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chef of the constellations RAW novel - Chapter 55
55화. 국밥의 정석
돼지국밥.
돼지고기를 끓여낸 국물로 만드는 모든 국밥을 총칭하는 이름이었다.
순대국밥, 돼지내장탕도 엄밀히 말하면 돼지국밥이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흔히 사람들이 돼지국밥이라고 할 때 떠올리는 건, 오로지 돼지고기와 돼지 베이스 국물로 끓여낸 국밥이었다.
“미야, 그거 알아요? 돼지국밥에는 두 종류가 있다는걸.”
“두 종류나 있나요?”
“네. 돼지고기를 삶은 맑은 국물로 만드는 돼지국밥과 돼지 사골로 우려낸 뽀얀 국물로 만드는 돼지국밥이 있어요.”
전자는 담백하고 깔끔한 국물 맛이 특징이었고 후자는 진득하고 무거운 국물이 특징이었다.
나는 뽀얀 국물의 돼지국밥을 만들 생각이었다.
아버지가 좋아하던 국물은 뽀얀 국물이었거든.
“맑은 국물은 돼지고기의 맛만 느껴진다고 하면, 뽀얀 국물은 돼지고기와 뼈까지 푹 익혀서 돼지를 통째로 먹는 느낌이 든다고 하셨었죠.”
“마스터의 아버님이 그러셨나요?”
“네. 그러면서 왜 깍두기 국물을 부어서 드신 건지. 참나.”
“마스터, 입으로는 투덜거리지만 웃고 있어요.”
미야의 지적대로 내 입가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오랜만의 돼지국밥이다 보니 깍두기 국물을 붓는 것도 즐겁게 느껴지는 건가?
나는 피식 웃으며 마정석 화로에 불을 올렸다.
“자, 첫 단계는 팔팔 끓여서 불순물을 빼내 줍니다.”
뜨거운 물에 목욕하면 때가 벗겨지듯이 돼지 뼈와 뼈에 붙은 살에 붙어 있는 불순물 역시 팔팔 끓이면 쉽게 분리가 된다.
제림니르의 뼈를 따로 씻지 않고 바로 끓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물론 한번 이렇게 끓이고 나서 다시 씻어주긴 할 거지만.
“으아, 거품 떠오르는 거 봐.”
100℃에 끓는 물보다 더 높은 온도인 380℃에서 끓는 마력수가 끓기 시작하자 뼈와 고기에서 불순물이 거품이 되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걸 본 천오가 질색을 했지만, 정작 자신을 해동시킬 때 냄비 속에 떠올랐던 때가 더 많았다는 건 자각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참고로 그 냄비는 마정석 화로의 불꽃으로 소독했지만, 그래도 찜찜해서 요리용으로는 안 쓰고 있었다.
“자, 끓고 나서 5분 정도 더 끓였으니 여기서 일단 멈추자. 천오야, 이거 물 좀 다 버려줘.”
“응? 고깃국물인데 버려?”
내 말에 아까까지 거품이 더럽다고 하던 천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그런 천오를 보며 피식 웃고는 대답해주었다.
“불순물이 너무 많고 첫 육수는 육향이 너무 세서 버려야 해.”
만약 고기만 삶은 물이라면 불순물을 건져내고 그대로 써도 좋았겠지만, 이건 뼈를 삶은 물이라서 말이지.
뼛조각이나 이런저런 불순물이 상당히 많았기에 그대로 끓이면 오히려 국물 맛을 버리는 수가 있었다.
이는 소뼈로 사골 육수를 끓일 때도 마찬가지고.
“그나마 다행인 건 에녹 씨가 핏물을 아주 깨끗하게 빼줘서 잡내가 덜할 거라는 거예요. 고마워요.”
“별말씀을요. 제가 평소엔 요리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니 이런 작은 거라도 도움이 됐다면 영광입니다.”
에녹이 겸손하게 말했지만, 핏물을 깨끗하게 빼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찬물에 몇 시간을 담가놓고 그 물을 몇 번이고 갈아줘도 깔끔하게 핏물을 빼는 게 어려우니까.
나는 에녹에게 따봉을 날려준 뒤, 천오가 물을 모두 버린 냄비에서 뼈만 건져냈다.
“천오야, 이거 깨끗하게 씻고 마정석 화로로 소독 한 번 해줘.”
“알겠어.”
불순물이 냄비에 조금이라도 남아있으면 나중에 다른 요리를 할 때 고약한 냄새를 내게 된다.
그러니 깨끗하게 씻는 것이 관건.
나는 그동안 꺼낸 제림니르의 뼈를 마력수로 깨끗하게 씻어주었다.
혹시라도 뼈 틈이나 고기 사이에 남아있을 불순물을 제거해주는 작업이었다.
“정말 철저하게 불순물을 제거하시네요.”
“국물 요리라서 그래요.”
감탄하는 미야에게 나는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지를 설명해주었다.
“보통 국물은 한 번에 양을 많이 우려내야 하거든요. 그런데 불순물이 섞여서 국물을 망치면, 그 많은 국물을 다 버려야 하죠.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꼼꼼히 해야죠.”
먹을 게 하나라도 아쉽던 시절, 귀한 돼지나 소의 고기와 뼈를 쓰는 데다 오랜 시간 끓이다 보면 장작값도 어마무시하게 드는데 그걸 망치면 이만저만한 손해가 아니었다.
그래서 사골을 끓이기 전에 이렇게 철저하게 불순물을 없애는 거지.
“자, 이제 다시 끓여봅시다.”
나는 불순물을 깨끗하게 제거한 돼지 뼈를 다시 들통에 넣고 마력수를 부었다.
거의 잠길 정도까지 찰랑찰랑하게 마력수를 붓다 보니,
“이야, 21리터나 들어가네.”
물론 이 많은 마력수가 전부 사골 육수로 바뀌는 건 아니었다.
아마 끓이는 과정이 다 끝나고 나면 7~8리터 정도만 남을걸?
그렇게 만든 엑기스에 물을 살짝 희석해서 다시 끓여 국밥 국물을 만드는 것이었다.
“자, 이제부터는 기다리자고.”
진하디진해서 냉장고에 식히면 젤리나 묵처럼 굳어질 정도의 돼지 사골 육수를 만들려면 이제부터 12시간 동안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냥 자면 안 돼?”
“중간중간 뜨는 기름을 건져 내줘야 하거든. 안 그러면 국물에서 돼지 냄새가 너무 심하게 날 거야.”
“으윽, 귀찮은 일이네.”
“그건 제가 하도록 하겠습니다.”
밤새 기름을 걷어내는 귀찮은 작업을 에녹이 스스로 하겠다고 자처하고 나섰다.
“밤 동안 활동하는 건 제게 숨 쉬듯이 자연스러운 일이니까요.”
흡혈귀인 에녹에게 밤은 그의 시간.
당연히 그에게 맡기는 게 편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에녹 씨는 요즘 낮에도 계속 활동하잖아요. 피곤할 수도 있어요. 번갈아 가면서 하죠.”
4명이니 3시간씩 불침번을 서듯 번갈아 가며 국물을 보면 되겠지.
그런 나의 제안에 직원들이 반발했다.
“그럼 저희가 나누어가며 할 테니 사장님은 들어가서 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맞아요. 저희랑 달리 마스터는 평범한 인간이니까요. 체력이 버티질 못해요.”
“천육이 불러내서 네 몫까지 내가 볼 테니 사장은 들어가서 자.”
이런, 직원들에게 맡겨놓고 나만 맘 편히 잘 생각은 없었는데.
하지만 가장 체력이 약한 나를 배려해주는 직원들의 마음을 무시할 수도 없어서 일단은 2층의 내 방으로 돌아가 눈을 붙이기로 했다.
“뭔가 환자 취급 받는 느낌이네.”
나를 당장이라도 쓰러질 약골처럼 대우하는 직원들의 마음이 고마우면서도 살짝 섭섭했다.
“이거, 얼른 체력을 키워서 무시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흐아아암.”
하지만 그런 내 다짐이 무색하게 주방을 벗어나자마자 밀려오는 어마무시한 피로감에 나는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 곯아떨어졌다.
* * *
다음 날 아침, 내가 일어났을 때는 이미 진한 돼지 사골 육수가 완성된 상태였다.
“어머님께 안부 전해주시고 맛있게 드시길 바랍니다.”
자타공인 효자인 카인의 아들, 에녹이 내게 차갑게 식혀 젤리처럼 굳은 돼지 사골 육수와 국밥 재료를 챙겨서 건네주었다.
그가 사골 육수 불침번의 말번이라 다른 직원들은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기 위해 각자의 숙소로 돌아간 모양이었다.
“오늘은 임시로 가게를 쉴 테니, 에녹 씨도 오늘만큼은 낮에 푹 주무세요.”
“낮에 자는 건 정말 오랜만이로군요.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내게 재료를 건네주고 지하실의 석관으로 들어가는 에녹을 배웅하고 나서야 나는 트럭에 올라탔다.
그러곤 내비에 어머니와 연준이가 사는 집 주소를 찍었다.
“그러고 보니 연준이 녀석 집에 가는 건 처음인가?”
지금 두 사람이 사는 집은 연준이가 S급 헌터로 무사히 정착해 돈을 벌기 시작한 이후에 새로 마련한 집이라서 아직 가본 적이 없었다.
나도 그사이 식당 운영하느라 바빴거든.
“짜식, 국밥은 좋아하려나?”
어릴 때는 돼지 냄새 난다고 싫어했는데 말이야.
그래도 연준이도 아버지 아들이니 국밥을 좋아하겠지.
나는 피식 웃으며 연준이와 어머니의 집으로 트럭을 몰았다.
“여기네.”
내가 교외에 마련된 3층짜리 세련된 전원주택에 도착하자, 대문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어머니가 보였다.
“연성이 왔니?”
“이야, 집 엄청 좋은데? 정 여사, 아들 잘 둔 덕에 호강하네.”
“좋기는. 반은 길드가 내준 건데.”
이 저택 소유권의 절반이 연준이가 속해 있는 미스틱 길드의 것이라는 소리가 아니라, 길드에서 돈을 들여 건축을 도와줬다는 소리였다.
이 멋진 주택 지하실과 3층에는 연준이가 훈련할 수 있는 시설이 마련되어 있었고 S급 헌터의 훈련을 견뎌내려면 저택 전체가 요새 정도의 튼튼함으로 지어져야 했으니까.
그 모든 걸 미스틱 길드에서 지원해줬다는 소리였다.
“어휴, 그 길드가 연준이 때문에 컸다우.”
연준이가 들어가기 전까지, 미스틱 길드는 진짜 영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유명하지 않은 길드였으니까.
각성 때부터 A급, 그리고 각성 5년 만에 S급이 된 연준이의 성장과 함께 미스틱 길드도 지금처럼 커질 수 있었다.
만약 연준이가 국밥 할아버지, 아니 천 회장의 제안을 받아서 삼천 길드로 갔다면 더 좋은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마당을 지나쳐 나를 집 현관까지 안내하는 어머니의 옆얼굴을 슬쩍 보았다.
······대체 아버지의 죽음과 천 회장님 사이에 무슨 관련이 있어서 그 제안을 거절한 걸까?
“왜? 엄마 얼굴에 뭐 묻었니?”
내 시선을 눈치챈 걸까, 어머니가 의아해하며 나를 보고 물었다.
바로 천 회장님의 이야기를 꺼내긴 좀 그래서 나는 대충 얼버무렸다.
“아니, 우리 정 여사 요즘 피부 탄력이 약해진 것 같아서. 콜라겐 좀 먹어야겠어.”
짝!
내 등짝을 가격하는 시원한 등짝 스매싱!
각성해서 몸이 일반인들보다 튼튼함에도 엄마의 이름으로 휘둘러지는 이 스매싱은 뼛속까지 아픔을 전했다.
“어휴, 아들이란 것들이 엄마한테 살갑게 굴 줄을 몰라. 이럴 거면 딸 낳을 걸 그랬어.”
어머니는 구시렁대며 집 안으로 들어섰고 나도 피식 웃으며 그 뒤를 따랐다.
“연준이 놈은?”
“동생한테 놈이 뭐니? 어제 늦게까지 훈련해서 아직 자나 봐. 곧 일어날 거야.”
“짜식, 바쁜가 보네.”
전에 벽을 넘어섰다는 거 같은데 그 뒤에도 훈련할 게 많은 모양이다.
S급 헌터인데도 매일 훈련이라니.
역시 난놈이야.
내가 그렇게 동생을 생각하며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 어머니가 물어왔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엄마가 맛있는 거 해줄까?”
“엄마 요리 좋지. 오랜만이기도 하고.”
‘연성 백반’ 2대 사장님의 요리 솜씨는 내가 제일 잘 알지.
저절로 입에 침이 고였지만, 나는 고개를 저으며 내가 들고 온 짐을 들어 보였다.
“오늘은 내가 요리사거든요? 정 여사님은 앉아서 푹 쉬시면 됩니다.”
“뭘 또 해온 거야?”
어머니는 내가 가져온 짐을 풀고 내용물을 보더니 잠깐 멈칫했다.
내가 가져온 요리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누구보다 잘 아실 분이었으니까.
“······.”
“오랜만에 생각나서 만들어봤어. 옛이야기도 해야 하잖아. 그치?”
“······그렇네.”
어머니는 복잡한 얼굴로 돼지국밥 재료를 보더니 주방으로 향했다.
“국밥엔 또 깍두기가 있어야지. 기다려, 엄마가 담근 거 가져올게.”
“······응.”
주방으로 가는 어머니가 코를 훌쩍이며 눈가를 슬쩍 닦는 건 못 본 척하도록 하자.
괜히 나도 눈가가 촉촉해질 것 같거든.
* * *
진득하게 고아낸 돼지 사골 육수에 물을 섞어 다시 끓여낸 뒤, 미리 삶아왔던 돼지 수육을 넣고 한소끔 더 끓여주었다.
그리고 다진 파를 뿌려주면 끝.
나는 완성된 돼지국밥을 식탁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어머니와 연준이 앞에 가져갔다.
물론 ‘연성이네’에서 가져올 때부터 [마나 번]으로 마력을 태운 상태였다.
“잘 먹을게, 아들.”
“······잘 먹을게.”
짜식, 쑥스러워하기는.
네가 암만 안 그런 척해도 네가 저번에 내가 싸준 도시락을 누구보다 맛있게 먹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지.
어떻게 알고 있냐고?
검선 어르신이 신이 나서 다 말해주더라고.
입 짧기로는 누구에게도 안 지는 연준이 놈이 정신없이 먹어 치웠다고 말이야.
그렇다고 눈치 없이 또 그걸 언급하면 창피해할 테니 일단은 모르는 척해주자.
“어머, 국물이 정말 진하고 고소하다. 돼지 뼈로 우려낸 거지?”
“응. 12시간 고았어.”
“고생했네. 그런데 그랬다고 쳐도 국물이 너무 좋은데?”
그야 당연하지.
일반 돼지 뼈가 아닌 S급 던전의 보스 몬스터, 제림니르의 뼈로 고아낸 국물이었으니까.
하지만 이걸 말해줄 순 없으니 나는 대충 고기도 함께 삶았다고 말을 돌렸다.
“넌 어떠냐? 먹을만해?”
“······응.”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연준이 녀석.
그러고 보니 어느새 연준이 그릇의 국밥이 반 이상 줄어 있었다.
고개를 거의 박듯이 하고 먹는 게 아버지랑 똑같네.
그 생각은 나만 한 게 아닌 듯했다.
“네 아빠랑 똑같지?”
“그러게. 아빠도 딱 저렇게 드셨는데.”
“······?”
나와 어머니는 서로 눈을 마주치곤 흐뭇하게 웃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그 이유를 모르는 연준이만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한 그릇 더 줄까?”
“응.”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릇을 내미는 녀석.
나는 피식 웃으며 그릇을 받아 고기도 푸짐하게 국물도 푸짐하게 퍼서 가져다주었다.
파송송 올리는 것도 잊지 않고 말이야.
“네가 너무 급하게 먹어서 말을 못 했는데, 처음에는 국물 맛만 먼저 음미해 봐.”
나는 그릇을 받자마자 다시 허겁지겁 국밥을 들이켜려는 연준이를 말리곤 국밥 먹는 팁을 알려주었다.
“어때, 국물 본연의 맛이 느껴지지?”
간을 안 한 상태에서 팔팔 끓다 갓 나온 국물을 먼저 한 입 맛 보는 것.
그게 나처럼 공을 들여 국물을 낸 집의 국밥이라면 진짜 돼지 베이스 국물의 진가를 알 수 있는 방법이었다.
국물 한 숟갈에 돼지 자체가 농축된 것 같은 맛이지.
“그다음에는 새우젓이나 소금으로 간을 해서 먹어봐. 형의 추천은 새우젓이다.”
새우젓은 발효 식품이라 그 독특한 풍미가 국물 본연의 맛을 살짝 흐리게도 하지만, 돼지국밥에서 느낄 수 없는 진한 감칠맛을 국물에 더해준다.
거기다 새우젓에는 지방 분해 효소가 들어있어서 고기 소화에도 좋고.
뭐, 일반 새우젓에 있는 소화 효소가 제림니르 고기를 분해할 수 있을 것 같진 않다만.
아무튼, 연준이 녀석은 내 팁대로 하는 게 맛있다는 걸 깨달은 모양인지, 고분고분 잘 따라와 주고 있었다.
흐뭇하네.
사실 이 팁은 내가 알아낸 게 아니라 할아버지랑 아버지한테 전수받은 거라서 말이야.
살아계셨다면 두 분이 연준이에게 알려주셨을 팁을 내가 대신 알려주는 것 같았다.
“훌쩍.”
어머니도 같은 마음인지 연신 코를 훌쩍대고 있었다.
“국물이 뜨거워서 그런지 콧물이 나네. 아이, 참.”
국물 핑계를 대고 계셨지만.
나는 피식 웃으면서 연준이에게 우리 집안에 내려오는 국밥의 마지막 가르침을 내리기로 했다.
“이제 뽀얀 흰 국물을 많이 즐겼으니 매콤한 빨간 국물로 넘어갈 차례란다.”
국밥을 먹을 때 매콤하게 먹는 데는 여러 방법이 있었다.
양념장인 다대기를 풀어서 먹는다던가, 뽀얀 국물을 유지한 채로 아주 매운 다진 고추를 넣어서 매콤하게 만든다던가.
하지만 우리 집안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국룰이 하나 있지.
나는 식탁 위에 올려놓았던 그 국룰의 재료를 손에 들었다.
“바로 깍두기 국물을 부어 먹는 거란다.”
“형은?”
“응?”
“형은 뭐 넣어서 먹는데?”
“······.”
참고로 나는 빨간 다대기 양념을 풀어서 칼칼하게 먹는 걸 즐긴다.
아버지는 깍두기 국물파였지만 말이야.
그런데 연준이 이놈, 나랑 같은 방식으로 먹으려고 하는가 본데?
그렇게 둘 순 없지!
“연준아.”
“응?”
“형을 원망하지 마라.”
나는 연준이의 국밥 그릇에 스윽 깍두기 국물을 부었다.
“흐흐흐, 나만 당할 수 없지. 이게 바로 아버지에게 당한 원한이다!”
아버지, 보고 계십니까.
당신이 아끼시던 막내에게 제가 당했던 짓을 그대로 돌려주었습니다!
나의 사악한 복수는 S급 헌터의 분노를 불러일으켜 난장판을 만들어낼 줄 알았건만, 이런 내 기대는 이상하게 어긋나 버렸다.
“맛있는데? 역시 형이 말해준 대로 먹으니 좋네.”
“어? 그, 그렇구나. 잘됐네. 크흠.”
아니, 깍두기 국물을 부어서 먹는 게 더 낫다고?!
너무 놀란 나머지 나는 말을 더듬고 헛기침을 할 정도였다.
그리고 정말 놀란 건 따로 있었다.
“형도 먹어. 내가 부어줄게.”
“자, 잠깐만!”
주르륵.
내 아름다운 하얀 국물 위로 번져나가는 붉은 흔적.
나는 내 국물을 더럽히는 깍두기 국물을 보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점까지 아버지를 닮다니.
아버지, 당신의 유전자는 참으로 강력하시군요.
“맛있게 먹었어, 연성아.”
그렇게 국밥을 깨끗이 비운 뒤 거실의 소파에 앉아 티타임을 즐기고 있을 때,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이상하게 너희 아빠랑 같이 먹는 느낌이 들었어.”
“그러게요. 아버지에 이어서 연준이까지 함부로 깍두기 국물을 부어버릴 줄이야.”
“······형도 부었으면서.”
연준이가 입을 삐죽거리며 대꾸하자 할 말이 없어진 나는 부들부들 떨 수밖에 없었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본 어머니가 부드럽게 웃었다.
“너희 아빠 살아있을 때도 그랬어. 아빠가 국물을 부어버리면 연성이는 빽빽대고 연준이는 뭔지도 모르고 맛있다고 먹고. 후후후.”
그 뒤로는 자연스럽게 아버지가 살아계실 적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나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어머니는 연애하던 시절의 추억을 하나둘씩 꺼냈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는 연준이는 그 모든 이야기를 하나하나 기억하듯 경청했다.
“연성아, 그래서 여기 온 이유는 천 회장님 때문이지?”
그렇게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이야기도 끝나자, 어머니가 먼저 본론을 꺼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머니가 아직 말씀해주지 않은 아버지의 이야기가 있는 것 같아서요.”
“······엄마?”
연준이도 이 이야기는 처음인지 눈을 휘둥그레 뜨며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우리 형제의 시선을 받은 정 여사는 짧게 한숨을 내쉬곤 고개를 끄덕였다.
“너희 아버지는 몬스터에게 돌아가신 게 아니야.”
“······네?”
“정확히는 마력 중독으로 돌아가신 거지.”
아니, 잠깐만. 이게 무슨 소리지?
내가 당황해서 어머니를 보자 정 여사는 차갑게 굳은 표정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게 내가 아직 천 회장님을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란다.”
약선구급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