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07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107화
좀비를 죽여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 것처럼, 좀비들의 움직임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좀비들의 울음소리와 심장의 고동 외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고, 신체는 각성상태에 들어간 것처럼 더는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하나의 기계처럼 좀비들을 밀치고, 때리고, 깨부수고, 으깨며 처절한 싸움을 이어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크어어어어!!
목젖을 갈며 달려드는 마지막 남은 좀비.
난 흐느적거리는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놈의 움직임을 직시했다.
놈은 시체에 걸려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고, 또 넘어지기를 반복했다.
내 살점을 뜯어먹겠다는 집념만을 지닌 채, 다른 사고는 마비된 것으로 보였다.
마지막까지 방심해선 안 된다.
세차게 고개를 저으며 반쯤 풀린 눈을 껌벅이고, 눈앞의 좀비에게 집중했다.
가드를 올리려고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육체를 극한으로 사용한 탓인지, 팔을 올리려고 하면 어깨만 올라갔다.
주먹을 쥐면 손이 덜덜 떨리고, 힘이 풀렸다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흐느적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며 쓰러지지 않기 위해 균형을 잡았다.
카하아악!!
놈이 목젖을 갈며 달려드는 찰나, 까드득 이를 갈며 주먹을 내질렀다.
머릿속으론 분명 주먹을 뻗었는데, 내 오른팔은 힘없는 호스처럼 좀비의 뺨에 툭, 하고 닿는 게 전부였다.
이미 난…… 탈진 상태였다.
좀비의 양팔이 내 어깨를 짓누르고, 중력을 거스르지 못한 채 그대로 넘어지고 말았다.
“젠장……!”
카학! 카하아악!
내 콧잔등을 물어뜯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좀비.
젖 먹던 힘을 다해 놈의 가슴과 목을 쥐고 버텼다.
하지만 점점 거리가 좁혀지고, 놈이 치아를 부딪칠 때마다 역하고 질척한 타액이 얼굴로 떨어졌다.
난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고, 뒤늦게 버스의 바퀴에 달린 칼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안간힘을 쓰며 상체를 틀자, 좀비의 목젖을 뚫고 나오는 기다란 칼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버스의 바퀴 휠에 달린 칼날이 좀비의 성대를 뚫고 나왔다.
난 바닥에 대(大)자로 뻗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더는 손가락을 움직일 힘도 없었다.
홀로 130마리의 좀비를 때려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장 좀비는 모습을 드러낼 기미조차 없었다.
치지직- 치칙-
-재형아 좀비들 더 몰려오고 있어! 400m 전방!
설여원의 무전에 전신에서 힘이 빠지고, 눈앞이 하얗게 변하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난 실성한 사람처럼 웃음을 터뜨리다가 기침을 토했다.
대장 좀비가 거느릴 수 있는 수하는 최대 500마리.
설마 500마리를 전부 보내고 마지막에 나타날 속셈인가?
“씨X…… 새끼.”
반사적으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덜덜 떨리는 양팔로 바닥을 짚으며,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두 다리를 붙잡고 일어났다.
아찔한 기립성 빈혈증세와 함께 세상이 좌우로 흔들렸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버스의 측면을 손으로 짚었다.
[손목 보호대: 33%, 32%]칼날을 피해서 기대려고 했는데, 시야가 흐린 탓에 칼날을 짚었다.
어처구니없이 내구도 1%를 잃었다.
이에 허탈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게 왜 이리 웃기지.
드디어 나도 미친 건가?
사람이 실성했다는 게 이런 건가.
난 멍하니 지하도의 천장을 바라보며 폐부 깊숙이 숨을 들이쉬었다.
지친 상태에 습한 공기가 폐부로 들어와서 그런지, 폐활량도 회복되지 않고 심장의 고동도 진정되지 않았다.
설여원은 알고 있을까?
내가 빈사 상태나 마찬가지라는 걸.
치지직- 치직-
-재형아 내 말 들려?
그 순간, 기다렸던 목소리가 무전기에서 들려왔다.
감로수처럼 달콤한 이정우의 목소리.
드디어 대장 좀비의 위치를 파악한 건가?
난 기침을 토하며 무전기를 손에 쥐었다.
“말씀하세요.”
-당장 도망쳐. 좀비들한테 들키지 말고 탈출해야 돼!
“네? 어디로요. 승합차 세워둔 곳으로 가면 돼요?”
-어디든 상관없으니 무조건 뒤로 뛰어!
이정우의 말을 듣고 황급히 안심역 방면으로 뛰었다.
물에 젖은 수건처럼 어깨는 천근만근 무겁고, 허리는 자꾸만 굽었다.
허벅지가 올라가지 않아서 반쯤 다리를 절며 퇴각했다.
치지직- 치직- 삑.
-정우 오빠 어디에요? 저는 어떡해요. 저도 퇴각해요?
뒤이어 들려오는 설여원의 목소리.
설여원도 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모양이다.
-여원아, 고속도로에서 내려올 수 있어?
-재형이 없으면 못 내려가요. 방음벽이 너무 높아요.
-주변에 차는? 어디 숨을 만한 곳 아무것도 없어?
이정우의 물음에 설여원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차량이라면…… 설여원을 내려주고 올 때 하나 보긴 봤는데, 차량 내부에 좀비의 유무는 모르겠다.
-찾았어요! 차에 숨어 있으면 돼요?
-혹시 모르니 내가 신호할 때까지 절대 나오지 마. 계속 숨어 있어.
-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얼마나 이동했을까.
귓바퀴를 간질이는 물소리를 인지할 수 있었다.
벌써 냇가까지 온 건가?
안개 때문에 주변 지형을 살필 수 없으니, 일단 냇가로 다가가 풀숲에 몸을 숨겼다.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고, 이정우에게 무전을 보냈다.
“정우 형, 다음 계획이 뭐예요. 대장 좀비 찾았어요? 아니, 그보다 지금 어디예요? 지하도 지나올 때 승합차 안 보이던데.”
-지금 혁신도시에 있는 4층짜리 건물이야. 코스트코 우측으로 80m 정도 떨어진 거리.
“네? 거긴 왜 갔어요?”
-설명하면 길어. 내가 신호할 때까지 쉬고 있어.
“형, 정우 형?”
그 뒤로 이정우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쉬고 있으라고?
여기서 어떻게 쉬어.
안개 때문에 주변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 마당에, 맘 편히 쉬는 건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이정우가 있는 곳으로 이동할까?
‘아니야, 형도 생각이 있겠지.’
지금은 이정우를 믿고 기다리는 게 최선이었다.
온몸이 찌뿌드드하다.
지원이고 나발이고, 지금은 체력부터 회복하는 게 급선무였다.
지금껏 좀비들과 싸우느라 몰랐는데, 서서히 후각이 돌아오며 코끝을 자극하는 비릿한 냄새를 확인할 수 있었다.
코를 풀어도 사라지지 않는 악취.
상황에 얼마나 집중했으면 고약한 악취조차 느끼지 못했다.
흐르는 냇물에 세수부터 하고, 혈흔으로 얼룩진 보호대를 닦았다.
주먹의 상태를 살피자, 마디마다 살이 터졌다가 회복한 흔적이 보였다.
에덤 화이트의 패시브 스킬 재생 덕에, 살점이 회복되고 터지기를 반복하며 굳은살이 생겼다.
피부의 상처는 재생되지만 폐활량과 두근거리는 심장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다시금 풀숲에 몸을 뉘었다.
비릿한 냄새가 사라진 자리로 그윽한 피톤치드 향이 퍼졌다.
뒤이어 한계에 다다랐던 육신이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오는 게 느껴졌다.
머릿속의 경종과 귓가의 이명이 옅어지고, 뻐근했던 근육도 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패시브 스킬 재생이 폐활량은 회복하지 못해도, 근육과 뼈의 상태는 회복할 수 있는 모양이다.
레이첼의 치료 능력에 비하면 다소 더딘 속도지만, 그래도 자가 치유가 가능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난 감았던 두 눈을 뜨고, 천천히 손을 뻗어 홀로그램을 켰다.
다음 포인트 획득까지 좀비 카운트가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플레이어 정보]-캐릭터 이름: 에덤 화이트
-능력: 강화
-스탯: 근력 22(Max), 체력 22(Max), 반사 신경 5(+6), 동체 시력 5(+5), 정신력 10
-스탯 2: 골밀도 6(+9), 표피강화 6(+9)
*스탯 2는 2포인트에 1스탯씩 증가합니다.
-현재 처리한 좀비의 수: 581/700
-남은 포인트: 0
-스킬: 좀비화
-패시브 스킬: 재생
플레이어 정보의 밑으로 스킬에 대한 설명이 떠올랐다.
[좀비화]-20분간 좀비의 성능을 지닙니다.
-좀비에게 물려도 감염되지 않으며, 모든 신체 능력이 2배 증가합니다.
-좀비화 발동 후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 개방됩니다.
-좀비화는 20분간 지속되며, 지속시간이 끝나면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좀비화가 끝나면 ‘과부하’ 효과가 적용되어 24시간 동안 모든 능력치가 반감됩니다.
-좀비화의 재사용 대기시간은 100시간입니다.
-스탯 ‘정신력’을 높이면 좀비화의 유지시간이 증가합니다.
좀비화를 발동했을 때 생성되는 스킬은 뭘까?
추후 안정기에 접어들면 확인해 봐야겠다.
그건 그렇고 처리한 좀비의 숫자가 581마리?
이렇게 극한까지 좀비를 없앴음에도 불구하고, 700마리라는 수치는 채워지지 않았다.
점점 포인트를 얻는 게 힘들어지고 있다.
좀비 카운트의 증가세로 보아, 다음번엔 1000마리를 잡아야 스탯을 획득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 뭐야, 잠깐.”
뒤늦게 스탯에 표시된 수치가 달라졌다는 걸 알아챘다.
골밀도와 표피강화의 기본 스탯이 1씩 증가했다.
왜지?
분명 마지막에 확인했을 때 5였는데…….
설마 뼈가 부러진 뒤에 단단하게 붙어서 그런 건가?
근력과 체력의 기본 스텟을 운동을 통해 높일 수 있는 것처럼, 골밀도와 표피강화도 미세하게나마 자연적으로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크르르르…….
그 순간, 근처에서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한 마리?
아니, 불규칙한 음성이 불협화음처럼 섞인 것으로 보아 두 마리.
청각을 예리하게 벼리며 소리에 집중했다.
사락- 사락-
수풀을 헤치며 이곳으로 접근하는 소리.
‘왼쪽.’
발소리가 5m 내로 접근한 순간, 땅을 박차고 일어나 눈앞의 형체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쩍!!
광대뼈가 깨지며 옆으로 고꾸라지는 좀비.
크어어!
그 옆으로 다리 하나를 절뚝이는 좀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재빨리 왼팔을 뻗어 놈의 멱살을 잡고, 있는 힘껏 지면에 내리꽂았다.
대략 10분 정도 쉬었을 뿐인데, 근력은 대부분 회복됐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인간의 육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회복력이었다.
물론 완벽하게 회복된 건 아니지만, 거칠어졌던 숨도 어느새 안정적으로 돌아온 상태였다.
탕-!
그 순간, 먼발치서 메아리치는 총성에 화들짝 놀라며 상체를 숙였다.
단발의 총성.
우리 작전에 발포 계획은 없었는데?
다급히 무전기를 들고 이정우를 불렀다.
“형, 방금 무슨 소리예요? 무슨 일 있어요?”
한참을 기다려도 이정우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설여원에게 이정우의 위치를 확인해 달라고 부탁하려는 순간.
탕-! 탕-! 탕-!
혁신도시 방면에서 총성이 연달아 세 차례 들려왔다.
“대답 좀 해요! 정우 형!”
띠링-!
-귀하의 파티가 대장 좀비를 처리했습니다. 어시스트 포인트로 좀비 카운트가 5 증가합니다.
눈앞으로 떠오르는 홀로그램을 보고 벌어지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어시스트로 5의 좀비 카운트?
대장 좀비가 좀비 카운트 25를 차지하니까…… 정말 대장 좀비를 죽였다는 건가?
치지직- 삐빅-
-잡았다, 잡았어! 완수가 대장 좀비 잡았어!
한 박자 늦게 무전기로 들려오는 이정우의 목소리.
혼란스러운 마음에 아랫입술을 핥으며 물었다.
“어떻게 잡았어요? 아니, 지금 어디예요? 거기 안전해요?”
-그쪽으로 좀비들 간다! 조심해!
묻는 말에 대답은 안 하고, 이정우는 내 걱정만 했다.
대장 좀비가 쓰러졌으니, 자유로워진 좀비들이 사방으로 흩어질 것이다.
슬쩍 고개를 들고 지하도 방면을 살피자, 다수의 발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설여원은 안전하게 숨어 있는 것 같은데, 혁신도시로 들어간 일행이 걱정이다.
총성이 울렸으면 곧 좀비들이 모여들 텐데, 안전하게 탈출할 수 있을까?
여전히 삭신이 쑤시지만, 이전처럼 전투가 불가능한 상태는 아니다.
뻐근한 목덜미를 주무르며 폐부에 들어찬 탁한 숨을 토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도, 일행을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다.
분명 코스트코 기준 우측 80m 거리라고 했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악력을 확인했다.
이전처럼 힘이 빠지거나 떨리지 않았다.
어느 정도 체력과 근력이 회복된 걸 확인한 뒤, 난 망설임 없이 지하도를 향해 박차를 가했다.
* * *
“못 올라오게 막아!”
이정우는 옥상 문을 걸어 잠그며 뒤에 있는 일행에게 외쳤다.
옥상에 자리 잡은 전완수와 최현, 이덕배, 이현배는 지면을 향해 쉴 새 없이 쇠뇌를 발사했다.
이정우의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안심역 방면의 지하도로 이동하자, 지하도를 지키고 있어야 하는 좀비들이 깨끗하게 비워진 상태였다.
차량을 몰고 들어가면 좀비들의 청각을 자극할지도 모르기에, 별동대는 지하도에 차량을 정차하고 전완수를 앞세워 도보로 이동했다.
혁신대로를 가로질러 한참을 이동하자, 박재형이 있는 지하도가 전완수의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별동대는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바로 옆의 건물로 들어섰다.
근방의 모든 좀비가 박재형을 사냥하기 위해 지하도로 이동한 상태.
별동대는 단 한 번의 전투도 없이 옥상까지 무혈입성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