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38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138화
“흐, 흐윽…… 사, 살려주세요.”
홀로 남은 남자는 바닥에 납작 엎드리며 울먹이기 시작했다.
내게 프라이팬을 휘둘렀던 남자.
눈 깜짝할 새에 벌어진 학살에, 헤엄쳐서 도망갈 생각조차 못 한 모양이다.
아직 묻고 싶은 게 남았기에, 일부러 살려두었다.
난 남자를 쳐다보며 물었다.
“너희 패거리, 플레이어는 총 몇 명이야?”
“흐흑…… 6명이요.”
“그 6명, 방금 다 죽은 거야?”
“아니에요. 여기는 2명 있었어요. 흐흑…….”
“남은 4명은 어디 있어?”
“그건 저도 모르죠. 탈출할 때 흩어졌는데…….”
“너도 플레이어야?”
“아, 아니에요. 저는 평범한 생존자예요.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파리처럼 싹싹 비는 모습에, 난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얘기했다.
“업보라고 생각해.”
퍽!!
마지막 남은 사이코패스까지 처리하고, 퀘스트 목록을 열었다.
-클리어 조건: 생존자가 40명 미만으로 내려가기 전에 먼저 처리해야 합니다.(32/47)
정확히 32의 숫자가 올라갔다.
‘분명 수성 호텔이라고 했지.’
남은 15명도 지금 처리하는 게 좋을까?
좀비화의 남은 시간은 23분.
변종과 사이코패스를 모두 처리하기엔 다소 부족한 시간이었다.
웬만한 건물 수색도 어려운데, 호텔을 수색해야 한다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게다가 본관과 신관, 주차장 등으로 나뉘어있다고 했으니, 욕심을 버리는 게 좋겠다.
지금은 상가 지역부터 확실하게 정리하고, 좀비화의 쿨타임을 돌리는 게 최선이었다.
* * *
삼거리로 돌아가 무전기와 레그홀스터를 챙기고, 상가 지역을 한 바퀴 돌았다.
좀비화의 남은 시간을 알뜰하게 사용하기 위해, 상가 지역에 남은 좀비와 변종의 움직임을 확인하며 일행이 있는 카페로 향했다.
아쉽게도 좀비와 변종의 모습은 눈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좀비들이야 변종이 잡아먹어서 없다고 쳐도, 남은 3마리의 변종은 어디 간 걸까.
잡다한 생각을 정리하며 이동하다 보니, 어느새 일행이 있는 카페 앞에 도착했다.
벽면에 큼지막하게 적혀 있는 카페의 이름.
마지막 글자가 지워져서 정확한 이름은 알 수 없었지만, 앞글자는 Woo라고 적혀 있었다.
1층 출입구를 통해 4층까지 올라가자, 설여원과 전완수, 최현이 한걸음에 달려왔다.
“재형…… 어?”
전완수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그 자리에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이는 최현도 마찬가지였다.
최현은 바닥에 내려둔 쇠뇌를 견착하며 내 얼굴을 직시했다.
이들의 반응에 당황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격하게 손사래 치며 얘기했다.
“워워, 진정, 진정해!”
“……재형이 맞지?”
최현의 물음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좀비화가 끝나지 않았다.
검게 물든 안구를 보고, 일전의 경험이 떠오른 모양이다.
최현과 전완수는 내 목소리를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남은 시간: 3, 2, 1.] [좀비화의 지속시간이 끝났습니다.] [과부하가 적용됩니다.] [12시간 동안 모든 능력치가 반감됩니다.]시기 좋게 좀비화가 풀리자, 얼얼한 통증이 전신으로 퍼졌다.
20분간 열심히 뛰어다니기만 해서 그런지, 이전처럼 온몸이 찢어지는 고통은 동반되지 않았다.
다만 지끈거리는 두통에 관자놀이를 누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설여원이 다가와 내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괜찮아?”
몇 차례 눈을 껌벅이며 정신을 다잡은 뒤, 쓴웃음을 지으며 괜찮다고 대답했다.
실내가 지나치게 어두운 것 같다.
이에 4층의 창문을 살피자, 모든 창문에 블라인드를 내려둔 상태였다.
설여원은 바닥에 내려둔 가방 속에서 생수 하나를 들고 왔다.
설여원이 건네주는 물로 텁텁한 목부터 축이고, 현 상황을 일행에게 들려주었다.
간략하게 현 상황을 설명하자, 전완수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수성 호텔? 거기에 남은 사이코패스가 있다는 거야?”
“혹시 가본 적 있어?”
“아니. 내가 호텔 갈 일이 뭐가 있어.”
호들갑을 떨기에 지리를 잘 아는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최현은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팔짱을 끼더니, 입맛을 다시며 얘기했다.
“수성 호텔 그거 아니야? 저 끝에 언덕 위에 있는 호텔.”
“현이 너는 알아?”
“예전에 데이트코스 짜려고 찾아보다가, 너무 비싸서 포기했지.”
그러자 뒤에 있던 곽찬혁이 입을 열었다.
“수성 호텔이라면…… 내가 알아.”
“들어보니 본관이랑 신관으로 나뉘어있다고 그러던데, 많이 넓어요?”
“넓지. 도로에서 호텔까지 올라가는 언덕만 100m는 넘을 거야. 주차장도 너희가 생각하는 단층 주차장이 아니야. 주차장만 두 동이고, 각 4층 높이야.”
예상보다 규모가 상당했다.
수색을 포기하고 이곳으로 돌아오길 잘했다.
곽찬혁은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내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단서는 그게 다야?”
“네, 어디에, 몇 층에 있다는 말은 못 들었어요.”
“변종 때문에 루프탑에 있을 리는 없고, 아마 실내에 있을 거야. 사람이 숨기 좋은 곳이라면…… 아무래도 객실이겠지?”
“객실에 갇히면 퇴로가 없어요. 저라면 막다른 길은 피할 겁니다. 부대시설은 어떤 게 있어요?”
“캠핑장, 헬스장, 온천, 사우나, 수영장, 각종 피트니스센터, 푸드코트, 웨딩홀, 키즈카페, 공연장 등등.”
곽찬혁의 설명을 듣고 다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저걸 다 찾아야 한다고?
전완수는 머리를 긁적이며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허탈하게 웃으며 물었다.
“아니…… 그렇게 많아요? 저기서 15명을 어떻게 찾아.”
“지금 기억나는 것만 이정도야.”
“형은…… 그걸 어떻게 다 알아요?”
“수성 호텔에서 결혼하는 게 대구에서 유행이었거든. 나도 저기서 결혼하고 싶어서 알아보고 있었어.”
곽찬혁의 말에 전완수와 최현은 서로 눈치를 보며 시선을 돌렸다.
한지현과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었던 곽찬혁.
그의 씁쓸한 미소가 마음에 걸렸다.
설여원은 입술을 다문 채 곽찬혁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그의 등짝을 때리며 얘기했다.
“하면 되죠!”
“아이 깜짝이야.”
설여원의 손맛을 처음 맛본 곽찬혁은 화들짝 놀라며 내 얼굴과 설여원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설여원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퀘스트 완료하고, 치료제 맞은 뒤에 인간으로 돌아가면…… 그때 두 분 결혼식 올리면 되겠네요.”
설여원의 말에 곽찬혁의 입가가 파르르 떨리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설여원의 말을 듣고, 잊고 있던 꿈이 머릿속에 떠오른 모양이다.
불가능한 현실이 가능하게 변했으니까.
설여원은 곽찬혁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더니, 곧 어깨를 으쓱이며 얘기했다.
“축가는 정우 오빠랑 진영이 오빠가 기타 연주해도 되고, 아니면 재형이가 노래 불러도 되고.”
“내가?”
“저번에 흥얼거리는 거 들어보니 노래 잘하던데?”
그러자 옆에 있던 전완수가 한 수 거들었다.
“맞아, 재형이가 축가도 종종 불렀지. 노래 불러서 용돈 벌고 그랬어.”
“그건 아는 사람 결혼식이었고.”
“와…… 지금 찬혁이 형 모르는 사람이라고 선 긋는 거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당황스러운 마음에 곽찬혁을 쳐다보자, 그는 헛기침과 함께 시선을 회피했다.
전완수와 최현이 분위기를 몰아가기에,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알았어, 알았어. 하면 되잖아. 사람 민망하게 몰아가고 그래.”
뭐가 그리도 좋은지, 전완수와 최현, 그리고 설여원까지 시시덕거렸다.
그래도 일행의 밝은 표정을 보고 있으니, 덩달아 미소가 번졌다.
곽찬혁은 일행의 모습을 가볍게 훑더니, 손뼉을 치며 얘기했다.
“자자, 다들 마음은 고마운데, 일단 퀘스트부터 완료해야지?”
곽찬혁의 말이 맞다.
부푼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눈앞의 퀘스트부터 완료해야 한다.
우린 좀비화의 재사용 대기시간이 돌아올 때까지 작전 회의에 돌입했다.
* * *
작전 회의의 주요안건은 사이코패스들 사이에 남아 있는 4명의 플레이어였다.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것으로 보아 밖에서 일어난 일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게 되고, 이는 수성 호텔에 남아있을 확률이 높다는 뜻이 된다.
설여원은 내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좀비화 재사용 대기시간은 얼마나 남았어?”
“아직 4시간 남았어.”
8시간 동안 카페 4층에 앉아 기다렸지만, 변종의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았다.
슬슬 해도 떨어지고, 어스름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좀비와 변종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질 시간이니, 남은 3마리의 변종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까?
난 곽찬혁을 쳐다보며 물었다.
“찬혁이 형, 수하들 위치는 변함없어요?”
“어, 아직 조용해.”
곽찬혁은 수성 호텔로 향하는 언덕에 100마리의 수하를 배치하고, 나머지는 수성못을 따라 정찰을 보낸 상태였다.
하지만 3마리의 변종은 인기척을 지웠는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변종의 위치를 파악해야 우리도 편하게 움직일 텐데, 곤란하기 짝이 없다.
최현은 콧잔등을 긁적이며 눈치를 보더니, 헛기침과 함께 얘기했다.
“혹시…… 벌써 수성못을 떠난 건 아니겠지?”
“떠났으면 퀘스트에 표시될 거야.”
“너무 조용한 거 아니야?”
“그래서 대기하고 있는 거잖아.”
최현이 고개를 갸웃거리기에, 난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수성 호텔에 남은 15명, 그것들 잡으려고 건물 내에 변종이 있을지도 모르니 좀비화의 재사용 대기시간을 기다리는 거라고.”
“그런 거였어?”
“그럼 왜 기다린다고 생각한 거야?”
“……그냥?”
최현이 멋쩍은 표정을 짓자, 상황을 지켜보던 설여원은 고개를 저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완수 어디 갔어?”
설여원의 물음에 자리에서 일어나 4층 내부를 살폈다.
뒤이어 우측 모서리에 앉아 블라인드 사이로 창밖을 바라보는 전완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완수야, 거기서 뭐해.”
전완수를 부르자, 그는 들고 있던 망원경을 내려놓으며 싱겁게 웃었다.
“아무도 보초를 안 서니, 나라도 서야지.”
“찬혁이 형 수하들이 쫙 깔렸는데 뭐가 걱정이야.”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전완수는 걱정하지 말고 쉬라는 말과 함께 계속해서 창밖을 살폈다.
전완수도 피곤할 텐데, 어떻게든 도움이 되려고 하는 모습에 난 엷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최현은 신발을 벗고 발가락을 주무르더니, 양말을 벗고 엄지발가락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설여원은 눈살을 찌푸리며 얘기했다.
“아 냄새나게 왜 양말을 벗고 그래.”
“무좀 걸리기 싫으면 미리미리 말려야지. 안개 속에 있으면 신발도 축축해지잖아.”
습기를 머금은 안개 속에 오래 있으면 호흡도 힘들 뿐 아니라, 옷도 눅눅해졌다.
4층은 안개가 없기에, 최현은 양말을 벗고 맨발로 걸어 다녔다.
설여원은 뚱한 표정을 짓더니, 덩달아 신발을 벗고 본인의 발 냄새를 맡았다.
뒤이어 3초간 정색하더니, 인중을 긁적이며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이거 현이 발 냄새야, 내 냄새 아니야.”
설여원의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알았으니 편히 있으라고 하자, 설여원은 화장실 쪽의 탁자 위에 앉으며 두 다리를 앞뒤로 저었다.
저런다고 양말이 마르나.
은근히 엉뚱한 구석이 많았다.
“재형아, 재형아!”
그 순간, 우측 모서리에 있던 전완수가 다급히 내 이름을 불렀다.
전완수의 곁으로 향하자, 그는 망원경을 건네며 얘기했다.
“봐봐.”
“1층이면 안개 때문에 안 보여. 무슨 일인데 그래.”
전완수는 창밖을 바라보더니, 마른침을 삼키며 얘기했다.
“변종이야.”
전완수의 말에 뿔뿔이 흩어져있던 일행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창가로 달려왔다.
난 곽찬혁을 쳐다보며 물었다.
“형, 수하들 주변에 있는 거 아니었어요?”
“이 밑에는 일부러 배치 안 했지. 먹잇감이 생기면 변종들이 여기까지 올라올지도 모르잖아.”
곽찬혁의 말도 일리는 있다.
전완수가 창밖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위험할 뻔했다.
난 전완수를 쳐다보며 물었다.
“변종들 숫자는.”
“셋, 그런데 좀…… 이상해.”
“왜, 이쪽 쳐다보고 있어?”
“아니, 이쪽은 관심도 없어.”
“그럼 뭐가 이상하다는 거야.”
“시체를…… 뜯어먹는데?”
“무슨 시체. 좀비들? 찬혁이 형 수하는 이미 죽은 변종들이 다 먹은 거 아니었어?”
“아니 좀비 말고. 죽은 변종의 시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