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chef of the constellations RAW novel - Chapter 57
57화. 국밥이 땡기는 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직원들에게 할 일이 있다고 말한 뒤, 내 방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지체없이 할아버지가 썼다는 [약선구급방]을 꺼내 들었다.
“할아버지가 이런 연구를 하셨다니······.”
검은 가죽 표지로 감싸진 노트는 얼마나 자주 썼는지, 손때가 가득했고 손 닿는 부분이 하얗게 닳아 있을 정도였다.
나는 그 표지를 열어 제일 첫 번째 문장을 읽었다.
– 맛있는 요리는 사람을 구한다. 내 아들이 한 말이었다.
아버지는 사람의 의욕을 살리기 위해 그런 말씀을 하셨지만, 할아버지는 다르게 해석하신 모양이었다.
– 그래서 나는 요리로 사람을 구하고자 한다.
진짜 요리가 사람을 구할 수 있다고 믿으신 건가?
물론 [성좌의 요리사]로 각성해서 실제로 요리에 특수 효과를 담을 수 있게 된 나는 어느 정도 그 실마리를 잡긴 했지만······.
설마 할아버지도 각성하신 건 아니겠지?
내 의심은 바로 다음 구절에서 해결되었다.
– 나는 아들처럼 각성하진 못했다. 하지만 한 평생 요리를 해 온 몸. 조금이라도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이 연구를 시작한다.
그렇게 시작한 할아버지의 서두는 이 문장으로 마무리되었다.
– 마력 중독으로 죽어가는 내 아들을 살리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며.
“할아버지······.”
아직 어린 우리에겐 비밀로 했지만, 어머니와 할아버지는 아버지의 상태를 다 알고 있었고 치료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쓰셨던 모양이었다.
각성하지 못한 할아버지가 어떻게든 요리를 통해 방법을 찾으려고 했던 흔적을 보며 나는 가슴 한구석이 찡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내용을 볼까.”
코를 훌쩍이며 다음 장으로 페이지를 넘겼다.
– 예로부터 한국 사람들은 ‘밥이 보약’이라고 했다. 먹는 것과 건강, 그리고 병의 치료를 따로 떨어뜨려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약선 요리라 해서 식사로 약을 대신하는 요리들이 전통적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거기서부턴 다시 사설이나 잡담 없이 전통 약선 요리의 레시피들만 빽빽하게 쓰여 있었다.
내가 아는 요리도 있었고, 알지만 레시피를 몰랐던 요리도 있는 데다, 전혀 모르는 요리들도 많았다.
“역시 할아버지네. 내공이 남달라.”
나 역시 오랜 시간 요리를 연구하고 다양한 요리를 배워왔지만, 할아버지의 내공은 못 당할 것 같았다.
심지어 할아버지는 옛날 분이셨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의 요리도 꽤나 공부하신 것 같았다.
중국이나 일본, 동남아시아의 요리법이 꽤 상세하게 나와 있었다.
“이거 공부가 많이 되네. 음? 2부가 있네?”
나는 할아버지의 레시피로 채워진 1부를 다 읽고 2부로 넘어갔다.
그리고 2부의 첫 문장에는 또 할아버지의 글이 나왔다.
– 대경이의 동료 중 유재성이라고 탄광촌 출신 광부가 있었다.
아, 나도 기억난다. 재성이 아저씨.
가끔 아빠랑 함께 식당에 들려서 국밥 시원하게 드시고 가셨던 분이었지.
내게 용돈도 잘 챙겨주셨었는데.
안타깝게도 아버지보다 먼저 돌아가셨다.
– 어느 날, 던전에 다녀온 대경이가 그 친구가 가르쳐줬다면서 목에 낀 마력을 지우자며 삼겹살을 구워달라고 했다. 당연히 효과는 없었다.
아버지가 국밥을 드실 핑계로 이야기하던 내용이네.
이게 재성이 아저씨가 알려준 거였구나.
사실 돼지고기의 기름기가 탄가루를 씻어준다는 건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는 이야기였다.
기관지로 들어가는 탄가루를 식도로 넘어가는 돼지기름이 어떻게 씻어주겠어.
하지만 그런 핑계를 대서라도 단백질을 섭취해야 할 정도로 광부의 일은 육체적으로 고된 직업이었으니까.
고기를 먹어서 힘이 나면 몸이 건강해졌다고 느껴질 수도 있었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할아버지의 기록을 마저 쭉 읽어 내려갔다.
– 그래서 나는 아들과 아들의 동료들에게 삼겹살 대신 평소처럼 돼지국밥을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국밥을 먹고 난 다음 날이면 다들 마력 흡입의 후유증이 없다며 신기해했다.
나는 할아버지의 기록을 읽어 내려가다가 흠칫했다.
이게 기분 탓이 아니었다고?
할아버지는 당연히 마력이 없는 일반 재료로 요리를 했을 텐데도 효과가 나온 모양이었다.
–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서둘러 천재호 그 친구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삼천 그룹의 연구소에서 테스트해 본 결과, 놀랍게도 돼지국밥에 유의미한 효과가 있다는 게 밝혀졌다. 특히 뜨거운 물로 돼지를 조리했을 때 효과가 더 강해졌다.
내가 [천미통]을 통해 알아낸 [마력 해소] 효과를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습관적으로 돼지국밥을 드시다 발견한 모양이었다.
– 재호는 바로 연금술사들과 함께 마력 중독 해소용 포션의 제작에 들어갔다. 나 역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그 뒤로는 할아버지가 돼지를 이용한 요리로 다양하게 마력 해소 효과를 시험해본 실험 일지가 적혀 있었다.
정말 수없이 테스트를 하신 모양인지, 몇십 장이나 되는 페이지가 그 내용으로 빼곡하게 차 있었다.
그 실험 하나하나에 아들을 살리겠다는 할아버지의 마음이 담긴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렇게 넘기던 페이지의 끝자락에서 갑자기 필체가 흐려졌다.
뭐지?
– 아들이 죽었다.
아.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인 모양이었다.
할아버지의 필체는 극심한 슬픔과 고통으로 엉망진창이었고 군데군데 눈물로 번진 흔적도 있었다.
– 내가 지금까지 연구한 모든 게 필요 없어졌다. 하늘은, 아니 저 개 같은 게이트가 대경이를 데려갔고 나는 내 유일한 자식을 잃었다. 연구는 끝이다. 대경이가 보고 싶다.
“할아버지······.”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을까.
자식을 먼저 보내는 부모의 마음이 어떤지 나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같은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만 공감할 뿐이었다.
그 뒤로 한동안 글이 없다가 시간이 꽤 지난 듯 다시 또렷해진 필체로 새로운 글이 적혀 있었다.
아니, 또렷하기보다는 분노로 힘을 조절할 수 없어서 꾹꾹 눌러쓴 듯한 필체였다.
– 재호의 연구소에서 [마력 중독 해소 포션]이 개발되었다고 한다. 대경이가 몸으로 증명해준 검사 결과와 내 실험 자료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며 재호가 감사 인사를 해왔다.
– 재호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어째서 이런 약이 내 아들이 고통받을 때는 나오지 않았단 말인가. 이 약이 정말 필요했던 대경이는 치료받지 못했는데, 왜 다른 이들은 치료받을 수 있단 말인가.
– 하늘이 미웠다.
재호가 미웠다.
그래서 재호가 준다는 돈도 마다했다. 그건 대경이의 피 값이었으니까.
글자 하나하나에 자식을 잃은 할아버지의 한이 서려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 마음을 이해해보려 노력하면서 다시 책장을 넘겼다.
마지막 장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 대경이가 먼저 세상을 뜬 지 3년이 지났다.
아버지가 죽고 3년 뒤면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이네.
노환으로 힘이 약해서 많이 흐렸지만, 전보다 훨씬 정갈한 필체로 글이 적혀 있었다.
– 이 기록이 아마 내 연구의 마지막이 되겠지. 나는 아들이 죽은 후로 연구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눈을 감으면 아들의 얼굴이 아른거려 결국 다시 연구를 재개할 수밖에 없었다.
– 연구할수록 마력이 해소되는 효율이 높아졌다. 재호의 연구소에서 나오는 마력 중독 해소 포션 역시 효율이 높아졌다. 많은 사람이 마력 중독의 위험에서 목숨을 구했다. 대경이가 이 사실을 알면 좋아하겠지.
할아버지가 이것저것 시도한 돼지국밥 국물을 삼천 연구소에서 분석해서 약효를 추출하는 식으로 연구를 진행시킨 모양이었다.
그 덕분에 지금 시중에 판매되는 고품질의 마력 중독 해소 포션이 나올 수 있던 거고.
– 하지만 아직도 마력암 단계까지 간 환자를 치료하기엔 약효가 모자랐다. 재호 녀석이 연금술사들이 쓰는 던전산 약초를 써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지만, 어떤 약초를 넣어야 하는 지는 연금술사들도 나도 몰랐다.
당연한 결과였다.
나처럼 먹고 재료의 효과를 확인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그걸 알 수 없을 테니까.
그런데도 할아버지는 포기하지 않고 여러 추측을 하신 모양이었다.
– 내 예상으로는 돼지고기와 궁합이 좋은 정구지와 비슷한 약초가 좋을 것 같다. 일반 부추로는 효과가 부족하니 던전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써야겠지.
– 훗날, 이 연구기록을 볼 사람이 연성이 놈일지, 아니면 다른 사람일지 모르겠지만, 내 연구를 이어 나가 더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해줬으면 한다.
– 그게 사람들을 구하다 먼저 하늘로 떠난 내 아들 대경이의 바람일 테니까.
– 재호 놈에게도 사과를 해야겠다. 이제 와 돌이켜보니 그 친구의 잘못이 아니었어. 내 원망을 묵묵히 받아준 재호야, 미안하다.
할아버지는 그 문장을 마지막으로 [약선구급방]의 마무리를 지었다.
“할아버지, 그 연구 제가 이어 나갈게요.”
나는 할아버지와 달리 약초를 먹어서 효과를 확인할 수 있고 이미 많은 약초의 효과를 알아낸 상태였다.
거기다 마력을 태워서 마력 함유량을 조절할 수도 있으니 이 연구는 마땅히 내가 이어받아야겠지.
“그나저나 부추라······.”
이미 이번에 국밥을 먹으면서 던전 부추를 사용해 먹어본 나였다.
[천미통]으로 살펴도 딱히 궁합이 발동되지는 않았다.“지금까지 체크해본 약초 중에 부추랑 비슷한 게 있던가?”
나는 [약선구급방]을 내려놓고 할아버지처럼 내 나름의 연구를 기록한 노트를 꺼냈다.
채하나의 약초상에서 가져온 약초를 맛보고 그 효과를 정리해 놓은 노트였다.
그렇게 한참이나 노트를 살피던 나는 약초 하나를 발견했다.
“이거라면 혹시······.”
‘게으름뱅이 풀’.
부추와 비슷하게 생긴, 잡초 같은 풀로 효과는 두 가지였다.
[‘게으름뱅이 풀’은 [효과 : 스테미너 강화]와 [효과 : 산공독]이 존재합니다.] [‘게으름뱅이 풀’은 독성 때문에 식용으로 부적합합니다.]효과 중 하나인 [스테미너 강화]는 몸의 활력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었다.
“그런 점에서 효과도 부추랑 비슷하지.”
정구지의 효과가 바로 스테미너 상승이었으니 [스테미너 강화]와 유사한 효과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남은 다른 효과는 바로,
“[산공독(散功毒)]”
무협지에서 내공을 흩어버린다는 산공독에서 이름을 따온 특수 효과였다.
‘게으름뱅이 풀’은 스테미너를 강화해주는 대신 내공, 즉 마력을 흩어버리는 일종의 독초였다.
그래서 연금술사들은 ‘게으름뱅이 풀’로 독을 만들어 마력을 주로 쓰는 몬스터들에게 독으로 사용했다.
농도가 진하면 마정석을 파괴하는 일도 있었기에 잘 너무 강하게 쓰진 않았지만 말이야.
나도 독초였기에 지금까지 요리에 쓸 생각을 안 했고.
“이 게으름뱅이 풀의 마력을 적당히 태워서 마력을 흩어버리는 효과를 마력 해소용으로 쓸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효과가 돼지국밥의 효과와 겹치면, 할아버지가 원했던 마력암 치료제가 완성될지도 몰랐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바로 해보자.”
나는 서둘러 주방으로 내려가 돼지국밥을 만들기 시작했다.
어제 끓여놓은 국물에 고기만 다시 데워서 토렴하면 끝이기에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러면 여기에 ‘게으름뱅이 풀’을 던전 부추랑 섞어서 정구지무침을 만든 뒤, 섞어 먹어보자.”
게으름뱅이 풀과 던전 부추는 모양도 비슷했기에 무침을 만들고 나니 큰 차이도 나지 않았다.
나는 국밥에 정구지무침을 넣어 섞은 뒤 크게 한입 떠먹어보았다.
“맛있네.”
역시 국밥에는 정구지무침을 넣어줘야지.
한층 더 완벽해진 맛에 내가 흐뭇하게 미소를 지을 때였다.
물론 그만큼 마력도 강력해서 심장이 뛰기 시작했지만 말이다.
“······음?”
[마나 번]으로 마력을 태우지도 않았는데 두근거리던 심장이 저절로 가라앉았다. [국물 요리와 돼지고기, 그리고 게으름뱅이 풀의 새로운 궁합을 발견했습니다.] [완벽한 조합입니다! 약선 요리, [부추를 넣은 돼지국밥]을 발명했습니다.] [약선 요리의 특전으로 해당 요리를 먹을 경우 특수 효과 [마나 번]이 100% 확률로 발동됩니다.]그러니까 먹는 즉시 몸 안의 마력을 태워준다는 거지?
지금이야 재료에 마력이 가득한 채로 먹어서 [마나 번]으로 태워도 플러스마이너스 제로인 수준이었지만,
“이거 재료의 마력을 미리 태우고 스킬만 발동할 정도로 조절하면, 먹는 사람의 몸에 쌓인 마력을 완전히 태울 수 있겠는데?”
놀랍게도 영웅급 룬문자 각인 아이템으로 겨우 발동할 수 있는 스킬 [마나 번]을 요리를 먹는 것만으로도 발생시킬 수 있는 요리가 탄생했다.
그 사실에 놀란 내가 입을 쩍 벌리고 있을 때였다.
[요리의 성좌들 사이에서 당신의 명성이 높아집니다.]이거 내 생각보다 뛰어난 발명이었나 본데?
나는 할아버지가 적은 [약선구급방]을, 그리고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할아버지 말씀대로 요리로 사람을 살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다 할아버지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연구해주신 덕분이에요.”
아버지의 신념이 할아버지의 노력이 되었고, 내 손에서 결실을 맺었다.
이 돼지국밥에 3대의 꿈이 녹아 있었다.
* * *
며칠 뒤, 나는 국밥 할아버지, 그러니까 천 회장을 가게로 모셨다.
“그래서, 내 지원은 필요 없다고?”
“네.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까요.”
“혹시 네 어머니에게서 모든 사실을 듣고 결정한 거냐?”
내 말에 그의 표정이 흐려졌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겠구나. 대경이의 죽음에 내 잘못이 없다고는 못하니.”
어머니는 아직 천 회장에 대한 원망이 남아있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슬픔에 젖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도 노력을 많이 했단다. 대경이가 어릴 때부터 봐왔지. 그 아이가 죽었을 때, 나는 내 자식이 죽은 것처럼 슬펐어.”
회한에 찬 그의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할아버지의 기록을 봤어요.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치료약을 개발하려고 하셨다고요.”
“그래. 덕분에 완전하지는 않아도 치료약을 만들긴 했지. 하지만 그땐 이미 너무 늦은 뒤였어.”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야 나온 마력 중독 해소 포션.
분명 우리 가족에겐 비극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약 덕분에 많은 사람이 살 수 있었죠. 아버지는 그걸 기뻐하셨을 겁니다.”
“말이라도 그렇게 해준다니 고맙구나.”
“말뿐만이 아니에요.”
나는 쓰게 웃는 천 회장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할아버지는 아버지의 바람을 이루기 위해 계속 연구를 이어가셨어요. 그리고 성공 직전까지 가셨죠.”
“그래, 그 친구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들었다. 완성 일보 직전이었다고.”
“그걸 제가 완성했습니다.”
“······연성이 네가 말이냐?”
내 말에 놀란 천 회장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 클래스가 [요리사]라고 했죠? 할아버지가 남긴 약선 요리 연구를 바탕으로 마력암을 치료할 요리를 만들었어요.”
물론 클래스 특성 탓에 내가 직접 만들지 않으면 안 되지만, 일단은 치료 방법이 생겼다는 게 중요하지.
“전 아버지의 죽음을 개죽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맛있는 요리가 사람을 살린다는 아버지의 의지를 할아버지와 제가 이어받았고 이렇게 완성했으니까요.”
“······.”
“그래서 천 회장님, 아니 국밥 할아버지를 원망하지도 않습니다.”
“······정말이냐?”
내 말에 사정없이 떨리는 국밥 할아버지의 목소리.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도 노력을 많이 했다는 걸 아니까요.”
“고맙구나······.”
국밥 할아버지의 주름진 눈가 위로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자식처럼 아끼는 조카의 죽음에 자신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지내온 오랜 시간 동안, 마음고생도 심했겠지.
천 회장은 내가 건넨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는 입을 열었다.
“그러면 사죄의 선물이 아닌 고마움의 선물을 해야겠구나. 필요한 게 있느냐? 헌터를 할 생각이라면,”
“역시 헌터는 괜찮아요. 제가 이 약선 요리를 완성한 이유는 싸움이 아니라 요리로 사람들을 도우라는 의미일 테니까요.”
아버지나 연준이는 던전을 공략하고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하면서 주변을 돕겠지만, 나는 요리로 도울 생각이었다.
그래서 나는 천 회장을 향해 내가 며칠간 고심했던 내용을 입에 담았다.
“만약 정 도와주시고 싶으시다면, 아버지 이름으로 재단 하나만 세워 주세요.”
“재단?”
“네. 던전 재해로 피해받는 분들을 치료하는 재단이요.”
일명 도대경 던전재해자치료재단.
던전의 출현과 마력의 유출로 일반인 중에는 아직 마력 중독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많았다.
마력 중독 해소 포션은 던전산 재료로 만들었기에 가격도 비쌌고.
“그러니 회장님이 재단을 만들어서 치료를 지원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연금술사들이 약을 만들고 제가 정기적으로 가서 돼지국밥을 만들어 주면 더 많은 사람이 목숨을 구할 테니까요.”
그렇게 말하고 나는 씨익 웃었다.
“그 활동이 제 아버지의 이름으로 진행된다면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그리고 어머니도 기뻐하실 거예요.”
“······허허허, 역시 수웅이와 대경이의 핏줄이구나.”
내 말에 잠시 말을 잃었던 천 회장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한 사람에게만 마음의 빚을 졌던 나랑 달리 너는 더 많은 사람부터 생각하는구나. 그래. 내 기꺼이 하도록 하마.”
“아, 한 가지 더요.”
나는 자리를 뜨려는 국밥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가끔 오셔서 아버지나 할아버지 이야기 좀 해주세요. 제 요리도 좀 드시고요. 요즘 통 안 오셨잖아요. 건강하신 모습을 봐야 제가 안심이 될 것 같습니다.”
“······연성아.”
국밥 할아버지는 떨리는 손으로 내 손을 마주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꼭 그러도록 하마. 고맙다, 연성아.”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걸까.
표정이 한층 더 밝아진 국밥 할아버지가 떠나는 모습을 보며 나는 하늘을 향해 빙그레 웃었다.
분명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이걸 원하셨을 거다.
“자, 그러면 국밥이나 먹을까요?”
“으악! 또 사골 끓이는 거야?!
천오가 질색하는 소리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오늘은 유난히 국밥이 진하게 땡겼으니까.
나 한 그릇, 아버지와 할아버지 한 그릇씩 세 그릇을 놓고 먹어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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