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2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12화
먹잇감이 위로 올라갔는데 내려오지 않으니, 복도에 남은 체취에 집중하는 것으로 보였다.
덜컹- 덜컹-
뒤이어 방문을 흔드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설여원은 안 그래도 커다란 눈망울을 화등잔만 하게 뜨며 방문을 쳐다봤다.
차라리 방문을 열고 밖에 있는 놈을 죽여?
하지만 복도에 남은 좀비가 있으면?
쉽사리 움직일 수 없었다.
탈출할 방법이 없는 건가?
방 안을 둘러보자, 책상 뒤편으로 또 다른 방문이 눈에 들어온다.
교무처장실과 붙어 있다면…… 교직원 사무실로 이어지는 건가?
설여원은 전투를 이어갈 만큼 체력적 여건이 되지 않았다.
설여원에게 교직원 사무실을 가리키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이동했다.
달칵.
그 순간, 문고리를 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난 놀란 눈으로 황급히 문고리를 잡았다.
사고기능이 존재하는 놈이라 그런지, 방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게 아니라 여는 방법을 안다.
양손으로 문고리를 잡고 온몸으로 방문을 막아섰다.
크르르르르…… 크어어어!
방문이 열리지 않자, 복도에 있던 좀비는 목젖을 갈며 거세게 방문을 밀치기 시작했다.
전신이 들썩이는 충격과 어깨로 전해지는 저릿한 통증.
설여원의 모습을 살피자, 어느새 교직원 사무실 앞에서 내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먼저 들어가라고 손짓하자, 설여원은 입술을 달싹이며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걱정해 주는 건 고맙지만, 지금은 같이 다닌다고 좋을 게 없다.
체력적 한계에 부딪힌 설여원은…… 사실상 짐이나 다름없었다.
눈살을 찌푸리며 턱짓하자, 설여원은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리며 방문을 열고 교직원 사무실로 들어섰다.
뒤이어 고개만 빼꼼히 내밀어 불안한 눈빛으로 내 모습을 살폈다.
내가 문고리를 놓으면 공명 좀비가 들어올 것이다.
오도 가도 못 하는 상황.
잠깐, 굳이 내가 나갈 필요는 없잖아?
놈을 안으로 들이면 되는 거 아닌가?
바닥에 내려둔 쇠파이프를 손에 쥐고, 복도에서 들리는 발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공명 좀비는 몇 걸음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더니, 있는 힘껏 달려들며 온몸으로 문을 밀쳤다.
또다시 추진력을 얻기 위해 뒤로 물러서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타닷!
지면을 박차는 소리와 함께 쏜살같이 접근하는 공명 좀비의 인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꽉 쥐고 있던 문고리를 세차게 돌리며 안으로 당겼다.
그러자 공명 좀비는 전신이 붕 뜬 채 처장실 내부로 날아들었다.
가로로 날아드는 공명 좀비와 눈이 마주친 순간, 모든 장면이 느린 영상처럼 재생되었다.
놈이 처장실 바닥에 닿기도 전에, 왼팔에 힘을 주어 쇠파이프를 치켜들었다.
“흡!”
힘차게 숨을 들이켜며 놈의 관자놀이를 가격했다.
그와 동시에 반대편 손으로 처장실의 문을 닫았다.
처장실은 방음이 철저하기에, 놈을 흠씬 두들겨 패도 밖으로 소리가 새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공명 좀비가 미동도 하지 않을 때까지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재빨리 방문 상단에 부착된 유리를 살폈다.
다행히 좀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공명 좀비는 처리했는데, 이제 어떻게 나가지?
안개가 들어찬 층은 좀비들이 바글거릴 것이다.
창밖으로 들어오는 노릇노릇한 노을빛.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이곳에서 밤을 보내고 내일 아침에 이동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지만, 본관은 기숙사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건물이었다.
본관으로 도망치는 길에 음대 쪽에 있던 좀비들도 소리를 들었기에, 기숙사에 있는 대장 좀비도 인기척을 느꼈을 가능성이 있다.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내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주변에 좀비들이 얼마나 되는 거지?’
재빨리 창가로 달려가 안개의 표면을 살폈다.
기숙사에서 몇 날 며칠을 보내며 알아낸 바로는, 다수의 좀비가 이동할 때는 안개의 표면이 일렁이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교무처장실의 가로로 넓은 창문을 통해 바깥 상황을 살폈다.
1층의 안개가 파도처럼 일렁거린다.
못해도 100마리 이상.
저 멀리, 음대에서 달려오는 움직임도 포착할 수 있었다.
음대에 있던 좀비들이 인기척을 느꼈다면, 기숙사에 있는 대장 좀비도 생존자의 유무를 알아챘을 것이다.
왜 불안한 예상은 빗나가는 법이 없을까.
“재형아, 우리 이제 어떡해.”
언제 다가왔는지, 설여원은 양손을 오므린 채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난 아랫입술을 깨물며 설여원의 시선을 외면했다.
나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기숙사에서 탈출할 때처럼 이불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외벽에 파이프라인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1, 2층의 계단과 복도는 좀비들이 가득할 것이고, 저 밖에 공명 좀비가 몇 마리나 더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잠시라도 좀비들의 시선을 돌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어디 없…….
‘시선?’
머릿속을 스치는 반짝이는 착상에 황급히 등에 메고 있던 가방을 열었다.
기숙사를 탈출하면서 잡다한 물건들을 챙겼다.
그리고 그중에는…….
“……진심이야?”
설여원은 내가 꺼내든 물건을 보고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난 알람시계를 돌리며 얘기했다.
“지켜봐. 이게 수류탄보다 효과적일 테니까.”
* * *
처장실의 방문에 부착된 작디작은 유리로는 복도 전체를 살필 수 없었다.
“여원이 너는 사무실에서 좌측 복도 살펴줘. 복도에 좀비들 얼마나 있는지.”
“어어, 알았어.”
처장실이 교직원 사무실과 연결된 덕에 밖에 나가지 않고도 복도의 좌우를 살필 수 있었다.
5층 복도에는 좀비가 존재하지 않았다.
“여원아, 뛸 수 있겠어?”
“살려면 뛰어야지.”
메마른 대지처럼 쩍쩍 갈라지는 목소리.
저 정도면 목에서 쇠 맛이 날 것이다.
남은 생수를 전부 비우고, 조심스레 방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크르르르르르…….
방문을 열자마자 좀비들의 아우성이 들려왔다.
4층에도 좀비들이 있는 모양이다.
“어쩌려고.”
“좀비들을 한쪽 계단으로 유인하고, 우린 반대편 계단으로 내려갈 거야. 1층에 도착하면 바로 쪽문으로 나가.”
“일부러 소리를 낸다고? 체취는 어쩌고.”
“따라와.”
5층 화장실로 들어서자, 역시나 썩은 내가 진동하는 도구함이 눈에 들어온다.
코를 찌르는 악취에 반사적으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난 대걸레를 손에 쥐고 설여원에게 내밀었다.
“문질러.”
“이, 이거를?”
“살기 싫어?”
설여원은 울상을 지으며 대걸레로 전신을 문질렀다.
나도 덩달아 대걸레로 전신을 문질렀다.
설여원은 헛구역질을 하며 몇 번이고 침을 삼켰다.
불쾌한 건 사실이지만 어쩌겠는가?
살려면 무슨 짓이든 해야지.
악취 나는 몸을 이끌고 우측 복도 끝으로 이동했다.
발소리를 죽인 채 계단을 내려가자, 좀비의 울음소리가 더욱 선명해졌다.
고개만 삐죽 내밀어 4층 복도를 살피자, 좀비 하나가 상체를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굳이 묻지 않아도 저놈이 공명 좀비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경험한 바에 따르면 좀비들에게는 귀소본능 같은 게 있다.
안개 밖까지 사냥감을 쫓아온 뒤에 사냥감을 놓치면, 다시금 안개 속으로 돌아간다.
저렇게 돌아가지 않고 남아 있는 놈들은 공명 좀비일 것이다.
처리하고 이동하는 게 안전하지만, 좀비와의 거리가 족히 20m는 된다.
아무리 빨리 달리더라도 좀비가 입도 벙긋하기 전에 20m를 돌파하는 건 불가능하다.
차라리 알람시계부터 던져놓고, 밑에 있는 좀비들을 유인한 뒤에 처리하는 게 옳다.
두 개의 소리가 혼합된다면, 사고기능이 없는 일반 좀비들은 가장 가까운 소리에 집중할 테니까.
난 알람시계를 살피며 설여원에게 얘기했다.
“간다.”
설여원은 대답 대신 쇠파이프를 고쳐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3층으로 내려가자, 좀비들의 음성이 불협화음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굳이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놈들의 숫자가 머릿속으로 그려진다.
못해도 20마리 이상.
“4층으로 올라갈 준비해.”
이 말을 끝으로 좀비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알람시계를 밀어 넣었다.
컬링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알람시계가 복도를 긁으며 좀비들의 발치까지 다다르자, 목젖을 가는 소리와 함께 좀비들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따르르르르릉!!
크어어어어!! 카각- 카악!!
시끄러운 알람이 복도를 울리자, 건물 전체에서 좀비들의 육성이 터져 나왔다.
고막이 울리는 절규에 가까운 소리에, 목덜미가 뻐근해지는 것을 느꼈다.
다급히 4층으로 올라가 난간에 몸을 기댄 채 3층의 모습을 응시하자, 2층에서 올라오는 좀비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두 다리로 똑바로 달리는 놈들보다 팔다리를 이용해 기어오르는 놈들이 더 많았다.
먹잇감을 향한 집념이 육신을 지배하는 모습.
수십 마리의 좀비가 3층 복도로 모여들었다.
한 차례 웨이브가 지나가자, 요란한 알람 소리 사이로 공명 소리가 들려왔다.
그어어어어어- 어어어어-
영혼을 빨아들일 것 같은 이질적인 울음소리.
저들 중 공명 좀비도 섞여 있는 건가?
긴장되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계단을 살폈다.
다행히 4층까지 올라오는 좀비는 없었다.
좀비들이 3층에 모여든 것을 확인하고, 퍼석한 입술을 핥으며 뒤를 돌아봤다.
4층 복도로 기다란 인영이 드리운다.
4층에 있던 좀비도 알람 소리를 듣고 이곳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충분히 예상한 바.
탓!
생각할 겨를도 없이 본능적으로 계단을 뛰어올랐다.
우리가 발각되기 전에, 내가 먼저 친다.
쇠파이프를 말아쥐며 재빨리 모서리를 돌아, 육안으로 확인할 새도 없이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빡!!
좀비는 반응조차 못 하고 콧대가 내려앉았다.
후드득 떨어지는 치아가 눈에 들어온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연달아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뒤따라온 설여원은 좀비와 내 모습을 번갈아 살피더니,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이제 어디로 가.”
“아까 얘기한 대로. 반대편 계단으로 내려가서 곧장 쪽문으로…….”
텁!
“어?”
순간, 종아리로 느껴지는 통증에 말문이 막혔다.
재빨리 시선을 내리자, 안면이 으깨진 좀비가 내 종아리를 씹고 있었다.
떨쳐내야 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눈앞의 장면이 믿기지 않아서,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물렸어?’
좀비에게 물린 나보다 한발 먼저 반응한 건 설여원이었다.
설여원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손에 쥐고 있던 쇠파이프로 좀비의 관자놀이를 꿰뚫었다.
난 그 자리에 주저앉아 허망한 표정으로 종아리를 쳐다봤다.
바지에 선명하게 찍힌 이빨 자국, 그리고 붉은 혈흔.
안일했다.
설여원은 당황한 표정으로 내 종아리를 살피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종아리를 물렸지만, 난 자동반사적으로 계단으로 달려가 좀비들의 행태를 살폈다.
다행히 소란을 듣고 올라오는 좀비는 없었다.
좀비들은 요란하게 울리는 알람 소리에 정신이 팔린 상황.
뒤이어 설여원은 눈시울을 붉히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재, 재형아. 너 종아리.”
“빨리 가.”
“……어?”
“가라고. 학생회관으로.”
바지에 묻은 핏자국을 보고 고통도, 억울함도, 두려움도 느낄 수 없었다.
모든 것이 허탈하고, 어처구니없게 느껴졌다.
사지에 힘이 풀리고, 가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설여원은 입술을 파르르 떨며 눈시울을 붉혔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내 명줄이 여기서 끝인 것을.
난 4층 창문을 열어젖히며 지면을 살폈다.
머리부터 떨어지면 즉사할 수 있을까?
창틀을 밟고 올라서자, 설여원이 달려와 다급히 내 허벅지를 붙잡았다.
“너 뭐하는 거야!”
“변하기 전에 지금 죽는 게 나아.”
“야!”
설여원의 외침을 외면한 채 창밖으로 퍼진 운무를 응시했다.
두려움일까.
허망함일까.
아니면 죄책감일까.
손이 덜덜 떨리고, 심장이 아렸다.
떨리는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저지른 죄악이 많아서 하늘이 내린 천벌일까?
이제 와서 이런 생각하는 게 염치없다는 건 알지만…… 죽기 싫다.
나도, 나도 살고 싶었다.
후회되는 순간이 너무나 많고, 아쉬운 순간도 너무나 많았다.
하지만 나도 잘 알고 있다.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생각이 많아지면 망설임만 생길 뿐이고, 알람 소리가 멈추면 설여원이 탈출할 기회마저 사라질 것이다.
어떻게든 내가 선택을 내려야 설여원이라도 살 수 있다.
난 설여원을 돌아보며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잠깐이지만…… 반가웠다.”
“야…….”
“고맙다. 자연대에서 구해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