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chef of the constellations RAW novel - Chapter 9
9화. 애처가의 주문
[보이지 않는 저승의 왕이 아내를 위한 도시락을 만들어 줄 수 있냐고 묻습니다.]라는 성좌의 메시지를 받고 나서 잠시 후.
영업이 끝난 내 식당 ‘연성이네’ 홀에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말끔한 정장에 젊었을 땐 냉미남이라는 말이 딱 어울렸을 듯한 40대 중반의 백인 남성.
그는 의자에 앉아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꿀꺽.
무슨 눈빛이 저렇게 무서워?
그 시선을 받기만 해도 절로 마른침이 넘어간다.
뼛속까지 섬뜩했지만, 그의 눈빛 속에 호기심이 살짝 섞인 게 느껴졌다.
나는 바싹 마른 입 안을 침으로 적시며 조용히 물었다.
“저기, 그러니까 성좌시란 말씀이시죠?”
“그러하다. 내가 바로 성좌 ‘보이지 않는 저승의 왕’이다.”
분명 내 눈앞에 있는 건 어떻게 봐도 사람이건만, 스스로를 성좌라고 말하는 이 남자의 말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그런 내 생각을 알아챈 모양인지, 중년의 남성은 불쾌한 듯 미간을 찡그렸다.
“감히 네가 성좌의 말을 믿지 않는구나.”
“하하, 제가 이래 봬도 성좌를 만난 적이 몇 번 있어서요. 그분들은 절 당신들의 영역으로 데리고 가던 데요?”
남성은 의심받는 게 불쾌하다는 듯 말했지만, 난 카인과 스루드, 두 성좌를 겪어본 몸,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그러자 남성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 품위 없는 짓은 격이 낮은 것들이나 하는 것이지. 내 영역에 들어올 수 있는 인간은 죽은 영혼뿐이다.”
같잖다는 듯한 목소리로 말하는 그를 보며 나는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격이 낮다니?
무려 성경에 나오는 카인과 토르의 딸 스루드였는데?
그러자 남성은 나를 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놀랍게도 그와 동시에 남성의 주변에 검은 기운이 마치 후광처럼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지하에서 죽은 이들을 받아주고 다스리는 위대한 저승의 왕, 하데스.”
[보이지 않는 저승의 왕이 화신으로 현현해 당신을 쳐다봅니다.]차가우면서도 오만한 표정의 남자, 아니 성좌 하데스는 나를 보며 말했다.
“어떠냐? 이래도 나를 믿지 못하겠느냐? 그러하다면 너를 내 ‘집’으로 데려가면 믿겠지.”
‘하데스의 집’은 말 그대로 저승세계를 뜻했다.
그러니까 저 소리는 날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는 거지?
나는 하데스와 마찬가지로 당당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마주 보았다.
“성좌 하데스······.”
내 행동에 의아한 듯 나를 빤히 쳐다보는 하데스의 화신.
나는 그를 보며 바로 머리를 숙여 사과드렸다.
“몰라뵈어서 죄송합니다!”
그래. 하데스라면 카인이나 스루드를 보고 격이 낮다고 할 만하지.
무려 그리스, 로마 신화의 3대 주신이잖아. 제우스랑 포세이돈이랑 동급이라고.
거기다 무려 저승의 신이다.
아니, 저승의 주인 앞에서 뻗댄다는 건 바로 나 죽여주세요! 하는 거잖아.
자존심이고 뭐고 살아야지!
성좌 하데스는 그런 나를 보며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됐다. 고개 들어라. 지상의 인간들이 화신에 대해 모르는 것도 당연하지.”
“화신이요?”
그의 설명에 의하면 화신은 드높은 격을 가진 성좌들만 사용할 수 있는 특권으로, 자신의 계약자의 몸을 잠시 빌려 지상에 강림하는 능력이었다.
“아무리 화신이라지만, 내가 직접 여기로 발걸음 한 이유는 네 요리에 대한 칭찬글을 봤기 때문이다.”
“칭찬글이요?”
“그래.”
하데스는 능숙하게 상태창을 꺼내 조작하기 시작했다.
각성자가 보는 상태창과 비슷했지만, 거기에 적힌 언어는 신어(神語)였기에 내가 읽을 수 없었다.
때문에, 하데스는 직접 그 내용을 읽어주었다.
“안녕하세요, 성좌님들!! 토르딸랑구에요.
요즘 날도 따뜻하고 요리하기도 귀찮아지죠?
저도 정말 요리하기가 넘넘 싫어서 가끔 시켜 먹고 싶어질 때가 있어요.
그런데 놀라운 사실! 인간이 만든 요리가 있다네요?
인간이 만든 요리라니. 너무 먹어보고 싶어지지 않나요?
이상 인간이 만든 요리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성좌 이웃 추가해주세요!”
“······.”
“이 글에 이웃 추가를 하고 쪽지를 받아 너에 대한 정보를 얻었지.”
저승세계의 신 하데스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읽어주는 파워 블로그 스타일 글이라니.
게다가 저기 상태창에 투명하게 비쳐 보이는 그림은 뭔가 익숙한 따봉 그림인데?
성좌들의 커뮤니티에서 저런 글을 보게 될지 몰랐는데.
뭔가 어질어질해졌다.
정작 그 글을 모두 소리 내어 읽은 하데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위엄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군. 화신으로는 오래 있을 수가 없어서. 본론으로 들어가지.”
성좌 하데스는 후광으로 퍼뜨리고 있던 기운을 거둬들이곤 자리에 앉았다.
“말했듯이, 내 아내에게 요리를 해주었으면 한다.”
“아내라고 하시면 역시 페르세포네 님······?”
“잘 아는군.”
“그야 여기서도 유명한 이야기니까요.”
나는 차마 ‘당신이 여동생의 딸인 페르세포네를 보고 첫눈에 반해서 납치해서 조카를 신부로 삼은 거로’ 유명하다곤 말하지 못했다.
그러면 진짜 저승으로 데려갈 거 같아서.
“그렇다면 나의 아내가 일 년의 반을 저승에서 보내야 하는 것도 알겠군.”
“네.”
당신이 돌아간다는 페르세포네에게 몰래 석류알을 먹여서 그렇게 만들었······다고는 역시나 말하지 못했다.
목숨은 중요한 법이지.
“저승은 햇볕이 잘 들지 않는 곳이지. 그래서 곡물이나 채소가 잘 자라지 않는다. 농사의 여신을 어머니로 두고 있는 아내로서는 아무래도 지상의 음식을 그리워하더군.”
하데스는 거기까지 말하곤 진심으로 아내를 위하는 듯한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부탁을 해왔다.
“지상의 생기 넘치는 식물들로 요리를 해주면 좋겠군. 그 요리를 먹는 동안 나의 코레가 지상을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게 말이야.”
‘코레’는 처녀를 뜻하는 단어로 페르세포네의 어린 시절 이름이었다.
아직도 자신이 첫눈에 반했던 시절의 이름을 아내의 애칭으로 부르는 하데스를 보니 애처가 그 자체였다.
무서운 저승의 신이 자신과 같이 있을 때 고향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만 봐주길 원하는 순정남이라니.
나는 아직도 차갑고 오만한 표정이었지만, 그 안에 가려진 하데스의 순애적인 모습에 두려움이 사르륵 사라지는 걸 느꼈다.
“식물들로만 요리를 만들어 달라는 말씀입니까?”
“그래. 고기야 저승에서도 충분히 구할 수 있으니까.”
“흐음, 딱히 비건이신 건 아니군요.······.”
나는 이것저것 생각해보았다.
역시 최대한 고향의 맛을 맞춰주는 게 맞겠지?
스루드와 발키리들이 바이킹의 나라인 덴마크 요리 플레스케스텍을 마음에 들어 했듯이 말이다.
그렇게 고민하던 끝에 내 머릿속에 떠오른 건 하나였다.
그리스식 샐러드, 호리아티키 살라타.
채소를 큼지막하게 썰어놓고 양젖으로 만든 페타치즈, 그리고 올리브유와 와인 비니거로 만든 드레싱.
지중해의 건강함을 듬뿍 느낄 수 있는 메뉴였다.
요리를 떠올린 밝아진 내 얼굴을 보자 하데스의 눈빛도 번뜩였다.
“할 수 있겠나?”
“맛있는 요리는 손님의 미소로 완성되는 법. 3대를 내려온 연성이네의 주인이자 요리사로서 손님이 원하는 요리를 만들지 못하고 포기하는 건 사양이라서요.”
나는 하데스에게 엄지를 치켜올리며 대답했다.
“해보겠습니다.”
“······기대하고 있겠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볼 수 있었다.
저승의 신이 아주 희미했지만, 입꼬리를 올리며 웃는 모습을.
* * *
격주에 한 번 있는 식당의 정기 휴일.
나는 휴일을 틈타 하데스의 주문을 해결할 수 있는 곳을 찾아왔다.
“여기는 처음 와보네.”
나는 낡은 건물들 사이에 마치 동굴처럼 어두컴컴한 입구를 올려다보았다.
그곳에 걸린 간판에는 ‘광장 헌터 마켓’이라고 적혀 있었다.
게이트 사태 전에는 육회나 낙지탕탕이, 마약 김밥 등 맛있는 요리로 관광 명소였다던데.
종로에서 던전이 한번 열린 후로는 마력 농도가 높아져 일반인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헌터 및 각성자들만이 이용하는 헌터 마켓이 세워졌다고 한다.
그게 18년 전의 일이었고 그 전에 광장시장을 가보지 못한 나로서는 아쉬울 뿐이었다.
할아버지와 어머니가 광장시장의 맛을 굉장히 그리워하셨으니까.
“처음 오셨어요? 헌터면 헌터 등록증 보여주시고, 각성자면 각성자용 어플 켜서 QR코드 띄워주세요.”
이곳에 처음 온 내가 입구에서 신기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마켓 관리인이 내게로 다가와 신분 증명을 요구했다.
나는 각성자용 어플을 키고 관리인에게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각성자셨네요. 여기 온 목적이? 쇼핑? 의뢰?”
“쇼핑입니다.”
“미리 경고하자면 난동 부리면 헌터들이 출동할 거예요. 성좌들의 천벌은 덤이고.”
각자 화려한 능력을 가진 각성자들이 이용하는 곳인데다 서울에서 가장 큰 헌터 마켓이라서 경비가 삼엄한 모양이었다.
거기다 성좌들의 천벌까지.
헌터 마켓은 상업을 담당하는 성좌들이 수호하는 신성한 곳이기도 했다.
덕분에 여기서 난동을 부리는 이들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여기 출입증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나는 관리인에게서 출입증을 받아 들고 마켓 안으로 들어섰다.
각성하기 전에는 위험해서 안 왔고 각성한 후에는 굳이 올 필요가 없어서 안 왔던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요리사가 요리 재료 구하러 왔지, 뭐 하러 왔겠어.”
마력이 과해서 사람이 먹지 못했던 던전의 약초와 몬스터의 사체들은 농담으로라도 요리 재료라고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성좌들을 상대로 요리하게 된 내게는 이제 훌륭한 요리 재료라는 말씀.
페르세포네를 위한 곡물, 채소 요리 재료에 대한 힌트를 얻기 위해서였다.
“그럼 우선 약초상부터 가볼까.”
나는 관리인에게 덤으로 받은 지도를 보면서 마켓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약초상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화려한 헌터용 무기나 방어구 같은 아이템이라든가 연금술 상점에 진열된 화려한 포션 병 등이 눈에 띄었지만, 던전에 들어가지 않는 내게는 구경거리 그 이상은 아니었다.
나는 잠깐 눈요기를 하다가 바로 약초상으로 직행했다.
“어서 오세요.”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았을 작은 목소리가 나를 맞이했다.
약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카운터 뒤에 있는지 약초상 주인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둘러보시고 고르시면 카운터로 가져와 주세요.”
무덤덤한, 아니 손님이 귀찮은 듯한 목소리였다.
불친절했지만, 주인의 태도야 어찌 됐든 나는 재료만 찾으면 되니까.
······그런데 뭐부터 봐야지.
“너무 종류가 많은데?”
가게에 이것저것 진열된 것만 봐도 족히 100종류가 넘어 보였다.
게이트와 던전이 우리의 일상이 된 지 20년.
그동안 발견된 던전산 재료가 많은 건 당연하겠지만, 이런 작은 약초상에도 이렇게나 많을 줄이야.
안 되겠다. 이건 내가 훑어본다고 알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저기요, 사장님. 뭐 좀 여쭤봐도 될까요?”
“거기 없으면 없어요.”
고개도 내밀지 않고 툭 내던지는 대답.
그 무성의한 대응에 절로 내 미간이 찌푸려졌다.
장사, 즉 서비스업의 기본은 친절과 반가운 응대이거늘.
동업자로서 마음에 들지 않는구만.
“있고 없고가 아니라 약초에 관해 설명을 좀 들으려 합니다.”
“······하아, 잠시만요.”
내가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따지듯이 말하자, 그제야 정말 귀찮고 귀찮다는 목소리로 대답한 약초상 주인이 카운터에서 나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뭐가 궁금하신데요?”
······어? 여자애였어?
약초상의 주인은 작은 체구의 여성이었다.
흑단발에 얼굴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안경이 묘하게 귀여운 스타일이긴 한데, 부모님 장사를 돕는 건가?
당황한 내 표정을 본 그 여자애가 한숨을 짧게 내쉬곤 입을 열었다.
“나이 생각보다 많고요. 여기 사장 맞고요. 약초 잘 알고요.”
지금까지 이런 오해에 많이 시달렸는지, 마치 외운 것처럼 대답이 따발총처럼 튀어나왔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결례를 했네요.”
나는 급히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그동안 외모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면 내 말은 명백한 실례였다.
장사를 하다 보면 온갖 진상들이 있기 마련.
보아하니 오해 때문에 고생 많이 했을 텐데, 동업자로서 나까지 그런 고생에 일조할 수는 없지.
내 빠른 사과에 여자애, 아니 약초상 주인은 신기하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다행히 기분이 많이 상하지는 않았나 보다.
내 사과를 받아준 약초상 주인이 나를 보며 물었다.
“그나저나 뭐가 궁금하세요?”
“요리 재료에 쓸 약초를 찾으러요.”
“뒤지려고 작정했어요?”
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돌직구를 날려버리네.
정말 기분 안 상한 거 맞지?
“죽을 생각은 없는데, 요리 재료는 필요해요.”
“작정한 거 맞는 거 같은데.”
나를 보며 마치 동물원에서 탈출한 얼룩말을 보는 듯한 표정을 짓는 약초상 주인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전 요리사거든요.”
친절한 약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