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23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123화
옆에 있던 최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성김공 쪽 사람이 300명 정도 된다고 했지? 한두 명은 정상적일 법도 한데, 왜 그렇게 똘똘 뭉쳐서 애먼 사람들을 괴롭히지?”
“근묵자흑(近墨者黑).”
소파에 앉아 심오한 표정을 짓고 있던 최만석이 얘기했다.
모두를 동일 선상에 두고 생각하지 말라던 최만석마저 성김공 쪽 생존자들에게 등을 돌렸다.
그러자 10대 아이들과 10세 미만의 아이들은 어벙한 표정으로 최만석을 쳐다봤다.
최만석은 아이들의 얼굴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먹을 가까이하면 검어진다는 뜻이다. 나쁜 사람과 어울리면 물들기 쉽다는 거야.”
“한 마디로 끼리끼리 논다는 거군요.”
박성하가 덩달아 심오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하자, 옆에 있던 이예정이 눈살을 찌푸리며 얘기했다.
“야, 낄끼빠빠해.”
“언제적 말이야. 어후, 촌스러.”
“어쩔티비.”
“저쩔티비.”
10대 학생들이 시시덕거리자, 거실에 있던 일행이 눈치를 줬다.
박성하는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더니, 뒤늦게 쭈뼛거리며 입을 다물었다.
난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으며 윤혜리에게 물었다.
“혜리야, 성 대표가 곽 대표 만나는 날이 언제야?”
“사흘에 한 번꼴로 만나는 거 같아요.”
“그게 언제냐고.”
“이틀 전에 만나서 식량 가져왔으니…… 내일이네요.”
“시기 좋네.”
그러자 이정우가 내 팔을 잡으며 물었다.
“내일 움직이려고?”
“더 지체할 필요 없습니다.”
“여기도 대비할 시간은 있어야지. 아무런 대비도 없이 무턱대고 죽이면 분명 사람들의 원성이…….”
“제가 안 죽일 겁니다.”
태연하게 얘기하자, 이정우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에 이마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제가 300명을 하루 만에 어떻게 죽여요? 물론 그렇게 할 자신도 없고, 사람들이 무기 들고 저항할 가능성도 높아요.”
“그래서?”
“곽 대표를 이용하면 서로 좋은 결과가 나올 겁니다.”
“곽 대표? 너…… 설마.”
“믿었던 사람한테 배신당하는 것만큼 충격적인 게 없거든요.”
곽 대표를 이용해서 성김공을 몰락시킬 생각이다.
300명의 생존자가 좀비로 변이되면, 그 뒤엔 내가 나서서 좀비 카운트를 높일 것이다.
일거양득은 취할 수 있을 때 취해야지.
이정우는 이마를 문지르며 씁쓸한 표정을 짓더니,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우리도…… 죽어서 천국 가긴 글렀네.”
거실에 모인 일행은 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함묵하는 모습을 보였다.
덜컹!
“여러분!”
그 순간, 현관이 열리며 설여원이 들어왔다.
설여원은 거실의 분위기를 보고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이더니, 슬쩍 내게 물었다.
“분위기 왜 이래?”
현 상황을 모르는 설여원이기에, 일행의 표정을 보고 당황한 것으로 보였다.
이에 목덜미를 주무르며 얘기했다.
“나중에 얘기해 줄게. 그보다 무슨 일이야?”
그러자 설여원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산모와 아기 모두 건강해. 공주님이야.”
설여원의 말에 거실의 분위기가 환기됐다.
* * *
아기의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이신혜가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다.
산모와 아기는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했다.
소식은 빠르게 퍼져 한지현과 강요한의 귀에도 들어갔다.
한지현과 강요한은 우리 일행이 있는 501호에 들어왔고,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아기 아빠는 어디 있냐고 물었다.
이에 이정우가 입을 열었다.
“아기 아빠는…… 먼저 떠났습니다.”
한지현은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이더니,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사과부터 했다.
우리에게 사과할 일은 아니기에, 이정우는 한 차례 심호흡과 함께 얘기했다.
“그보다 한 대표님, 강 대표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이정우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 달이 넘도록 기다린 남자친구가 이미 좀비로 변했다고 어떻게 얘기하겠는가?
이에 내가 대신 입을 열었다.
“내일 좀비들의 공습이 있을 겁니다.”
“네?”
한지현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뒤이어 놀란 마음을 추스르며 내게 물었다.
“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제가 불러들일 거예요.”
한지현의 표정으로 당혹감이 묻어났다.
반박하고 싶지만, 회의가 끝나고 내가 했던 말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다.
모든 것을 우리 방식대로 한다는 말에 동의했으니, 생각이 많을 것이다.
이에 한 대표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얘기했다.
“4단지랑 3단지 수비 강화하고, 절대로 밖에 나오지 마세요.”
“잠시만요. 지금 그런 말도 안 되는 요구를 저희더러 따르라는 겁니까? 사람들을 학살하겠다는 말을?”
강요한이 반박하기에, 난 눈을 치켜뜨며 얘기했다.
“제가 분명 얘기했을 텐데요? 겉모습만 사람인 놈들은 다 죽인다고.”
“그래도…….”
“악수 한 번 더 할까요?”
강요한은 마른침을 삼키며 한 걸음 물러나는 모습을 보였다.
난 한지현과 강요한에게 경고 차원으로 얘기했다.
“4단지랑 3단지 바리케이드 강화하고 대기해요. 뒷일은 우리한테 맡기고.”
한지현과 강요한은 더는 반박하지 않았다.
* * *
새벽에 빈틈을 타서 버스로 이동했다.
설여원과 나, 전완수, 이렇게 셋이서 A 구역 바리케이드를 크게 돌아 버스에 있는 보호대와 쇠뇌, 소총, 권총, 수류탄을 옮겼다.
바리케이드 좌측의 산지로 크게 돌아 이동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보초들의 시야를 벗어나려면 이게 최선이었다.
설여원과 전완수가 바리케이드 주변에서 중간 다리 역할을 하고, 안개 속에서 600m 거리를 왕복하는 건 내가 도맡았다.
어차피 직진만 하면 되는 길이었고, 일찍이 좀비들의 정리가 끝난 길이라서 큰 위협도 없었다.
발소리를 죽인 채 몇 번이고 안개 속을 오가며 물건을 옮긴 뒤, 다 같이 501호로 돌아왔다.
결인들에게 보호대를 건네주고, 수색대에 합류할 인원을 선출했다.
안개 속에서 시야 확보가 가능한 설여원과 전완수,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최현도 함께하기로 했다.
정진영과 이정우도 함께하기를 청했지만, 이는 내가 반대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수비 진영에도 싸움에 특화된 사람들이 필요했다.
소총과 수류탄은 숨겨두기로 하고, 나를 제외한 설여원과 전완수, 최현이 쇠뇌를 들었다.
빼앗긴 무기도 되찾는 게 좋기에, 곧장 한지현의 방으로 올라가 권총과 근접 무기를 돌려달라고 했다.
한지현은 성김공의 힘이 강해지는 것을 대비해서 일찍이 이신혜에게 무기를 따로 챙겨두라고 일러둔 상태였다.
이신혜는 20인용 텐트의 보관함을 찾아보라고 했다.
내가 움직이면 경비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기에, 한지현과 강요한이 그곳으로 향했다.
다행히 무기는 온전한 상태였고, 한지현과 강요한은 헌팅 나이프와 손도끼, 쇠파이프 등을 찾아왔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끝내고, 내일을 위해 조금이나마 잠을 청하기로 했다.
* * *
이윽고 날이 밝아온 아침, 4단지와 3단지의 생존자들은 바리케이드 강화에 열을 올렸다.
대로를 막아선 A, B, C 구역의 바리케이드가 아닌, 4단지와 3단지 입구에 설치된 바리케이드만 손봤다.
5시간에 걸친 작업 끝에 바리케이드는 이전보다 50㎝ 정도 더 높아졌고, 더욱 균형 잡힌 모습을 보였다.
태양이 중천에 떠오를 무렵, 4단지와 3단지의 동태를 확인한 성김공이 찾아왔다.
그들은 더욱 견고해진 바리케이드를 보고 못마땅한 반응을 보였다.
이에 한지현은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으며 태연하게 얘기했다.
“보수 작업도 여러분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까?”
웬일로 성김공은 크게 반박하지 않고, 쉬이 물러나는 모습을 보였다.
뒤이어 한지현의 옆에 있던 내게 성 대표가 다가왔다.
“수색대 일을 배우려면 슬슬 움직여야죠?”
보아하니 나를 데리러 왔으면서, 괜히 한지현에게 딴지를 걸어본 모양이다.
난 잠시만 기다리는 말과 함께 501호에서 대기 중인 설여원과 전완수, 최현을 데려왔다.
성 대표는 내 뒤에 있는 일행을 가볍게 훑으며 물었다.
“이분들이 우리와 함께할 수색대입니까?”
“네, 바깥 활동에 특화된 친구들입니다.”
일행을 가리키며 얘기하자, 이번엔 성 대표의 옆에 있던 공 대표가 얘기했다.
“어머 귀여워라. 옷도 예쁘게 맞춰 입었네요?”
우리가 입은 보호대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난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얘기했다.
“안개 속에서는 서로 분간하기 어렵다 보니, 이렇게 맞춰 입게 됐습니다.”
성 대표는 일행이 들고 있는 쇠뇌를 유심히 살피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 무기는 설마…….”
“죄송합니다. 뺏길까 봐 숨겨서 들어왔어요.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 주세요. 수색 마치고 제작법을 가르쳐드리겠습니다.”
“제작법? 으하핫! 좋아요, 아주 좋아. 준비는 끝난 것 같으니, 바로 움직이죠?”
제작법을 가르쳐주겠다고 하니, 몰래 무기를 반입한 사실도 봐주는 모습을 보였다.
절차가 중요하다고 그렇게 노래를 부르더니, 속물이 따로 없다.
또한 내가 본인의 손아귀에 들어왔다고 생각하는지, 은근슬쩍 말도 놓았다.
성 대표는 한지현을 쳐다보며 조소를 짓더니, 내 어깨에 토닥이며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트로이의 목마를 환영해 주니, 나로서는 웃음이 절로 나왔다.
수색을 마친 뒤에도 지금처럼 웃을 수 있는지, 어디 한번 보자고.
성 대표는 A 구역에 설치된 바리케이드가 아닌 경북고등학교 방면으로 이동했다.
고등학교를 지나 50m 정도 나아가자, 대로에 설치된 거대한 장벽처럼 보이는 바리케이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성 대표는 바리케이드를 가리키며 의기양양하게 얘기했다.
“여기가 B 구역이네. 어떤가?”
“한눈에 봐도 견고해 보이네요. 이런 걸 직접 만드셨다니, 대단하십니다.”
“으하핫! 그렇지? 반면에 C 구역의 바리케이드는…… 정말 보잘것없어. 직접 보면 한숨부터 나올 걸세.”
“C 구역은 어디입니까?”
“3단지 옆에 1단지가 있고, 그 앞 대로를 2m 높이 바리케이드로 막아둔 상태지.”
“2m라…… 정말 하찮은 수준이군요.”
성 대표의 비위를 맞춰주자, 옆에 있던 김 대표는 헤벌쭉 웃으며 얘기했다.
“학생, 선택 잘한 거야. 우리 성 대표님이 얼마나 인자하신 분인데.”
“압니다. 아니까 대표님들과 함께하고 싶은 겁니다.”
“으하핫! 젊어서 그런지, 이덕배란 작자보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구먼.”
김 대표의 아부에 성 대표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그럼…… 슬슬 무기 챙겨서 출발하겠네. 다들 무사 귀환을 기도해 주게나.”
김 대표와 공 대표는 성은이 망극하다는 듯이 성 대표를 향해 큰절을 올렸다.
무사 귀환은 개뿔.
곽 대표의 떡고물이나 빨아먹는 기생충들 주제에.
속으로 성 대표의 뻔뻔함을 비웃으며, 가볍게 몸을 풀었다.
성 대표는 기다란 죽창을 들고, 옆구리에 무전기와 권총을 챙겼다.
그 뒤로 죽창을 들고 있는 20명의 사람이 따라붙었다.
죽창을 어디서 구했냐고 묻자, 고등학교의 뒤편으로 대나무 숲이 있다고 한다.
김 대표와 공 대표는 바리케이드 앞까지 배웅을 나오더니, 양손을 흔들며 조심해서 다녀오라는 말을 남겼다.
어디, 성 대표가 어떤 식으로 곽 대표와 교류하는지 지켜봐야겠다.
성 대표와 다섯 걸음 정도 거리를 유지했다.
걸음걸이만 봐도 수상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
안개 속에서 시야 확보가 안 되면 걸음에 머뭇거림이 있어야 정상인데, 성 대표는 망설임 없이 나아가는 모습을 보였다.
마치 믿는 구석이 있다는 듯이.
주변에 좀비가 없다는 걸 알고 있다는 듯이.
옆에 있는 설여원을 쳐다보자, 그녀는 내 귓가에 입술을 갖다 대며 속삭이는 목소리로 얘기했다.
“한 마리도 안 보여. 거리에 좀비들 시체도 안 보이고.”
그 순간, 앞서가던 성 대표가 뒤를 돌아봤다.
도둑이 제 발 저리듯이 멈춰서자, 성 대표는 싱겁게 웃으며 물었다.
“왜 그리 뒤에서 걷나? 옆으로 오게나.”
“죄송합니다. 앞이 안 보이니 겁이 나서 그랬습니다.”
“으하핫! 바깥 활동에 익숙하다더니, 순 겁쟁이구먼?”
“대표님이 용감하신 겁니다.”
성 대표는 호쾌하게 웃어젖히며 우쭐한 기분을 만끽했다.
그런 성 대표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살아남을 자격이 안 되는 놈이라고.
바리케이드 밖으로 나온 마당에, 저렇게 호쾌하게 웃는 건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곽 대표가 아니었으면 진즉에 죽었을 것이다.
한 달간 천하를 호령하는 기분이었겠지.
성 대표의 삼일천하도 오늘로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