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32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132화
식사를 마친 뒤에 아이들의 손을 잡고 초등학교로 향했다.
“삼촌! 우리 학교 가?”
“응, 우리 학교 가는 거야.”
“다시 공부하는 거야?”
“너희 열심히 공부하는지, 아니면 딴짓하는지 삼촌이 지켜볼 거야. 그러니 열심히 해야 된다?”
좋아할 줄 알았는데, 아이들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다소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앙증맞은 손에서 내 손가락을 꼭 잡는 악력이 느껴졌다.
낯선 환경이 두려운 건가?
아니면 우리와 떨어지는 게 무서운 걸까?
이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삼촌이 근처에 있을 거야. 걱정할 필요 없어.”
“삼촌 없으면 무서워. 같이 학교가면 안 돼?”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내 다리에 매달리는 아이.
귀여워서 깨물어주고 싶다는 말이 왜 나왔는지 알 것 같다.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얘기했다.
“너희 공부 방해 못 하도록 삼촌이 지키고 있을 거야. 그러니 걱정하지 마. 너무 무서우면 삼촌 불러. 달려갈게.”
“삼촌! 이렇게?”
“이야, 목소리 크네. 어디서든 들리겠어.”
여섯 명의 아이들에게 서로 손을 잡으라고 한 뒤, 초등학교 정문에 있는 선생님에게 안내했다.
두 명의 선생님이 정문에서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도 우리가 낯설 테지만, 애써 엷은 미소를 지으며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건네주었다.
나도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뒤에 있는 일행을 쳐다봤다.
설여원과 전완수, 최현은 비장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난 일행의 얼굴을 돌아보며 한 차례 심호흡을 한 뒤, 결의를 다잡으며 얘기했다.
“가자.”
* * *
C 구역 바리케이드 앞에 도착하자, 보초를 서는 두 명의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혹여나 5단지에 있는 좀비들이 여기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달려들지는 않을까, 우려되는 마음에 5단지 방면을 살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설여원이 덩달아 5단지를 살피며 얘기했다.
“최소한 200m는 떨어져 있어. 절대 안 보여.”
“그래도 너무 위험하지 않아? 들어가서 한지현 씨한테 보초는 당분간 배치하지 말라고 할까?”
“두 명만 배치한 거로 봐서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려고 한 것 같은데, 일단 두는 게 좋지 않을까?.”
“괜찮으려나…….”
“곽찬혁 씨랑 한지현 씨, 둘이 이미 얘기했을 거야. 보아하니 좀비들 숫자도 현저히 줄었고.”
들어보니 140마리나 배치했던 수하들을 40마리 정도로 줄였다고 한다.
40마리 정도라면…… 만약의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여기 있는 생존자들이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고개를 저으며 불안한 마음을 떨쳐내고, 바리케이드 위에 있는 보초들에게 향했다.
“안녕하십니까.”
“어? 어어…… 반가워요.”
식사는 했냐는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은 뒤, 보초들에게 무슨 지시를 받았냐고 물었다.
들어보니 바리케이드 너머에 좀비들이 나타나면 무전기로 알리고 1단지로 대피하는 게 이들의 역할이라고 한다.
바리케이드를 막는 게 아니라, 접근하는 좀비의 유무를 파악하는 정도라면…… 보초를 서도 괜찮을 것 같다.
큰 위험은 없을 것 같으니,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열어달라고 했다.
바리케이드 상단에 있던 사람은 한지현과 무전을 주고받더니, 오래 지나지 않아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팀 소리결, 출발합니다.”
팀 소리결?
얼떨떨한 표정으로 뒤에 있는 일행을 쳐다보자, 최현이 입맛을 다시며 얘기했다.
“예전에 여기 있던 수색대는 팀명으로 활동했다고 그러더라고.”
“네가 지은 거야?”
“우리 파티 이름 소리결 맞잖아.”
그건 그런데…… 괜히 민망하네.
머리를 긁적이며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드드드드-
뒤이어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이 열리고, 설여원은 내 옆으로 붙으며 속삭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서 만나기로 했어?”
“황금네거리 전에 있는 주유소. 여기서 300m도 안 된다고 들었어.”
일찍이 곽찬혁과 접선 장소를 정해둔 상태였다.
설여원은 쇠뇌를 손에 쥐고 훅, 하고 숨을 뱉으며 얘기했다.
“따라와.”
설여원과 내가 선두에 서고, 전완수와 최현이 후방을 살피며 이동했다.
* * *
대로의 중앙선을 따라 자욱한 안개 속을 나아갔다.
쉘터에 있을 때는 아파트의 윤곽이 나침반이 되어주었지만, 바리케이드 밖으로 나오자 고층 건물이 없어서 잠시라도 한눈팔면 방향감을 상실할 것 같았다.
설여원을 믿고 한참을 나아가자, 이윽고 주유소의 간판이 두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뒤이어 주유소 사무실에서 걸어 나오는 한 남자.
“기다렸습니다.”
곽찬혁이었다.
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수하들은 안 보이네요?”
“30m 내로 접근하면 여러분을 공격할 수도 있어요. 반대편 골목에 숨겨뒀습니다.”
하긴, 수하들에게 인간을 지키라는 명령은 통하지 않았다.
얼추 지형을 파악하고, 곽찬혁을 쳐다보며 물었다.
“수하들 숫자는 확보하셨어요?”
“전부 채웠습니다. 5단지에 50마리를 배치했으니, 450마리만 끌고 다닐 수 있고요.”
설여원은 40마리 정도가 5단지에 있다고 했지만, 사각지대에 10마리가 더 있었던 모양이다.
가브리엘이 안개 속에서 유리한 건 사실이지만, 투시 능력까지 있는 건 아니었다.
곽찬혁은 사거리 방면을 살피며 입을 열었다.
“두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황금역으로 올라가서 수성못역까지 철로로 이동하는 거고, 다른 하나는 골목으로 이동하는 겁니다.”
설여원은 곽찬혁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당연히 황금역으로 이동하는 게 좋은 거 아니에요?”
“그게 당연하지만, 여러분은 박재형 씨가 있잖아요.”
일행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내 얼굴을 쳐다봤다.
이에 눈꼬리를 치켜뜨며 물었다.
“혹시…… 좀비 카운트를 늘리면서 이동하자는 겁니까?”
“제가 보조를 맞추면 어렵지 않을 거예요.”
나쁘지 않은 생각이지만, 일행이 있는 상태에서 위험을 떠안고 싶지 않았다.
설여원과 전완수만 있으면 몰라도, 시야 확보가 어려운 최현이 있기에 무리해선 안 된다.
단 한 번의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르니까.
게다가 변종과 싸우게 될지도 모르는 마당에 체력낭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뼈가 부러지거나 살이 터지는 건 재생으로 치료되지만, 근육 경련은 쉬이 회복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황덕록의 부모님을 찾기 위해선 어차피 철로로 이동해야 하니, 이번 기회에 철로로 이동하는 경험을 쌓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고민을 마치고 곽찬혁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첫 번째 선택지로 가죠. 너무 많은 걸 한 번에 하려고 하면 욕심 같아서요.”
“그렇게 하시죠.”
“아, 그리고 곽 대표님.”
곽찬혁은 태연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이에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편하게 부르세요. 박재형입니다.”
그러자 곽찬혁도 덩달아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그래. 그럼 너도 편하게 형이라고 불러.”
설여원과 전완수, 최현까지 통성명을 마치고 황금네거리로 향했다.
곽찬혁은 우리보다 한발 앞서 길을 뚫었다.
길거리에 보이는 좀비들을 처리하는 대신, 떨어지라는 의미로 목젖을 갈았다.
좀비들은 주춤거리며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고, 덕분에 단 한 번의 싸움도 없이 황금네거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크르르르…… 카각!
카하악!
근처에서 들리는 좀비들의 울음소리.
옆에 있던 설여원은 마른침을 삼키며 좌우를 살피더니, 내 귓가에 입술을 갖다 대며 속삭였다.
“70m 거리에 좀비들 200마리는 있어.”
내겐 자욱한 안개뿐이 보이지 않지만, 설여원과 전완수의 눈에는 우리를 둘러싼 좀비들이 보이는 모양이다.
최현은 등골이 오싹한지, 상체를 부르르 떨며 읊조렸다.
“좀비 소굴로 걸어 들어왔다는 거야?”
“찬혁이 형이 있어서 가능한 계획이지.”
“저 형님이 변심하면…… 우리 끝장나겠는데?”
최현의 말이 맞다.
곽찬혁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좀비들을 처리하지 않고 이동하는 한…… 지금 같은 압박감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난 내심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적 여유만 있으면 여기서 손쉽게 카운트를 늘릴 수 있을 텐데.
수성못에 있는 사이코패스들이 언제 전멸할지 모르기에, 편하게 좀비 카운트나 늘리고 있을 수 없었다.
수성못의 상황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변종이 있는 한 식량 수급이 어려울 것이다.
인간이 표류하게 됐을 때 삶을 연명할 수 있는 기간은 길어봐야 한 달.
곽찬혁이 좀비로 변한 게 한 달 정도 됐으니, 슬슬 사이코패스들의 숫자도 줄어들기 시작할 것이다.
서로를 잡아먹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니까.
내 표정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설여원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내 등을 토닥였다.
“무서워? 주변에 좀비들 많아서?”
“좀비는 문제가 아니야. 수성못에 변종이 걱정이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하자, 설여원은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에겐 얘기하지 않았지만, 내겐 또 다른 근심이 있었다.
수성못에 있는 사이코패스들 사이에도 플레이어가 있다고 들었다.
놈들도 식량보급을 위해 밖으로 나왔을 것이고, 그 과정에 곽찬혁의 수색대와 마주쳤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지금은?
좀비로 변한 곽찬혁은 쉘터를 지키며 주변 일대를 수색했을 텐데, 놈들의 움직임을 포착한 적이 없다고 했다.
이는…… 사이코패스 플레이어가 대장 좀비로 변하거나, 변종으로 변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다들 이쪽으로.”
자욱한 안개 속에서 곽찬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20m 정도 걸어가자, 계단 앞에 있는 곽찬혁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3호선으로 올라가는 계단.
난 고개를 저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깊게 생각하지 말자.
사이코패스들이 어떻게 됐든, 결국 변종과 좀비를 처리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니까.
발소리를 죽인 채 계단을 올랐다.
안개 밖으로 나와서 습기로 가득한 폐부를 환기하고, 발밑으로 드리운 자욱한 안개를 살폈다.
밑에 있을 때는 안개 때문에 몰랐는데, 올라와서 보니 높이가 상당하다.
밤에 2층 높이까지 안개가 차올라도, 3호선은 안개에 잠기는 일이 없을 것 같다.
전완수도 지면을 살피더니, 탄성을 뱉으며 얘기했다.
“떨어지면 골로 가겠는데?”
전완수의 말에 최현은 가방에 넣어둔 밧줄을 꺼내며 얘기했다.
“각자 밧줄 꺼내서 허리에 묶어, 반대편은 밧줄은 철로에 묶어서 이동하자.”
최현의 의견에 너도나도 밧줄을 꺼내서 허리에 묶었다.
뒤이어 철로에 밧줄을 감기 위해 끙끙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에 난…… 아무런 행동도 취할 수 없었다.
가방에 밧줄이 보이지 않았다.
뒤늦게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예전 실개천 너머에 있을 당시, 원룸촌을 이동하기 위해 건물 사이에 걸어둔 밧줄 2개 중 하나를 회수하지 않았다.
회수하지 않은 밧줄이…… 하필 내 밧줄이었다.
그 뒤에 여분의 밧줄을 가방에 넣어둔 줄 알았는데, 아무리 찾아도 밧줄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어벙한 표정을 짓자, 앞에 있던 설여원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거기서 뭐해?”
“…….”
“너 설마…… 밧줄 안 챙겼어?”
이마를 긁적이며 곤란한 표정을 짓자, 선두에 있던 곽찬혁이 지면과 내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한…… 12m 정도 되는 것 같은데. 이 정도면 재형이도 떨어지면 위험하려나?”
“형님, 저도 사람이에요.”
이 높이에서 머리부터 떨어지면 당연히 즉사하지.
아무리 골밀도가 높아도 쇳덩이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멀쩡해.
난 철로의 크기를 확인하며 한 차례 심호흡했다.
저 정도 넓이면…… 균형만 잘 잡으면 추락하지 않을 것이다.
안개 밖이라서 시계도 트였으니, 긴장 풀고 앞만 보고 걸으면 된다.
마음 단단히 먹고 뻐근한 어깨와 발목, 허리를 풀며 얘기했다.
“가자.”
“밧줄 없이 가려고?”
“괜찮아. 할 수 있어.”
“그러지 말고 내 밧줄 허리에 감아. 이거 30m짜리라서 아직 많이 남았어.”
설여원은 본인의 허리에 묶은 밧줄을 풀더니, 널널하던 길이를 좀 더 팽팽하게 당겼다.
뒤이어 본인의 허리에 한 바퀴 감고, 남은 밧줄을 내게 건네주었다.
난 설여원이 건네주는 밧줄을 받아들고, 눈썹을 긁적이며 물었다.
“……그래도 돼?”
“센 척하지 말고 빨리 묶어.”
“역시 그게 맞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서둘러 밧줄을 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