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chef of the constellations RAW novel - Chapter 84
84화. 줄을 서시오
포장마차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은 뭘까.
조사 겸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문의해보았다.
– 떡볶이?
내가 아는 지인 중에 가장 어린 여성답게 떡볶이를 먼저 꼽는 천은채.
매콤 달달한 양념에 쫄깃한 떡과 짭조름한 어묵, 그리고 인심 좋은 사장님이 얹어주는 삶은 달걀까지.
밀떡과 쌀떡, 국물의 유무, 즉석인지 아닌지로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는 게 떡볶이였다.
치즈떡볶이, 짜장 떡볶이, 궁중 떡볶이, 라볶이 등 그 종류도 다양했다.
– 떡볶이는 완벽한 음식이니까요.
– 거기에 튀김 추가.
누가 천은채의 맛소울메이트 아니랄까 봐 옆에서 하나 더 얹는 윤진하.
지금도 둘이서 같이 맛집 투어 중인 모양이었다.
하긴, 떡볶이 먹는데 튀김을 안 먹을 수 없지.
노랗게 튀긴 고구마나 단호박 튀김은 매운맛을 잡아주면서도 달콤한 맛을 준다.
새우나 오징어튀김은 떡볶이에서 찾기 힘든 단백질의 맛을 느끼게 해주고.
대구 쪽에선 납작만두랑도 같이 먹는다지?
– 뭐니 뭐니 해도 떡볶이에는 김말이 튀김이죠.
아, 이건 나도 동의.
자른 김말이 튀김 속 당면에 떡볶이 국물이 스며들면 그게 또 일품이거든.
– 저는 호떡이요.
둘과 통화를 끊고 전화를 건 채하나는 달달이파였다.
머리를 많이 쓰는 직업답게 달달한 당 충전을 우선하는 모양.
하긴, 호떡도 좋지.
찹쌀 반죽 속에 계피가루랑 흑설탕으로 만든 속을 넣고 철판 위에서 튀기듯이 굽는 국민 간식.
넓게 구운 호떡을 반으로 접어 종이컵 하나에 넣고 먹는 게 국룰이란 말이지.
거기다 씨앗 호떡, 땅콩 호떡, 반죽에 녹차 가루를 넣은 녹차 호떡 등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존재하기도 하고.
– 난 꽈배기가 좋아.
의외로 연준이 녀석도 달달이파였네.
찹쌀가루와 옥수수가루를 섞어 반죽한 뒤, 빙빙 꼬아서 기름에 바삭하게 튀겨 내면 찹쌀 꽈배기 완성.
여기에 설탕을 골고루 뿌려주면 한 입만 먹어도 행복해지는 꽈배기가 된다.
– 역시 소주 한 잔에 빈대떡이지. 아니면 재료 그대로 놓은 전도 좋고.
마철성의 선택은 전이었다.
버섯, 명태, 표고, 애호박, 동그랑땡 등 다양한 재료를 달걀물에 입히고 밀가루를 묻혀 촉촉하고 노릇노릇하게 구워 파는 시장 전은 명절날 느낌을 나게 해주거든.
깻잎이나 반으로 가른 고추에 고기를 넣어 부치기도 하고 빈대떡이나 육전처럼 그 자체로 일품인 전도 있고.
– 나는 뜨끈한 순대에 내장을 푸짐하게 섞어서 먹는 게 좋더구나. 국밥 잘하는 집은 순대도 맛있거든.
천 회장은 국밥 할아버지답게 순대를 꼽았다.
찰순대, 고기 순대, 아바이 순대, 오징어순대 등 다양한 순대 종류에 함께 푹 익혀낸 돼지 허파와 간, 염통을 맛소금에 찍어 먹으면 또 이게 맛이 기가 막히다.
지역별로 소금, 새우젓, 간장, 초장, 쌈장 등 찍어 먹는 소스도 다양해서 이것저것 먹어보는 맛도 있지.
“사람마다 다 선호하는 시장 음식이 다르네.”
마지막으로 국밥 할아버지와의 통화를 끊으며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하긴, 시장도 다양하고 시장에서 파는 음식도 다양한 법이니까.
내 지인들 입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다른 맛있는 시장 음식들도 많았다.
“예를 들면 어떤 게 있나요?”
내 통화를 옆에서 들었던 미야의 물음에 나는 손가락을 꼽으며 대답해주었다.
“떡 종류도 있고, 횟감이나 꼬마 김밥 같은 종류도 있죠. 엿장수가 파는 엿도 맛있었고요. 아, 독특하지만 나름대로 인기가 있던 돼지 부속 고기도 있어요.”
어린 시절, 할아버지 손잡고 따라간 모란시장에서 먹었던 돼지 부속 고기가 엄청났던 기억이 난다.
거대한 철판 위에서 돼지껍데기, 지라, 염통, 콩팥, 도래창 등 각종 부속 부위를 구워서 무한 리필로 먹는 모란시장 특유의 고깃집들.
왜 엄청났냐고?
돼지 냄새가 진짜 어마어마했거든.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지간한 음식은 다 먹던 나 역시도 코를 감싸 쥐고 힘들어할 정도였다.
그 지독한 냄새의 근원은 바로 돼지의 콩팥.
신장이 소변을 거르는 곳이기에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돼지 오줌 냄새가 다른 고기 전체에 배어들기 때문이었다.
헛구역질까지 하는 나를 위해 할아버지가 콩팥을 깨끗이 처리한 뒤 함께 굽지 않는 곳으로 가서야 몇 점 주워 먹을 수 있었지.
아무튼, 시장 음식이 이렇게 다양하다는 게 내가 말하고 싶은 포인트였다.
“그러면 마스터는 뭐가 제일 좋으셨나요?”
“저요? 음, 저는······.”
미야의 물음에 나는 잠시 고민했다.
사실 내가 안 좋아하는 음식이 있어야지.
떡볶이도 튀김도, 호떡에 꽈배기도 심지어 부속 고기도 콩팥을 따로 구워주는 곳에선 나름 잘 먹었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내 입에서 결론이 나왔다.
“역시 오뎅이네요.”
“오뎅이요?”
“정확한 명칭은 어묵이라고 하는 게 맞겠지만요.”
생선 살을 으깨서 익힌 음식을 총칭해서 어묵이라고 부른다.
이 어묵을 포함해 꼬치 요리 재료를 넣고 탕을 해 먹는 요리를 오뎅이라고 하고 말이지.
“한겨울에 날이 사무치게 추울 때, 포장마차에서 어묵 하나 먹고 오뎅 국물을 호로록 마시고 있으면 그것만 한 행복이 없거든요.”
어묵을 포함해 무와 야채, 그리고 어떤 곳은 꽃게도 넣고 푹 우려낸 국물은 정말 오장육부에 스미는 듯한 따뜻함과 진한 맛이 일품이었다.
어묵에 간장을 살짝 발라 먹는 것도 좋았고.
간장도 종지에 찍어 먹는가 하면, 붓으로 바르거나 심지어 분무기로 뿌리는 곳도 있었다.
“겨울이 아닐 땐 빨간 어묵이 또 좋죠.”
매콤한 양념 국물에 넣고 졸이듯 만드는 빨간 어묵은 언제 먹어도 맛있다.
사실 겨울에 먹어도 맛있다.
“어묵이라고 하면 피쉬 케이크(Fish cake)를 말하는 건가요?”
“비슷해요. 세부적으론 다르지만.”
유럽에도 어묵, 즉 피쉬 케이크가 있었다.
동아시아권의 어묵은 생선 살에 밀가루나 감자 전분을 넣고 야채를 조금 넣는 식으로 만들어지는 데 비해 유럽의 피쉬 케이크는 생선 살과 으깬 감자를 1:1 비율로 섞어 만든다.
덕분에 서양식 어묵인 피쉬 케이크는 좀 더 포슬포슬하고 빵에 가까운 식감이라면, 동양식 어묵은 생선 풍미가 더 강하고 씹는 맛이 있는 편이었다.
“거기다 익히는 방법에서도 차이가 나요.”
피쉬 케이크가 돈까스처럼 달걀과 빵가루 반죽을 한 뒤 기름에 지지듯 굽는다면, 어묵은 다른 것 없이 아예 기름에 튀겨버린다.
그래서 어묵 쪽이 더 기름진 편이지.
반찬으로 요리할 땐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서 기름기를 빼줘야 할 정도로 말이다.
“맛도 맛이지만, 어묵은 먹기가 편하거든요.”
떡볶이를 비롯한 다른 음식들은 일단 자리에 앉아서 테이블 위에서 먹어야 했다.
문제는 성좌 마켓에서 내게 할당된 구역이 그렇게 넓지 않다는 거지.
테이블이나 의자를 놓을 공간이 없었다.
그렇다면 호떡이나 꽈배기처럼 사서 걸어 다니면서 먹어야 하는데,
“그런데 격조 있는 성좌들이 걸어 다니면서 음식을 먹으려고 할까요?”
“······그건 힘들겠죠?”
쓴웃음을 지으면서 대답하는 미야의 말처럼 성좌들은 생각보다 체면을 따지는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에게 걸어 다니면서 먹어야 하는 호떡이나 꽈배기는 좀 그렇지.
그러면 남은 답은 하나였다.
“어묵은 원래 그 자리에 서서 먹고 가는 음식이니 딱입니다.”
포장마차에 들러서 어묵을 집고 간장을 찍은 뒤 맛있게 먹는다.
그 사이사이 뜨거운 오뎅탕 국물을 즐긴 뒤, 꼬지를 반납하고 가는 게 어묵 먹기의 국룰 아니겠어?
물론 꼬지를 재활용하겠다는 비위생적인 업자들의 요구 때문에 생긴 국룰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 낭만이 있으니 이번 포장마차에도 그대로 적용해볼 생각이었다.
아, 물론 꼬지는 재활용할 생각이 없었다.
“어묵이라는 요리, 나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천오는 알 수도 있겠다. 원래는 중국에서 기원한 요리니까.”
내 설명을 듣고 있던 천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그런 천오에게 웃으며 어묵의 기원을 말해주었다.
“과거 진시황이라는 중국의 큰 황제가 있었는데, 생선 요리를 너무 좋아했지. 그런데 문제는 생선 가시를 발라내는 게 너무 귀찮았다는 거야.”
예나 지금이나 편하게 살려는 건 인간의 본성.
진시황제는 자기가 좋아하는 생선 요리를 가시를 발라 내는 번거로움 없이 원 없이 먹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진시황은 생선 요리에 가시가 나오면 바로 요리사를 죽였대.”
“세상에······!”
마녀로 오해받으며 산전수전 다 겪어봤던 미야였지만, 밥에 생선 가시가 나왔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인다는 소리는 처음인지 입을 가렸다.
사실 나도 이해가 안 가.
황제가 되면 손도 발도 없어지는 모양이지?
“아무튼, 그 뒤로 진시황제의 요리사들은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생선의 가시를 모두 빼버렸어. 그걸로도 모자라서 아예 생선 살을 다져서 경단처럼 뭉쳐서 요리하기 시작했어.”
“아, 그럼 거기서 어묵이 생겨난 거네?”
“그 당시에는 어환(魚丸)이라고 불렀대.”
물고기로 만든 경단.
거기서 어묵의 유래가 생겨났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내 설명을 들은 천오가 그제야 기억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비슷한 걸 먹어본 적이 있는 것 같아!”
“중국에는 지금도 생선 살 경단 요리가 많으니까.”
나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 전설이 진짜라면 진시황의 욕심으로 새로운 요리의 조리법이 탄생한 거지. 요리사들의 살아남겠다는 의지가 이 요리를 만들어 낸 거야.”
“조금 서글프네요. 어떤 존재 때문에 강제로 모습을 바꿔야 한다는 사실이······.”
기독교인들 때문에 여신에서 마녀로 추락한 미야의 말이 유독 씁쓸하게 들렸다.
이런, 내가 괜한 말을 꺼냈네.
내가 속으로 혀를 찰 때였다.
“음?”
오랜만에 들어온 성좌의 메시지가 눈앞에서 반짝였다.
뭐지?
‘신야식당’을 연 뒤로 성좌들이 이렇게 개인 메시지를 보내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성좌의 메시지를 열자,
[대륙을 통일한 위대한 폭군이 당신의 요리를 보며 매우 관심을 보입니다.] [대륙을 통일한 위대한 폭군이 당장 그 요리를 자신에게 바치라며 흥분하고 있습니다.] [대륙을 통일한 위대한 폭군이 그렇지 않으면 천벌을 내리겠다고 엄포를 놓습니다.] [대륙을 통일한 위대한 폭군이······.]어묵에 흥분한 성좌 하나가 미쳐 날뛰고 있었다.
잠깐만, 어묵을 좋아하는 데다가 ‘대륙을 통일한 위대한 폭군’이라고?
설마······.
“진시황제?”
내가 황당하다는 듯 입을 쩍 벌리며 말하자, 성좌의 메시지가 다시 한번 번쩍였다.
[대륙을 통일한 위대한 폭군이 자신의 위대함을 알았으면 얼른 그 요리를 내놓으라고 합니다.]저 뻔뻔한 요구를 보니 진시황제가 맞네.
그런데 말이야.
“싫은데요?”
그렇다고 내가 요리를 줄 이유는 없잖아?
손님도 아니고 막무가내로 와서 요리를 달라고 하면 내가 ‘아이고 드려야지요.’하고 줄 것 같았나?
[대륙을 통일한 위대한 폭군이 당신의 건방짐에 분노합니다.] [대륙을 통일한 위대한 폭군이 당신에게 천벌을 내리려 합니다.]이크, 진짜 천벌을 내리려고 하네.
나와 함께 메시지를 본 미야와 에녹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지만 말이야, 예전처럼 성좌들의 천벌에 벌벌 떨 내가 아니라고.
“야, 그깟 불로불사 때문에 수은 먹다가 뒤진 놈아.”
천오가, 아니 제천대성 손오공의 분신이 평소의 귀엽던 표정과 말투를 집어던지고 사납게 으르렁댔다.
“지금 누구한테 협박질이야? 뒤질래? 내가 본체로 가서 한번 뒤집어 놔야 정신 차릴래?”
내겐 누구보다도 강력한 직원이 있었고,
[경계를 넘나드는 안내자가 대륙을 통일한 위대한 폭군에게 경고합니다.] [원리원칙에 입각한 장애의 주인이 대륙을 통일한 위대한 폭군에게 경고합니다.] [보이지 않는 저승의 왕이 대륙을 통일한 위대한 폭군에게 경고합니다.]헤르메스, 가네샤, 하데스.
무려 신화급 성좌들이 내 편이 되어서 내 뒤를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었거든.
[대륙을 통일한 위대한 폭군이 예상치 못한 성좌들의 반응에 당황합니다.]“이런, 당황하셨어요?”
나는 팔짱을 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러곤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드시고 싶으시면 기다리셔야겠네요. 가서 줄 서세요.”
암, 진시황제고 삼황오제고 내 요리 먹고 싶으면 줄부터 서야지.
어묵으로 승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