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20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120화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예고도 없이 들어올 줄이야.
망설이면 안 된다.
여기서 머뭇거리면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난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라스트아크요?”
한 대표와 강요한은 미동도 없이 내 얼굴을 쳐다봤다.
이에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아이처럼 두 눈을 깜박이며 물었다.
“그게 뭐죠?”
“모르…… 세요?”
“좀비 바이러스에 대해 아는 게 있으신 것 같은데, 라스트아크가 뭡니까.”
난 한 대표의 얼굴을 쳐다보며 역으로 물었다.
한 대표는 강요한과 시선을 주고받으며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더니,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아닙니다. 제가 이상한 질문을 했네요.”
“말씀해 주세요. 좀비 바이러스와 관련이 있으면 저희도 알아야죠.”
“그건…….”
한 대표가 곤란한 표정을 짓자, 옆에 있던 강요한이 대수롭지 않게 입을 열었다.
“저희도 알아보는 중입니다. 예전에 찾아왔던 생존자가 좀비 바이러스의 원인이 라스트아크 때문이라고 했거든요.”
눈을 좌우로 굴리며 둘러대는 것으로 보아, 지어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
난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가만히 턱을 매만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대표는 대뜸 오른손을 내밀며 입을 열었다.
“통성명이 늦었네요. 저는 한지현이라고 합니다.”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듯이 급히 화제를 돌렸다.
이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네? 아까 강 대표님이 신체 접촉하지 않는 게 방침이라고…….”
끝까지 모른 체하자, 한지현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그건 여러분이 악의가 있는지 없는지 모를 때 얘기죠. 검증됐으니 괜찮습니다.”
하, 이 여자 봐라?
한지현도 악의는 없지만, 조심성이 상당한 것으로 보였다.
라스트아크 플레이어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기에, 이토록 신중한 것이겠지.
신중할 거면 조금만 더 신중하지, 라스트아크에 대해 먼저 입에 담은 건 실수였다.
물론 내겐 희소식이지만.
라스트아크에 대해 먼저 입에 담았다는 건 우리에게 거는 기대가 많은 것 같은데…… 오늘 처음 본 사람에게 기대를 걸 만큼 중요한 일이 뭘까?
돌아가서 일행과 상의해 봐야겠다.
* * *
한지현과 이곳 황금동 쉘터에 대해 30분 정도 더 이야기를 나눈 뒤, 이곳에서 생활할 숙소를 배정받았다.
일행이 배정받은 아파트는 4단지 1410동 5층이었다.
한지현은 남아도는 게 방이라며 호수 하나당 2명이 써도 된다고 했지만, 이는 이정우가 반대했다.
아직 이들을 향한 경계심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기에, 최대한 뭉쳐 있는 걸 택했다.
결국 5층 501호와 502호, 두 개의 호수를 26명이 사용하기로 했다.
난 501호로 들어서며 이정우에게 물었다.
“한슬기 씨는 어떻게 됐어요?”
“아직 소식이 없어. 큰 탈 없어야 할 텐데.”
양수가 터지고 분만이 시작된 지 이제 2시간 정도 지났다.
출산에는 평균 9시간에서 11시간이 걸린다고 하니, 지금은 순산을 기원하며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뒤이어 전완수가 내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건 그렇고 한 대표랑 강 대표는 뭐래? 무슨 얘기한 거야?”
“다들 앉아봐요.”
설여원과 한슬기를 제외한 24명의 인원이 501호 거실에 모였다.
일행에게 한 대표와 나눈 대화를 들려주자, 다들 탄성을 뱉으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죽창 들이밀 때 알아봤어.”
전완수는 성 대표와 김 대표, 공 대표를 욕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반면에 최현은 태연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대표가 다섯 명이나 되면…… 여기 생존자도 엄청 많다는 건데, 총 몇 명이래?”
“한 대표 말로는 412명이래.”
412명이란 말에 모든 일행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기겁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진영은 팔짱을 낀 채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구레나룻을 긁적이며 물었다.
“아니 그럼…… 그 412명 중에 4단지랑 3단지에 있는 생존자는 몇 명이야?”
“110명이라고 들었어요.”
“나머지 300명가량은 개새끼라고 봐도 되는 거지?”
정진영이 태연하게 묻자, 최만석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그렇게 묶어서 생각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네.”
“왜요?”
“어쩔 수 없이 그쪽에 있는 사람도 있을 거야. 대표들이 단지별로 있는 거로 봐서는 성, 김, 공이 관리하는 아파트가 본가인 사람도 있을 테니까.”
최만석의 대답에 다들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문제는 그들을 하나하나 조사할 여력이 없고, 조사하더라도 확신을 얻긴 어려울 것이다.
또한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숫자도 아니기에, 생존자 구조 같은 터무니없는 계획은 세울 수 없었다.
이정우는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관자놀이를 누르더니,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생존자는 둘째 치고, 일단 재형이 말이 사실이라면…… 한지현이랑 강요한은 플레이어일 확률이 높아.”
고개를 끄덕이자, 이정우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혼잣말을 읊조렸다.
“라스트아크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는 건 우리가 플레이어이길 내심 바란다는 건데…….”
“저도 동감입니다.”
“오늘 처음 들어온 우리한테 뭘 바라는 거지? 속내를 모르겠어.”
이정우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자, 소파에 있던 윤혜리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물었다.
“힘의 균형을 되찾으려는 거 아니에요? 플레이어를 확보하면 당연히 4단지랑 3단지로 힘이 쏠릴 테니까요.”
“그보다 근본적인 의문이 안 풀려. 무슨 근거로 우릴 플레이어라 생각하냐고.”
이정우의 말에 식탁 앞에 있던 이덕배가 입을 열었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마당에 경산에서 여기까지 왔잖아. 충분히 플레이어라고 생각할 수 있지.”
그러자 이현배가 고개를 저으며 반박했다.
“형님, 그럼 성 대표, 김 대표, 공 대표는 저희가 플레이어라는 걸 알고도 막아선 게 돼요. 일반인이 어떻게 그래요.”
“내 생각에 성김공은 라스트아크에 대해 모르는 거 같아.”
대표라는 말도 아까운지, 이덕배는 성 대표, 김 대표, 공 대표를 성김공이라 불렀다.
이현배는 눈썹을 긁적이며 못마땅한 표정을 짓더니, 이덕배를 쳐다보며 물었다.
“한 대표랑 강 대표가 성김공한테 라스트아크에 대한 이야기를 비밀로 했다는 거예요? 석 달을 넘게 붙어 있었는데?”
“라스트아크에 대해 안다면 그렇게 무례하게 나올 수 없어. 플레이어는 쉘터 안정화에 가장 중요한 인력이니까. 오히려 우리를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했겠지.”
“그건…… 그렇긴 한데…….”
여기저기서 웅성거리자, 501호 거실은 순식간에 북새통이 되었다.
이를 보다 못한 이정우가 손뼉을 치며 얘기했다.
“그만, 다들 그만! 다들 진정해요.”
고조되었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이정우는 이마를 긁적이며 한숨을 내쉬더니, 이덕배를 쳐다보며 얘기했다.
“덕배 아저씨의 의견이 가장 정답에 가까워요. 만약 성김공이 라스트아크에 대해 알았다면 우리를 추궁하는 게 아니라, 아부를 떨었을 겁니다.”
“그래! 내 말이.”
이덕배가 속 시원하다는 듯이 얘기하자, 이현배는 입맛을 다시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정우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한지현이랑 강요한은…… 정황상 수색대를 맡아달라고 부탁했을 것 같습니다.”
“수색대?”
이덕배가 눈꼬리를 치켜뜨며 되묻자, 이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기존 수색대의 실종. 그 뒤에 잠잠해진 바깥 활동. 최근까지 바깥에 있다가 들어온 저희. 그럼 연결고리는 하나뿐이잖아요?”
“우리가 플레이어라면…… 안전하게 바깥 활동을 할 수 있으니 수색대를 맡길 생각이었다?”
“그렇죠. 그래서 라스트아크를 아느냐고 물었을 겁니다. 우리가 경산에서 왔다는 걸 알고 있으니, 가브리엘이 있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이정우의 말을 듣고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난 손가락을 튕기며 입을 열었다.
“정우 형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한테 부탁하려고 한 건 지금껏 진행한 수색이 아닐 거예요.”
“지금껏 진행한 수색이 아니라니?”
“식량이나 생존자를 찾는 것 말고, 한지현에게 절실한 걸 찾아달라고 부탁했을 겁니다.”
이정우는 손톱을 깨물며 생각을 정리하더니, 오래 지나지 않아 한쪽 눈꼬리를 치켜뜨며 물었다.
“설마…… 기존 수색대?”
이정우의 물음에 난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실종된 지 한 달이나 넘었는데, 한지현은 사망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실종이라고 했거든요.”
그러자 거실에 있던 사람들은 탄성을 뱉으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정우는 가만히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 얼굴을 흘깃 쳐다보며 물었다.
“그럴듯하네. 만약 그런 제안을 받았다면…… 재형이 너는 어떻게 했을 거야?”
“전 승낙했을 겁니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자, 뒤에 있던 전완수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미쳤어? 우리가 왜 나가? 플레이어들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건 이미 좀비로 변했다는 거고, 그건 대장 좀비로 변했다는 거잖아.”
“그래서 나가겠다는 거야.”
“……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단 말이야. 플레이어가 대장 좀비로 변했다면 생존자를 섭취하지 않는 이상 변종으로 변할 수밖에 없잖아.”
“……그래서?”
“여긴 신기할 정도로 조용하단 말이지. 생존자들의 숫자에 비해 좀비들의 공격이 터무니없이 적어.”
덤덤하게 얘기하자, 전완수는 입술을 벙긋거리며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가만히 앉아 있던 박재우가 입을 열었다.
“맞네? 여기 사람들 무기도 시원찮고. 성김공은 열심히 싸울 것 같지도 않은데 왜 안 무너졌지?”
“바로 그거야.”
일행을 쳐다보며 얘기하자,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미어캣처럼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 얼굴을 쳐다봤다.
설명을 하려는 찰나, 박재우의 옆에 있던 황덕록이 입을 열었다.
“그럼 재형이 네 말은…… 대장 좀비가 변종으로 변했다면 진즉에 여기부터 공격했을 텐데, 여기가 함락되지 않은 게 이상하다는 거지?”
“그렇지. 벌써 한 달이나 지났으니까.”
“그럼…… 대장 좀비들이 아직 이성을 유지하고 있고. 의도적으로 여길 지켜주고 있다는 거야?”
“어디까지나 내 가설이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야.”
“대장 좀비가 생존자를 지킨다고? 이 무슨…….”
황덕록은 말문이 막히는지, 머리를 긁적이며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반면에 이정우는 뒤늦게 아, 하는 탄성과 함께 얘기했다.
“학교에도 비슷한 대장 좀비가 있었어. 인간을 섭취하는 걸 포기하고 자결하려고 했던 대장 좀비. 이름이 뭐였지?”
“김민형이요.”
이정우는 손가락을 튕기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 내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재형이 너는 수색대로 나가서 대장 좀비와 접선할 생각이라는 거야?”
“네, 기회라고 생각하거든요.”
“기회는 무슨 기회.”
“각성 기회요. 결인들의 캐릭터 각성 기회.”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각성은 문제가 있는 쉘터를 찾아서 파괴하라는 퀘스트가 생성돼야 가능한 거잖아.”
“여기 처음 들어왔을 때, 아무런 퀘스트도 생성되지 않은 거 알죠?”
이정우는 모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반박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난 일행의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럼 성김공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타락할 쉘터를 찾아야 각성 퀘스트가 생성된다는 뜻이죠.”
“그래서.”
“전 실종된 플레이어들이 쓰레기 같은 쉘터에 들어갔다가 좀비에게 감염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무슨 근거로?”
“기존 수색대의 역할에 생존자 구출도 포함되어 있다는 거, 제가 얘기했죠?”
이정우는 아, 하는 탄성과 함께 좌우로 눈알을 굴렸다.
슬슬 머리가 돌아가는 모양이다.
아직 이해하지 못한 일행이 몇몇 있기에, 그들을 쳐다보며 내가 생각한 가설을 들려주었다.
“수색을 나갔다가 이하진 같은 놈들, 또는 식인종에게 속아서 단체로 잡혔거나, 좀비가 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죠. 대장 좀비로 변한 뒤에는 역으로 그놈들을 섭취하며 이성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고.”
“인간말종을 섭취하면서 이성을 유지하고, 그 정신으로 여기를 지킨다는 거야?”
최현의 물음에 난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쓰레기들의 숫자가 40명 이상이라면 쉘터로 인식되고 각성 퀘스트가 생성될 거야. 우린 그 순간을 노려서 전부 처리하면 돼.”
“대장 좀비가 우릴 공격할 가능성은?”
“대장 좀비가 여길 지키고 있다면 여기서 나온 수색대를 공격할 가능성은 희박해. 그 심리를 이용해서 정보를 얻어보자고. 만약 달려들면…… 내가 죽이면 그만이야.”
덤덤하게 얘기하자, 전완수는 떡하니 입을 벌리며 탄성을 뱉었다.
“와…… 이 새끼 천잰데? 무력이 지력을 씹어먹는 줄 알았는데, 머리도 잘 돌아가네?”
그러자 옆에 있던 최현이 입맛을 다시며 얘기했다.
“재형이 머리 좋아. 가끔 경솔해서 그렇지.”
“하긴, 아까 임시초소 앞에서 깜짝 놀랐잖아. 성김공 죽이는 줄 알고.”
전완수의 말을 듣고 난 쓴웃음을 지으며 얘기했다.
“애들한테 죽창 겨누고 있는데 어떻게 그래.”
“그럼 애들 없었으면 죽였을 거야?”
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