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chef of the constellations RAW novel - Chapter 99
99화. 영혼의 단호박 수프
“끄응······.”
끙끙대는 코볼트를 매장 바닥에 눕히고 찬찬히 살펴보았다.
수의사는 아니었지만, 돌아가신 아버지가 강아지를 좋아해 어릴 적에 대형 진돗개 똘이를 길렀던 적이 있었기에 대충의 지식은 있었다.
“아버지 때문에 똘이가 고생 많이 했었지.”
보통은 대형견과 산책하면 사람이 개의 체력을 이기지 못하고 지치는 게 보통.
하지만 각성하기 전에도 소방관으로 활동하시며 괴물 같은 체력을 자랑했던 아버지여서 항상 결과는 똘이의 항복이었다.
그때 똘이가 목이 말라 지쳐있을 때의 표정과 지금 이 하얀 코볼트의 표정이 똑같았다.
“생긴 것도 비슷하네.”
삼각형의 귀가 뾰족하게 서 있고 늠름하면서도 어딘가 멍청한 표정의 똘이와 지금 ‘연성이네’ 홀 바닥에 누워 있는 저 하얀 코볼트는 어딘가 닮아 있었다.
그래서 더 그냥 지나치질 못하겠더라고.
“일단 한번 체크를 해보자.”
나는 하얀 코볼트의 입술을 들어올려 잇몸을 살펴보았다.
잇몸이 말라 있고 잇몸을 살짝 눌러보니 원래대로 돌아오는 게 살짝 느리다.
탈수의 전형적인 증상이었다.
“일단 물부터 좀 먹여야겠는데?”
일단 나는 주방에서 납작한 그릇에 물을 떠 와서 하얀 코볼트 앞에 두었다.
코볼트는 이족보행을 하는 몬스터지만, 손을 쓸 수 있는지 잘 몰라서 말이야.
쓸 수 있다 하더라도 지금 같이 탈진한 상황이라면 컵을 제대로 쥘 수나 있을지 의문이었다.
“끄응······.”
그러나 그런 나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하얀 코볼트는 물을 마시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는 고개를 살짝 돌리며 안 먹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왜 그래?”
“먹던 물···, 아냐······.”
먹던 물이 아니라고?
매일 아비앙이나 파리에 같은 고급 생수를 먹는 강아지라서 건방지게 거절하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이 하얀 코볼트는 몬스터니까.
그렇다면 뭐가 문제일까?
“아, 마력수를 먹여야겠구나.”
던전에서 살던 몬스터들이 먹는 물은 당연히 마력이 깃들어 있었을 터.
동물들은 대부분 자신한테 익숙한 것이 아니면 입에 대지 않는다.
이 하얀 코볼트가 생긴 것처럼 동물로서의 본능이 강하다면 그냥 물을 거부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잠깐만 기다려봐.”
나는 주방으로 가서 냉장고에서 마력수 열매를 꺼냈다.
얼핏 보면 단호박처럼 생긴 마력수 열매는 잘라보면 과육이 마력수로 가득 찬 오이와 비슷한 열매였다.
페르세포네에게 바쳤던 호라이티키 살라타에 넣었던 것처럼 이 자체로 요리에 쓰기도 했지만, 이 열매의 즙을 짜내어 마력수로 더 자주 쓰고 있었다.
다만 이번에는 마력수로 짜내지 않을 생각이었다.
“마력수를 먹이는 것보다 이것 자체로 먹이는 게 낫지 않을까?”
이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아버지와 똘이가 생각나서였다.
체력으로 항상 똘이를 이겼던 아버지는 똘이가 산책 과정에서 지치지 말라고 오이를 간식으로 먹였다.
오이가 다른 영양분이나 칼로리가 거의 없다시피 해서 그렇지, 수분 하나는 끝내주게 많았으니까.
강아지의 수분 보충 간식으로는 최고였다.
“거기다 마력수 열매는 오이랑 다르게 특수 효과도 있고.”
마력수 열매로 짠 마력수는 아무런 속성도 없었지만, 마력수 열매의 과육은 달랐다.
특수 효과 [전해질 보충]이 붙어 있어서 심한 탈수나 과다 출혈 증상이 있는 헌터들에게 마력수 열매 과육으로 만든 포션을 주기도 했다.
지금 저 하얀 코볼트는 탈진 현상을 보이고 있으니 과육 채로 먹이는 게 더 좋을 터였다.
“자, 이걸 먹어 봐.”
“끄응······.”
하얀 코볼트는 내가 잘게 잘라서 가져온 오이 조각, 아니 마력수 열매 조각에 코를 대고 킁킁대기 시작했다.
그러곤 참지 못하겠다는 듯 덥석 한 입을 와작 씹어먹었다.
헤르메스가 여기에 있었다면 와삭와삭 깨물어 먹는 소리 채로 녹화해서 ASMR 방송으로 올렸을지도 모르겠네.
“아웅, 아웅.”
거기다 새끼강아지가 밥을 먹을 때처럼 몸을 부르르 떨면서 아웅 소리를 내는 모습이 은근히 귀여웠다.
나는 흐뭇한 표정으로 하얀 코볼트가 마력수 열매 먹방을 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거, 헤르메스보고 뭐라고 할 게 아니네.
어느새 나도 스마트폰을 들어서 그 모습을 영상으로 찍고 있었으니까.
나중에 미야한테 보여줘야지.
“끄윽.”
순식간에 마력수 열매 한 접시를 다 먹어 치운 하얀 코볼트가 짧은 트림을 내뱉었다.
푸석푸석하던 털에 윤기가 흐르고 눈도 초롱초롱해져 있었다.
특수 효과 [전해질 보충] 외에도 과육에 포함된 마력수를 먹었을 테니 마력도 보충된 듯했다.
“맛있어······. 이런 신선한 과일 처음 먹어 봐.”
“맛은 딱히 없을 텐데?”
당연히 나도 먹어본 적이 있었다.
그냥 상큼한 맛이 나고 오이 특유의 향이 덜 나는 오이 맛?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오이, 딱 그 정도였다.
“광산에선 과일 없어. 버섯만 먹었어.”
“아.”
코볼트는 광산형 던전에서 나오는 몬스터.
평생 그곳에서 살았다면, 이런 신선한 과일은 처음 먹어 보는 게 맞겠지.
달지도 않고 특별한 맛이 있는 과일도 아니지만, 신선한 과일을 처음 먹어 보는 이 하얀 코볼트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천상의 맛으로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더 먹어도 돼?”
초롱초롱한 눈으로 날 보며 소심하게 그릇을 슬쩍 내미는 하얀 코볼트.
그 귀여운 요청을 거부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
“아니, 안 돼.”
“끼잉.”
여기 있었다.
물론 이 귀여운 몬스터를 괴롭히려고 거부한 건 아니고.
“수분 보충을 했으면, 이제는 영양분이 되는 먹을 걸 먹어야지. 자, 따라와.”
“어딜?”
“어디긴,”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하얀 코볼트를 보며 씨익 웃어주었다.
“밥을 만드는 곳이지.”
“밥?”
“배부르게 해주는 거야.”
제대로 이해했나 보네.
내 말을 듣자마자 하얀 코볼트의 주둥이에서 침이 주르륵 흐르는 걸 보면서 나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 * *
마력수 열매를 먹고 기력을 찾은 하얀 코볼트를 오픈 키친 바에 앉히고 나는 오픈 키친 안으로 들어갔다.
꼬르륵.
녀석의 뱃속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아마 아까 먹은 마력수 열매가 뱃속에서 소화되면서 나는 소리겠지.
“배고파······.”
“미안, 금방 맛있게 해줄게.”
나는 머쓱하게 웃으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서서 어떤 요리를 해줄지 고민했다.
“원래 보양식이라고 하면 단백질 위주의 음식이 맞긴 하지.”
자고로 보양식이라면 삼계탕이나 장어처럼 단백질이 풍부한 식단이 보통이었다.
애견인들은 자신들의 강아지에게 닭고기와 황태를 주로 먹인다던가?
말린 몬스터 폴락을 조리해서 요리하면 딱일 것 같았다.
“그런데 그건 지금 조금 위험하지.”
황태는 사실 단백질도 풍부하고 개에게 좋은 영양분도 많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좋은 보양식은 아니었다.
일단 바다 생선이라 염분이 지나치게 많았고 작은 가시들이 개의 목에 걸릴 위험도 있다.
염분과 가시를 어느 정도 제거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단백질이 풍부한 사료를 먹는 현대의 강아지들에게 극적인 보양식이 되지도 않고 말이다.
결정적으로,
“탈진 상태에서 갓 회복한 개에게 황태나 닭고기처럼 고단백 요리는 오히려 독이니까.”
아무리 영양분이 풍부해도 소화를 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설사나 구토를 유발하고 췌장염까지 불러일으키는 독이 된다.
그래서 녀석에게 고기를 먹일 생각은 일단 제쳐두었다.
“그러면 역시 이건가.”
나는 아까까지 고민하던 단호박을 떠올렸다.
단호박은 강아지에게 좋은 칼륨이 풍부했고 섬유질이 많아서 소화에 도움이 되는 음식이었다.
이제 막 회복한 녀석에게 딱 좋을 터.
“씹기 힘들 수도 있으니 곱게 갈아서 수프를 만들자.”
단호박죽도 좋겠지만, 도와줄 천오와 미야가 모두 휴가를 간 지금은 죽보다 수프를 만드는 게 더 빨랐다.
“일단 단호박을 잘라서 껍질을 벗긴 뒤 씨를 제거하고······.”
나는 마력을 듬뿍 먹고 자라서 그런지 돌처럼 단단한 단호박을 [최초의 칼]로 토막을 내었다.
“단호박죽은 보통 여기서 단호박을 통째로 찐 다음에 그 살을 으깨서 쓰지만,”
단호박 수프는 단호박 과육을 미리 익히지 않고 바로 조리에 들어간다.
찌는 과정에서 수분이 스며들어 단호박의 진한 맛을 연하게 하거든.
그래선 단호박 본연의 맛을 제대로 즐길 수가 없다.
나는 마찬가지로 [최초의 칼] 안의 씨를 걷어내고 껍질도 매끈하게 벗겨냈다.
“그런 다음은 익히기 좋게 잘게 잘게 썰고.”
나는 썬 단호박 조각들을 마감람유를 두르고 달군 팬 위로 넣어서 볶았다.
그리고 던전산 암염을 아주 살짝 뿌렸다.
평소에 사료를 통해 충분한 염분을 섭취하는 강아지들에게 필요 이상의 염분은 독이었지만, 또 아예 필요 없는 건 아니었거든.
특히 동굴에서 살아온 녀석처럼 오랫동안 염분을 섭취하지 못한 개에게는 오히려 적절한 염분은 도움이 될 터였다.
“원래는 양파도 같이 넣고 볶아야 하지만, 그건 진짜 위험하니 패스.”
양파에 들어있는 독소가 개나 고양이의 적혈구를 파괴하기 때문에 절대 주면 안 된다.
코볼트에게도 같은지는 모르겠지만, 위험을 무릅쓰면서 줄 이유는 없었기에 나는 양파를 과감하게 뺐다.
“양파의 단맛과 감칠맛은 다른 재료로 대체가 되니깐.”
양파의 단맛을 대신해 던전 보석 벌꿀 가루를 조금 넣고, 감칠맛을 대신해선 던전 북어 대가리와 다시마를 끓인 육수를 넣어 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사이 단호박 조각들이 충분히 익어서 뭉개지기 시작했고 수분도 어느 정도 날아가 있었다.
단호박의 맛이 아주 진해져 있겠네.
나는 볶은 단호박 조각을 절구에 넣고 빻았다.
믹서기로 갈면 편하지만, 익혔다고 하더라도 아직 던전 단호박의 조직이 단단해서 말이야.
이럴 땐 힘으로 한번 으깨주고 가는 게 좋았다.
“자, 이제 육수를 붓고 다시 갈아주자.”
이미 충분히 곱게 빻아져 있었지만, 수프는 내용물이 고우면 고울수록 더 먹기 편하고 부드러워지기에 한 번 더 믹서기에 갈았다.
이때 육수를 부어주면 더 잘 갈리는 데다 부드러움과 감칠맛을 더해준다.
“이야, 진짜 진한 노란색이네.”
겨자색처럼 노랗게 갈린 단호박을 냄비에 넣고 냉장고에서 꺼낸 미리의 양젖을 넣어 섞었다.
그리고 뭉근하게 끓이면, 겨자색의 단호박이 개나리색처럼 밝고 노란 단호박 크림수프가 되는 거지.
“음, 향기 좋네.”
단호박과 양젖의 향이 달콤하고 고소하게 올라왔다.
참지 못하고 살짝 스푼으로 떠서 간을 보았다.
“단맛을 조금 보태줘야겠네.”
단호박은 사실 그렇게 단 식재료는 아니었다.
거기다 우유랑 섞었으니 더더욱 단맛이 옅어졌을 거기에 나는 던전 보석 벌꿀 가루를 넣어 단맛을 살려주었다.
그리고 다시 간을 보자,
“완벽해.”
적당히 달고 고소한, 완벽한 단호박 수프가 완성되었다.
만약 성좌들을 대상으로 파는 요리였다면, 찐 단호박의 속을 긁어 그릇으로 삼아 그 안에 수프를 부어서 냈겠지만, 지금은 저 녀석이 배고파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일 테니까.
그럴 시간 없이 바로 내어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래도 뭔가 살짝 아쉬운데.”
하얀 코볼트의 위장에 부담도 되지 않고 수프랑 잘 어울리는 요깃거리가 어디 없을까?
그러던 내 눈에 황갈색의 덩어리가 포착되었다.
“그래, 저게 있었네.”
황갈색의 덩어리는 다름 아닌 100% 호밀빵.
밀이 아닌 호밀로 만들어서 색이 어두웠고 샤워 도우로 발효한지라 시큼한 맛이 나는 독특한 빵이었다.
물론 우리 입장에선 독특한 빵이지만, 유럽, 특히 동유럽 쪽에서는 우리의 보리밥처럼 가난한 시절 매일 같이 먹었던 빵이었다.
흔히 옛날 민담에 나오는 검은 빵이 바로 이 호밀빵이거든.
그런데 이 호밀빵이 왜 여기에 있느냐?
“미야한테 고마워해야겠네.”
마철성이 수확한 호밀을 본 미야가 자기 고향의 빵을 맛보여주겠다며 만들어 놓았던 것이었다.
나는 여기 남아있는데, 자신은 여신들의 다과회에 참석하는 게 미안한지, 나 먹으라고 호밀빵 샌드위치를 만들어 놓고 갔거든.
요리사한테 밥 챙겨주는 사람, 아니 권속이라니. 미야도 독특하단 말이야.
물론 그 샌드위치는 맛있게 잘 먹었다.
“그리고 덕분에 남은 빵을 써먹을 데가 생겼네.”
나는 미야가 샌드위치를 만들고 남겨놓은 호밀빵을 깍둑썬 다음 양젖 버터를 녹인 팬 위에서 볶듯이 굴려주었다.
여기서 설탕이나 마늘, 파슬리 가루를 넣는 레시피도 있지만, 이번에는 단호박 수프랑 같이 먹을 거니까.
“됐다.”
버터를 잔뜩 머금고 노릇하게 익은 주사위 모양의 빵 조각들을 단호박 수프 위에 얹은 뒤, 나는 접시를 들고 다시 오픈 키친으로 나갔다.
“······끄응.”
오이, 아니 마력수 열매의 효과가 사라져가는지, 하얀 코볼트는 다시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이런,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네.
“자, 먹어 봐. 뜨거우니 조심하고.”
나는 하얀 코볼트의 강아지 손에 수저를 쥐여주었다.
처음엔 될까 싶었지만, 광산에서 곡괭이를 쥐는 몬스터답게 다행히 수저를 떨구지 않고 잘 잡았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하얀 코볼트가 단호박 수프를 입에 넣었다.
“맛! 있어!”
“그래? 다행이네.”
다행히 녀석의 입맛에 잘 맞는 모양이었다.
내가 그 모습을 보고 흐뭇하게 웃는 순간이었다.
“아우우!”
하얀 코볼트는 고개를 하늘 위로 쳐들고 길게 하울링을 뽑았다.
그러곤 고개를 접시에 처박듯이 가까이하곤 허겁지겁 수프를 먹기 시작했다.
녀석, 그렇게 맛있었을까.
“더 줘!”
입가 털에 묻은 수프까지 혀로 낼름낼름 핥아먹는 녀석이 빈 접시를 내미는 건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오냐, 네가 그럴 줄 알고 많이 만들어놨다.”
“헥헥!”
얼마나 기쁜지 꼬리를 헬리콥터의 프로펠러처럼 빙빙 돌리는 녀석에게 나는 단호박 수프를 듬뿍 담아 주었다.
그리고 다시 접시에 달려드는 녀석을 흐뭇하게 보는 동안 내 머릿속에 생각 하나가 번뜩이고 스쳐 지나갔다.
잠깐, 이 몬스터랑 나랑 어떻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거지?
설기를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