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19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119화
한 대표의 물음에 다른 사람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한참이나 신경전이 오가더니, 성 대표가 콧방귀를 뀌며 물었다.
“아이들과 임산부를 데려왔으니 검사도 할 필요 없다? 형식적인 절차도 못 밟게 하는 건 대표 권력 남용 아닌가요?”
“검사받는 사람들이 무장한 것도 아니고, 우리의 지시에 불응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죽창으로 위협하는 행위야말로 대표 권력 남용 아닌가요?”
한 대표가 물러서지 않자, 성 대표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웃었다.
뒤이어 한 대표의 어깨를 토닥이며 얘기했다.
“우리 한 대표, 요즘 근심이 많은 거 우리도 잘 압니다. 도움이 되고 싶었는데, 제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그건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
“저 사람들에 대한 처분은 오후 회의에서 다시 얘기하죠. 사소한 일로 각자의 구역을 오래 비웠으니, 이만 가보겠습니다.”
성 대표가 턱짓하자, 김 대표와 공 대표는 인사도 없이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그들의 모습이 사라지자, 한 대표는 참아왔던 숨을 뱉으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자 한 대표의 옆에 있던 강 대표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한 대표, 괜찮아요?”
“네, 괜찮습니다.”
“저런 은혜도 모르는 놈들…… 이쯤에서 단교하는 게 어때요?”
“그런 말씀 말아요. 사람들의 불안만 조성할 뿐입니다.”
난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딱 보니 이곳엔 다섯 명의 대표가 있고, 파벌 싸움이 한창인 것으로 보였다.
한 대표와 강 대표가 한편이고, 성, 김, 공이 물을 흐리는 미꾸라지로 여겨졌다.
그들의 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보자, 한 대표는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내 곁으로 다가왔다.
“미안합니다. 초면에 실례가 많았네요.”
“아닙니다. 덕분에 유혈사태는 피할 수 있었어요.”
“네…… 아이들이 다치면 안 되죠.”
난 아이들을 얘기한 게 아니었다.
성, 김, 공 대표와 죽창부대의 생사를 얘기한 거지만……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자, 한 대표의 옆에 있던 강 대표가 입을 열었다.
“이런 시기에 아이들과 임산부를 데려오다니, 정말 용기 있는 선택입니다.”
“세상이 망했다고 인간성까지 포기할 순 없죠.”
“이신혜 씨가 무전으로 미리 얘기하지 않았다면…… 또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할 뻔했네요.”
“어처구니없는 일이요?”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묻자, 강 대표는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는지 헛기침하며 입을 열었다.
“일단…… 이쪽으로 오시죠. 한 달 만의 생존자라 저희도 여쭙고 싶은 게 많습니다.”
“…….”
“보시다시피 내부에서 농성하다 보니, 바깥소식을 접할 기회가 별로 없거든요. 듣고 싶은 게 많습니다.”
모든 상황이 꺼림칙한 건 사실이지만, 이들의 상황도 알아야 퍼즐이 맞춰질 것이다.
이덕배와 난 한 대표와 강 대표를 따라 4단지 쪽으로 이동했다.
* * *
한 대표와 강 대표는 4단지 1411동으로 향했다.
바로 앞에 어린이놀이터가 보이고, 대략 19층에서 20층 정도로 보이는 아파트였다.
한 대표를 따라 16층까지 오른 뒤, 좌측으로 보이는 현관으로 들어갔다.
드넓은 거실이 눈에 들어오고, 가로로 넓은 창을 통해 1차 방어선을 확인할 수 있었다.
거실에서 정확하게 보이는 1차 방어선.
옆 호수에서는 맞은편 건물에 가려 방어선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곳을 대표의 방으로 설정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거실의 중앙에는 탁자가 있었고, 탁자를 둘러싼 기다란 소파와 상석에 있는 의자가 눈에 들어온다.
한 대표는 상석에 앉으며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었다.
침묵이 내려앉은 거실로 은은한 커피 향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향기에 마음이 편해지고, 커피 한 잔이 그리워졌다.
이를 눈치챘는지, 한 대표는 두 눈을 게슴츠레 뜨며 물었다.
“커피 드려요?”
“아니요, 괜찮…….”
“커피 좋지!”
옆에 있던 이덕배는 호쾌하게 웃으며 커피를 달라고 했다.
이에 눈썹을 긁적이며 나도 한 잔 부탁했다.
한 대표가 커피를 준비하는 동안 맞은편에 있던 강 대표는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상당히 부담스러운 시선이었다.
뒤이어 강 대표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았어요. 저는 3단지 대표 강요한입니다.”
“박재형입니다.”
“난 이덕배.”
이덕배가 대뜸 오른손을 내밀자, 강요한은 움찔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덕배는 멋쩍은 마음이 들었는지, 본인의 손바닥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민망하구먼. 손에 뭐 묻은 것도 아닌데.”
“죄송합니다. 외부인과는 되도록 신체접촉을 하지 않는 게 저희 방침이라서요.”
“내가 해코지라도 할까 봐? 에잉, 시시하구먼.”
이덕배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농담을 건넸다.
반면에 난 강요한의 말을 듣고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 쓸데없는 방침이 왜 있지?
악수하다가 팔이 꺽인 경험이라고 있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데니를 의식하는 건가?’
독심숨을 지닌 데니.
손만 닿아도 상대방의 생각과 기억을 들여다볼 수 있기에, 이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함인가?
그렇다면 현 상황이 이해된다.
견고하게 지어진 1차 바리케이드와 아파트 단지 입구에 설치된 바리케이드, 초기에 살아남기 힘든 아파트에 진을 친 사람들.
이곳에 라스트아크의 플레이어들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바리케이드의 견고함으로 보아 로즈가 있을 확률이 높고, 손길을 회피하는 것으로 보아 데니는 없다는 뜻이 된다.
데니가 있었다면 먼저 악수하려고 하겠지.
남은 건 가브리엘과 에덤, 레이첼인가?
단지 초입에 병실이 있는 것으로 보아 레이첼의 유무는 확정 지을 수 없지만, 이 정도 규모의 쉘터를 운영하기 위해선 가브리엘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초기에 가브리엘 없이 좀비들을 처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니까.
꼬리의 꼬리를 무는 생각을 반복한 끝에, 원두를 갈고 있는 한 대표를 쳐다봤다.
저 사람이 가브리엘인가?
아직 근거가 부족하다.
난 손깍지를 끼며 강요한에게 물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남은 거예요?”
“……질문이 이상하네요?”
“아, 불편하셨다면 죄송해요. 이렇게 견고한 쉘터는 본 적이 없어서요.”
나이가 어려서 좋은 점 하나.
능청스러운 연기가 통한다.
뱀처럼 보이는 게 아니라, 정말 순수하게 궁금증을 가진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
강요한은 소파에 등을 기대며 시선을 회피하더니, 오래 지나지 않아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얘기했다.
“초기에 단합이 잘 됐습니다. 덕분에 안정적으로 좀비들을 처리하고, 이렇게 쉘터를 만들 수 있었죠.”
당연한 대답을 너무 고민하는 것 같은데?
본인이 겪은 일을 설명하는데 망설임이 있다면, 진실 속에 거짓을 숨겨두었을 가능성이 높다.
나도 그랬으니까.
이동 경로를 적으며 몇 번이고 고민했으니까.
아무리 연기를 잘하는 사람이라도, 아주 찰나의 행동이 단서로 작용한다.
뒤이어 커피 4잔을 들고 한 대표가 돌아왔다.
그녀는 탁자에 커피잔을 내려놓고 강 대표의 옆에 앉으며 물었다.
“여러분도 초기에 단합이 잘 돼서 여기까지 온 것 아닌가요?”
전부 듣고 있었나?
난 입맛을 다시며 대답했다.
“……그렇죠.”
“저희도 초기에는 좋은 사람이 많았습니다. 덕분에 체계가 잡히고, 지금의 쉘터를 만들 수 있었죠.”
성 대표에게 소리치던 모습과 달리, 지금의 한 대표는 많이 지쳐 보였다.
목소리는 잔잔한 호수처럼 차분했고, 눈빛은 생기가 없었다.
눈 밑의 눈그늘이 그녀의 상태를 대변한다.
한 대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방금 보셨다시피 상황이 예전 같지 않아요.”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한 달 전에 생존자들이 왔어요. 여러분처럼 율하에서 넘어온 사람들이었고, A 구역에서 발견했죠.”
율하에서 넘어왔다는 말에 고가도로 앞에 뭉쳐 있던 좀비들이 떠올랐다.
생존자들이 차를 타고 이동했던 모양이다.
그러니 좀비들이 생존자들을 뒤쫓다가, 시야에서 사라진 그들을 쫓아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버린 것이다.
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A 구역이 1차 방어선입니까? 4m 높이 바리케이드가 설치된.”
“맞아요.”
한 대표는 양손으로 커피잔을 쥐고 착잡한 표정을 짓더니,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얘기했다.
“그 사람들도…… 여러분처럼 권총을 들고 있었어요.”
“…….”
“총을 들고 있었지만, 악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성 대표와 김 대표 때문에 죽었죠.”
“예?”
놀란 눈으로 쳐다보자, 한 대표는 고개를 떨군 채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자 한 대표의 옆에 있던 강요한이 대신 설명을 이어갔다.
“생존자들이 차를 타고 왔거든요. 차량의 위치를 물어도 대답하지 않으니, 성 대표가 마녀사냥을 하더라고요.”
“미친…… 여기 있던 사람들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동조했어요?”
“성 대표가 계속 차량의 위치를 물어도 생존자들이 대답하지 않으니, 성 대표가 생존자들을 압박한 모양입니다.”
“…….”
“그 과정에 생존자들의 대표가 방어 차원에서 총을 겨눴고, 그러다 오발 사고를 일으키는 바람에……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됐죠.”
“총에 맞은 사람은 사망했습니까?”
“아니요, 맞은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발포했다는 게 문제였죠.”
총성이 시발점이 되어 현장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에 빠졌다고 한다.
생존자들을 쫓아내야 한다는 아우성이 커지자 대표들의 투표가 시작됐고, 과반수의 동의로 생존자들은 하루 만에 쫓겨났다고 한다.
그리고 이틀 뒤에, 수색대가 전복된 차량과 사망한 생존자들을 찾았다.
강요한은 그날의 기억이 되살아나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그 뒤로 성 대표랑 김 대표에게 권총까지 생기면서 콧대가 올라가고, 공 대표가 완전히 그쪽으로 붙으면서 균형이 무너졌어요.”
“한 대표님이랑 강 대표님은 그걸 지켜보고 있었어요?”
“…….”
강요한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이덕배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얘기했다.
“진정해라 재형아. 이분들도 경황이 없었을 거야.”
하지만 난……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이 남았다.
성 대표와 김 대표가 처음부터 기어오르는 모습을 보였다면 이런 체계를 갖추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한 대표가 그러지 않았는가?
초기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고.
무언가 사건이 있었으니, 성 대표와 김 대표가 기세등등하게 기어오른 것 아닐까?
난 눈꼬리를 치켜뜨며 물었다.
“균형이 무너졌다는 건…… 초기에는 여러분에게 힘이 실려 있었다는 말이 되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된 거죠?”
“…….”
“그렇잖아요. 한 달 전에 성 대표와 김 대표가 기어오른 것도 여러분의 힘이 약해졌다는 뜻인데, 이유가 뭡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강요한은 한 대표의 얼굴을 쳐다보며 대답을 회피했다.
한 대표는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심호흡을 하더니, 퍼석한 입술을 핥으며 얘기했다.
“기존 수색대의 실종.”
“기존 수색대요?”
“제 지인들, 그리고 강 대표의 지인들이 주를 이루는 팀이었어요. 수색도 하고, 식량도 구하고, 생존자도 구출하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현시대에 바리케이드 밖으로 나가는 건 보통 배짱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강 대표와 한 대표의 일행이 바깥 활동을 담당하니, 당연히 이들에게 힘이 실렸을 것이다.
뒤이어 한 대표의 하관이 파르르 떨리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동시에 붉어진 눈가에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한 대표는 폐부 깊숙이 숨을 들이쉬며 천장을 쳐다보더니, 울컥한 마음을 가다듬으며 얘기했다.
“제 동료들이…… 수색을 나갔다가 실종됐어요.”
* * *
율하에서 생존자들이 찾아오기 나흘 전, 한 대표의 일행과 강요한의 일행은 수색을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성 대표와 김 대표가 본색을 드러내고, 율하에서 찾아온 생존자들에게 권총까지 얻으면서 물 만난 물고기가 되었다고 한다.
뒤이어 옆에 있던 이덕배가 한 대표를 쳐다보며 물었다.
“이런 얘기를 우리한테 하는 이유가 뭡니까?”
“…….”
정곡을 찔린 건가?
한 대표는 강요한을 쳐다보며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듣고 보니 그렇네?
물어본다고 전부 대답할 필요가 없는데, 현 상황을 상세하게 들려준 이유가 뭘까.
한 대표는 마른침을 삼키며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한 차례 심호흡과 함께 입을 열었다.
“하나만 여쭤도 될까요?”
“말씀하세요.”
“박재형 씨는…… 지금의 좀비 바이러스에 대해 아는 게 있으신가요?”
지금의 좀비 바이러스?
설마…….
아무런 대답도 없이 한 대표를 쳐다보자, 그녀는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라스트아크에 대해 묻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