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05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105화
혁신도시의 대장 좀비도 외부의 생존자가 유입됐다는 걸 지금쯤 인지했을 것이다.
과연…… 상황을 인지한 대장 좀비는 어떻게 나올까.
우리를 찾아 나설까?
아니면 덫을 깔고 대기할까.
그나마 희소식이라면 우리가 라스트아크의 플레이어라는 건 대장 좀비도 모를 것이다.
그 부분을 파고든다면 유리한 고점을 잡고 싸울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자, 지금껏 입을 다물고 있던 박재우가 입을 열었다.
“정리하면 두 개의 선택지가 남은 거네.”
“왜 두 개야?”
“싸워서 퀘스트를 완료하거나, 퀘스트 포기하고 수성구로 가거나.”
그러자 박재우의 옆에 있던 황덕록이 반박했다.
“그건 선택지가 아니지 빙시야.”
“뭐가.”
“식량 상태가 오늘내일하는데 코스트코를 포기하자고? 그리고 페널티 생기면 전부 앞 못 보는 장님 되는데 수성구까지 갈 수 있겠냐?”
황덕록의 말에 박재우는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반박하지 못하고,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한숨을 내쉬었다.
대장 좀비와 싸우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건가?
게다가 권총으로 무장한 경관들도 처리해야 한다.
수비가 아닌 공격수의 입장.
휴게실로 깊은 침묵이 내려앉자, 설여원은 은근슬쩍 내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재형아.”
“왜.”
“그…… 좀비화라는 스킬. 그거 쓰면 어떻게 안 될까?”
모든 능력이 2배로 증가하는 좀비화.
하지만 20분밖에 유지되지 않고, 24시간 동안 능력치 반감 페널티가 동반된다.
물론 나도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다.
좀비화를 사용하면 알파 변종뿐만 아니라 미확인 변종과도 전면전을 치를 수 있을 테니까.
게다가 현재 스탯에 좀비화까지 사용한다면 권총에 맞고 즉사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20분 내에 정리하지 못하면 상황은 급격하게 악화될 것이다.
선뜻 대답하지 못하자, 이정우는 내 표정을 살피며 얘기했다.
“아직 좀비화를 썼을 때 어떻게 되는지 몸소 겪어본 적이 없잖아. 리스크가 커.”
“퀘스트 제한 시간 동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뭐라도 해야죠. 리스크가 크다고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실패밖에 더해요?”
설여원의 따지는 듯한 말에 이정우는 타이르는 어투로 얘기했다.
“가만히 앉아 있겠다는 게 아니야.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움직이자는 거지.”
“…….”
“재형이의 좀비화는 마지막까지 아껴두는 게 좋아. 정말 다른 수가 없을 때 사용하는 최후의 패라고.”
이정우의 말에 설여원은 한층 가라앉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냥…… 뭐라도 해보자는 뜻이었어요.”
설여원이 진정된 모습을 보이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전완수와 최현이 구시렁거렸다.
“야, 현아. 저 장면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지 않냐?”
“남자 중에도 저런 성격 한 명 있지.”
“박 씨 성을 가진 누구?”
“데자뷰야 뭐야.”
“데칼똘마니야 뭐야.”
“데칼코마니겠지 병신아.”
두 사람이 시시덕거리자, 모든 일행의 시선이 전완수와 최현에게 쏠렸다.
설여원이 게슴츠레 풀린 눈으로 두 사람을 쳐다보자, 그들은 헛기침과 함께 시선을 내리깔았다.
이정우는 이제 잔소리하는 것도 지쳤는지, 한숨을 내쉬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오늘은 다 같이 고민해 보자고. 일단 지도부터 보자. 우리 지도 누구한테 있어?”
“제가 가져올게요.”
윤혜리는 오른손을 번쩍 들며 후다닥 휴게실 밖으로 나갔다.
뒤이어 5분 정도 지났을까.
윤혜리와 함께 몇몇 사람들이 들어왔다.
이덕배와 이현배, 최만석과 천호진이었다.
이덕배는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또 자네들끼리 작당하는 거야?”
“작당이라뇨. 작전 세우는 거죠.”
“우리도 도울 일이 있는지 들어보자고. 자꾸 소외시키면 섭해.”
“그런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다들 휴게실로 들어오면 다른 생존자들이 동요할까 봐 그랬어요.”
이정우가 쓴웃음을 지으며 얘기하자, 이덕배는 어깨를 으쓱이며 얘기했다.
“마음은 고맙지만 이제 생존자라고 부르는 건 그만해. 우리도 한 팀이니까. 그리고 이미 동요하고 있어. 자네들 너무 티 나게 움직여.”
이덕배의 말에 이정우는 결인들을 쳐다보더니, 별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그럼…… 다시 처음부터 얘기하죠.”
이정우는 지금껏 우리가 나눈 대화를 이덕배에게 들려주었다.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있던 이덕배의 표정은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점점 잿빛으로 변했다.
모든 이야기를 전해 들은 뒤, 이덕배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확실한 정보겠지?”
“저희도 아는 정보를 조합해서 유추한 겁니다. 정답에 가깝고요.”
“달갑지 않은 상황이구먼. 계획은 있나?”
이정우는 윤혜리가 들려온 지도를 탁자 위에 펼치고 한참이나 들여다보는 모습을 보였다.
뒤이어 볼펜을 들고 코스트코의 위치를 표시하더니, 진입로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진영아, 코스트코 입구는 몇 개야?”
“도보로 들어가는 입구는 정문 하나야. 물론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차량 출입로는 따로 있고.”
“잘못 들어가면 끝이라는 거네.”
이정우는 코스트코의 정문을 볼펜으로 찍더니, 밑으로 쭉 연결했다.
“여기가 재형이랑 현이가 지나갔다는 지하도야?”
“네, 그쯤이에요.”
한슬기를 구출하러 갈 때는 몰랐는데, 지하도를 지나서 우측으로 길을 건너면 코스트코가 있었다.
안개 때문에 시계는 짧았고, 좌측으로 대로를 가로질러서 몰랐다.
이정우는 가만히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이더니, 이마에 주름을 만들며 내게 물었다.
“가는 길에 좀비들은 정리됐어?”
“모든 골목을 확인한 건 아니라서 확답은 못 드려요.”
“그럼 발포하는 건 위험하고…… 아직까지 조용한 거로 봐서는 대장 좀비가 우리를 찾아 나서진 않은 것 같아. 우리가 다시 올 거라 생각하고 있겠지.”
“괜찮은 방법 있어요?”
“우리가 끌어들이자.”
이정우의 말에 눈꼬리를 치켜뜨며 물었다.
“무슨 수로요?”
“대장 좀비는 본인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우리를 추적하지 않는 것도 우리가 제 발로 돌아올 거란 확신이 있으니 그렇겠지.”
“…….”
“생존자들을 코스트코에 모아서 사육하는 것도 머리가 나쁜 놈은 아니라는 증거야. 머리가 나쁜 놈이었다면 조성훈처럼 직접 두 발로 뛰며 생존자들을 찾아 나섰겠지.”
듣고 보니 그렇네.
설득력 있는 말에 이정우의 계획에 귀 기울였다.
이정우는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이번엔 네 역할이 중요해. 부탁한다 재형아.”
“뭘 하면 돼요?”
대수롭지 않게 묻자, 그는 지하도를 볼펜으로 가리키며 얘기했다.
“여기로 끌어들여서 처리하는 거야.”
“제가 코스트코로 들어가서 좀비들 끌고 오면 되는 거예요?”
“아니, 대장 좀비를 끌어들여야지.”
“……?”
대장 좀비가 어디 있는 줄 알고?
이해할 수 없는 브리핑에 멍하니 이정우를 쳐다보자, 그는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대장 좀비는 지금쯤 지하도에 다시 정찰병을 세웠을 거야. 어쩌면 더 많은 좀비를 배치했을지도 모르지.”
이정우의 말에 가만히 설명을 듣고 있던 김희연이 조심스레 오른손을 들며 물었다.
“정우 오빠, 대장 좀비 입장에서 저희가 지하도로 돌아올 거란 보장이 없는데 더 많은 수하를 배치할 이유가 있을까요? 혁신도시로 들어가는 길이 거기만 있는 것도 아닌데.”
“대장 좀비 입장이라서 지하도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거야. 그놈은 생존자의 입장으로 생각할 테니까.”
“그게 무슨 말이에요?”
“반대로 생각해. 생존자 입장에서 정리된 길을 선호하겠어, 아니면 낯선 길을 선호하겠어?”
이정우의 말에 옆에 있던 설여원은 입을 마름모꼴로 만들며 물었다.
“오…… 맞네요. 좀비 정리가 끝났으니 우리가 방심할 거라 생각하겠네요.”
“그렇지. 그 심리를 이용해야 돼. 그래서 이번 계획은 재형이가 핵심이야.”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이에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이마를 긁적였다.
상황은 이해했는데, 내가 왜 핵심이란 거지?
이정우는 내 표정을 보고 싱겁게 웃더니,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지하도에 새롭게 배치한 정찰병을 재형이가 죽이고, 또 죽이고, 또 죽이고, 계속 죽여야 돼.”
“아.”
그제야 이정우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에덤의 능력을 지닌 내가 있어야 가능한 계획.
입꼬리를 올리며 이정우를 쳐다보자, 그는 덩달아 웃으며 얘기했다.
“좀비 카운트 많이 얻을 수 있겠지?”
“대장이 나올 때까지 계속 죽이면 되는 거죠?”
“그렇지. 이상을 감지한 대장 좀비가 직접 확인하러 나올 때까지 계속 죽여.”
“그런데 대장이 나왔다는 걸 제가 어떻게 알죠? 안개 때문에 안 보이는데.”
“거기서부터 여원이 역할이 중요해. 여원이는 곧장 경부고속도로로 올라가 줘.”
지하도의 위로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간다.
이정우는 볼펜으로 경부고속도로를 톡톡 찍으며 얘기했다.
“대장 좀비가 재형이한테 정신이 팔려 있을 때, 여원이가 대장 좀비의 위치를 파악해 줘야 돼.”
“오빠, 평범한 담벼락도 아니고 고속도로면 높이만 10m는 될 텐데 어떻게 올라가요?”
“그것도 재형이가 해결해 줄 거야. 재형아, 너 사람 하나 들고 담 넘을 수 있지?”
못할 것도 없지.
고개를 끄덕이자, 이정우는 어깨를 으쓱이며 설여원을 쳐다봤다.
설여원은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지만, 끝내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정우는 들고 있던 볼펜을 내려놓으며 얘기했다.
“수리는 덜 끝났지만 버스랑 승합차 둘 다 끌고 갈 거야. 나랑 완수, 현이, 덕배 아저씨랑 현배 아저씨, 이렇게 이동합니다.”
“우리가 할 일이 남았어?”
이덕배가 묻자, 이정우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대장 좀비는 우리가 잡습니다.”
* * *
칠흑 같던 하늘이 검푸른 빛으로 변할 무렵, 우린 차량에 올라 지하도로 이동했다.
전완수는 졸린 눈을 몇 번이고 껌벅이며 핸들을 잡았다.
대략 5분 정도 이동하자, 전완수는 차량을 정차하며 무전기를 들었다.
“50m 전방에 지하도 보입니다.”
그러자 뒤따라오던 승합차가 정차하고, 승합차에서 내린 이정우가 버스로 걸어왔다.
이정우는 설여원과 내게 무전기를 건네준 뒤, 전완수를 쳐다보며 물었다.
“완수야, 지하도에 좀비들 보여?”
“지금은 3마리밖에 안 보여요.”
“혹시 엄폐물은 없어? 자동차든 뭐든.”
“아무것도 없어요. 무엇보다 지하도가 너무 어두워요.”
전완수의 설명에 이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왕복 2차로를 재형이 혼자 감당하긴 버거울 거야. 좀비들이 재형이를 둘러싸지 못하도록 버스로 한쪽 라인 막아야 돼, 알겠지?”
“좌측 벽에 바짝 붙일게요.”
“그래, 버스 정차하고 곧장 승합차로 돌아와야 돼. 알지?”
전완수는 걱정하지 말라는 대답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난 간단한 체조로 몸을 푼 뒤, 뒤에 있는 설여원을 쳐다봤다.
설여원은 쇠뇌와 헌팅 나이프, 그리고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수류탄까지 챙겼다.
전완수는 훅, 하고 숨을 뱉으며 얘기했다.
“그럼…… 출발할 테니 다른 분들은 어서 내리세요.”
이정우와 최현, 이덕배, 이현배는 전완수의 말에 따라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승합차로 이동했다.
모두가 내린 것을 확인한 뒤, 전완수는 망설임 없이 기어를 바꾸며 지하도를 향해 액셀을 밟았다.
부아아앙-!
우렁찬 엔진소리와 함께 상향등을 번쩍이며 나아가는 버스.
뒤이어 안개 너머로 좀비들의 인영이 나타나고, 버스는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좀비들을 들이받으며 나아갔다.
마침내 지하도의 끝에 다다르자, 전완수는 브레이크를 밟으며 얘기했다.
“좀비들 분간할 수 있도록 상향등은 계속 켜둘게. 조심해라 재형아, 여원이도.”
난 싱겁게 웃으며 전완수의 등을 토닥였다.
전완수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승합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난 설여원을 등에 업으며 얘기했다.
“준비됐어?”
“당연하지.”
내 목을 꽉 조이는 설여원의 힘이 느껴졌다.
애써 태연한 척을 하고 있지만, 잔잔하게 떨리는 설여원의 팔이 그녀의 긴장감을 대변한다.
이에 입꼬리를 올리며 얘기했다.
“걱정하지 마. 다 잘 될 거야.”
버스를 발판으로 이용해 위로, 또 위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