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chef of the constellations RAW novel - Chapter 77
77화. 장군님이 부르신다
내가 이순신 장군님의 구인 글을 보기 몇 시간 전.
“어?”
가네샤가 주고 갔던 성좌 마켓 이용허가서와 성좌 마켓 입점 허가증이 빛나기 시작했다.
아직 한창 ‘연성이네’ 낮 장사 중이었던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에녹 씨, 잠깐 주방에 좀 다녀올게요.”
“네, 사장님. 홀은 제게 맡기고 다녀오십시오.”
나는 기다리는 손님들에게도 양해를 구한 뒤 일단 두 서류를 손님들에게 보이지 않게 숨기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마스터? 무슨 일이에요?”
“아, 잠시 확인할 게 있어서요.”
주방에서 분주하게 일하던 미야의 물음에 나는 품에 있던 서류를 꺼내 들었다.
서류에서는 휘황찬란한 빛이 마구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와, 이거 오픈 키친에서 확인했으면 큰일 날 뻔했네.”
손님들이 눈뽕 제대로 맞았겠어.
근데 이 흘러나오는 빛을 어떻게 끄지?
내가 해결책에 의아해하고 있을 때였다.
“그거 전에 가네샤 님이 주고 가신 서류죠?”
“맞아요.”
미야가 와서 서류를 슬쩍 들여다보더니 내게 해결책을 알려주었다.
“찢으면 돼요.”
“네? 이걸 찢으라고요?”
성좌가 준 서류인데? 함부로 찢었다가 천벌이라도 내리는 거 아냐?
내가 당황하고 있지 미야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류를 찢으면 증표가 나올 거예요. 그게 진짜고, 서류는 수단에 불과해요.”
“그래요?”
“네. 저도 예전엔 성좌 마켓을 애용했었으니까요.”
“아······.”
역시 한때 성좌였던 미야여서 그런지 사용법을 알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말에 반가워할 수가 없었다.
기독교의 수작과 인간들의 오해로 여신에서 마녀로 떨어진 그녀였으니까.
내가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말끝을 흐리자 미야는 살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여기서 일하면서 점점 격이 올라가고 있으니까요.”
낮 장사를 할 때는 주방에서 나오지 않았기에 인간들을 상대로 한 인지도는 거의 올라가지 않고 있지만, ‘신야식당’을 할 때는 항상 내 곁에서 보조해주고 있는 미야였다.
덕분에 다양한 성좌들이 그녀를 보고 그녀의 실력에 감탄하며 미야를 기억했다.
그래서 성좌력과 격이 점점 상승하는 중이라나?
거기다 이번에 디저트 메뉴로 출시한 ‘여신의 은실’이 인기를 끌면서 그걸 만든 미야의 인지도도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제가 격이 떨어져 권속이 되지 않았다면 여기서 일하지 못했을 거구요.”
“여신님을 어떻게 알바로 씁니까. 손님이면 몰라도.”
나는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마 미야가 여신인 그대로였으면 손님으로 만나는 게 전부였을 거다.
“저도 그래서 지금은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멋진 동료들에 좋은 친구도 만났으니까요.”
미야는 직녀가 만들어 준 자신의 유니폼을 매만지며 배시시 웃었다.
아무래도 같은 방직의 권능을 지녔기 때문일까, 둘은 쉽게 친해진 모양이었다.
요즘엔 오작교 형제단을 통해 편지도 자주 주고받는 모양이었다.
“저 같은 권속한테도 언니라고 불러주는데 얼마나 고마운 줄 몰라요. 진짜 동생이 생긴 것 같다니까요? 후후후.”
후드에는 격식을 차려 ‘나의 친구에게’라고 자수했지만, 편지에선 매번 언니라고 부르며 살갑게 군다며 미야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직녀가 미야를 언니로 모신다고 하지만, 성좌와 권속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하기에 미야는 직녀에게 아직 경어를 쓰고 있었다.
이것도 얼른 그녀가 다시 여신으로 돌아가면 해결될 문제지.
“아, 제 말이 길었네요. 얼른 서류를 찢어보세요.”
“그럼, 미야 말만 믿고 찢습니다?”
“후후, 믿으시라니까요?”
웃고 있는 미야의 표정을 보며 나도 피식 웃었다.
만약 아니면 가네샤를 한 번 더 불러서 배부르게 밥 먹이면 삐진 것도 풀리겠지.
나는 미야의 말대로 부우욱, 서류를 찢었다.
그와 동시에 서류에서 뿜어져 나오던 빛이 내 손목에 휘감겼다.
[성좌 마켓의 이용 권한과 입점 허가가 당신에게 부여됩니다.]내 손목에 문신처럼 새겨진 두 줄의 선.
자세히 보면 신어로 이용허가서와 입점 허가증의 내용이 팔찌처럼 새겨진 문신이었다.
아니, 놀이공원 입장권 같다고 해야 하나?
“이런, 생각지도 못한 문신이 생겼네.”
다행히 문신은 처음 생길 때만 눈에 보이고 곧 희미하게 사라져 갔다.
대신, 내가 손을 가져다 대면 은은한 빛이 떠오르며 다시 나타났다.
그렇게 모든 게 끝난 건가 싶었을 때였다.
[스타 코인 계좌가 개설됩니다.] [성좌 ‘가네샤’로부터 1,800 SC(스타 코인)이 입금됩니다.]빛이 한 번 더 번뜩이면서 세 번째 줄이 손목에 추가 되었다.
세 번째 줄은 계좌였구나.
거기다 가네샤가 돈, 아니 스타 코인도 입금해줬다.
공짜로 줬을 리는 없고, 이게 내 성좌력이겠지?
근데 이게 얼만지 감이 안 잡히네.
“미야는 이게 어느 정도 금액인지 알아요?”
“미안해요. 제가 성좌였을 때는 스타 코인이 아니라 다른 화폐였어서 잘 모르겠어요.”
스타 코인은 최근에 생긴 화폐 개념인가?
설마 비트 코인의 인지도가 반영된 건 아니겠지.
“흠, 천오야, 넌 알아?”
미야가 모른다면 가장 가까이 있는 다른 성좌에게 물어봐야겠지.
천오는 일단은 권속이지만, 본체인 손오공과 모든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동일 존재기도 했다.
즉, 손오공이라는 성좌가 알고 있는 지식은 천오도 모두 알고 있다는 소리.
내 예상대로 천오는 설거지를 하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해주었다.
“스타 코인은 성좌력을 숫자로 환산한 거야. 성좌력이 인지도나 성좌 자체의 권능에 따라 달라지는 거 알지?”
“그렇다곤 들었어.”
“예를 들면 이 제천대성이자 투전승불인 손오공 님은 스타 코인이 무려 아홉 자릿수 단위지.”
나는 손오공의 스타 코인 금액에 입을 쩍 벌렸다.
억 단위라고? 겨우 네 자릿수인 나와는 비교도 안 되는구나.
“에이, 놀라기는. 최고신급 성좌들은 12자리, 13자리도 넘는걸?”
올림포스의 제우스, 힌두 신화의 비슈누나 시바, 북유럽 신화의 오딘, 도교 신화의 옥황상제 등은 그 인지도가 차원이 달라서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의 스타 코인을 가지고 있다나?
나랑은 차원이 다른 소리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그래도 사장 정도면 충분히 많은 거야. 정확하진 않지만 대충 1 SC가 최소 권속 1천 명 정도의 인지도를 뜻하니까.”
“권속?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인지도를 따지려면 1 SC 당 1,000만 명 정도일걸?”
1 권속의 인지도가 대충 1만 명의 사람의 인지도랑 맞먹는 건가?
한때 세계에서 가장 SNS 팔로우가 많은 사람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가진 6억 팔로워였으니까 만약 그 사람이 스타 코인을 받는다고 해도 대충 60 SC겠네.
게이트 사태 이후로 지금은 지구의 인구도 많이 줄었고 슈퍼 셀럽도 헌터 쪽으로 옮겨간 상태라 그 정도도 안 나오겠지만 말이야.
아무튼 내 스타 코인이 1,800 SC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30 호날두 정도의 인지도를 달성한 셈이었다.
“역시 성좌들에게 알려졌다는 게 중요한 거구나.”
“아무래도 그렇지? 신들에게 인정받는 신이라는 건 중요하거든.”
배우들의 배우, 아이돌들의 아이돌 같은 건가.
그런 이들은 받는 존경도 대우도 다르니까 말이야.
“그래서 1 SC면 어느 정도 가치야?”
“그건 그때마다 다르니 시세를 참고하는 수밖에 없어.”
결국 성좌 마켓을 이용해봐야 한다는 소리구나.
한 번 들어가 봐?
내가 손목의 문신을 쓰다듬고 있을 때였다.
“마스터, 슬슬 오픈 키친으로 돌아가실 때예요.”
“아차, 큰일 날 뻔했네요.”
성좌 마켓에 정신이 팔려 내 본업을 잊으면 안 되지.
나는 서둘러 오픈 키친으로 복귀해 다시 손님을 맞고 요리를 시작했다.
성좌 마켓에 들어가 보는 건 장사가 끝난 뒤에 해도 되니까.
“휴, 오늘도 바빴다.”
그렇게 바쁜 낮 장사 시간이 끝나고 나는 내 방 침대에 누워 다시 손목을 쓰다듬고 있었다.
그러자 은은한 빛과 함께 세 개의 줄이 다시 나타났다.
그렇지만 나는 바로 성좌 마켓에 들어가진 않았다.
“장사가 끝나고 나서 가네샤가 설명서를 보내줬지만,”
가네샤의 난쟁이 권속, 반신(半神) 가나들이 손님이 나가자마자 가게로 찾아와 내게 설명서와 아이템 하나를 주고 갔었다.
그리고 설명서를 읽고 난 지금, 나는 성좌 마켓에 들어가는 것을 꺼릴 수밖에 없었다.
“시간 흐름의 차이가 난다는 게 문제네.”
성좌 마켓은 상태창만으로 이용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거래 물품이나 정보 같은 건 상태창으로도 살펴볼 수 있었지만, 실제로 물품을 거래하려면 ‘성좌 마켓’이라는 특수 영역으로 건너가야 했다.
성좌들끼리 간접 거래를 하다가 문제가 생겨 분쟁이 일어나는 걸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당근 시장도 아니고, 직거래가 원칙이라니.”
나는 위대한 성좌들이 시장 한 구석에서 기웃거리다가 ‘성좌 마켓이세요?’, ‘네, 성좌 마켓입니다.’ 하는 장면을 떠올리곤 헛웃음을 지었다.
실제로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말이야.
아무튼, 중요한 점은 그게 아니었다.
나는 가네샤가 준 설명서를 꺼내서 다시 읽었다.
– 성좌의 영역에서 시간의 흐름은 영역의 주인이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
하지만 ‘성좌 마켓’처럼 다양한 성좌가 공존하는 곳에선 시간의 흐름을 공용 성좌 시간으로 통일하는 것이 원칙이다.
여기서 공영 성좌 시간이라 함은······.
그 뒤로는 어려운 숫자들이 나열되어 있었지만, 결론을 정리하면 이랬다.
“저쪽에서의 하루가 지구에서는 1년이구나.”
내가 저쪽으로 건너가 반나절만 시간을 보내고 와도 지구에선 반년이 지나가 버린다는 소리였다.
이래선 장사는커녕 물건을 사고 오는 것도 문제였다.
“가서 1시간 만에 돌아온다고 쳐도 여기선 보름이 지나버리네.”
어떻게든 시간을 줄여 10분 만에 돌아와도 이틀하고 반나절이 지난다.
도저히 감당할 수 있는 시간의 흐름이 아니었다.
“휴, 그동안 성좌들이 나를 많이 배려해줬구나.”
카인이나 스루드, 하데스의 영역에 다녀올 때는 지구에서 시간이 조금도 흐르지 않았었다.
이는 성좌들이 내 편의를 봐준 거겠지.
만약 그들이 나를 배려하지 않았다면, 요리 한 번 하고 돌아왔더니 지구에서 100년이 지나있을 수도 있었다.
“실제로 옛날 전설이나 동화를 보면 그런 이야기도 있고.”
신선이 사는 동네에 갔다 왔더니 수백 년이 지났다던가, 신선들이 바둑 두는 걸 잠깐 구경했더니 도끼 자루가 썩어있다던가.
아니,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천오, 그러니까 손오공도 천계에서 보낸 하루가 지상에서 1년이라는 걸 알고 놀랐다는 내용이 서유기에 적혀 있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설명서를 마저 읽어 내려갔다.
– 때문에, 일단은 인간에 불과한 도연성이 성좌 마켓을 이용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이는 모든 손님이 마켓을 동등하게 이용하고자 하는 우리의 원리원칙에 위배되는 바, 나 ‘가네샤’의 권한으로 그에게 이를 극복할 임시 수단을 증정한다.
나는 가네샤가 설명서와 함께 보낸 아이템을 눈앞으로 들어 올렸다.
======================
[시간의 모래시계(전설급)]– 시간의 흐름을 본인에 맞게 조절할 수 있는 모래시계.
– 공허의 구역에서 가져온 모래를 사용했기에 매우 비싸다.
– 남은 사용횟수 : 5회
======================
가네샤는 내가 이 모래시계를 사용하면 지구에서 시간이 거의 흐르지 않게 하고 다녀오는 게 가능하다고 설명서에 적어놓았다.
그렇지만 횟수가 한정되어 있기에 다 쓰면 새로 구매해야 하는 상황.
‘매우 비싸다’라고 적혀 있기에 혹시나 해서 구매 게시판을 검색해서 찾아보았다.
======================
성좌 마켓 직거래 게시판
======================
횟수 얼마 안 남은 [시간의 모래시계] 떨이로 팜
– 상태 좋음. 남은 횟수 1회.
– 가격 2,500 SC
– 판매자 : 크로노스
======================
떨이로 파는 횟수 1회짜리 [시간의 모래시계]도 내가 가진 스타 코인보다 비쌌다.
그러니 이걸 아까워서 쓸 수나 있어야지 말이야.
“에휴, 나중에 진짜 사고 싶은 게 있으면 몇 번 가서 사는 게 끝이겠네.”
단순히 직거래만 해도 이럴진대, 입점 허가증을 받았지만, 가서 장사하는 건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아쉽다. 가면 이것저것 팔아볼 생각이었는데.”
광장 헌터 마켓을 돌아다니면서 제일 아쉬운 점이 먹거리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원래 시장 구경은 군것질이 동반되어야 하잖아?
시장에서 파는 어묵, 호떡, 마약 김밥, 꽈배기 등등.
그런 걸 팔면 장사 잘되겠다는 생각에 아이템 몇 가지를 구상해놨었는데 말짱 도루묵이 되었다.
“그냥 구경이나 해야지.”
성좌 마켓에 마음껏 가지 못하게 되니 남은 건 눈팅, 즉 구경하기 밖에 없었다.
“의뢰 게시판? 여기나 한번 구경해볼까?”
여기서는 서로 물건만 파는 게 아니라 의뢰도 하는 모양이었다.
성좌들이 서로에게 어떤 부탁을 하는지 흥미가 생긴 나는 거기에 올라온 글을 쭉 보았다.
– ‘집에 크툴루 스타 스폰이 나왔어요. 징그러워서 못 잡겠는데 대신 잡아주실 성좌님?’
– ‘태양 마차 바퀴가 빠졌는데 고쳐주실 성좌 구합니다.’
– ‘저랑 같이 하계에 불상 수집하러 가실 보살님들 계십니까.’
“재밌네.”
생각보다 성좌들도 우리네랑 크게 다른 생활을 하진 않는 모양이었다.
키득거리며 게시판을 보던 내 눈에 이순신 장군님의 글이 보인 건 그때였다.
“이순신 장군님이 도움을 원하고 있다고?”
배를 가진 성좌 한정이었지만, 마침 내게는 견우가 준 천우 가죽 뗏목이 있었다.
나는 [시간의 모래시계]를 꾹 쥐었다.
“장군님이 부르시면 얻는 게 없어도 가야지.”
아마 한반도에서 태어나 역사를 배운 사람이라면 모두 마찬가지 아닐까?
설령 내가 도움이 못 되더라도 가서 장군님 실제로 뵙고 밥 한 끼 해드릴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이었다.
나는 결심을 굳히고 먼저 [시간의 모래시계]를 사용했다
안 그러면 돌아왔을 때 며칠이 지나있을지 모르니까.
“[시간의 모래시계], 지구와 똑같은 시간의 흐름으로.”
그런 뒤 손목의 문신에 손가락을 대고 입을 열었다.
“성좌 마켓으로 갈게. 좌표는 이순신 장군님의 글에 적힌 곳으로.”
말을 마치자마자 내 정신이 아득한 차원 저 너머로 빨려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이, 이거 청소기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인데?
그렇게 내 영혼은 순식간에 태양계와 우리은하를 건너 우주 어딘가에 존재하는 ‘성좌 마켓’으로 향했다.
* * *
“허허, 이 자가 우리를 돕기 위해 온 자인가?”
“복식이 조금 독특하지만, 생긴 것은 영락없는 조선인이외다.”
“그런데 도통 누군지 모르겠군. 자네들은 누군지 알겠나?”
“선배님들, 제가 여기서 가장 신참이지만, 저도 누군지 모르겠습니다.”
정신이 돌아왔을 때쯤, 내 곁에서 웅성거리는 대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끄응 소리를 내며 눈을 천천히 떴다.
“오! 눈을 떴소이다. 오자마자 기절한 걸 보니, 처음 온 모양이군.”
“누, 누구시죠?”
나는 눈을 뜨자마자 나를 반겨주는 건장한 체격의 남자를 보고 당황해서 물었다.
이 산적처럼 생긴 아저씨가 설마 이순신 장군님?
“흐하하하. 우리 후손님이 공부를 덜 한 모양이군. 이 나를 모르는 걸 보면 말이야!”
아니, 옷차림을 보아하니 현대 분은 아닌 것 같은데 제가 얼굴을 보고 어떻게 압니까. 사진이 남아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자, 산적처럼 생긴 아저씨가 씨익 웃으면서 엄지로 자신을 가리켰다.
“나는 청해진의 대사, 장보고일세.”
“장보고?!”
느닷없이 튀어나온 한국사의 영웅에 내가 입을 쩍 벌렸다.
“흐하하! 그래도 내 이름은 아는구먼? 놀랄 건 나뿐만이 아니지. 조정 경기를 위해 한반도의 해상 영웅들이 모두 여기에 모였으니까.”
장보고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자 그 뒤에야 주변에 있는 사람, 아니 성좌와 권속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화포 개발자인 최무선이라고 하네.”
고려말의 명신으로 진포해전에서 왜구를 물리친 영웅으로 훗날 화력 조선의 기틀을 닦은 최무선.
“당나라 놈들이 제일 싫은 시득이라고 한다.”
나당전쟁에서 기벌포 전투를 승리로 이끈 신라의 해군 제독 시득.
“영국에 사략 해적으로 드레이크란 놈이 있다지? 흥, 내가 더 빨랐다고.”
고구려 유민이자 발해에서 활동한 해적으로, 발해의 해군 제독이 되었던 장문휴.
“몽골 놈들도 싫지만, 왜놈들은 더 싫다.”
여몽 연합군의 고려 측 해군 원수로 환갑이 넘은 나이에 일본 원정에 참여했던 김방경.
“왜놈이 싫은 건 나도 동의하오.”
세종 때, 김종서와 함께 대마도 정벌을 담당했던 이종무.
“한반도의 해군이라면 일본을 싫어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가장 신참이라고 자길 소개한, 독립군 영웅이자 대한민국 해군의 아버지, 손원일 제독.
“반갑구나. 내가 바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한 명의 남자가 가장 상석에서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나는 그가 자신을 소개하기도 전에 몸을 벌떡 일으켜 큰절을 올렸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님을 뵙습니다.”
두정갑에 큰 칼을 비껴찬 채로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중년 남성은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내가 바로 이순신이다.”
한반도 역사상 해군 올스타가 이곳에 모두 모여 있었다.
한반도 해군 올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