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chef of the constellations RAW novel - Chapter 58
58화. 서열정리
오늘도 낮 장사인 ‘연성이네’를 끝마치고 밤 장사인 ‘신야식당’까지 무사히 마친 뒤, 모두 쉬러 가려고 할 때였다.
“사장, 나 할 말이 있어.”
항상 밝고 쾌활하던 천오가 웬일로 진지한 표정을 하며 손을 들었다.
나는 에녹과 함께 홀을 정리하던 손을 멈추고 그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휴가 필요해?”
그러고 보니 이주일에 한 번씩 정기 휴일에만 쉬었지, 제대로 된 휴가를 준 적이 없구나.
나야 10년 넘게 이렇게 장사를 해왔으니 익숙해도 직원들한테는 그러면 안 됐는데.
반성하자.
앞으로 로테이션을 정해서 쉬게 해줘야겠네, 라고 생각할 때 천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휴가는 필요 없어. 500년이나 강제로 쉬어서 쉬는 게 더 지겨워.”
“아, 오행산.”
천계에서 날뛰다가 부처님 손바닥에 잡혀 그대로 오행산에서 500년이나 갇혀 있었지.
아무것도 안 하고 밍기적대는 일엔 천오, 그러니까 손오공만 한 존재가 많지 않을 터였다.
아마 르뤼에가 떠오를 때까지 바다 밑에서 잠들어 있을 크툴루 정도?
아니, 그나저나 크툴루는 실존하는 성좌려나?
“그럼 할 말이 뭐야?”
“대장이 필요해.”
“대장?”
갑자기 무슨 소리지? 대장이라니?
내가 의아해서 고개를 갸웃거리자, 천오가 답답하다는 듯 주먹으로 가슴을 쿵쿵 쳤다.
“서열정리가 필요하다는 소리야. 일하는 곳에서 위아래는 중요한 법이라고!”
그러면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천오.
서, 설마 나랑 싸우려는 건 아니겠지?
내가 등에 식은땀을 흘리면서 어정쩡한 포즈로 주먹을 들어 올리자, 천오가 머리를 긁적였다.
“사장, 뭐해? 나랑 싸우려고?”
“서열정리 하려는 거 아니었어?”
“사장은 예외지. 고용주랑 무슨 서열정리를 해?”
“······그렇지? 하, 하하.”
휴, 놀랐네.
아무리 분신이라지만 제천대성이랑 싸워야 하는 줄 알고 쫄았네.
“사장은 우리 법사님 같은 존재니까 예외. 남은 셋이서 서열을 정해야 하지 않겠어?”
“아, 그러니까 우리 직원 셋 중에서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처럼 위아래를 정하겠다는 거지?”
“그거지! 역시 사장, 말이 통하네!”
천오가 그제야 속이 시원하다며 끽끽 웃으며 덩실덩실 춤을 췄다.
아니, 그런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지금도 충분히 잘 지내고 있잖아. 서열정리를 할 필요가 있어?”
“있지! 너희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해?”
천오의 말에 어깨를 으쓱이는 에녹과 관심 없다는 듯 한숨을 쉬는 미야.
“서로 일하는 파트가 다른데 굳이 서열을 정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저는 서열에 관심 없으니까 빼주세요.”
둘의 말에 천오가 충격을 받은 듯 입을 쩍 벌렸다.
“이래서 서양 요괴들은! 장유유서도 모르다니! 엄연히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 건데!”
“아니, 너 도교 출신이잖아. 지금은 부처님이고.”
옥황상제한테 벼슬 받고 성불까지 한 주제에 갑자기 웬 유교 논리냐.
천오는 다른 둘이 서열정리에 시큰둥하자 다급하게 날 보았다.
“아니, 사장, 진짜 서열정리는 중요하다니까? 내가 말 안 듣는 동생 놈들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데.”
아무래도 천오는 서유기 시절, 틈만 나면 자길 모함하던 저팔계나 따르긴 해도 신뢰는 얻지 못했던 사오정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삼장 법사를 모시고 서역까지 다녀오면서 손오공이 고생했던 일을 생각하니 PTSD가 떠오르나 보네.
나는 천오가 단순히 형 노릇을 하고 싶어서 유치하게 구는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같은 날 들어온 알바 동기라고 해도, 리더는 필요할지도 모르겠네. 다른 식당도 그 정도는 하니까.”
우리야 알바를 잘 안 뽑으니까 신경 쓰지 않았는데, 알바나 직원을 많이 뽑는 식당 같은 경우는 그들을 통솔할 리더도 같이 뽑는 편이긴 하지.
“그런데 어떤 식으로 서열정리를 하려고?”
“당연히 연공 서열이지! 나이가 많은 존재가 형이 되는 게 당연한 거 아니겠어?”
천오가 씨익 웃으면서 으스댔다.
아이고, 이놈, 그냥 형 노릇을 하고 싶은 거였네.
저팔계나 사오정에게 형님이라 불리는 게 좋았나?
그런데 쟤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게 있는데.
“천오, 너, 아니 손오공의 나이가 얼마지?”
“으음, 잠시만 기다려. 정확히 세어본 적이 없어서.”
천오는 여의봉으로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손가락을 꼽았다.
“화과산 돌에서 태어나서 미후왕으로 산 게 342년, 천계에서 15일 동안 필마온 노릇을 했으니 지상에서 15년, 제천대성 때는 183일 동안 일했으니 183년, 팔괘로에서 49일 버텼으니 또 49년, 오행산에서 500년, 서역으로 가는 길이 14년, 그 이후에 1,400살을 더 먹었으니······.”
“2,513살입니다. 인간 세상을 기준으로 기원전 468년쯤에 태어났네요.”
계산이 서투른 천오가 머리를 벅벅 긁자 옆에서 보다 못한 에녹이 대신 계산해주었다.
역시 건축가. 이과 출신이라 계산이 남다르네.
“그렇지. 2,513살! 어때? 내가 제일 형이지?”
가슴을 쭉 내밀며 으스대던 천오가 미야를 보며 물었다.
“넌 몇 살이야?”
“나이를 함부로 물어보다니 무례하네요. 역시 배를 가르고 자갈을 넣고 꿰매야······.”
미야가 마녀 모드로 들어가기 전에 내가 서둘러 중재했다.
“나도 궁금했으니까 알려주면 안 될까요? 우리 서로 한 가족이 됐는데 서로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잖아요.”
“음, 마스터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내 요청에 미야가 살짝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직원 뽑기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듀스 알바 플래닛 999가 열린 지도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
서로 일은 익숙해졌지만, 아직 서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모르는 상태였다.
이 기회에 서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친해지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저는 그렇게 오래된 존재는 아니에요. 바바 야가로 산 건 300년이 안 됐으니까요.”
미야의 말에 의하면 기독교의 마녀사냥이 중세를 뒤덮고 ‘마녀’에 대한 고정관념이 생겼는데, 그 이미지가 슬라브족이 사는 동유럽으로 전해져 바바 야가라는 존재가 탄생했다나?
“마녀로 산 것도 그렇게 오래되진 않았어요.”
“그래요?”
“마녀라는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건 샤를마뉴가 8세기쯤에 공의회에서 발표했을 때니까요.”
아, 샤를마뉴.
저번에 자기 할아버지인 카롤루스 마르텔을 우리 가게로 알바로 보내려고 했던 그 패륜······, 이 아니라 그 유명한 서로마 제국 황제.
미야의 말에 천오가 히죽 웃으면서 즐거워했다.
“그러면 1,300살 정도인가? 내 나이의 딱 반이네.”
“마녀로 산 건요. 여신으로 산 기간은 다르죠.”
“······여신?”
천오가 벙쪄서 묻자 미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 원래 모습은 프라우 홀레라는 게르만의 여신이었으니까요. 어디 보자······.”
미야가 잠시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더니 답을 내고 입을 열었다.
“프라우 홀레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한 건 기원후 2세기쯤이었네요.”
“그, 그래도 1,800살이네!”
“그 이름으로 불리진 않았지만, 선사시대 게르만족의 여신으로 산 건, 기원전 2,000년 전?”
“그, 그러면······.”
“최소 4천살입니다.”
미야가 4천 살이 넘었다는 에녹의 말에 천오가 입을 쩍 벌렸다.
나도 미야가 그렇게 오래된 존재인지는 몰랐네.
하긴, 원래는 굉장히 중요한 여신이었다니까 오랜 시간 숭배받았던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그, 그럼, 에녹, 너는?”
“아, 저 말입니까?”
미야가 자신보다 나이가 많자 천오가 서둘러 에녹을 찾았다.
에녹이 항상 경어로 상대를 대하니까 어려 보였나 보네.
천오야, 그런데 그거 실수야.
에녹의 나이를 대충 짐작하고 있던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천오한테는 안 보이는 모양이었다.
“글쎄요, 성경에 따르면 제 할아버지가 최초의 인간이긴 합니다.”
“······어?”
“성경의 기록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대충 6천 살이 조금 안 되겠네요.”
“······응?”
“하하, 물론 어디까지나 성경의 기록에 따를 때 이야기입니다. 천오도 알지 않습니까. 성좌들의 세계관은 실제 현실이랑 조금 다르다는걸.”
에녹의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성좌들은 믿음과 신앙의 영역에서 온 존재들이기에 그들의 세계관은 실제 현실과 분리되어 있다는 이야기는 종종 들었다.
실제로 성경 기록만 보자면 실제로 46억 살인 지구의 나이는 6천 살이어야 하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잖아?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4천 살······. 6천 살······.”
다른 동료들의 나이를 들은 천오가 침울해져서 식당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울적해하고 있다는 거지.
“내가 막내라니······. 팔계랑 오정이 보면 엄청 비웃을 거야······.”
물론 손오공이 태어났다는 화과산의 커다란 돌은 천지가 열릴 때 생겼다고 하니 그렇게 따지면 제일 나이가 많은 건 손오공이겠지만, 태어난 것 자체는 한참 나중이니 우기기도 자존심이 상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구석에서 침울해하는 천오를 보며 애써 웃음을 참고는 다가가서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에이, 나이가 무슨 상관이 있겠어. 그렇게 따지면 내가 제일 막내지.”
직원들이 2천 살, 4천 살, 6천 살이 넘는 가운데 나는 겨우 서른셋이었으니까.
막내라도 한참이나 막내였다.
아, 그러고 보니 서른 넘고 나서 몸이 이곳저곳 쑤셔서 옛날 같지 않다고 종종 그랬는데 이제 그것도 하면 안 되겠네.
“그러면 에녹 씨가 리더가 되는 건가요?”
“하하, 저는 해도 상관없고 굳이 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에녹이 웃으면서 어깨를 으쓱하자, 나는 미야를 바라보았다.
미야는 내 시선을 받곤 고개를 사정없이 흔들었다.
“저는 그런 자리 익숙하지 않아서 싫어요. 마스터가 시켜도 안 할 거예요. 다만······.”
“다만?”
“동생을 따끔하게 혼내는 건 재밌을 것 같네요.”
여전히 침울해 있는 천오를 보며 입꼬리를 씩 올리는 마녀 모드 미야.
아, 이거 안 된다.
연공 서열로 순서를 정하면 천오의 뱃속엔 자갈만 가득하게 될 거야.
나는 다급히 다른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그러면 연공 서열 말고 다른 걸로 정해보는 건 어떨까요?”
“다른 거라면요?”
“역시 요즘 같은 시대에 나이가 뭐가 중요하겠어요. 중요한 건 실력, 그리고 기여도죠.”
“실력?”
내 말에 천오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들었다.
그래, 옥황상제도 무서워서 피할 정도로 싸움 하나는 기똥찬 녀석이니까, 반응할 줄 알았다.
하지만 직원들을 싸워서 서열을 정하는 그런 야만스러운 일을 할 리가 없지.
나는 씨익 웃으면서 손가락을 들어 냉장고를 가리켰다.
“요즘 고기가 다 떨어져 가거든요. 식당에 가장 필요한 재료를 가져다주는 직원이 리더가 되는 건 어때요?”
경쟁을 하려면 나이나 싸움이 아니라 우리 식당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해야 하지 않겠어?
내 말에 리더를 정하는 일에 시큰둥했던 미야나 에녹도 고개를 끄덕였다.
“가게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기꺼이 할게요.”
“안 그래도 제가 요리에 도움이 되는 일이 많이 없어서 죄송했는데 이렇게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니 영광입니다.”
“할게! 실력으론 어디 가서도 꿇리지 않아!”
직원들 모두가 찬성하자 나는 씨익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기한은 내일 낮 장사가 끝난 시점부터 그 다음 날 아침까지로 할게요. 내일은 ‘신야식당’이 쉬는 날이니까.”
직원들이 늘어도 ‘신야식당’은 여전히 사흘에 한 번씩 열고 있었다.
방금 말한 것처럼 재료가 점점 떨어지고 있었거든.
특히 고기가.
이번 기회에 고기를 좀 수급하면 더 자주 열어도 될것 같았다.
그때 미야가 손을 들었다.
“재료는 고기여야만 해야 하나요?”
“아, 꼭 고기가 아니어도 좋아요. 요리에 쓰일 수 있는 거라면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요리사로서 새로운 재료는 언제나 환영이지.
거기다 할아버지의 [약선구급방]에 나와 있는 레시피도 실험해보고 싶었고 말이야.
“그럼, 여러분의 성과물을 기대할게요.”
과연 어떤 재료들을 가져다줄까?
나는 직원들이 가져올 재료들을 기대하는 마음에 가슴이 두근댔다.
쿵!
“사장, 어때! 이 정도면 충분히 쓸 만하지? 내가 1등이다!”
이틀 뒤, 동이 틀 무렵, 천오가 슬픈 눈망울을 한 미노타우로스를 생포해서 가져올 때까지는 말이다.
“으, 음머어······.”
누렁이의 원한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