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31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131화
아침 여명이 밝아올 무렵, 난 박재우와 황덕록을 데리고 한지현의 대표실로 향했다.
노크를 하고 거실로 들어서자, 소파에 앉아 있는 한지현과 강요한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강요한도 상황을 전해 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 박재형 씨, 마침 잘 왔어요.”
한지현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소파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항상 근심 걱정이 가득한 사람처럼 보였는데, 오늘은 한층 차분해진 표정이었다.
난 강요한의 눈치를 보며 한지현에게 물었다.
“어제는…….”
“찬혁 씨 얘기라면 숨기실 필요 없어요. 가슴 아픈 건 사실이지만…… 받아들일 건 받아들여야죠.”
엷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는 모습에, 괜스레 내 마음이 더 아려왔다.
곽찬혁과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몰라도, 심적으로 성숙해진 모습을 보였다.
감정적으로 주체하지 못할 줄 알았는데, 한지현은 현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였다.
내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한지현은 손깍지를 끼며 쓴웃음을 지었다.
뒤이어 폐부 깊숙이 숨을 들이쉬며 얘기했다.
“그렇게 눈치 보실 필요 없어요.”
“무슨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좋을지 모르겠네요.”
“괜찮아요. 그보다 고맙다는 인사를 못 드렸네요.”
한지현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내게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얼떨떨한 마음에 나도 덩달아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 숙였다.
감사 인사까지 받을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한지현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죄책감 때문에 끊어내지 못하고 질질 끌고 오던 짐을, 박재형 씨 덕분에 끊어낸 기분이에요.”
“…….”
“죄책감에 시달릴 줄 알았는데, 오히려 후련하네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대답 대신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한지현은 눈썹을 씰룩이며 물었다.
“그건 그렇고 무슨 일로 오셨죠? 이런 이른 시간부터.”
“곽찬혁 씨는 어디 계십니까?”
“어제 이야기 마치고 주변 정찰을 나간다고 들었어요.”
수하를 늘리러 간 모양이다.
5단지에 140마리의 수하를 배치했으니, 현재 곽찬혁이 동원할 수 있는 수하는 360명.
부족한 숫자를 전부 채우면 돌아오려나?
눈썹을 긁적이며 곤란한 표정을 짓자, 한지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제가 아니라 찬혁 씨를 찾아오셨군요.”
“네, 5단지에 볼일이 있어서요.”
“5단지요?”
한지현에게 5단지에 가야 하는 이유를 얘기하자, 그녀는 책상 앞으로 걸어가 서랍을 열었다.
그 속에서 무전기를 꺼내 들며 내게 건네주었다.
“찬혁 씨와 직통으로 연결되는 무전기에요.”
“감사합니다.”
무전기를 들고 곽찬혁을 호출하자, 오래 지나지 않아 무전기 너머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5단지에 있는 수하들을 잠시만 치워달라고 하자, 그는 직접 오겠다며 C 구역 바리케이드 앞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한지현은 무전의 내용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얘기했다.
“아직 C 구역은 본 적 없죠?”
“네, 위치만 얼추 들었습니다.”
“안내해드릴게요. 가시죠.”
한지현의 안내에 따라 C 구역으로 향했다.
이동하는 길에 각 단지의 위치와 상황 설명을 들었다.
4단지 옆에 있는 3단지, 그곳을 식당으로 개조해서 급식소로 사용한다고 한다.
앞으로 1시간 뒤에 아침을 배분하니, 꼭 식사하라는 말을 남겨주었다.
3단지 옆에 있는 2단지는 임시초소로 사용하고, 2단지 옆에 있는 1단지는 학교로 사용한다고 들었다.
이에 눈꼬리를 치켜뜨며 물었다.
“학교요?”
“4단지랑 3단지 생존자 중에는 아이들도 있거든요. 14세 미만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공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김공 측의 생존자 사이에는 아이들이 없나요?”
“……그동안 제가 너무 물렀죠.”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하는 한지현의 모습에, 입맛을 다시며 시선을 돌렸다.
아이들이 없다는 것만 봐도 성김공 측의 인성을 알 수 있었다.
도움이 안 되면 버리는 사람들.
아이들을 지키려고 했던 사람들은 진즉에 다 죽었기에, 성인만 남은 것이었다.
1단지와 2단지 사이를 지나며 안개 너머로 보이는 초등학교의 입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런데 1단지에 아이들이 있으면 위험하지 않나요? C 구역이 이 근처라고 들었는데.”
“1단지에서 C 구역으로 연결되는 진입로가 없어요. 방음벽도 높아서 2단지를 통해 들어와야 합니다.”
그래서 2단지를 임시초소로 쓰는 거구나.
고개를 끄덕이자, 한지현은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또 궁금한 거 있으세요?”
“아니요, 없습니다.”
한지현에게 쉘터의 설명을 들으며 이동하다 보니, 어느새 드넓은 대로와 함께 C 구역 바리케이드가 있는 곳으로 들어왔다.
확실히 A, B 구역의 바리케이드보다 낮고, 전투의 흔적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탁- 타닷.
뒤이어 바리케이드 위로 검은 인영이 눈에 들어오고, 우리를 향해 양손을 흔드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얼굴은 확인할 수 없지만, 윤곽만 봐도 곽찬혁이었다.
한지현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재촉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정체 모를 애잔함이 느껴졌다.
이미 좀비로 변해버린 곽찬혁과 연인관계를 이어가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서로를 향한 애환이 느껴졌다.
이는 서로를 향한 존중과 존경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 달의 기다림 끝에 목도한 절망적인 현실에 무너졌을 법도 한데,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며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는 모습.
이에 두 사람을 바라보는 내 시선도 달라졌다.
존경심마저 들었다.
* * *
5단지에 들어서자, 생존자들의 모습은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혹여나 좀비들에게 공격받을까 봐, 전부 옥상에 올라간 모양이다.
덕분에 귀찮은 일 없이 박재우와 황덕록의 본가로 들어갈 수 있었다.
박재우는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눈앞으로 떠오른 홀로그램을 보고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박재우의 눈앞에 펼쳐진 홀로그램을 보고, 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퀘스트 완료.
메인 퀘스트가 완료됐다는 건…… 박재우의 부모님이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뒤이어 아크에 탑승하라는 퀘스트가 생성되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박재우는 허탈한 표정으로 홀로그램을 주시하더니, 그 자리에 주저앉는 모습을 보였다.
뒤이어 한지현과 함께 본가를 확인하러 갔던 황덕록이 이곳으로 들어왔다.
“야! 아무래도 우리 엄마 아빠…….”
황덕록은 박재우의 모습을 보고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곧 박재우의 눈앞에 표시된 홀로그램을 확인하더니, 조심스레 박재우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재우야…….”
“미안하다. 오늘은 좀…… 혼자 있을게.”
박재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계단으로 향했다.
5단지 입구에 곽찬혁이 있으니 좀비들에게 공격받을 일은 없지만, 그의 뒷모습을 보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똑같은 상황에 직면하더라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충격은 다른 법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박재우가 무너지지 않고 이겨내기를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 * *
501호로 돌아오자, 박재우는 말도 없이 안방으로 들어갔다.
윤혜리가 이를 의아하게 여기며 내게 물었다.
“재우 오빠, 무슨 일 있어요?”
이에 한숨을 내쉬며 5단지에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윤혜리는 놀란 표정을 짓더니, 금세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안방을 쳐다봤다.
곧장 안방으로 들어가려 하기에, 윤혜리의 손을 잡으며 얘기했다.
“지금은…… 혼자 두는 게 좋을 것 같아.”
윤혜리가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뒤에 있던 이민정이 애써 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혜리야, 일단 식당부터 가자. 일부터 끝내고 재우랑 같이 아침 먹으면서 얘기해 봐.”
이민정의 의견에 윤혜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현관을 나섰다.
식당팀이 줄줄이 밖으로 나가고, 난 황덕록을 쳐다보며 퀘스트 성공 여부를 물었다.
황덕록은 퀘스트 완료가 뜨지 않았다고 한다.
이는 부모님이 살아계실 확률이 높다는 뜻이었다.
부모님이 어디 계실지 감이 오냐는 질문에, 황덕록은 가만히 턱을 매만지며 기억의 강을 거슬러 올랐다.
안개가 퍼지던 저녁, 가게에 문제가 생겨서 어머니로부터 퇴근이 늦어진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가게의 위치를 묻자, 황덕록은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여기서 많이 멀어서 그래?”
“그게 좀…… 많이 멀어. 달성공원 쪽이야.”
달성공원이면…… 대구에서도 서쪽 아닌가?
멀어도 너무 멀다.
그러자 옆에 있던 이정우가 입을 열었다.
“잠깐만, 달성공원이면 3호선으로 한 번에 갈 수 있는 거 아니야?”
이정우의 물음에 옆에 있던 이덕배가 손가락을 튕기며 얘기했다.
“맞아. 요 앞에 황금네거리가 3호선이니까 한 번에 갈 수 있어.”
두 사람의 의견에 난 눈꼬리를 치켜뜨며 물었다.
“지하철로 이동하는 건 위험해요. 가뜩이나 안개 때문에 시야가 차단되는데, 지하로 내려가면 한 치 앞도 안 보일 겁니다. 손전등에 의지하는 것도 한계가…….”
“지하로 왜 내려가?”
이덕배는 내 말을 자르며 되물었다.
이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지하철 3호선 말씀하시는 거 아니에요?”
“그래 3호선. 아, 재형 학생은 서울이 고향이라고 했나?”
“……네.”
“대구 3호선은 지상철이야.”
“네?”
그럼 도로에 열차가 지나다니는 건가?
한국에 그런 열차가 있었어?
내 표정이 웃겼는지, 정진영은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트렘 생각하는 거 같은데, 그게 아니라 완전히 위로 다니는 지상철이야. 모노레일이라고 하면 더 이해가 쉬우려나.”
“아.”
그런 게 대구에 있었어?
전혀 몰랐다.
정진영은 대구 지도를 들고 와서 식탁 위에 펼치며 얘기했다.
“자, 여기가 황금역이고, 여기가 달성공원역이야. 10 정거장 정도 되네.”
“와…… 외줄타기 하는 기분으로 10 정거장을 가야 돼요?”
“그게 제일 안전하지? 밑에 뭐가 있을지 모르니까.”
산 넘어 산이었다.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내쉬자, 옆에 있던 황덕록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가고 싶지만…… 지금은 수성못부터 정리하고 생각하는 게 맞는 거 같다.”
황덕록의 말이 맞다.
황덕록도 많이 조급할 텐데, 우선순위를 인정하고 먼저 얘기해 주는 모습이 내심 고마웠다.
난 황덕록의 얼굴을 쳐다보며 그의 등을 토닥였다.
뒤이어 거실에 모인 수색대를 쳐다보며 얘기했다.
“아침 먹고 수성못부터 정리하자.”
“오케이.”
전완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카타나를 손봤다.
최현과 설여원도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수성못의 상황을 일찍이 전해 들었기에, 다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다수의 변종과 사이코패스, 지면에 설치된 구덩이까지.
신경 쓸 게 한둘이 아니었다.
그래도 수성못을 경험한 곽찬혁이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리라 생각한다.
난 가볍게 몸을 풀며 긴장감을 떨쳐내고, 마음을 다잡았다.
* * *
한때 문화시설로 사용되던 3층이 급식소로 사용되고 있었다.
감자와 고구마, 미역국과 쌀밥, 김치가 담긴 식판을 받아들고 빈자리로 걸어가 앉았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따갑다.
우리를 향한 악의보다는 궁금증이 가득 담긴 눈빛이었다.
“삼촌!”
10세 미만의 아이들이 설여원을 따라 우르르 몰려왔다.
설여원은 아이들은 조용히 시키며 차례대로 의자에 앉힌 뒤, 내 옆에 앉으며 얘기했다.
“애들 돌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네. 벌써 민정 언니 빈자리가 느껴져.”
식당팀으로 선출된 일행은 100명이 넘는 생존자에게 배식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모! 이거!”
뒤이어 설여원의 옆에 있던 아이가 설여원에게 감자를 건네주었다.
“어머, 이모가 아니고 언니라고 해야지. 이 감자 언니 주는 거야?”
“응!”
“아유, 고마워. 너도 이거 먹어.”
서로 감자를 주고받는 모습에 웃음이 터졌다.
좀비들 앞에서는 웬만한 남자들보다 늠름한 설여원도, 애들 앞에서는 쩔쩔매는 게 눈에 보였다.
“재형아, 이것 좀 잡아줘라.”
“아, 네.”
한 손에는 장군이의 목줄을, 다른 손에 식판을 들고 걸어오는 이정우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뒤로 사료와 식판을 들고 오는 정진영도 보였다.
정진영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물었다.
“여기 개 데리고 들어와도 되겠지?”
“한지현 씨가 강아지 출입금지라는 말은 안 했어요.”
정진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겹쳐둔 식판을 펼쳐 바닥에 깔았다.
“기다려.”
장군이에게 기다리라고 하자, 장군이는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으며 세상 해맑은 표정으로 헥헥거렸다.
식판에 사료를 부어주자, 장군이는 정진영과 식판을 번갈아 쳐다보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건 언제 가르친 거지?
장군이의 모습만 봐도 수비팀의 섬세한 노고를 알 수 있었다.
강아지든 사람이든, 모두가 함께 살아남기 위해 세세한 부분까지 관리하고 챙긴다는 걸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