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0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103화
이게 아닌가?
아무리 기다려도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멋쩍은 마음에 입술을 달싹이며 말을 이었다.
“그…… 이찬혁 씨 부탁으로 왔습니다. 안에 계시면 대답해 주세요.”
이찬혁이란 말에 부스럭거리던 소리가 멈췄다.
하지만 방문은 열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경계심만 증가시킨 건가?
하긴, 옥탑방에 있는 여자는 우리의 존재를 모른다.
경관이 찾아왔다고 생각하겠지.
말주변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탁- 탁- 탁.
뒤이어 계단을 올라오는 최현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최현은 내 얼굴과 옥탑방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헛기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이찬혁 씨께 현 상황은 얼추 들었습니다. 괜찮으십니까?”
사락-
뒤이어 옥탑방의 창문을 가려둔 커튼이 흔들리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난 놀란 눈으로 다급히 최현을 감싸며 바닥에 엎드렸다.
혹여나 총구를 겨눌지도 모르기에, 나 역시 예민해진 상태였다.
난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외쳤다.
“쏘, 쏘지 마세요! 우리도 생존자예요! 경산에서 왔습니다!”
한참이나 정적이 이어지고, 침묵을 깬 건 최현이었다.
“야, 그림이 좀…… 이상하다. 비켜.”
“총 맞고 싶어? 가만히 있어 인마.”
톡톡-
뒤이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슬쩍 고개를 틀어 창문을 쳐다봤다.
이름 모를 여자가 최현과 내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여자는 내 얼굴을 보고 마른침을 삼키더니, 조심스레 창문을 열며 얘기했다.
“우, 움직이지 말고,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해요.”
“……예.”
“찬혁이 어디 있어요.”
뭐라고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대답을 흐리자, 여자는 떨리는 손으로 권총을 겨누며 재차 물었다.
“내 남편 어디 있냐고.”
역시 권총을 소지하고 있었다.
죽었다고 하면 쏠 것 같은데?
이래서 긴급 퀘스트가 싫다.
거짓말을 해야 되나?
아니면 사실대로 얘기해?
시간을 끌면 여자의 의구심만 커질 것이다.
난 마른침을 삼키며 최대한 태연하게 대답했다.
“이찬혁 씨의…… 유언이었습니다. 아내를 구출해 달라는.”
유언이란 말에 여자는 허망한 표정을 지으며 벌어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순식간에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이고, 쥐고 있던 권총이 달달 떨리기 시작했다.
지금 움직이면 진짜 총 맞을 것 같아서, 여자가 입을 열 때까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여자는 우리를 경계하면서도, 울컥하는 마음에 정신을 다잡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몇 차례고 무너지면서도, 다시금 내게 총을 겨누고, 다시 무너지기를 반복했다.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어.”
“저희가 이찬혁 씨를 발견했을 때는…… 너무 늦은 상황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내가 사과할 일은 아니지만, 지금은 여자부터 진정시켜야 했다.
이에 마른침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이찬혁 씨가 돌아가시기 전에, 부인이 여기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전체적인 상황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총구 내리세요.”
난 여자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부디 방아쇠를 당기지 않기를 기도했다.
현재 내 신체 능력이라면 권총에 맞고 죽을 확률은 낮지만, 혹시라도 머리에 맞으면 모를 일이다.
“흐흑…… 흐윽…….”
여자는 터지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런 와중에도 꽉 쥐고 있는 권총.
그 모습을 보고 불안한 마음이 차올랐다.
나한테 총을 쏘는 게 아니라, 혹시라도 본인의 머리에 겨눌까 봐 불안했다.
여자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흐느끼더니, 손에 쥐고 있는 권총을 쳐다보며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그 모습을 보고 쏜살같이 여자의 곁으로 달려가 창문 너머로 팔을 집어넣었다.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느낌이 왔다.
여자가 스스로 생을 마감할 것이라는 느낌이.
난 여자의 팔을 잡고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도록 저지했다.
“놔…… 놔! 이거 놔!”
“진정하세요!”
“흐흑…… 나도 죽을 거야. 나 혼자…… 나 혼자 어떻게 살라고…….”
“……아기도 생각하셔야죠.”
여자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끝내 권총을 놓으며 흐느껴 울었다.
난 창문을 타고 들어가 바닥에 떨어진 권총부터 손에 쥐었다.
권총에 남은 탄알을 확인한 순간, 덩달아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실린더에 남은 탄알은 하나뿐이었다.
* * *
여자가 진정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여자는 퉁퉁 부은 눈으로 내게 물었다.
“남편의 마지막은…….”
차마 말을 끝맺지 못하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난 이마를 긁적이며 생각을 정리한 뒤, 약간의 거짓말을 섞어서 얘기했다.
“남편분은…… 좀비에게 물린 상황에 저희와 만났습니다. 본인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걸 알고, 자초지종을 설명하더라고요.”
여자는 아랫입술을 파르르 떨며 눈살을 찌푸리더니, 몇 차례 심호흡하며 물었다.
“많이…… 고통스러워 보였나요?”
“…….”
이건 거짓말할 수 없었다.
좀비에게 물린 사람이 아무 고통 없이 갔다고 하는 건…… 너무 위선 같았다.
이에 훅, 하고 숨을 뱉으며 얘기했다.
“좀비로 변이되는 걸 원치 않으셨어요. 그래서…… 제가 임종을 지켜드렸습니다.”
여자는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상황을 지켜보던 최현은 구레나룻을 긁적이며 얘기했다.
“재형아, 슬슬 움직여야 돼. 곧 해 떨어져.”
최현의 말을 듣고 여자에게 물었다.
“죄송하지만…… 움직일 수 있으세요? 더 늦기 전에 돌아가야 합니다.”
“두 분은 경산에서 오셨다고 그랬죠?”
“네.”
“그쪽은 어때요? 거긴…… 상황이 괜찮아요?”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
여자는 눈가에 고인 눈물을 훔치더니,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숨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뒤이어 한층 진정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어디로 갈 생각이에요?”
“지금은 수성구로 이동할 생각입니다.”
“거긴 안전한 쉘터가 있어요?”
“그건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일행과의 약속이라서요.”
“약속?”
“각자의 본가를 확인하기로 했습니다.”
“……생존자가 많아요?”
“자세한 건 돌아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여자는 아랫배를 쥐고 조심스레 일어나더니, 두 볼이 부풀 정도로 천천히 숨을 마셨다 내쉬며 얘기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버거워요.”
“네?”
“누군가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것도 지쳤고, 제가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거, 잘 알아요.”
“…….”
“그런데도 괜찮아요?”
감당할 수 있냐고 묻는 건가?
혹은 자신감을 잃은 걸까.
난 여자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여전히 퉁퉁 부은 얼굴이지만, 눈빛만은 달랐다.
본인을 이곳에 버리고 가더라도 탓하지 않겠다는 표정.
이에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한슬기에요.”
“한슬기 씨, 본인 깜냥은 본인이 정하는 거죠.”
“…….”
한슬기는 금세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 숙였다.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너무 냉정하게 얘기했나?
이에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저희가 도와드릴 테니까, 같이 힘내요.”
도와준다는 말에 한슬기의 어깨가 잔잔하게 떨리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이찬혁과 한슬기가 지금껏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알 것 같았다.
수많은 차별 속에 심신이 지친 모양이다.
임산부를 위하던 시대가 한순간에 차별하는 시대가 됐으니, 그녀의 노고를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최현이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울지 말고 힘내요. 우리 일행은 사고회로가 좀비시대 이전에 멈춰 있으니까.”
“그걸 농담이라고 하냐?”
눈꼬리를 치켜뜨며 묻자, 최현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왜, 맞잖아. 쓸데없이 착해빠져서.”
한슬기는 최현의 말을 듣고 또다시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씁쓸한 마음에 조심스레 한슬기를 위로했다.
한슬기는 더욱 격하게 울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얘기했다.
“미안…… 해요. 이런 대화가…… 너무…… 오랜만이라.”
한슬기의 말을 듣고 괜스레 나까지 먹먹해졌다.
시선을 회피하며 한 차례 코를 훌쩍이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최현이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네가 왜 울어 인마.”
“울긴 누가 울어.”
“하여튼 별난 놈이야. 좀비는 주먹으로 때려잡으면서, 은근히 소녀 감성이라니까.”
* * *
한슬기를 경호하며 철물점으로 향했다.
오는 길에 좀비들을 정리했기에 위험은 없었다.
다만 만삭의 한슬기와 함께 이동해야 하기에, 걸음은 현저히 느려졌다.
한슬기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단 한 번의 투정도 없이 열심히 걸음을 옮겼다.
내가 들고 뛰는 게 속 편할 것 같지만, 이는 한슬기가 거절했다.
그런 한슬기의 모습에 더더욱 마음이 아려왔다.
몇 분 전에 남편의 부고를 들었고, 몸은 만삭이라 속보도 버거울 것이다.
이런 절망스러운 현실에 포기할 법도 한데, 살아남고자 하는 그녀의 의지가 엿보였다.
서서히 철물점에 다다르자, 안개 속에서 이곳을 바라보는 인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정지 신호를 보내자, 뒤에 있던 한슬기가 겁에 질린 모습을 보였다.
미동도 없이 인영을 응시하자, 뒤늦게 우리를 발견한 인영이 양손을 흔들었다.
설여원인가?
확신이 서지 않아서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흐릿한 인영이 입을 열었다.
“재형아. 나야.”
귓가를 간질이는 설여원의 목소리.
이에 가드를 내리며 뒤에 있는 한슬기에게 얘기했다.
“일행입니다. 괜찮아요.”
한슬기는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양팔을 흔들던 설여원이 이곳으로 다가온다.
설여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옆에 있던 한슬기를 쳐다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이분이 이찬혁 씨 부인이셔?”
고개를 끄덕이자, 설여원은 한슬기의 얼굴을 보고 애잔한 표정을 지었다.
뒤이어 한슬기의 양손을 잡으며 얘기했다.
“어서 와요. 고생 많았어요.”
한슬기는 설여원의 말을 듣고 고개를 푹 숙이더니, 또다시 눈물을 글썽였다.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으면 저런 작은 위로에도 눈물을 글썽일까.
뒤이어 박재우와 황덕록이 묵직한 가방을 들고 다가왔다.
두 사람은 한슬기를 보고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이더니, 가볍게 목례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뒤이어 박재우가 다가와 입을 열었다.
“재형이, 점점 해가 짧아지는 거 같지 않나?”
“매미 울음소리도 예전 같지 않아. 슬슬 가을이 오는 거 같다.”
“그제? 슬슬 두꺼운 이불이나 옷도 좀 챙겨야 할 거 같다.”
“철물점은 어때. 아직 챙길 거 많아?”
“작은 부품은 거의 다 챙겼고, 내일은 철판 좀 옮기면 될 거 같다. 저 옆에 샷시 가게에서 샷시도 좀 챙기고.”
“샷시? 창틀은 왜.”
“버스에 유리창 깨졌잖아. 저번에 보니까 틀까지 어긋난 거 같더라고. 이번 기회에 모양 맞으면 교체하려고.”
산업도로에서 변종을 유인하던 당시, 한 놈이 유리를 깨부수고 버스로 진입하려고 했다.
그때 떨어져 나간 유리와 철판이 아직도 복구되지 않은 상태였다.
난 가만히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이번 기회에 유리를 전부 뜯어내고 촘촘한 창살로 바꾸는 건 어떨까?
유리는 방어력도 약하고, 깨지면 차량 내부에 있는 일행에게도 위험하기에 차라리 교체하는 게 좋을 수도 있겠다.
난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그 부분은 돌아가서 완수랑 얘기해 보자.”
박재우는 금세 수긍하며 바닥에 내려둔 가방을 들었다.
난 뻐근한 어깨를 풀며 모두에게 얘기했다.
“더 늦기 전에 돌아가자. 다들 기다리겠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한슬기가 긴장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 도착하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많이 멀어요?”
체력적으로 지친 모양이다.
이에 눈썹을 긁적이며 얘기했다.
“힘들면 말씀하세요. 제가 들고 뛰면 됩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한슬기는 쓴웃음을 지으며 거절했다.
여전히 민폐라 생각하는 건가?
멋쩍은 마음에 시선을 회피하며 덤덤하게 얘기했다.
“힘들면 힘들다고 얘기해요. 뭐라 하는 사람 없으니까.”
그러자 뒤에 있던 최현이 슬쩍 입을 열었다.
“맞아요. 재형이 인마가 힘은 장사니까 걱정하지 말고 막 부려먹어요.”
“맞을래?”
주먹을 쥐며 최현을 쳐다보자,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딴청을 피웠다.
한슬기는 그 모습을 보고 엷은 미소를 짓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럼…… 힘들면 얘기할게요.”
최현의 장난 덕에 한슬기의 긴장이 조금은 풀린 것으로 보였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모든 일행에게 얘기했다.
“여원이랑 내가 선두에 서고, 재우랑 덕록이는 한슬기 씨 뒤처지지 않도록 도와줘. 현이는 뒤쪽 봐주고.”
철물점 앞에서 대열을 갖추고, 속도를 조절하며 튜닝숍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