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chef of the constellations RAW novel - Chapter 97
97화. 던전 브레이크
“으으, 요리에 정신이 팔려서 방송을 내팽개쳤다니. 갓튜버로서 난 실격이야······.”
내게 엔딩 멘트를 뺏겼다며 헤르메스가 우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하지만 너는 상업의 성좌잖아······.
거기다 그러면서도 아직 남은 떡볶이 하나를 두고 왜 미야랑 눈싸움을 벌이는 건데.
“감히 신화급 성좌인 이 몸의 마지막 떡볶이를 빼앗겠다는 거냐!”
아니, 고작 떡볶이 하나로 신화급 성좌의 격과 압박을 쓰지 말라고.
놀라운 건 미야가 그 압박을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다는 것.
나는 한숨을 내쉬며 둘을 말렸다.
“떡볶이는 언제든지 해줄 테니깐 싸우지 말아요.”
“정말?”
“정말인가요, 마스터?”
초롱초롱하게 두 눈, 아니 네 눈을 빛내며 나를 보는 미야와 헤르메스를 보니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렇게 떡볶이가 좋을까?
그런 내 물음에 헤르메스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떡이 묘하게 입에 달라붙는단 말이야. 원래 네 요리도 맛있었지만, 이번 건 뭔가 더 특별해!”
아, 전설급 쌀가루가 섞인 덕분이려나?
10%만 썼는데도 이런 반응이라니.
만약 100%를 쓰면 어떤 반응이 나온다는 거야?
“떡볶이는, 장담컨대 최고의 음식이에요.”
반면, 미야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떡보다는 떡볶이라는 요리 자체에 매료된 듯했다.
“마치 잃어버린 제 영혼의 조각을 먹는 듯한 느낌이에요.”
몽롱한 눈빛으로 떡볶이 그릇을 내려다보는 미야의 표정이 익숙하다.
딱 옛날 여고 앞에서 떡볶이 노점을 할 때 내 떡볶이를 먹은 여학생들의 표정이 저랬지.
역시 여자들에게 특히 떡볶이는 특별한 음식인 모양이었다.
남자들에게 제육볶음이 소울 푸드인 것처럼 말이야.
미야도 지금 저 표정을 보니 떡볶이와 사랑에 빠진 듯 했다.
“배송은 어떻게 할 거야?”
연신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떡볶이에게서 관심을 돌린 헤르메스가 물어왔다.
“헤이리스 님에게 부탁할 생각입니다.”
“아, 헤이리스, 그 아이 이야기는 들었어. 네 덕분에 성좌가 됐다며?”
헤르메스는 헤이리스의 어머니인 이리스와 직장 동료 사이.
똑같은 그리스 신화 성계에서 ‘전령의 신’을 맡아왔던 사이였다.
그리고 헤이리스에게 전령의 성좌가 될 수 있도록 조언해주고 도와준 사람이 바로 헤르메스였다.
“고맙다. 그 아이가 제대로 된 성좌가 되려면 수백 년은 더 걸릴 줄 알았어.”
인간 세계의 택배신이 되라고 조언해준 게 바로 그였다나?
그러나 그런 계책을 냈던 헤르메스도 헤이리스의 성좌 등극은 조금 더 걸릴 거라고 예측한 모양이었다.
나는 헤이리스와 이미 밀키트 배달을 하기로 이야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사실 헤이리스 님이 아니면 배달할 방법이 없긴 합니다.”
방송이 잘 되어도 너무 잘 되었다.
당장 주문이 들어온 밀키트만 해도 1천 개가 넘었다.
1 성좌당 1개를 시켰다고 치면 1천 명이 넘는 성좌가 내 떡볶이를 먹고 싶어 했다는 소리.
물론 가네샤처럼 혼자서 100개를 시키는 성좌도 있었으니 실제로는 1천 명은 안 되겠지만.
그러니 그녀가 아니라면 성좌들의 세계에 내 밀키트를 배달시킬 방법이 없기도 하고 말이야.
그런 내 말에 헤르메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의견에 동의했다.
“거기다 앞으로 제대로 된 성좌로 발돋움하려면 이번 일을 기회 삼아 성좌들에게 인지도를 올리는 게 좋겠네.”
1천 명이 넘는 성좌들에게 일일이 배달하면서 얼굴도장을 찍는다면 그녀의 인지도도 많이 올라갈 터였다.
헤르메스는 흐뭇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헤이리스의 삼촌인 내가 이 일을 안 도와줄 수 없지. 성좌 마켓에 창고 하나 대여해줄게. 거길 물류 창고로 써. 전송은 저 신상을 통해서 하고.”
헤르메스의 신상을 통해 성좌 마켓의 창고로 밀키트를 전송시키면 헤이리스가 여기까지 올 필요 없이 바로 성좌들의 세계 곳곳으로 밀키트를 배달할 수 있다.
신선도가 생명인 밀키트를 제때 배달하기 위해서 아주 적절한 도움이었다.
거기다 포장마차에서 쓸 재료들도 그 창고로 보내놓으면 임상옥이나 김만덕이 찾아가기 편할 테니 내겐 두 배로 이득이네.
“감사합니다. 제 사업까지 도와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내가 네 후견 성좌이니 이 정도는 당연히 해줘야지.”
“후견 성좌요?”
난 헤르메스랑 따로 계약 맺은 게 없는데?
내가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을 짓자, 헤르메스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입을 삐죽였다.
즉, 삐졌다.
“내가 너 장사하는 거 허가해줬잖아. 상업의 성좌들에게 장사 허가를 내주는 담당이 곧 후견 성좌가 되는 거라고.”
성좌 마켓이건 하계의 음식점이건 성좌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할 수 있는 건 대부분 성좌들이었다.
그래서 후견 성좌가 되더라도 도움을 주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대다수.
그런데 나처럼 인간이 성좌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한다고 하니, 후견 성좌가 된 헤르메스는 걱정이 많이 된 모양이었다.
그래서 이것저것 신경을 써준 거였구나.
“하, 지금까지 내가 도와줬던 게 그냥 도와준 거라고 생각한 거야?”
생각해보니 헤르메스가 내게 잘해준 게 보통이 아니었다.
불법 장사를 하지 않을 수 있도록 영업허가증을 내주고, 갓튜브에 홍보해주고 직원을 뽑는 것도 도와주고.
심지어 최고신들을 설득해 인간인 내게 넥타르를 가져다주는 위험까지 무릅썼다.
이거 감동인걸? 나는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인사를 했다.
“그동안 갓튜브 각을 뽑으려고 그러시나 했었는데 아니었네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크흠.”
고개를 드니 딴청을 피우는 헤르메스의 얼굴이 있었다.
갓튜브 각을 노린 것도 사실인 모양이구만.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것이었기에 나는 피식 웃으며 그에게 선물을 두둑이 챙겨주기로 했다.
“자, 떡볶이 만들어 놓은 거 다 가져가세요.”
“아싸!”
“안 돼!”
미야의 마치 나라 잃은 듯한 표정과 애절한 비명이 마음을 쿡 찔렀지만, 미야는 다음에 또 해주면 되니까.
그때까지 나는 몰랐다.
미야가 괜찮다고 할 때까지 무려 보름을 매일 같이 떡볶이를 만들어야 할 줄은 말이다.
* * *
깊고 어두운 던전의 지하 갱도.
마치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처럼 갱도 안에는 무수한 불빛이 떠올라 있었다.
밤하늘의 별이 아름답고 신비하게 느껴지는 것과 달리 갱도의 별은 보기만 해도 흉흉하고 섬뜩해졌지만.
“크르륵!”
던전에 몬스터가 생기는 이유는 간단했다.
던전의 코어 크리스탈인 게이트석은 끊임없이 마력을 사용해 던전에 몬스터를 채워 넣기 때문이었다.
던전을 공략하는 메커니즘은 이 게이트석의 마력을 고갈시키는 것에 있었다.
던전의 몬스터를 사냥해서 숫자를 줄이면 게이트석이 마력을 소모해 몬스터를 다시 만들어 낸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게이트석의 마력이 고갈되고, 마력이 고갈된 게이트석을 파괴하면 던전이 소멸하게 되는 것이었다.
물론, 이건 희망적인 결과에 불과했다.
제때 던전을 공략하지 못하거나 게이트석에서 몬스터가 비정상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하면, 끔찍한 재앙이 일어난다.
던전 브레이크.
던전이 계속해서 생겨나는 몬스터의 수를 감당하지 못하고 밖으로 뱉어내는 현상.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면 몬스터들은 통과하지 못하던 던전 게이트가 통과할 수 있게 변한다.
그렇게 되면 던전을 가득 채웠던 몬스터들이 일시에 던전 밖, 그러니까 현실에 풀리게 되는 것이었다.
“크르륵, 이곳 너무 좁다!”
여기,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기 직전인 던전이 있었다.
위치는 구 2호선 신답역 부근의 폐노선.
게이트 사태 이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지하철 노선에 던전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서울의 지하철 노선은 크게 줄었다.
달리는 지하철이 던전 게이트와 부딪칠 경우, 대부분 지하철이 게이트보다 크기가 컸기에 통과하지 못하고 추돌사고가 일어나버리는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
통과하더라도 마력이 가득 찬 던전 안에 던져진 비각성자들은 얼마 버티지 못하는 비극이 일어나기도 했고.
때문에, 많은 노선이 폐노선이 되었고, 성수에서 갈라져 신설동으로 향하는 성수 지선도 운행을 그만두고 폐쇄되었다.
순환선인 2호선 본선은 서울의 주요 지점과 연결된 터라, 도시철도 길드 헌터들이 순찰을 돌면서 그대로 유지되었지만, 이용객이 적은 지선까지 유지하긴 힘든 탓이었다.
그래서 아무도 신답역 노선에 던전이 생긴 것을, 그리고 그 던전이 브레이크를 일으키라는 것을 알 수 없었다.
“크르륵! 반짝이! 반짝이를 뺏자!”
“인간, 증오스러운 인간들은 빛나는 반짝이가 많다!”
“모두 우리가 뺏는다!”
이 던전의 몬스터들은 기묘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었다.
12살 정도 되는 아이만 한 인간형 체구.
전신에 털이 나 있고 묘하게 개가 짖는 듯한 소리로 말을 하는 몬스터들.
헌터들은 개와 인간을 섞어놓은 듯한 이 몬스터들을 가리켜 코볼트라고 불렀다.
“인간들의 반짝이를 빼앗고 집도 빼앗자! 여긴 너무 좁다!”
“광산, 습하고, 어둡다! 반짝이가 많은 곳으로 가자!”
코볼트는 어두운 광산에서 살면서 빛나는 거라면 모두 훔쳐 가는 F~D급 몬스터였다.
고블린과 비슷한 위험도를 지녔기에 동굴 속의 고블린이라 불릴 정도였고 헌터들에게도 우습게 여겨지는 몬스터였지만, 던전 브레이크가 벌어지면 이야기가 달랐다.
“우리는 강하다!”
“빼앗을 수 있다!”
좁고 한정된 공간에서 개체수가 늘어나면, 먹을 것이 부족해진다.
그렇게 된 코볼트들은 서로를 잡아먹고 변질되기 시작했다.
털이 빠지고 비늘이 돋아나며 개처럼 생겨서 나름 귀여웠던 외형은 징그러운 파충류처럼 변했다.
다른 동족을 많이 잡아먹을수록 덩치도 커져서 어떤 코볼트는 왕도마뱀 정도의 크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어떤 코볼트는 악어보다도 더 큰 덩치를 자랑했다.
이렇게 변질된 코볼트는 C~B급의 강력한 몬스터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때, 인간에 대한 맹목적인 증오를 표출하며 변질된 코볼트들이 기다리던 던전 브레이크가 시작되었다.
“그러니 나가자! 나가서 인간 잡아먹자!”
“반짝이를 빼앗자!”
“크르르륵!”
변질된 코볼트들은 괴성을 지르며 던전 게이트 밖을 향해 달려 나갔다.
그렇게 몬스터들이 모두 빠져나간 뒤, 한참이 지나고 조용해진 던전.
“흐흑.”
광산 던전 구석에서 훌쩍이는 작은 코볼트 한 마리가 있었다.
다른 코볼트들과 달리 변질되지 않은 듯, 흰색 털로 전신이 뒤덮인 그 코볼트는 귀여운 강아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들 잡아먹고, 잡아먹혀. 무서워.”
모두가 던전 브레이크의 영향으로 변질될 때, 이 하얀 코볼트는 홀로 강인한 정신력으로 이를 견뎌냈다.
그리고 다른 코볼트들에게 잡아먹히고 싶지 않아 광산 깊은 곳으로 숨었다.
그 덕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지만, 먹을 것을 구할 수 없었기에 이제는 거의 굶어 죽기 직전이었다.
“배고파······.”
움직일 기력도 없어 바닥에 엎드려 있던 하얀 코볼트의 코에 어디선가로부터 흘러들어오는 맛있는 냄새가 났다.
개를 닮은 종족인 만큼 후각도 뛰어난 덕분이었다.
“먹을 거······?”
냄새만 맡았는데도 힘이 솟는 듯했다.
하얀 코볼트는 남은 힘을 모두 짜내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냄새가 흘러나오는 방향으로 힘겹게 발을 내디뎠다.
* * *
삐——! 삐——-!
직원들을 모두 쉬게 하고 홀로 주방에 남아 새로운 요리를 개발하던 나는 갑자기 요란하게 울리는 경보음 소리에 미간을 찌푸렸다.
“던전 브레이크인가?”
게이트 사태 이후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음을 알리는 경보음은 PTSD를 일으킬 정도로 짜증 나고 동시에 두려운 소리였다.
······우리 아버지도 던전 브레이크에서 사람들을 구하려다가 돌아가셨으니까.
헌터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1년에 한두 번은 이렇게 던전 브레이크가 터졌다.
“피난 준비부터 해야겠네.”
던전 브레이크 경보가 울리면 모든 사람은 정해진 대피소로 피난을 가야 한다.
괜히 집에 남아있다간 몬스터들에게 습격을 당할 수 있었고, 몬스터들에게 붙잡히면 헌터들의 몬스터 토벌에 방해가 되니까.
“잠깐만.”
익숙하게 피난 배낭을 싸려던 나는 손을 멈췄다.
‘연성이네’에선 전설급 이하 성좌들도 깽판을 못 치는데 던전 브레이크로 튀어나오는 몬스터들이 여길 쳐들어올 수 있을까?
거기다,
“천오나 에녹이 몬스터한테 지는 건 상상이 안 간단 말이지.”
그 둘은 제천대성 손오공의 분신과 최초의 흡혈귀 진조였다.
몬스터들이 오히려 천오와 에녹을 보면 경기를 일으킬 것 같은데?
그리고 잊고 있었지만, 나도 권속급의 격과 신체를 가졌다.
싸우는 법을 몰라 전투할 생각은 없었지만, 어이없게 당할 몸은 아니라 이거지.
“피난은 무슨. 그냥 평소대로 있자.”
나는 피식 웃으며 하던 요리에 마저 집중했다.
그래서 알지 못했다.
내가 만드는 요리의 냄새에 이끌려 ‘연성이네’로 오고 있는 한 몬스터가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휴가를 떠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