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22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122화
뒤이어 윤혜리는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언니…….”
“누가 네 언니야!”
한지현은 윤혜리의 손길을 뿌리치며 까드득 이를 갈았다.
그러자 윤혜리는 겁에 질린 모습으로 후다닥 내 곁으로 달려왔다.
뒤이어 내 귀에 입술을 갖다 대며 속삭이는 목소리로 얘기했다.
“아까 곽 대표란 사람이 한지현 씨 남자친구고, 3단지 대표는 원래 강요한 씨가 아니라 곽 대표였어요. 정확히 34일 전에 수색을 나갔고, 수성못 쪽으로 이동했어요. 한지현 씨는 로즈, 강요한 씨는 레이첼이에요.”
부모님께 친구의 잘못을 전부 이르는 아이처럼, 한지현의 기억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윤혜리를 쳐다보자, 안절부절못하며 한지현과 내 얼굴을 번갈아 쳐다본다.
연기가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당황하면 안절부절못하는 건 여전했다.
당황한 윤혜리를 진정시키며 물었다.
“총 몇 명이야?”
“네? 누구요?”
“실종된 수색대.”
“플레이어만 15명이고, 일반인은 26명이요.”
윤혜리의 말을 듣고 반사적으로 입이 벌어졌다.
쉘터에 생존자가 많은 만큼, 수색대의 규모부터 남달랐다.
플레이어만 15명에 일반인 26명.
거의 움직이는 쉘터 수준이었다.
이토록 많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이제야 말이 된다.
모든 플레이어가 한마음 한뜻으로 생존자를 위해 초기부터 움직인 모양이다.
그러자 옆에 있던 이정우가 내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우리 예상이 맞아?”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한지현은 멍한 표정으로 윤혜리와 내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상황파악이 안 되는 모양이다.
한지현은 말까지 더듬으며 물었다.
“너, 너희 뭐야.”
당황스러울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이마를 긁적이며 이정우에게 물었다.
“형, 이제 제 방식대로 해도 되죠?”
“마음대로 해.”
성 대표의 인성을 전해 듣기만 한 이정우는 대표실에 들어오기 전까지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직접 두 눈으로 보고, 확신이 생긴 모양이다.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난 한지현을 쳐다보며 물었다.
“낮에 저한테 그러셨죠? 좀비 바이러스, 라스트아크에 대해 들어봤냐고.”
“…….”
“맞아요. 우리 플레이어예요.”
심히 당황한 모양이다.
화등잔만 하게 커진 눈과 벌어진 입이 다물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난 씁쓸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거짓말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곳의 상황을 알기 전까지 얘기할 수 없었어요.”
“…….”
“대표님도 숨겼으니, 피차 마찬가지라 생각해 주세요.”
한지현은 마른침을 삼키며 긴장한 모습을 보이더니,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얘기했다.
“식량이라면 원하는 대로 줄 수 있어. 대신…… 사람들은 건드리지 마.”
여전히 경계심을 거두지 못했다.
이에 눈썹을 긁적이며 얘기했다.
“실종된 수색대 찾는 거, 저희가 도와드리겠습니다.”
“…….”
한지현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도와주더라도 최소한의 규칙이 있어야지.
이들의 방침에 따를 생각은 없다.
난 훅, 하고 숨을 뱉으며 얘기했다.
“단, 저희 방식대로 움직입니다.”
“……얘기…… 아니, 말씀하세요.”
조금 전까지 까칠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우리의 조건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만큼 실종된 수색대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것이겠지.
이에 현관을 한번 살핀 뒤, 한지현을 똑바로 쳐다보며 얘기했다.
“겉모습만 사람인 놈들은 다 죽입니다.”
한지현은 마른침을 삼키며 불안한 눈빛을 보이더니, 손깍지를 끼며 내게 물었다.
“겉모습만 사람이라는 게…… 좀비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한 대표님 눈에는 방금 나간 세 명이 사람으로 보여요?”
한지현이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기에, 난 팔짱을 끼며 소파 등받이에 상체를 기울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이덕배가 입을 열었다.
“너무 물러.”
한지현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 숙이더니, 자신 없는 목소리로 얘기했다.
“사람을 죽이는 일입니다. 당연히 신중해야…….”
“그래서 결과가 이건가? 그럴 거면 암세포도 생명이라고 하지 왜?”
이덕배가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묻자, 한지현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고개 숙였다.
난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한지현에게 얘기했다.
“한지현 씨.”
“…….”
“결단력이 부족하면 밑에 사람들이 피곤해집니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이곳에 있는 성김공은 배려를 권리로 착각하는 놈들이다.
그리고 권리를 권력으로 생각하는 놈들이니, 거만함의 결과를 보여줘야지 어쩌겠는가?
뒤이어 안방에 있던 강요한이 나오며 물었다.
“잠깐, 여러분 지금…… 대표님들을 전부 죽이겠다는 겁니까?”
전부 듣고 있었으면서 이제야 기어 나오다니.
난 눈꼬리를 치켜뜨며 물었다.
“안 됩니까?”
“아니…… 그건 살인이에요.”
강요한의 말에 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오른손을 내밀었다.
강요한은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이더니, 조심스레 소파로 다가와 내 손을 잡았다.
“아악!”
슬쩍 악력을 가하자, 그는 전신을 배배 꼬며 그 자리에 무릎 꿇었다.
난 강요한의 얼굴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당신들이 암세포를 키웠으니, 우리가 잘라주겠다는 거잖아.”
“으으으악!”
“어떻게 할래요.”
“놔, 놔!”
“내가 안 놔주면 어떻게 할 거냐고.”
강요한은 오만상을 찌푸리며 버둥거리더니, 왼팔로 내 허벅지와 옆구리를 때리기 시작했다.
한지현도 당황스러운 모습을 보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빨리 놔요!”
“안 놔주면 어떻게 할 거냐고.”
한지현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파르르 떨더니, 내 손을 잡고 매달렸다.
하지만 두 사람이 매달려도 내 악력을 떨쳐내지 못하자, 한지현은 책상 서랍에 넣어둔 식칼을 들고 왔다.
“그 손 놔요.”
“으아악!”
“놔!”
강요한이 비명을 지르며 식은땀까지 뻘뻘 흘리는데, 한지현은 양손을 덜덜 떨며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팽팽한 긴장감이 거실을 맴돌고, 한지현의 울대가 꿀렁이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불안하게 떨리는 동공, 느슨하게 잡은 칼자루.
저런 상태로는…… 오히려 본인의 손만 다칠 것이다.
난 강요한이 손을 놓아주며 차분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이게 여러분 위치입니다.”
“…….”
“상대방은 놔줄 생각이 없는데, 아군이 죽을 때까지 공격도 못 한다고.”
한지현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얼굴을 붉혔다.
뒤에 있는 이정우를 쳐다보자,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강요한의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손 줘봐요.”
강요한이 오른손을 덜덜 떨며 보여주자, 이정우는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뼈도 안 부러졌는데 엄살은. 저 친구가 좀…… 충격요법을 좋아해요.”
이정우가 강요한의 손을 치료하는 동안, 강요한은 겁에 질린 모습으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한지현은 만감이 교차하는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뒤이어 흐느끼는 목소리로 얘기했다.
“어디서……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모르겠어.”
“…….”
“너무…… 버거워요.”
충격요법이 좀 과했나?
하지만 마냥 지켜보고 있을 수 없었다.
죽이지 않으면 나와 내 가족이 죽는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긴박한 순간에 망설이는 건…… 동료를 죽음으로 내몰 수밖에 없다.
난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우리가 도와줄 테니, 한지현 씨도 우리를 도와줘야겠습니다.”
말은 거창하게 했지만, 우리도 지금은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곳에서 박재우와 황덕록의 부모님도 찾아야 하고, 한슬기와 곧 세상에 나올 아기의 안정도 확보해야 한다.
또한 결인들의 캐릭터 각성 기회를 얻을 수도 있으니, 수색대로 지내며 곽 대표를 찾아야 한다.
이곳에서 며칠간 정착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난 울먹이는 한지현의 등을 토닥이며 윤혜리를 쳐다봤다.
그러자 윤혜리는 바깥을 가리키며 입술을 움직였다.
-돌아가서, 얘기해요.
소리 내지 않는 것으로 보아, 한지현과 김요한에게 얘기할 수 없는 성김공의 계략을 알아낸 모양이다.
* * *
회의를 마치고 501호 거실로 돌아오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일행이 자리에서 일어나 질문 공세를 시작했다.
이정우는 진정하라는 말을 남기며 거실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우리가 보고 들은 이야기를 들려주자, 다들 생각이 많아진 것으로 보였다.
난 윤혜리를 쳐다보며 물었다.
“혜리야, 성김공은 무슨 생각하고 있는지 확인했어?”
“놀라지 말아요. 엄청난 걸 알아냈어요.”
윤혜리는 들뜬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입이 간질간질한 걸 간신히 참고 있었던 모양이다.
일행의 시선이 쏠리자, 윤혜리는 목을 가다듬으며 얘기했다.
“재형 오빠 예상이 맞아요. 곽 대표란 사람, 이미 대장 좀비로 변했어요.”
“그걸 성김공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알아냈다고?”
“김 대표랑 공 대표는 몰라요. 성 대표만 곽 대표랑 왕래가 있어요.”
“……뭐?”
이게 무슨 말이야?
그럼 대장 좀비로 변한 곽 대표는…… 이곳의 상황을 전부 알고 있다는 말이 아닌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자, 윤혜리는 곧장 추가설명을 덧붙였다.
“물론 곽 대표는 이곳 상황을 몰라요. 성 대표가 거짓말을 하고 있거든요.”
“어떻게.”
“제가 곽 대표랑 한지현 씨가 연인 사이라고 했죠? 좀비로 변한 곽 대표는 한지현 씨를 만날 자신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곳 상황을 성 대표한테 전해 듣고 있다고?”
“네, 곽 대표는 성 대표가 부패한 걸 몰라요. 그 사람은…… 좀비가 돼서도 여길 지키고 있을 뿐이에요.”
안쓰럽다고 해야 좋을까, 아둔하다고 해야 좋을까.
하지만 나라도 망설여질 것 같다.
내 모습이 좀비라면, 사랑하는 사람 앞에 설 자신이 없을 것이다.
씁쓸한 마음에 한숨부터 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윤혜리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성 대표가 수색대를 꾸리고 있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에요.”
“혼자 몰래 곽 대표를 만나려고?”
“네, 맞아요. 그리고 곽 대표를 만날 때마다 식량까지 들고 들어오니, 김 대표랑 공 대표는 성 대표한테 붙은 거고요.”
“곽 대표가 식량도 넣어주는 거야?”
“네.”
어처구니없어서 말문이 막혔다.
지극정성이라고 해야 좋을까?
사람이 지나치게 착하면…… 이를 이용하는 놈들이 꼭 나타난다.
착잡한 마음에 이마를 문지르며 물었다.
“식량 배분은 제대로 되는 거야?”
“아니요, 4단지랑 3단지 생존자들은 거의 배제된 상태에요. 남들 받는 식량의 절반.”
그러자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덕배가 눈살을 찌푸리며 읊조렸다.
“개만도 못한 놈들…….”
이정우는 현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윤혜리에게 물었다.
“대표들끼리만 차별하는 게 아니라, 생존자들 사이에도 차별이 있다고? 같이 땀 흘리며 바리케이드를 건설한 사람들인데?”
“성김공 쪽의 생존자들은 위에서 떨어지는 떡고물 먹으면서 잘살고 있으니까요. 차별이 생겨서 본인들의 배가 부르니, 모른 체하고 사는 거예요.”
“고작 곽 대표 한 명 사라진 게 이 큰 쉘터를 이렇게까지 타락시킬 수 있나?”
“곽 대표 한 명이 아니죠. 플레이어만 15명이었고, 전투에 특화된 일반인이 26명이었어요. 4단지와 3단지의 전력이 전부 사라진 거예요.”
윤혜리가 씁쓸한 표정을 짓더니,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제가 들여다본 기억이랑 감정으로 봐서는…… 피해의식 때문인 것 같아요. 지금껏 주도권이 4단지랑 3단지에 있었으니, 억눌린 피해의식이 발현된 거죠.”
그러자 구석에 앉아 있던 황덕록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샤덴프로이데.”
황덕록의 입에서 나온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황덕록은 멋쩍은 마음이 들었는지, 구레나룻을 긁적이며 얘기했다.
“남의 고통을 보면서 기쁨을 찾는 심리요. 자신과 비슷한 처지나 상황에 있던 사람이 몰락했을 때 더 강하게 나타나요.”
황덕록의 설명에 옆에 있던 박재우가 물었다.
“4단지, 3단지 사람들의 몰락을 보고 즐거워한다는 거야?”
“어, 지금처럼 생존이 삶의 전부인 시대에는…… 비인륜적인 행동으로 발현되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 자존감이 낮고, 피해의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이 겪지.”
“대체 왜? 4단지, 3단지 사람들이 그동안 성김공 쪽 사람들을 무시라도 한 거야?”
박재우의 물음에 윤혜리를 고개를 저었다.
차별도 없었는데 왜 저런단 말인가?
황덕록은 머리를 긁적이며 일행의 눈치를 보더니,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박재우에게 물었다.
“재우, 우리 중고등학교 다닐 때 생각 안 나?”
“왜.”
“캐슬 사는 애들이랑, 저쪽 타운 사는 애들이랑, 비교당한 게 한두 번이야?”
“…….”
“우리가 무시 안 해도 어른들이 차별하고, 선생님들이 차별하고, 그걸 본받은 애들이 있잖아. 하루 이틀 쌓인 원한이 아니야. 모두가 자초한 일이지.”
황덕록의 말에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 잠재되어 있던 차별과 질투심은…… 세계의 멸망이 단초가 되어 폭력과 배제의 형상으로 변모했다.
무겁게 내려앉은 침묵이 불편한지, 전완수는 뚱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X발, 샤먼프로이데인지 아프로디테인지 난 모르겠고, 먹는 거로 차별하는 놈들은 다 개새끼야!”
의식주에 진심인 전완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