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08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108화
이정우는 전완수를 통해 박재형이 있는 지하도의 상황을 브리핑받으며, 설여원의 보고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설여원의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 박재형에게 대피하라는 무전을 보낸 것이다.
이정우에게는 좀비들이 박재형을 추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지하도를 가득 채운 비릿한 피 냄새가, 분명 박재형의 체취를 지워줄 것이라 생각했다.
박재형이 사라진 뒤에 40마리가량의 좀비가 지하도에 도착했다.
먹잇감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좀비들은 제자리에 서서 양팔을 휘저을 뿐, 박재형을 쫓아가지 않았다.
이정우의 예상대로였다.
그렇게 4분 정도 지났을까?
전완수의 눈에 홀로 움직이는 좀비가 포착되었다.
전완수는 속성으로 영점조절을 배웠기에, 이덕배가 건네주는 소총을 받아들며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대장 좀비를 겨누었다.
탕!
첫발은 대장 좀비의 머리를 꿰뚫지 못하고 허벅지를 관통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장 좀비는 바닥에 엎어지며 고통을 호소하더니, 겁에 질린 모습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첫발은 빗나갔지만, 전완수는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다시 한번 대장 좀비의 머리를 조준하고, 연달아 방아쇠를 당겼다.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네 번째 시도 끝에, 대장 좀비의 두개골을 꿰뚫을 수 있었다.
이정우의 계획대로 대장 좀비를 처리했지만, 좀비들의 자극은 피할 수 없었다.
* * *
지하도에 남은 좀비는 고작 7마리가 전부였다.
설여원은 40마리가 이곳으로 왔다고 했는데, 총성을 들은 좀비들이 이정우가 있는 곳으로 이동한 모양이다.
설여원은 괜찮으려나?
7마리의 좀비를 처리하자마자 무전기를 들고 설여원을 불렀다.
“여원아 괜찮아? 지금 어디야.”
치지직- 치직- 삑.
-난 괜찮아. 그보다 방금 총성 아니야? 설마 정우 오빠가 쏜 거야?
“지금 확인하러 가려고. 넌 움직이지 말고 거기 있어.”
-어차피 갈 데도 없어. 걱정하지 말고 갔다 와.
설여원의 대답을 듣고 우측 대로를 살피며 무전기를 들었다.
“형, 들려요? 아무나 그쪽 상황 좀 얘기해 줘요.”
뒤이어 무전기 너머로 전완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방에 좀비야! 내려갈 수가 없어!
“몇 마리 정도 있어?”
-몰라 인마! 아주 그냥 바글바글해!
“수류탄 챙긴 거 없어?”
-모여든 놈들도 버거운데 수류탄까지 터지면 더 몰려오지!
좀비들이 건물을 에워싸고 있다면 무턱대고 지원하러 갈 수도 없다.
좁은 길에서 다수의 좀비를 상대하는 것과 사방이 뻥 뚫린 대로 한복판에서 좀비를 상대하는 건 천지 차이였다.
어떡하지?
버스라도 운전할 줄 알면 삼각뿔로 밀어버리면 되는데,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버스를 운전해 본 적이 없었다.
최악의 상황이라면 소총과 수류탄을 사용해야겠지만, 평범한 좀비들에게 사용하기엔 아까운 게 사실이었다.
‘그냥 좀비화로 밀어?’
이곳에 대장 좀비와 변종이 남아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혁신도시 깊숙이 들어갈 것도 아니다.
차라리 지금 좀비화를 써서 빠르게 정리하고, 재사용 대기시간을 안전하게 돌리는 게 이로울 것이다.
생각을 정리하고, 우측으로 걸음을 옮겼다.
크어어어어!!
점점 가까워지는 좀비들의 울음소리.
카하악!
건물로 향하던 몇몇 좀비들이 내 모습을 발견하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놈들의 머리를 깨부수며 계속해서 나아갔다.
이윽고 거대한 벽처럼 보이는 좀비들의 인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눈어림으로 살펴도 족히 100마리는 넘을 것 같다.
크르르르…… 카하악! 카학!
건물로 들어가기 위해 서로 얽히고설켜 있던 좀비들은 발치에서 풍기는 고기 냄새에 이곳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크어어어어어어어!!
뒤이어 우렁찬 함성과 함께 입구에 있던 좀비들이 내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난 두 주먹을 불끈 쥐며 가드부터 올리고, 좀비들을 똑바로 응시하며 읊조렸다.
“좀비화.”
-발동어를 입력하세요.
잔뜩 기대했던 마음과 달리, 홀로그램을 보고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발동어를 따로 만들어야 돼?
그럼 진즉에 설명에 써두던가.
벌써 10m 앞까지 다가온 좀비들을 보고, 다급히 방향을 틀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주했다.
촌각을 다투는 마당에 멋있는 스킬명을 떠올릴 여유는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 말이나 스킬명으로 설정해선 안 된다.
실수로라도 내뱉을 가능성이 없고, 자주 사용하지 않는 단어를 골라야 한다.
그러다 문득, 게임에서 자주 사용하던 말이 떠올랐다.
다이브(Dive).
본래의 뜻과 달리, 위험을 무릅쓰고 적진에 뛰어들 때 자주 쓰는 말이었다.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를 입력했다.
-설정이 완료되었습니다.
눈앞으로 떠오른 홀로그램을 확인한 뒤, 재빨리 방향을 틀어 좀비들을 쳐다보며 읊조렸다.
“다이브(Dive).”
두근.
심장에서 아찔한 충격이 느껴지고, 시야가 일렁이는 것을 느꼈다.
숨이 가빠오고, 혈류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뜨거운 불가마에 들어온 것처럼 전신이 후끈거리더니, 이마 위로 핏대가 서며 아드레날린이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크-어-어-어-어-!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물속에 들어온 것처럼 먹먹하게 들렸다.
또한 내게 달려드는 좀비들의 움직임도 0.5배속처럼 느리게 보였다.
빠르게 눈알을 굴리며 놈들의 위치를 확인하는 찰나, 내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를 느꼈다.
‘잘…… 보여?’
시야가 넓어졌다.
좀비들이 안개 속에서 시야 확보가 가능한 것처럼, 5m도 안 되던 시계가 순식간에 50m까지 늘어났다.
안개 속의 생활에 적응한 나머지, 두 발 딛고 선 땅에서 선명한 세상을 바라보는 게 낯설게 느껴졌다.
뒤이어 코앞으로 다가온 좀비가 느릿한 동작으로 내 콧잔등을 향해 치아를 들이밀었다.
서서히 벌어지는 하관, 싯누런 치아와 그사이에 잔뜩 낀 살점, 허공으로 흩날리는 침방울까지, 모든 것을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슬쩍 고개를 돌려 회피하자, 놈의 눈동자가 이동하는 방향까지 내 두 눈에 포착되었다.
놈의 안면으로 주먹을 뻗는 순간, 나 혼자 시간을 역행하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모두가 느리게 움직이는데, 나만 정상적인 속도로 움직인다.
동체 시력과 근력, 체력까지 2배나 증가한 탓이었다.
기본 스탯 자체가 일반인의 몇 배나 되는데, 거기서 2배나 더 증가했으니 더는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자세가 불편한 탓에 세게 친 것 같지도 않은데, 좀비의 안면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함몰되는 모습을 보였다.
함몰된 얼굴을 보고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기는커녕, 반사적으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 감정을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까.
믿기 싫지만, 분명히 알고 있는 감정이었다.
희열.
폭력성만을 지닌 좀비의 본능에 잠식되어, 서서히 이성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는 새에, 광기에 휩싸이고 있었다.
* * *
“저, 저게 뭐야.”
전완수는 쇠뇌를 발사하다 말고 넋이 나간 사람처럼 어느 한 지점을 응시했다.
“뭐해 인마! 빨리 쏴!”
최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소리치자, 전완수는 놀란 눈으로 일행을 쳐다보며 외쳤다.
“정지, 다들 정지!”
그러자 옥상에 있던 모든 일행의 시선이 전완수에게 쏠렸다.
전완수는 마른침을 삼키며 멍하니 안개 속을 바라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재, 재형이, 재형이?”
“뭐?”
이정우는 눈꼬리를 치켜뜨며 전완수를 쳐다보더니, 들고 있던 쇠뇌를 어깨에 메며 혼잣말을 읊조렸다.
“하여튼 말 안 들어.”
이정우는 손도끼를 말아쥐며 일행에게 얘기했다.
“내려가서 도와야 합니다. 재형이 혼자는 무리에요.”
그러자 전완수가 이정우의 팔을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전완수는 잔뜩 겁에 질린 사람처럼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아니에요. 나가면 안 돼요.”
“무슨 소리야 인마! 아무리 재형이라도 좀비들한테 둘러싸이면 승산 없는 거 몰라?”
“나가면 안 된다고요. 저거…… 좀 이상해요.”
“……뭐?”
이정우는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뒤이어 옆에 있던 최현이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미친놈아. 방금은 재형이라면서?”
“아니 재형이는 맞아. 근데 좀…… 느낌이 달라.”
“……이 새끼 왜 이래? 네가 더 이상해 인마.”
전완수가 횡설수설하자, 최현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이정우를 쳐다봤다.
뒤이어 옆에 있던 이덕배가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설마 물린 거야? 재형 학생이 좀비로 변했어?”
“물린 건 아니에요. 지금…… 좀비를 죽이고 있어요.”
“그럼 뭐가 이상하다는 건지 설명을 해줘야 우리도 이해를 하든 말든…….”
빡!!!
그 순간, 건물의 외벽으로 수박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옥상에 갇힌 별동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난간으로 다가갔다.
난간 너머로 외벽을 확인한 순간, 그들은 벌어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분명 4층 높이의 건물 옥상에 있는데, 난간 바로 밑으로 선명한 핏자국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덕배는 입술을 벙긋거리더니, 옆에 있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물었다.
“저 핏자국 뭐야. 저거 설마…… 좀비를 던진 거야?”
“재형이가 아무리 강해도 사람을 4층까지 던질 정도로…….”
이정우는 반박하다 말고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다급히 무전기를 들었다.
“재형아, 재형아!”
애타게 불러도 박재형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치지직- 치칙- 삑.
-오빠! 빨리 거기 벗어나요! 미확인 변종이에요!
박재형의 대답 대신 설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옆에 있던 전완수가 이정우의 손에서 무전기를 낚아채며 얘기했다.
“변종 아니야.”
-오기 부리지 말고 빨리 도망쳐! 완전 괴물이라고!
“재형이야.”
-……뭐?
“저 괴물이 재형이라고.”
전완수의 말에 옥상은 귀신이라도 지나간 것처럼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정우는 이마를 짚으며 그 자리에 주저앉더니, 전완수를 쳐다보며 물었다.
“얼마나 됐어.”
“네?”
“재형이 나타난 지 얼마나 됐냐고!”
“모르겠어요. 좀비들 처리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났어요.”
“20분만 버티면 돼. 좀비화가 지속되는 시간이 20분이라고 했어.”
그러자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현배가 두 눈을 화등잔만 하게 뜨며 물었다.
“조, 좀비화? 그게 뭐야.”
“재형이가 가진 스킬이에요. 직접 사용한 건 이번이 처음이고요.”
“좀비화가 왜. 그거 쓰면 친구도 못 알아보는 거야?”
“저희도 몰라요. 하지만 4층으로 좀비를 던졌다는 건…… 이성을 상실했을 가능성이 커요.”
이현배는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전완수는 조심스레 난간으로 다가가더니, 고개만 빼꼼히 내밀어 1층의 상황을 살폈다.
“씨, X발…….”
전완수의 입에서 육두문자가 흘러나왔다.
최현은 전완수의 곁으로 다가가더니,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또 뭔데.”
“……다 죽었어.”
“뭐?”
“다 죽었다고, 좀비들.”
족히 100마리가 넘는 좀비가 1층에 모여 있었다.
하지만 그 많던 좀비들이, 순식간에 피떡이 되어 차디찬 주검으로 전락했다.
크어어어어……!
카하아악……!
건물 내부에서 들려오는 좀비들의 울음소리.
챙!!
3층의 유리가 깨지며 머리가 으깨진 좀비가 1층으로 추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챙! 챙강! 챙그랑!
연달아 유리창이 깨지며 좀비들의 시신이 창밖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크어어어어!!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가까워질수록, 무언가를 때려 부수는 소리도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전완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쥐구멍에 숨는 심정으로 옥상의 구석진 곳을 가리켰다.
일행은 조급함을 이기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다.
쾅!!
그 순간, 옥상 문을 둔기로 내려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쾅!! 쾅!! 쾅!! 뜨극-! 팅!!
금세 경첩이 어긋나더니, 문이 반쯤 뒤틀리는 모습을 보였다.
일행은 석고상처럼 굳어버렸고, 이정우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여 소총을 견착하며 출입구를 겨누었다.
쾅!!!
마침내 옥상 문이 떨어져 나가고, 핏물에 젖은 질퍽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안구가 온통 검은색으로 물든 박재형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입꼬리는 귀에 걸릴 듯이 올라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