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chef of the constellations RAW novel - Chapter 86
86화. 아버지를 위하여
국밥 할아버지는 마침 잘 됐다며 며칠 뒤로 날짜를 지정해주며 그때 오라고 했다.
예전 같았으면 바쁜 일이라도 있으신가? 했겠지만, 지금은 국밥 할아버지가 재벌 회장이라는 걸 아니 당연히 그러려니 했다.
무려 삼천 그룹의 회장이니 보통 바쁜 게 아니겠지.
그래서 그전까지는 ‘연성이네’ 장사에 충실하기로 했다.
“사장님, 오뎅 전골 2개 들어왔습니다.”
“여기 핫바 두 개 주세요!”
기왕 오뎅을 만들었는데 메뉴로 안 만들면 손해겠지?
포장마차용 꼬치 어묵에 부적합한 거지, 이렇게 식당에서 팔 때는 오히려 수제 어묵이 더 좋으니까.
소시지처럼 길쭉하게 만든 어묵과 동글동글 어환 모양의 경단 어묵, 대롱 어묵을 썰어서 만든 도넛 모양의 어묵으로 끓인 오뎅 전골은 여름인데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다.
그 비결은 바로 내 비법 국물 덕분이었다.
“으어! 국물 끝내준다.”
“삼계탕 국물 먹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이렇게 진하지?”
“그러게요. 평소에 사 먹는 국물이랑 너무 달라요.”
콩나물국밥을 끓일 때처럼 던전 북어 대가리로 푹 우려낸 국물에 무와 파로 시원함을 내주었다.
물론 그것만이라면 이런 반응이 나오질 않지.
진짜 육수의 주인공은 어묵이었다.
“와, 국물에 푹 우린 거 같은데 어묵이 너무 쫄깃해요.”
“국물 진한 이유가 다 어묵 때문이네.”
찰기를 위해 조금 넣은 전분 가루와 야채를 제외하곤 95% 어육으로 만든 어묵.
그걸 넣고 푹 끓였으니 당연히 국물이 진할 수밖에.
어육의 맛이 우러나온 국물은 삼계탕에 비교할 정도로 진한 맛을 내고 있었다.
밀가루나 전분 가루가 많이 섞인 어묵이라면 밀가루 때문에 어묵이 퉁퉁 불어서 맛이 없어졌을 거고, 어육 함량이 높아도 오래 끓이면 어묵 자체의 맛이 많이 빠져나갔겠지만, 이건 던전산 어육이라서 말이지.
아무리 끓여도 탱탱함은 유지되면서 맛 역시 진한 그대로여서 기가 막힌 전골이 되었다.
“저희 여기 우동 사리 추가해주세요.”
“여기도요!”
그리고 이렇게 진한 국물에 면 사리를 안 넣으면 한국 사람이 아니지.
오뎅 전골에는 칼국수보다는 통통한 우동 사리가 더 잘 어울린다.
우동 사리 주문이 들어오면 주방에서 천오가 곧바로 면 제작에 들어간다.
“우동사리 제작 들어간다!”
전날 족타로 만들어놓은 반죽을 천육이 넓게 펴서 3등분으로 접으면 천칠이 식칼을 현란하게 휘둘러 우동 면을 만들면 천팔이 바로 끓는 냄비에 넣어 면을 삶는다.
보통 우동 면은 14분은 삶아야 하지만, 마력수를 끓이고 있는지라 3분 만에 잘 삶긴 면발이 내 손에서 [마나 번]으로 마력을 태운 뒤 손님상에 나간다.
천육, 천칠, 천팔이 면 만드는 데 투입되면 설거지는 누가 하냐고?
“룰루루.”
걱정하지 말자. 우리에겐 설거지 담당 천오가 있으니까.
이렇게 천오 형제의 놀라운 협업으로 손님들은 갓 만든 생우동면으로 더 맛있는 오뎅 전골을 즐길 수 있었다.
“사장님, 어묵 정식 주문 들어왔습니다.”
“알겠어요.”
오뎅 전골만 팔면 아쉽지.
함께 출시한 새 메뉴, 어묵 정식도 잘 팔리고 있었다.
두툼한 핫바용 어묵 두 개에, 치즈, 대파, 오이를 넣은 뒤 간장 양념으로 요리한 대롱 어묵조림까지.
어묵이 국물용으로도 좋지만, 또 밥반찬으로도 좋거든.
그렇게 새로 출시한 어묵 메뉴는 두 개 모두 손님들에게 대호평이었다.
직원들이 들어와 회전이 빨라진 이후에 다시 대기열이 생길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며칠 동안 어묵 세트로 열심히 장사하고 난 뒤, 정기 휴일.
나는 직원들에게 휴가를 주고 가게 밖으로 나섰다.
국밥 할아버지, 그러니까 삼천 그룹 천 회장님을 만나기 위해 그가 보낸 주소로 향하기 위해서였다.
국밥 할아버지가 차를 보내주겠다고 했지만, 뭣 하러 번거롭게 그러냐면서 나는 내 트럭에 올라탔다.
“요즘 통 운전을 못 해줬으니, 얘도 가끔 몰아줘야지.”
요즘 대부분 재료를 마철성에게 의존하면서 예전처럼 시장에 물건 떼러 갈 일이 적어져서 트럭에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고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휴일에 어딜 자주 나가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래서 나는 오랜만에 트럭을 몰고 국밥 할아버지가 보내준 주소로 향했다.
“여긴가? 청담동 쪽이네?”
그렇게 트럭을 몰고 도착한 곳은 세련되고 깔끔한 신축 건물이었다.
그것도 넓은 주차장 부지까지 가지고 있는 대형 건물.
아무리 게이트 사태 이후 땅값이 떨어졌다고 해도 여긴 여전히 비쌀 텐데.
“역시 삼천 그룹 회장님이라고 해야 하나.”
내가 피식 웃으며 트럭을 몰고 안으로 향하려고 했을 때였다.
입구를 담당하던 경비 직원이 나와서 내 차를 막았다.
“누구십니까?”
“아, 오늘 여기서 약속이 있어서요.”
내 말에 눈을 가늘게 뜨는 경비 직원.
“어떤 분과 약속이 되어있으십니까?”
“어, 그러니까······.”
삼천 그룹 회장이라고 말을 해야 하나?
내가 잠깐 고민하자 그는 짐작 가는 바가 있는지, 무전기를 들어 어딘가로 연락했다.
“오늘 VVIP 손님분 전달 사항 다시 부탁드립니다.”
– ‘연성이네’ 오너시다. 오시면 정중히 모셔.
무전기에서 흘러나온 소리를 듣고 경비 직원이 다시 나를 보며 물었다.
“혹시 ‘연성이네’ 오너 되십니까?”
“네, 제가 일단 사장입니다만······.”
내 말을 들은 경비 직원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로 차단기를 올렸다.
그러곤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내 트럭을 경호해주는 게 아닌가?
마치 고급 리무진에게나 어울릴만한 경호라니.
이거 굉장히 부끄러워진다.
“주차는 제게 맡기시고 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발렛 파킹까지.
나는 턱끝까지 치밀어오르는 민망함을 간신히 참고 그에게 운전석을 넘겼다.
“회장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거기다 서둘러 나를 마중하러 나온 삼천 그룹 직원들.
진짜 국밥 할아버지가 재벌 회장님이 맞긴 맞구나.
나는 혀를 내두르며 직원들을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와라.”
“이야, 여기서 보니 또 느낌이 다르네. 국밥이 아니라 스테이크 썰어야 할 거 같은데요?”
고급 가구로 채워진 집무실에서 국밥 할아버지, 아니 삼천 그룹 천 회장이 나를 반겼다.
나는 지금까지의 민망함에 보답하기 위해 할아버지에게 농담을 던졌다.
그러자 주변의 직원들이 흠칫하는 것 같았지만, 재벌 회장님이어도 나한테는 국밥 할아버지니까.
“녀석, 그래도 국밥이 더 좋지 않으냐?”
“그건 그렇죠.”
역시나 국밥 할아버지는 개의치 않고 내 농담을 웃으면서 받아주었다.
천 회장이 직원들을 모두 물린 뒤 나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눌 상황을 만들자,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그나저나 왜 여기로 부르셨어요?”
“뭐야, 오면서 못 본 게냐?”
“뭘요?”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국밥 할아버지가 기가 찬 지 혀를 찼다.
“고얀 놈. 일부러 시간 맞춰서 여기로 불렀는데 그걸 못 보고 오다니.”
“그거라뇨?”
“따라오너라. 보여주마.”
그렇게 국밥 할아버지가 나를 데려간 곳은 놀랍게도,
“도대경 기념관?”
이 건물 1층을 통으로 써서 만든 우리 아버지의 기념관이었다.
“대경이가 소방관일 때, 그리고 헌터로 활약할 때의 자료와 증언들을 모아서 만들어 봤다.”
“······어머니가 좋아하시겠네요.”
정 여사가 국밥 할아버지는 여전히 못마땅히 여기시겠지만, 아버지의 기념관이 생겼다면 좋아하실 거다.
나중에 연락드려야겠네.
그런 내 말에 국밥 할아버지가 흐뭇하게 웃었다.
“재단을 만들면서 함께 만든 거다. 재단을 통해 치료받는 사람들이 누구 덕분에 치료받는지는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말이다.”
도대경 던전재해자치료재단.
이 건물은 놀랍게도 천 회장이 내 부탁을 듣고 만든 재단 건물이었다.
“너에게 재단 이사장 자리와 건물까지 넘기려 했지만, 줘도 안 받을 테지.”
“그럼요. 요리하느라 바쁜데 다른 일할 시간이 어딨어요.”
지금도 바쁘다. 받아봤자 귀찮기만 하지.
내 말에 국밥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일단은 내 명의로 하긴 했다만, 언젠간 대경이 처에게 넘기려고 한다.”
“어머니한테요?”
“그래. 날 용서해준다면 말이다.”
우리 정 여사 노후 자금은 걱정할 필요 없겠네.
물론 나와 연준이가 버는 돈만으로도 노후 걱정은 필요 없으신 분이지만 말이야.
그래도 이런 거 하나 가지시면 좋지.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재단이 활성화되어서 치료받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 사람들이 아버지에게 감사하면 언젠간 용서해주실 겁니다.”
“그래 줬으면 좋겠구나.”
나와 어머니가 요리에 인생을 바쳤다면, 아버지는 사람들을 구하는 것에 인생을 바쳤으니까.
돌아가신 후에도 아버지의 소망이 이뤄지는 거라면 어머니도 용서하시겠지.
나는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국밥 할아버지를 달래기 위해 내가 가지고 온 짐을 들어 보였다.
“국밥이나 드시죠?”
“오, 국밥!”
“무려 콩나물국밥입니다.”
“수란도 있더냐?”
“에이, 당연하죠.”
역시 국밥 할아버지.
국밥이라는 말에 얼굴이 환해졌다.
나와 천 회장은 직원 식당으로 향했다.
직원 식당의 설비를 빌려서 국밥을 데운 나는 뚝배기에 국밥을 담아 국밥 할아버지와 내 앞에 내려놓았다.
“그런데 왜 세 그릇을 가져오라고 하셨어요?”
“아, 여기 개소식도 아직 안 했다. 그러니 제대로 운영하기 전에 대경이에게도 국밥 한 그릇은 줘야 하지 않겠느냐?”
“아······.”
그런 이유였구나.
나는 또 많이 드시려고 하는 건가? 해서 넉넉하게 5인분을 들고 왔는데 말이야.
“그런 거라면 잠시만요.”
나는 국밥 3인분을 더 데운 다음에 식당에서 간단하게 자재를 빌려서 간이 제단을 쌓았다.
“그건 왜 쌓는 거냐?”
“일종의 제사죠. 성좌들에게 제단을 쌓는 것처럼요.”
“허허, 그러니 제사가 맞구나.”
할아버지나 아버지의 신조가 살아있는 사람들 힘들게 하지 말라고 해서 우리 집안은 한 번도 두 분에게 제사를 지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이게 첫 제사였다.
“부족하지만 소탈하게 만들어 보았습니다.”
나는 제단 위에 콩나물국밥 세 그릇을 올려놓고 손을 모았다.
그러자 국밥 할아버지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세 그릇이냐?”
“전해주는 분도 좀 드리고, 같이 계실 분한테도 좀 드리고요.”
“응? 그게 대관절 무슨 소리냐?”
“하하, 그런 게 있어요.”
나는 손을 모으고 제단의 주인에게 기도를 마저 올렸다.
“영동 할매 한 그릇 드시고, 아버지께 드리는 김에 할아버지께도 한 그릇 가져다주세요.”
그렇게 말하자마자 스르륵 사라지는 세 그릇의 국밥.
그걸 본 천 회장의 입이 쩍 벌어졌다.
“뭐냐? 이게 왜 사라져? 설마 진짜 공물로 바친 게냐?”
제단에 놓인 물건이 사라진다는 건, 영동 할매에게 내 기도가 제대로 전해졌다는 증거.
아마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도 콩나물국밥이 뜨끈한 채로 전달됐겠지.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요즘 얻은 능력이 이런 거라서요. 기왕 드리는 거 진짜 드시면 좋잖아요?”
“허, 허허······.”
기가 막힌 듯 웃음을 흘리던 국밥 할아버지는 곧 촉촉한 눈가로 미소를 지었다.
“수웅이 그 친구도 대경이도 자식 하나는 참 잘 뒀군 그래. 고맙구나, 고마워.”
그렇게 국밥 할아버지는 자신을 대신해 친구와 빚을 진 조카에게 따뜻한 국밥을 선물해 준 내 손을 떨리는 손으로 쓰다듬었다.
“고맙긴요. 제 할아버지랑 아버지이기도 한 걸요.”
나는 그렇게 말했지만, 국밥 할아버지는 한참을 고맙다는 말을 계속했다.
이거, 어묵 기계를 부탁해도 그냥 들어주시겠네.
아니나 다를까,
“기계만으로 되겠냐? 공장을 통째로 구해다 주마.”
수란을 말아서 콩나물국밥 한 그릇을 거하게 먹은 천 회장님은 내게 삼천 그룹이 운영하는 어묵 가공 공장 하나를 통째로 임대해 주었다.
그렇게 공장을 얻어내고 돌아오는 길, 나는 광장 헌터 마켓에 다시 들렸다.
“뭐? 포장마차? 어묵을 데우는? 그게 대체 뭔데?”
알비스에게 어묵용 포장마차를 의뢰하기 위해서지.
나는 어묵용 포장마차 설계도를 그에게 건네주며 재료도 함께 건네주었다.
“잠깐, 이거 판금 갑오징어 껍질 아냐?”
“네, 맞아요. 그걸로 만들어주세요.”
심해에서도 녹슬지 않는 금속이다.
이걸로 포장마차를 만들면 절대 녹슬지 않고 위생적으로도 좋겠지.
알비스도 연신 감탄을 터뜨렸다.
“이 귀한 걸 어디서 이렇게 구한 거냐?”
“요리하다가?”
“······뭐?”
내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알비스였지만, 오랜만에 재밌는 금속을 다루게 되었다며 보상도 받지 않고 포장마차를 만들어주기로 했다.
좋았어,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그건 즉, 성좌 마켓에서 ‘연성이네 포장마차’를 개업하는 날, 진시황제에게 어묵을 팔기만 하면 된다는 소리였다.
* * *
“대륙을 통일한 위대한 폭군!”
“삼황오제를 뛰어넘는 최초의 황제!”
“문자, 도량형, 화폐, 모든 중화의 기틀을 다진 분!”
“진시황제 납시오!”
거참 요란하게도 오네.
바글바글 오뎅탕이 끓고 있는 ‘연성이네 포장마차’ 앞에 진시황이 나를 보며 사악하게 웃었다.
“어디, 네 요리가 소문만 한 지 직접 짐과 짐의 가신들이 먹어보겠노라.”
그렇게 말하는 진시황제 뒤에는 수십 명의 문관과 장군들이 도열해 있었다.
그러니까 혼자서는 진상부리기 힘들 것 같아서 단체 손님 진상으로 오시겠다?
나는 진시황제를 보며 지지 않을 정도로 사악하게 웃어주었다.
“얼마든지 드셔보시지요.”
단체 손님? 진상 손님?
나 도연성, 유명 식당 사장 10년 차.
그런 건 이미 이골이 났거든?
얼마든지 와 보라고!
미미(美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