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chef of the constellations RAW novel - Chapter 83
83화. 시장 안 포장마차
성좌 마켓.
이곳은 성좌들의 우주에서도 특별한 곳으로 유명했다.
성좌라고 함은 인간들의 신앙심, 즉 성좌력으로 빛나는 자신의 별을 가진 이들.
그리고 그 별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영역을 구축하고 영겁의 세월을 보내는 이들이 바로 성좌였다.
그런 성좌들이 모여 있는 곳이 바로 성계(星界).
대부분 같은 신화나 지역 출신의 성좌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간혹 전혀 다른 신화 출신 성좌들이 모여서 사는 성계도 있다고 하는데,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성좌들의 우주에서 신화와 지역, 성계를 초월한 곳이 존재했으니 바로 성좌 마켓이었다.
모든 성계 출신 성좌들이 오로지 ‘거래’를 위해서 모이는 곳.
상업의 성좌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살려 교통의 요지, 즉, 성좌들의 우주 한가운데 자리 잡고 성좌 마켓을 만들었다.
전 우주에서 구매자이자 판매자인 성좌들이 몰려들 수 있게 말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성좌 마켓에 있었다.
“······대단하네.”
나는 주변에 보이는 광경을 보며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감탄이라기보다는 의외의 탄성이었지만 말이다.
“다른 의미로 말이야.”
성좌들의 시장이라고 해서, 마치 근미래 SF영화를 방불케 하는 최첨단 빌딩과 휘황찬란한 건물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건만.
“동네 시장처럼 생겼는데?”
주변에 보이는 건 줄무늬 천으로 지붕을 삼은 노점상이 주욱 늘어선 전통시장이었다.
한국의 전통시장보다는 유럽의 전통시장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이런 모습일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허허, 성좌들 대부분이 옛날 사람들이거나 옛날 사람들의 믿음으로 태어난 이들 아니겠는가. 그러니 이곳의 풍경도 옛것인 게지.”
친절한 웃음을 터뜨리며 내게 설명을 해주는 남성.
두루마기에 갓을 쓰고 등에는 괴나리봇짐을 매고 있는 이 사람, 아니 이 권속은 놀랍게도 조선 후기의 대상인, 만상의 임상옥이었다.
“최근에 성좌가 된 인물들은 자기 가게를 낼 때 나름 신식으로 짓는다고 들었습니다. 하오나, 아무래도 옛 방식이 더 많지요.”
“그, 그렇군요.”
송구스럽게도 까마득한 후손인 내게 높임말을 쓰는 이 중년 여성 역시 상인 출신 권속이었다.
정조 시절, 맨손으로 부를 쌓아 자수성가한 뒤, 태풍으로 기근이 닥친 제주도를 자신의 사재를 털어 구호한 거상 김만덕이 바로 그녀였다.
이 두 권속이 왜 나랑 함께 있냐고 묻는다면,
‘성좌 마켓에 가게를 낸다고? 그러면 자네를 도와 줄 이들을 소개해주지.’
내가 ‘연성이네’ 분점을 내겠다고 말을 하자 이순신 장군이 내게 이 두 권속을 소개해줬기 때문이었다.
‘한반도 땅에 성좌의 격까지 갖춘 상업의 신은 없지만, 그래도 그 둘은 도움이 될 걸세.’
한반도에 술의 신이 없는 것처럼 상업의 성좌도 없었기에 대신 상인으로 권속의 경지에 오른 임상옥과 김만덕이 성좌 마켓에 파견되어 있다고 한다.
한반도 출신 성좌들이 상거래를 할 일이 있으면 그들이 대행해준다고.
“장군님께 연락받았을 땐 무척이나 놀랐네. 성좌 마켓에 입점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권속이라니. 우리도 아직 갖지 못했는데 말이야.”
“거기다가 아직 살아있는 인간이면서 그런 격을 갖췄다는 소리에 정말 놀랐습니다.”
임상옥과 김만덕도 한반도 출신의 상인 권속으로 성좌 마켓에 가게를 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고 한다.
원칙적으로는 ‘성좌’가 아니면 성좌 마켓에 입점할 수 없는 탓이었다.
권속이 성좌 마켓에 입점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딱 두 가지였다.
하나는 격이 높은 주인 성좌의 이름으로 가게를 열고 그 가게의 관리를 맡는 것.
다른 하나는 나처럼 상업의 성좌들에게 직접 허가를 받는 것이었다.
“어느 쪽이나 어려운 일이지. 그런데 자네는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고 들었네.”
“거기다 그 까다롭기로 유명한 가네샤 성좌에게 말이죠. 대체 비결이 무엇입니까?”
“하하, 비결이랄 것도 없는데 말이죠.”
난 그저 배부르게 밥을 줬을 뿐이었다.
처음으로 배부르게 먹은 가네샤가 기분이 좋아져서 입점 권한을 줬다고 말하면 안 믿겠지?
비결이 궁금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보는 임상옥과 김만덕을 피해 나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자, 얼른 시장조사부터 하죠? 가게를 낼 거면 이 근처에 어떤 가게가 있는지, 고객들이 어떤 이들인지부터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역시 잘 아는구만.”
임상옥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고로 돈은 정보에서 오는 법이지. 발품을 팔아야 돈이 들어오는 법이네.”
그는 나보다 앞서서 성좌 마켓을 걸으며 안내를 시작했다.
“성좌 마켓은 크게 세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걸 알고 있는가?”
“세 구역이나 되나요?”
“그렇다네. 우선 성좌들이 직접 가게를 내고 물건을 파는 프리미엄 마켓이 있네. 바로 여기지.”
아, 어쩐지 ‘성좌 마켓’이라는 거창한 이름에 비해 가게가 그렇게 많지 않아 보이더니, 여기는 상업의 성좌에게 허가를 받아야만 가게를 낼 수 있는 곳이었구나.
상업의 성좌가 그 퀄리티를 보장해주는 말 그대로 ‘프리미엄’ 마켓이었다.
“다른 구역은 상업의 성좌에게 허가를 받지 못한 성좌나 권속들이 게시판에 글을 올려 직거래를 하는 곳입니다. 스타 마켓이라고 하지요.”
“평화 나라나 홍당무 마켓 같은 거네요.”
“네? 그것이 무엇이옵니까?”
“아, 하계에 있는 비슷한 시장이에요.”
여기서도 ‘홍당무?’, ‘네, 홍당무입니다.’이러면서 만날지도 모른다.
피식 웃는 나를 보며 김만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희는 스타 마켓에서 주로 한반도 성좌와 권속들의 거래를 대행해주거나 프리미엄 마켓의 물건을 알아봐 주는 일을 하고 있지요.”
“성좌들이라고 다 선하고 착한 건 아니니까 말이지. 바가지를 쓰지 않으려면 우리가 하는 게 낫지.”
아, 직구 대행 서비스 같은 거구나.
본인들이 직접 물건을 사거나 팔러 올 수도 있지만, 이 흥정이라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흥정에 익숙하지 않다면, 바가지를 쓰고 스타 코인을 낭비하게 된다나.
나는 그들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물었다.
“남은 한 구역은요?”
“자네도 가본 적이 있는 곳이지. 의뢰 구역이라네.”
“아.”
내가 처음에 이순신 장군의 글을 읽고 이동했던 바로 그곳이구나.
“성좌 마켓은 단순히 물건만 사고파는 곳이 아닙니다. 때로는 태산같이 드높고 대단해 보이는 성좌들이지만, 그들도 하지 못하는 일이 있는 법이지요.”
“주로 하기 귀찮거나 사소한 일을 의뢰하지만.”
임상옥이 위대한 신도 자신의 등이 가려울 땐 효자손을 찾는 법이라며, 의뢰 게시판의 용도를 말해주었다.
그렇게 성좌 마켓에 대한 모든 설명을 듣고 난 뒤엔 천천히 걸으면서 프리미엄 마켓 구역을 돌아보았다.
“인어의 고기 팝니다! 야오비쿠니한테 인증을 받은 진품이에요! 먹으면 원하는 인간의 수명을 늘려줍니다!”
“고기 색이 왜 이래요?”
“요즘 인어는 이래요!”
요상한 재료를 파는 가게도 있었고,
“술레이만 1세가 짠 하늘을 나는 양탄자 사 가시오. 영혼이 들어가 있어서 아주 영특한 녀석이지.”
“그거 사느니 파이어볼트를 사는 게 낫지 않소?”
“떼끼, 이 사람아! 알라께 맹세코 빗자루보다는 양탄자지!”
도구를 파는 상점도 있었고,
“테세우스의 뱃조각 팔아요. 적당히 성좌력 불어넣으면 부적으로 쓰기 좋아요. 무한히 교체할 수 있는 뱃조각이라서 재고도 충분합니다!”
사기를 치려는 상인도 있······, 아니 저거 헤르메스잖아?
“헤르메스 님?”
“오, 드디어 왔구나. 언제 오나 했네.”
나를 보자 팔고 있던 테세우스의 뱃조각을 치우며 히죽 웃는 헤르메스.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상업의 신이 사기 쳐도 됩니까?”
광장 헌터 마켓은 상업의 성좌들이 지정한 성지라서 사기 치는 순간 천벌을 받게 되는데, 정작 그 상업의 성좌는 성좌 마켓에서 사기를 치고 있네.
그런 내 물음에 헤르메스가 히죽 웃었다.
“내 권능을 까먹었어? 난 상인의 신이기도 하지만, 도둑과 거짓말, 사기꾼의 신이기도 하다구?”
“그게 동시에 양립 가능하기나 한가요?”
“나니깐 되는 거지.”
키득거리는 헤르메스를 보며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말 도움이 되는 성좌인지 아니면 믿을 수 없는 성좌인지 헷갈린다니까.
내가 그렇게 한숨을 내쉬고, 옆에서 지켜보던 임상옥과 김만덕이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였다.
“헤르메스.”
“히익!”
헤르메스의 뒤에서 묵직한 목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뿌우우하는 코끼리 울음소리.
가네샤의 등장이었다.
“일은 안 하고 어딜 도망갔나 했더니 여기서 사기를 치고 있었군.”
“완전히 사기는 아니야! 일단은 이것도 테세우스의 뱃조각은 맞다고!”
“일단은?”
당황한 헤르메스가 서둘러 손바닥만 한 나무판자 하나를 들어 올리곤 뒤에 있는 숫자를 읽었다.
“한, 2,581번째로 완전히 교체된 테세우스의 배이지만 말이야.”
“······.”
“하, 하하,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인간 요리사. 너한테 내주기로 한 가게로 안내해줄게. 자, 얼른 가자.”
가네샤의 무시무시한 눈초리에 헤르메스가 서둘러 가게를 정리하고 나를 안내해주려 했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뒷덜미를 가네샤의 긴 코에 잡혀버렸다.
“으힉!”
“상업의 성좌가 수호해야 할 성스러운 거래의 원칙에 의거해서 헤르메스 네게 벌칙을 주도록 하지.”
“아니, 나도 상업의 성좌라고!”
“그래. 그러니깐 추방이 아니라 밀린 일을 처리하는 노동형에 처한다.”
“으아! 인간 요리사! 나 좀 구해줘!”
아니, 제가 어떻게 구해드려요.
상업의 성좌들끼리 싸우는 데 나 같은 새우가 껴봤자 등만 터지지.
가네샤는 코로 헤르메스를 둘둘 감은 뒤 내게 쪽지 하나를 건넸다.
“이쪽으로 가면 네 가게가 나올 거다. 안내해주지 못해서 미안하군.”
“아닙니다. 헤르메스 님도 가끔은 따끔하게 혼나야죠.”
내가 좌표가 적힌 쪽지를 받으며 씨익 웃자, 헤르메스가 배신감에 찬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야! 내가 넥타르까지 구해다 줬는데, 이 배신자!”
“저 인간 요리사의 스타 코인으로 사준 것이지. 그만 떠들고 가자.”
“으아아, 일하기 싫어······.”
그렇게 가네샤가 가기 싫다는 헤르메스를 질질 끌고 떠나 버렸다.
그 모습을 보며 헛웃음을 터뜨리고 있을 때였다.
“······자네, 대체 정체가 뭔가?”
“헤르메스 님이나 가네샤 님의 관심을 받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격의 없게 지내실 줄은······.”
임상옥과 김만덕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 * *
“여기가 자네, 아니 크흠, 도 대방께서 장사를 하실 가게외다.”
헤르메스와 가네샤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나니 임상옥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정중해졌다.
그럴 필요까진 없는데 말이야.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말씀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제가 까마득한 후손인걸요.”
“허허, 성좌와 권속들의 세계에선 나이는 상관없소. 격의 차이가 위아래를 정하는 법이지.”
“그래도 제가 불편하니 편하게 해주세요.”
“그, 그런가? 크흠, 그럼 예외로 하도록 하지.”
내가 괜찮다고 하자, 그제야 안심했다는 표정으로 돌아오는 임상옥이었다.
“그래도 자네가 저렇게 위대한 성좌들과 친하게 지낼 줄은 몰랐네.”
“그렇습니다. 저희 같은 상인들에게 저분들은 만신과도 같은 존재. 정말 대단하십니다.”
태도는 다시 돌아왔지만, 나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높은 그대로네.
나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대단한 게 아니라 그냥 밥을 잘했을 뿐인데 말이지.
그사이 우리는 프리미엄 마켓의 아무것도 없는 공터에 도착했다.
“여기군요?”
“그렇다네. 여기에 자네의 가게를 세울 텐데, 무슨 장사를 할 텐가? 생각보다 좁군.”
프리미엄 마켓에선 가게 자리의 넓이도 주인 되는 성좌의 격에 따라 넓어지고 좁아진다.
성좌도 아니고 권속급인 내게 주어진 자리는 농담으로라도 넓다고 하지 못할 곳이었다.
“이런 곳이라면 아주 간단한 물건을 파는 게 전부일 텐데······.”
“하계에선 식당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혹여 먹을 걸 파실 생각이옵니까?”
“네. 전 요리사니까요.”
여기 오면서 쭉 돌아봤지만, 먹을 걸 파는 가게가 없더라고.
시장은 역시 군것질거리를 먹는 재미로 오는 건데, 성좌 마켓씩이나 되어서 아무것도 없다니.
솔직히 실망이었다.
그런 내 말에 김만덕이 다시 우려를 표했다.
“다만, 이곳은 협소하여 주방이나 손님이 앉을 자리가 마땅치 않군요.”
임상옥과 김만덕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공터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이렇게 좁은 곳에서도 충분히 먹을 걸 팔 수 있습니다.”
“이런 곳에서요?”
의아하단 표정으로 나를 보는 둘을 향해 씨익 웃어주었다.
“포장마차라고 혹시 아세요?”
뜨끈한 국물과 어묵, 그리고 지글지글 기름 위에 익는 호떡에 구운 옥수수와 설탕 묻힌 꽈배기까지.
시장 안 포장마차야말로 맛잘알들의 성지라는 걸 알려줘야겠다.
줄을 서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