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71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171화
전완수의 눈빛과 목소리가 지나치게 살벌해서, 반사적으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황덕록과 전완수 사이에 오가는 눈싸움.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졌다.
전완수가 먼저 차량에서 내리기에, 황급히 따라 내렸다.
“미쳤어? 여기서 덕록이랑 한바탕하려고?”
“보면 몰라? 쟤 지금 정신 놨어. 처맞아야 한다고.”
“지금 덕록이가 어떤 기분이겠어. 우리가 양해…….”
“야, 박재형.”
전완수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이에 대답 대신 전완수를 쳐다보자, 그는 폐부 깊숙이 숨을 들이쉬며 얘기했다.
“아무리 상태가 안 좋고, 아무리 기분이 안 좋아도, 최소한의 선은 지켜야지.”
“…….”
“충분히 기분 안 좋은 거 알아. 적당히 우울해하면 나도 넘어가려고 했어. 근데 선 넘었잖아.”
“…….”
“우리가 애야? 본인 기분 나쁘다고 다른 사람들 눈치 보는 거 알면서, 저 지랄 하는 게 맞아?”
전완수도 쉽게 넘어갈 생각이 아니었다.
이마에 핏대가 솟은 것만 봐도, 지금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지 알 수 있었다.
이에 한숨을 내쉬며 얘기했다.
“과하면 바로 말린다.”
“알겠어.”
드르륵-
뒤이어 차 문이 열리며 황덕록이 내렸다.
황덕록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얘기했다.
“내리라고 하면, 내가 못 내릴 거 같아?”
전완수는 뻐근한 몸을 풀며 황덕록을 노려봤다.
난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으며 다시금 승합차에 올랐다.
차 문을 닫고 시선을 외면하자, 옆에 있던 설여원이 불안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야, 안 말리고 뭐해?”
“말리면 답이 나와?”
“다들 미쳤어? 왜 그래 진짜!”
설여원은 최현과 나, 정진영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정진영은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팔짱을 꼈다.
그 모습이 못마땅했는지, 설여원은 인상을 찌푸리며 얘기했다.
“오빠까지 이러면 어떡해요! 보호관찰로 왔으면서!”
“덕록이가 자초한 일이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덕록이 부모님 돌아가신 게 덕록이 탓도 아니잖아요!”
설여원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묻기에, 내가 대신 입을 열었다.
“맞아, 부모님 돌아가신 건 덕록이 탓이 아니지. 하지만 우리한테 화풀이하는 건 아니잖아?”
“좀 봐주면 안 돼? 가뜩이나 힘든 애를 굳이…….”
“언제까지? 언제까지 봐주면 되는데?”
덤덤하게 묻자, 설여원은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난 이마를 문지르며 말을 이었다.
“처음엔 뭐든 배려로 시작하지, 그 배려에 익숙해지면 돌이킬 수 없어. 차라리 지금 완수가 나서는 게 맞을지도 몰라.”
“뭐?”
“몽둥이가 약일 때도 있다고.”
설여원은 얼빠진 표정으로 내 얼굴을 쳐다보더니, 콧방귀를 뀌며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물었다.
“지금이 1900년도 말이야? 장난해?”
“어렸을 때 사이 안 좋던 친구랑 죽일 듯이 싸우고, 다음 날 매점 가서 빵이랑 우유 사 먹으면서 진지한 얘기 나눠본 적 있어?”
“…….”
“자존심, 억울함, 증오, 후회, 분노, 오기 등등, 이런 문제가 한 번에 해결되는 게 학창시절의 다툼이야.”
“지금은 다툼이 아니잖아! 폭력이라고! 폭력이 정당하다는 거야?”
“정당하다는 게 아니야. 네가 보기엔 저 둘이 상하관계 같아? 완수랑 덕록이가 무슨 왕따랑 일진이야?”
“…….”
설여원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이에 이마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동등한 친구 관계에서의 주먹 다툼이야. 누구를 죽여 버리겠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싸우는 게 아니라고.”
“그럼 뭔데?”
“정신 차리라는 거야. 폭력이 정당하지 않다는 건 나도 알아. 하지만 백 마디 위로보다, 저런 주먹 다툼 한 번이 시원하게 끝날 때도 있어.”
“쟤들이 질풍노도의 10대도 아니고, 새벽 4시 다 돼가는데 길에서 싸우는 게 정상이야?”
“이건 친구끼리 싸워본 놈들만 아는 거야.”
최현을 쳐다보자,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얘기했다.
“나도 예전엔 완수랑 많이 싸웠어.”
“주먹으로 싸웠다고?
설여원이 눈살을 찌푸리며 묻자, 최현은 아련한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런 적이 있었지.”
설여원은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더니, 창밖의 상황을 살폈다.
어느새 전완수와 황덕록은 서로를 향해 주먹을 날리고 있었다.
쾅!
차량에 부딪히는 전완수의 상체.
그 위로 주먹을 달리는 황덕록.
전완수는 고개를 비틀어 황덕록의 주먹을 회피하더니, 그대로 팔을 잡고 꺾어버리는 모습을 보였다.
설여원은 보다 못해 차량의 문고리를 잡았다.
이에 설여원의 팔을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 아니야.”
“놔!”
“때리는 사람도 포기하고, 맞는 사람도 포기하는 순간까지 기다려.”
“…….”
“둘 중 한 명이라도 과하다 싶으면 말릴 테니까, 넌 기다려.”
설여원이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앞에 있던 최현이 얘기했다.
“누구든 처맞기 전에는 몰라.”
“……뭐?”
“본인이 흥분해서 선 넘었다는 거.”
“뭔 소리야 또.”
“남자들끼리는 선이 있다고. 내가 이 선을 넘으면 저놈이 때려도 할 말이 없다, 하는 선이. 덕록이는 그걸 넘었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21살 먹고 저렇게 선 넘은 건 바보거나, 다른 이유가 있는 거야.”
설여원이 눈살을 찌푸리자, 최현은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다.
“덕록이가 바보는 아니니 이유는 하나야. 속이 썩어 문드러질 듯이 답답하니까, 누구든 걸려라, 나 좀 말려줘라. 이런 거야.”
“그렇다고 때려?”
“완수가 총대 멘 거야.”
“……?”
“진영이 형이 나서면 그림이 이상하고, 재형이가 나서면 뼈 부러지는 거로 안 끝나니까 완수가 나선 거라고.”
“너는?”
“난 쫄보여서 눈치 보고 있었고.”
최현은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지만, 난 분명히 봤다.
핸들 쥐고 있는 게 전완수였기 때문에 전완수가 나선 것이다.
최현이 핸들을 쥐고 있었다면 최현이 나섰을 것이다.
황덕록의 말을 듣고, 조수석에 있던 최현이 두 주먹을 말아쥐는 걸 분명히 확인했다.
설여원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최현은 어깨를 으쓱이며 얘기했다.
“나도 싸움이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반대하면 말리라고!”
“하지만 완수랑 주먹다짐하고 지금까지 붙어 지내는 거 보면, 필요한 순간이 있는 것 같긴 해.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됐거든.”
“…….”
“완수가 막무가내처럼 보일 수 있지만, 예전에 나한테 욕하면서 주먹 날렸을 때도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잘못이 컸거든.”
“……그래서 지켜보겠다고?”
“완수의 방식이 거친 건 맞지만, 효과는 좋으니까.”
최현이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자, 설여원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얘기했다.
“미쳤어, 하여튼 이해가 안 돼.”
“이해할 필요 없어. 그러려니 해. 저렇게 스파링하면서 진정하는 거야.”
설여원이 씁쓸한 표정을 짓자, 최현은 헛기침과 함께 얘기했다.
“그리고 쟤들 싸우는 거 보면 모르겠어? 둘 다 좀비만 수백 마리 죽인 놈들이야. 인간의 약점은 다 알고 있는데 일부러 급소는 피해서 때리잖아.”
“…….”
“나이 더 먹고 저러면 나잇값 못하는 거지만, 아직은 젊잖아. 혈기왕성할 때 저러는 거지 언제 또 저러겠어.”
설여원은 황덕록과 전완수의 모습을 바라보더니, 결국 세차게 혀를 차며 시선을 외면했다.
여전히 못마땅하지만, 일리는 있어서 따르는 것으로 보였다.
난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며 최현과 정진영에게 얘기했다.
“아직 둘 다 팔팔하니, 10분만 더 기다리죠.”
일반인보다 몇 배는 높은 체력 때문에, 두 사람은 쉬이 지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 * *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두 사람은 30분이나 쉬지 않고 싸운 뒤에야 현저히 느려진 모습을 보였다.
둘 다 힘이 풀렸는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허공에 주먹질하기 시작했다.
난 창밖의 상황을 유심히 살핀 뒤, 최현과 정진영에게 얘기했다.
“둘 다 지친 것 같으니 이제 말리죠.”
“그러자.”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차량에서 내렸다.
황덕록과 전완수는 서로의 멱살을 잡고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팔을 뻗을 힘도 없는지, 멱살만 잡고 버티는 모습.
“야야! 그만해, 그만!”
최현이 전완수를 붙잡고 말리기에, 난 황덕록을 붙잡았다.
정진영은 중앙에서 말리며 전완수와 황덕록에게 얘기했다.
“지금 너희들끼리 싸울 때야? 둘 다 정신 좀 차려!”
전완수와 황덕록은 서로를 노려보며 씩씩거릴 뿐,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정진영은 전완수를 쳐다보며 얘기했다.
“완수 너, 분노조절 장애도 아니고 갑자기 차 세우고 이 난리를 쳐?”
“형! 저놈이 먼저 정신 나간 소리 했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리고 덕록이 너! 이게 맞다고 생각해?”
“…….”
“실망스럽다. 이렇게 치고받고 싸우고, 너희가 질풍노도의 10대야? 성인이면 성인답게 행동해야 할 것 아냐!”
조금 전까지 설여원이 했던 말을 정진영이 하고 있었다.
정진영도 설여원의 말이 옳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전완수도 오래 참았고, 황덕록도 정신 차려야 할 필요가 있기에, 알면서도 말리지 않았다.
황덕록은 이 악물고 계속해서 발악했다.
이에 더욱 거세게 황덕록의 팔을 잡았다.
뻑!
그 순간, 황덕록은 팔꿈치로 내 콧대를 때렸다.
코끝을 짜르르 울리는 통증에 반사적으로 두 눈이 감겼다.
황덕록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전완수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전완수는 최현의 손길을 뿌리치며 황덕록의 안면에 주먹을 꽂으며 외쳤다.
“정신 좀 차리라고 인마!”
“X발…….”
황덕록이 비틀거리면서도 포기하지 않자, 전완수는 참아왔던 말을 쏟아냈다.
“돌아가셨다고!”
“…….”
“이미 돌아가셨다고! 너희 부모님도! 우리 부모님도! 후회해도 소용없다고!”
전완수가 소리치자, 황덕록은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곧 황덕록의 숨이 점점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전완수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았지만, 전완수의 눈가가 충혈된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껏 내색하지 않았지만, 전완수도 부모님 생각을 많이 했던 모양이다.
최현은 씁쓸한 표정을 짓더니, 한숨을 내쉬며 전완수의 팔을 잡았다.
그러나 전완수는 멈출 기미가 없었다.
“너만 힘들어? 여기서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어! 다들 네 걱정돼서 이러는 거 아냐! 왜 5살 애새끼처럼 혼자 토라져서 다른 사람한테까지 개소리하냐고!”
“…….”
“너 재형이랑 여원이 입장은 한 번이라도 생각해 봤어? 부모님이 서울에 있는데, 우리랑 한 약속 때문에 참고 있는 거 몰라?”
전완수가 울분을 담아 소리치자, 황덕록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뒤이어 코를 훌쩍이더니, 참아왔던 눈물을 쏟아냈다.
“크흑…… 흐윽…….”
난 조심스레 황덕록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황덕록은 울먹이며 얘기했다.
“잡채…… 잡채 먹으러 갔어야 하는데…….”
잡채를 읊조리며 통곡하는 황덕록을 보고, 난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미친놈인가?
이 와중에 잡채 타령이라니?
어찌할 방도가 없어 멍하니 황덕록을 쳐다보자, 그는 계속해서 코를 훌쩍이며 얘기했다.
“그날…… 나 좋아하는 잡채 해놨다고…… 일찍 들어오라고 그랬는데…….”
“…….”
“내가 일찍 들어가서…… 같이 있었다면…….”
아, 부모님과 함께 있었어야 한다는 얘기였구나.
씁쓸한 마음에 황덕록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황덕록은 정신을 다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전완수와 정진영에게 얘기했다.
“미안하다 완수야, 그리고…… 미안해요. 진영이 형.”
훌쩍이며 얘기하는 황덕록을 보고, 정진영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그를 위로해 주었다.
옆에 있던 설여원은 내 얼굴을 쳐다보며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다소 투박하고 거칠지만, 백 마디 말보다 효과적인 위로였다.
난 훅, 하고 숨을 뱉으며 황덕록에게 물었다.
“덕록아, 아크 입장권은 생겼어?”
“아직 확인 안 해봤어.”
“확인해 봐. 연계 퀘스트 생겼는지.”
황덕록은 몇 번이나 코를 훌쩍이며 홀로그램을 열었다.
뒤이어 황덕록의 눈앞에 떠오른 홀로그램을 보고, 모두가 말문이 막혔다.
-부모님의 안부를 확인하세요.
클리어가 안 됐다.
이를 확인한 전완수는 주먹을 쥐었다 펴며 물었다.
“이 새끼 진짜 죽여도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