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14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114화
저녁 식사를 마치고 모두가 잠자리에 들었다.
어느덧 시침은 축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난 10시간이나 잠을 자서 그런지, 도저히 눈이 감기지 않았다.
몇 번이고 뒤척이다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들을 살폈다.
3층에 옹기종기 모여 잠을 청하는 일행의 모습.
‘물…….’
목이라도 축여야겠다 싶어서, 사람들을 피해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들더라고.”
“……거예요.”
휴게실에서 들려오는 속삭임.
아직 안 자는 사람이 있나?
이에 휴게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벽면에 귀를 갖다 대고, 대화 내용에 귀를 기울였다.
“그 생각이 계속 드니까, 도저히 저녁이 안 넘어가더라고.”
“저도 그랬어요. 그게 정상이죠.”
최만석과 정진영의 목소리였다.
두 사람이 보초를 서는 시간인가?
“이거 봐, 아직도 손이 떨려.”
“동일선상에 두고 볼 수는 없지만…… 좀비랑 싸우는 일이 많아지면 무뎌져요.”
“무뎌져도 괜찮은 건지 모르겠어. 내 인생이 부정당하는 기분이더라고. 살아 있는 사람 목에 칼날을 쑤셔 박는 건 정말이지…….”
“사람 얼굴에 주먹만 날려도 심장이 터질 것 같은데, 칼로 쑤셨으니 당연히 더 심하죠. 저도 압니다. 저도 그랬어요.”
코스트코에서 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살인귀들과 싸웠는지, 두 사람의 대화만 들어도 알 것 같았다.
특히 전투에 익숙하지 않은 최만석이기에, 마음의 동요를 쉬이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었다.
뒤이어 허탈한 웃음과 함께 최만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젊은 친구들 앞에서 실수하는 모습 보이기 싫어서 이 악물고 버텼는데…… 사실 너무 힘들더라고.”
그 뒤로 두 사람의 대화는 들려오지 않았다.
작디작은 소리로, 정진영이 최만석의 등을 토닥이는 소리가 들려올 뿐.
착잡한 마음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결국 휴게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발소리를 죽인 채 식자재를 쌓아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미지근한 물로 퍼석해진 목을 축이고,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은은한 달빛을 멍하니 응시했다.
다들 겉으로 내색하지 않지만,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저마다의 방식으로, 내일을 살아갈 원동력을 찾고 있었다.
내 원동력은 뭘까.
기숙사를 벗어날 때만 해도 내 목숨 하나 부지하기도 힘들었는데, 지금은 수많은 사람과 함께 지내며 공동체 의식을 지니게 되었디.
에덤의 특성상 남들보다 몇 배는 더 힘겨운 싸움을 하는 게 사실이지만, 이에 불만을 품은 적은 없었다.
농땡이 피우는 사람 없이,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주니까.
그리고…… 나 역시 타인의 도움으로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으니까.
달빛을 바라보며 괜스레 한 사람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쳤다.
장병철이 보고 싶은 밤이었다.
* * *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낸 뒤로, 다시금 분주한 일상이 시작되었다.
커다란 태양광 패널과 사람 몸통만 한 컨트롤러, 두꺼운 책 크기의 인버터를 모조리 튜닝숍으로 옮기고, 철물점에 남은 물자도 튜닝숍으로 옮겼다.
코스트코에서 식량을 보충할 때면 전완수의 옛이야기를 종종 들을 수 있었다.
코스트코 중앙에 놓인 캠핑용 의자에 앉아 사탕을 빨며 얘기하는 전완수의 표정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
매년 이맘때에 가족과 캠핑을 자주 다녔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설여원이 면박을 주긴 했지만, 예전처럼 꿀밤을 때리거나 팔뚝을 때리진 않았다.
전완수의 흥얼거림에는 언제나 어머니와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가 섞여 있었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지만, 부모님을 향한 그리움이라는 걸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이를 설여원도 알기에, 크게 나무라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물자를 확보한 뒤로 차량 개조도 속도가 붙었다.
버스와 승합차부터 더욱 견고하게 만들고, 옆 가게에서 독일산 중형차와 코란도 스포츠를 구할 수 있었다.
전완수는 두 대의 차량 보닛을 열어보고 연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역시 튜닝숍이라는 말과 함께 엔진 마력에 대한 이야기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읊었다.
둘 다 순정 차량의 엔진이 아니라나 뭐라나.
박재우와 황덕록은 튜닝숍의 옥상에서 전력을 보충하고, 이정우와 정진영은 실개천 너머의 생존자들에게 싸우는 법을 가르치거나, 차량 개조를 도왔다.
차량 개조 작업을 할 때면 설여원과 난 외부를 돌며 좀비들을 처리했다.
여전히 안개 속에서는 좀비들의 감각이 나보다 뛰어나기에, 방심할 수 없었다.
그나마 시야 확보가 가능한 설여원 덕에, 수월하게 좀비 카운트를 높일 수 있었다.
좀비들을 처리하며 신체 능력의 한계를 실험하기도 했다.
100m를 돌파하는 데 7.5초가 걸렸고, 서전트 점프는 대략 3m 50cm를 뛸 수 있었다.
근력이 일반인의 5배에서 6배에 달하지만, 그렇다고 이동 속도까지 5배로 증가하는 건 아니었다.
인간의 신체구조가 지닌 한계였다.
하지만 스킬 급가속을 사용하면 100m를 돌파하는 데 5초가 걸렸고, 서전트 점프는 4m까지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스킬 사용 중에는 내가 지면을 박차고 나가는 느낌이 아니라, 무언가가 끌어주고 당겨주는 느낌이 들었다.
이 또한 시스템의 일부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시간은 무던히도 흘러 후덥지근한 공기 속으로 조금씩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여름의 끝으로, 가을이 당도하고 있었다.
“여러분! 점심 먹고 해요!”
윤혜리와 김희연의 목소리에 작업에 열중하던 일행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3층으로 향했다.
지난 3주간 충분한 휴식도 취하고, 밥도 잘 먹어서 그런지 아이들의 얼굴에 살이 좀 붙었다.
한슬기는 만삭의 몸으로도 땀을 뻘뻘 흘려가며 식사 준비를 도왔다.
쉬어도 된다고 모두가 말렸지만, 이를 한슬기가 거부했다.
이민정은 그런 한슬기의 상태를 수시로 확인했다.
3층에 둘러앉은 일행은 푸짐한 점심을 즐기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전완수는 입안 가득 음식물을 씹으며 이정우에게 물었다.
“내일이면 차량 개조도 끝날 거 같은데, 재고 물량 다시 확인할까요?”
“그래야지. 점심 먹은 뒤에 식량이랑 태양광 패널 빼고는 전부 버스로 옮기자.”
헥헥헥.
장군이는 벌써 사료를 다 먹었는지, 내가 먹고 있는 밥그릇을 탐내기 시작했다.
“쓰읍! 안 돼. 혼나? 안 돼!”
숟가락을 들고 단호하게 얘기하자, 장군이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바닥에 엎드렸다.
그러자 10세 미만의 아이들이 다가와 장군이를 쓰다듬으며 얘기했다.
“삼촌 너무해.”
“내가?”
“장군이는 삼촌 좋아서 그러는데, 삼촌은 만날 장군이 괴롭혀.”
장군이 괴롭히는 건 너희들이지, 라고 할 뻔.
뚱한 표정으로 장군이를 쳐다보자, 장군이는 세상 슬픈 눈으로 내 눈치를 봤다.
머리가 좋은 건지, 얌체 같은 건지 모르겠다.
이에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장군이에게 얘기했다.
“그렇게 쳐다봐도 안 줘.”
고작 3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장군이는 몰라보게 성장했다.
예전의 앙증맞던 장군이는 사라지고, 점점 이름값을 하기 시작했다.
신기한 건 장군이의 습성이었다.
우리가 짖지 못하게 하자, 어느 순간부터 짖는 일이 사라졌다.
아니면 덩치가 커지면서 인내심이 생긴 건가?
래브라도 리트리버가 원래 지능이 높고 침착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말을 잘 듣는 줄은 몰랐다.
장군이의 표정을 보고 있으니 도저히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간식을 들고 좌우로 흔들었다.
그러자 장군이의 꼬리도 좌우로 흔들리고, 세상 밝은 표정으로 내게 달려왔다.
최현은 내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더니, 혀를 끌끌 차며 얘기했다.
“장군이 키우는 거 제일 반대했던 사람 맞아? 저렇게 실없이 웃을 거면서 왜 반대했대.”
최현의 말대로였다.
장군이와 장난치며 나도 모르게 웃고 있었다.
멋쩍은 마음에 헛기침하며 다시금 자리로 돌아왔다.
설여원은 내 얼굴을 보고 싱겁게 웃더니, 팔뚝을 툭 치며 물었다.
“키우길 잘했지?”
민망한 마음에 대답 대신 국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아, 아…….”
그 순간, 의자에 앉아 있던 한슬기가 눈살을 찌푸리며 복통을 호소했다.
그러자 이민정이 황급히 한슬기의 상태를 살피며 물었다.
“괜찮아요?”
“아…… 괜찮아요. 최근 들어 종종 배가 아프네요. 심한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한슬기는 걱정할 필요 없다고 하지만, 지켜보는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이민정은 한슬기의 아랫배에 손을 얹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기의 움직임이 줄어든 거 같은데…… 최근 들어 소변이 자주 마렵거나 그렇진 않았어요?”
한슬기는 남자들의 표정을 살피며 입술을 달싹이더니, 이민정에게 속삭이는 목소리로 얘기했다.
한슬기의 말을 듣고, 이민정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얘기했다.
“며칠 내에 나올 거 같은데.”
“예?”
이민정의 말에 한슬기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뒤이어 한슬기는 말까지 더듬으며 얘기했다.
“아, 아니…… 아직 예정일까지 많이 남았어요.”
“얼마나 남았어요.”
“한…… 3주?”
“예정일에 딱 나와주면 복 받았다고 생각해야죠. 그리고 아기의 움직임이 줄어든 건 머리가 골반 쪽으로 내려가서 그럴 수도 있어요.”
“저, 저 그럼 어떡해요?”
한슬기의 표정으로 지금의 심정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지켜보는 내가 더 당황스러운데, 정작 본인은 오죽할까.
이민정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여러분, 이 근처에 병원 없죠?”
“혁신도시에 병원 들어오지 않았나?”
이덕배가 사람들을 쳐다보며 묻자, 맞은편에 있던 이현배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형님, 거기 아직 완공 안 됐습니다.”
“그럼 이 근처에 병원 없어?”
“금호강 지나서 경산으로 들어가면 모를까, 이 근처엔 없을 텐데…….”
이현배는 말끝을 흐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자 최지혜가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파티마병원으로 가는 건 어때요? 동대구역 옆에. 저도 거기서 나왔어요.”
“거긴 너무 멀어. 가는 길도 위험하고.”
최현이 단칼에 거절하자, 최지혜는 뚱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 숙였다.
이정우는 팔짱을 낀 채 고심을 반복하더니, 이민정을 쳐다보며 물었다.
“여기서 출산하는 건…… 많이 위험할까요?”
“아기가 머리부터 나오면 내가 어떻게든 받을 수 있지만, 만약 탯줄이 꼬이거나 뒤집혀서 나오면…… 많이 위험해.”
그러자 숟가락을 들고 있던 박재우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얘기했다.
“아! 우리 어차피 수성구로 가야 하잖아요? 수성구에 큰 병원 있습니다. 효성병원이라고.”
“효성…… 거기 황금역 지나서 있는데?”
황덕록도 병원의 위치를 아는지, 눈꼬리를 치켜뜨며 물었다.
박재우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혁신대로 타고 율하까지 이동한 뒤에, 거기서 수성구 황금동까지 곧장 이동하는 거 아니에요? 파티마로 가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어요.”
“아니지,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지. 황금역을 지나간다는 건 황금네거리를 지나야 한다는 건데, 거길 어떻게 뚫고 들어가.”
황덕록의 말에 난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황금네거리가 왜. 거긴 유동 인구가 많아?”
“더럽게 많지. 사방이 빌딩이야. 좀비가 바글바글할걸?”
“황금이라면…… 너희 본가도 그쪽 아니야? 집이 수성구 황금동이라며.”
“재우랑 내 집은 황금네거리 전에 있고, 병원은 황금네거리 지나서 있고.”
“같은 황금동인데 분위기가 그렇게 달라?”
“아파트 단지는 뒷산이 있어서 조용해. 아파트 단지에서 병원까지는 대략 3.5㎞? 못해도 3㎞는 될 거야.”
여기서 아기를 낳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병원까지 들어가는 것도 부담스러운 상황.
시간을 끌어봐야 답은 나오지 않고, 한슬기에게 부담만 될 것이다.
어떻게든 지금 결정해야 한다.
이정우를 쳐다보자, 그는 입술을 꼭 다문 채 고심에 잠긴 모습을 보였다.
이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형, 차량 개조 오늘까지 끝내고 내일 출발하죠.”
“좀 더 고민해 보자. 신중해서 나쁠 건 없어.”
“아니요. 지금 신중하면 뒷일 감당 안 돼요.”
“……계획은 있어?”
이정우의 물음에 들고 있던 국그릇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처음 계획이 계획입니다.”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원래 내일까지 차량 개조 끝내고 수성구로 이동할 생각이었잖아요. 조금만 앞당겨서 오늘까지 개조 끝내고 내일 출발하자고요.”
“황금동에 도착했을 때 좀비들이 바글바글하면 어쩌려고? 잘못하면 준비되지 않은 곳에서 출산하는 거야. 달리는 버스에서 낳아야 할 수도 있다고.”
“아직 분만 진통이 시작된 건 아니잖아요. 예정일도 3주 남았으니 황금동에 좀비가 있더라도 정리할 시간은 충분합니다.”
“…….”
“그리고…… 여기라고 준비된 건 아니잖아요.”
이정우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한슬기와 이민정을 쳐다봤다.
이민정도 확신이 서지 않는지, 이정우의 시선을 회피하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이곳에서 출산하고 가는 게 가장 안전하다는 건 나도 안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이민정의 말대로 아기가 거꾸로 나오거나 탯줄이 목을 감은 상태라면…… 아기도, 한슬기의 생명도 보장할 수 없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며 얘기했다.
“형, 우리 학생회관에 있을 때 생각해 봐요.”
“…….”
“움직이지 않으면 상황은 악화될 뿐이에요. 하지만 멈추지 않고 움직이면 선택지는 생깁니다. 알잖아요.”
이정우는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내쉬더니, 세차게 혀를 차며 얘기했다.
“그래, 하는 데까지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