.
“‘전장을 누비는 힘의 처녀’ 님, 제가 꼭 당신의 소원을 들어드릴 겁니다.”
제단에 기도를 마치며 몸을 일으키는 여성의 정체는 윤진하.
‘발키리’라는 이명으로 불리는 헌터로 스루드와 계약한 A급 헌터였다.
그리고 세간에서는 ‘광전사’라고도 불릴 정도로 전투에 미친 헌터이기도 했다.
* * *
성좌 전장을 누비는 힘의 처녀와 마지막으로 이야기한 지 일주일.
“조용하니 좋네.”
나는 쌓인 설거지를 하며 콧노래를 불렀다.
성좌에게 재료 수급을 부탁한 뒤로 한동안 메시지가 들어오는 일이 없었다.
덕분에 나는 조용하고 평온한 일상을 즐길 수 있었다.
“평온하다기엔 식당 일로 바쁘지만 말이야.”
그래도 내가 ‘연성이네’를 맡아 운영한 지 벌써 10년.
식당 일이 아무리 바빠도 일상이 된 터라 힘들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성좌들에게 시달리는 것보다 식당에서 요리하고 손님 맞는 게 훨씬 낫지. 암.
“뉴스 좀 볼까.”
설거지를 마치고 한가해진 틈을 타 뉴스를 보려고 스마트폰을 꺼냈다.
내가 확인하려는 뉴스는 헌터면.
게이트 사태 이후 던전과 헌터는 이미 일상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사회 현상이었기에, 매번 챙겨봐야 했다.
갑자기 생겨난 던전이 우리 동네라면?
꼼짝없이 던전에 말려들어 피해를 볼 수도 있고 반대로 던전을 공략하러 온 헌터들이 손님이 되어서 매출이 늘어날 수도 있는 법.
이를 대비하려면 다 뉴스를 체크해야 하는 법이었다.
“요즘 가장 큰 이슈는 역시 전설급 퀘스트지.”
일주일 전부터 전 세계는 전설급 퀘스트로 떠들썩했다.
퀘스트 내용은 참여하고자 하는 헌터들에게만 공유되었고 일반인들은 그 내용을 몰랐다.
나도 각성자라지만, 한없이 일반인에 가까우니 당연히 퀘스트 내용을 모르고.
하지만 퀘스트의 난이도가 비상식적으로 높다는 소문은 파다했다.
그리고 그 퀘스트의 새로운 소식이 올라와 있었다.
“어? 퀘스트 누가 깬 모양이네?”
방금 깬 모양인지, 속보에는 퀘스트를 깼다는 기사 제목만 올라와 있고 퀘스트 내용이나 보상에 관한 이야기는 일절 없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인터넷 속은 들썩거리고 있었다.
“뭐, 나랑은 상관없으려나.”
나처럼 각성은 했지만, 헌터 일은 하지 않는 각성자들은 결국 일반인이나 다름없었다.
이름난 길드나 상위 랭커들이 관심을 가질 법한 이런 일이 나한테까지 영향을 미칠 일은 없겠지.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사장님, 지금 장사하세요?”
“네! 어서 오세요. 천천히 메뉴 고르시고 말씀해주세요.”
한가한 시간이 지나고 다시 손님들이 식당으로 들어오자 나는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벌떡 일어나 손님을 맞았다.
“역시 조용하게 장사나 하는 게 최고야.”
어차피 나랑 상관없는 퀘스트니, 보상이니 신경 쓰는 것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요리를 하고 그걸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들을 보는 게 더 큰 행복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생각할 때, 내 소중한 행복을 깨는 소리가 있었다.
띵-
[전장을 누비는 힘의 처녀가 재료를 구해왔다며 기쁨의 환호성을 내지릅니다.] [전장을 누비는 힘의 처녀가 얼른 요리해달라고 당신을 재촉합니다.]“아······.”
아무래도 오늘은 식당 문을 일찍 닫아야 할 것 같았다.
안 그러면 저 성좌의 메시지 알림 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릴 테니까.
[전장을 누비는 힘의 처녀가 하계의 요리를 먹을 생각에 군침을 흘립니다.] [전장을 누비는 힘의 처녀가 참지 못하겠다며 발을 동동 구릅니다.] [전장을 누비는 힘의 처녀가······.]아니, 벌써 걸릴 것만 같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 누르며 겨우겨우 식당일을 마친 나는 문을 닫고 하늘을 향해 말했다.
“준비한 재료나 주세요.”
[전장을 누비는 힘의 처녀가 재료를 전하기 위해선 제단이 필요하다고 합니다.]“이번에도 제단? 저번에 썼던 걸로도 되려나.”
나는 주차장에 잠시 방치해뒀던 제단을 원래 모습대로 다시 쌓았다.
그러자 그 짧은 사이도 참기 힘들었다는 듯, 제단이 완성되자마자 황금빛 불꽃이 거세게 타올랐다.
그리고 그 불꽃이 사그라들 때즈음, 제단 위에 놓여 있는 건 거대하다 못해 SUV 크기만 한 거대한 멧돼지 몬스터의 사체였다.
저걸 언제 손질하지? 시작부터 고생문이 훤했다.
“내가 보상은 단단히 받아낼 겁니다!”
성좌가 있을 하늘을 향해 크게 외친 뒤, 나는 팔을 걷어붙였다.
자, 전사다운 요리를 시작해보자고.
전설급 식칼과 숯가마 오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