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75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175화
쉘터에 도착한 생존자들은 이신혜에게 신체검사를 받고, 헬스장 샤워실로 이동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생존자들은 간만에 느껴보는 안도감에 눈물을 글썽였다.
생존자들의 마음이 진정된 뒤에야, 그들에게 있었던 일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황덕록의 아버지가 본래 생존자들을 이끌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체 모를 좀비들이 그들의 은신처를 습격했고, 많은 이가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평범한 좀비들이 아니었어요. 다친 사람은 죽이고, 멀쩡한 사람은 밧줄로 묶어서 데려가더라고요.”
황덕록의 어머니는 그날의 참상을 떠올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말없이 최현을 쳐다보자, 그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황덕록의 어머니를 쳐다보며 물었다.
“좀비들이 다른 좀비들보다 많이 강했나요?”
“힘으로는 이길 수 없었어요.”
“편하게 말씀하셔도 돼요. 저도 덕록이 친구예요.”
황덕록의 어머니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날의 참상을 들려주었다.
많은 남자들이 여자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고 한다.
하지만 좀비들은 너무나 강했고, 마치 명령을 받고 움직이는 것처럼 행동에 머뭇거림이 없었다고 한다.
굳이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최현이 봤다는 부회장의 기억.
부회장이 달성공원 근처의 쉘터를 찾았고, 그곳에 있던 생존자들을 대명동으로 데려갔다는 말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대명동 별다방 카페에서 황덕록이 발견한 어머니의 작업복도, 달성공원 생존자 중 한 명일 것이다.
그 뒤로 은신처를 수비할 여력이 안 돼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동했다고 한다.
좀비들의 혈흔으로 체취를 가리고, 최대한 접촉을 줄이기 위해 3호선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3호선 레일을 따라 이동하며 마트나 편의점이 보이면 필요한 식품을 구한 모양이다.
난 팔짱을 끼며 물었다.
“그 생활을 얼마나 하신 거예요?”
“보름 가까이 그렇게 살았어요.”
“말씀 편하게 하셔도 돼요. 저도 덕록이랑 동갑이에요.”
쓴웃음을 지으며 얘기하자, 황덕록의 어머니는 사람들의 얼굴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그럼…… 지금부터는 말 편하게 할게.”
“네. 그럼 오늘은…… 어쩌다 좀비들한테 발각된 거예요?”
“마트에서 식료품 들고나오는 길에 공명하는 좀비한테 발각됐어.”
그제야 상황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황덕록의 어머니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 숙이더니, 애써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다들 고마워. 고맙다는 말로 표현이 안 될 정도로.”
“…….”
“구해줘서 고맙고, 우리 덕록이랑 같이 있어줘서 고맙고, 이렇게 잘 지내줘서 고맙고.”
황덕록의 어머니가 눈물을 글썽이자, 옆에 있던 설여원이 황덕록을 쳐다봤다.
눈치를 주며 안아드리라는 시늉을 보였다.
황덕록은 헛기침과 함께 조심스레 어머니의 등을 토닥이며 안아주었다.
곽찬혁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생각을 정리하더니, 폐부 깊숙이 숨을 들이쉬며 얘기했다.
“슬슬 저녁 시간이니, 남은 얘기는 식사하면서 듣죠. 사람들이랑 인사도 하고요.”
* * *
곽찬혁은 식당에 모인 황금동 생존자들에게 달성공원 생존자들을 소개했다.
모두가 색안경 없이 그들을 반겨주었다.
황금동 쉘터 사람들이 곽찬혁과 결인들을 신뢰하는 만큼, 우리가 데려온 생존자에게 쉬이 마음을 열어주었다.
저녁 식사와 함께 라스트아크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고, 달성공원에서 온 생존자들은 우리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이정우의 설명에 생존자들은 못 믿는 표정을 지었지만, 작금의 시간을 돌아보며 서서히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설여원은 바삐 숟가락을 움직이며 내게 물었다.
“재형아.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야?”
“뭐가?”
“이제 덕록이 메인 퀘스트도 완료됐으니, 내일 구미로 가는 거야?”
설여원의 물음에 난 대답 대신 일행의 표정을 살폈다.
다들 내색하지 않았지만, 눈빛이 많이 흐려졌다.
휴식이 필요해 보였다.
아무리 신체 능력이 증가해도, 우리가 기계는 아니니까.
난 설여원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일단 좀비카부터 수리하고, 프린트로 무기랑 보호대 만든 뒤에 생각하자.”
“괜찮겠어? 지금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파티 있던데.”
“치고 올라오는 파티?”
“홀로그램 열고 파티목록 확인해 봐.”
설여원의 말을 듣고 곧장 파티목록을 열었다.
첫 번째 에피소드를 클리어할 당시만 해도, 파티를 형성한 플레이어는 우리가 유일했다.
하지만 지금은 파티목록에 빼곡하게 적힌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장 위에 있는 파티는 파티 소리결.
그 밑에 있는 파티는 영어로 적혀 있었다.
번역 기능이 있기에, 파티 정보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파티명: 시원한 맥주
-파티장: 제임스
-파티원: 12
-각성 여부: O
-국적: 미국
12명의 플레이어가 전부 각성한 미국인 파티.
파티명이 특이하다.
외국인의 눈에는 우리 소리결도 특이하려나?
설여원도 홀로그램을 확인하더니, 세 번째에 적힌 파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얘기했다.
“여기, 이 파티를 주목해야 돼.”
파티목록에서 3위를 차지하고 있는 파티.
설여원이 가리키는 파티는 한자로 적혀 있었다.
이번에도 번역기를 돌려서 확인했다.
-파티명: 홍런
-파티장: 위저홍
-파티원: 47
-각성 여부: X
-국적: 중국
파티원의 숫자를 보고 반사적으로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야 이것들? 47명이 한 파티에 있다고?”
“공격대 목록도 봐봐.”
설여원이 시키는 대로 공격대 목록을 살피자, 소리결 공격대는 5위에 안착한 상태였다.
1위부터 3위까지 전부 중국이고, 4위가 미국, 그 다음이 한국이었다.
문제는 중국의 공격대는 각성한 파티가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물량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건가?
파티목록과 공격대 목록을 번갈아 확인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러면 안 되는데.
설여원은 콧잔등을 긁적이며 물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인데, 각성 퀘스트 조건 기억나?”
“문제 있는 쉘터를 찾아서 파괴하는 거? 그게 왜.”
“만약에 말이야, 파티 자체에 문제가 있으면 어떻게 되는 거야? 쉘터를 파괴하라는 퀘스트가 생성될까?”
그건…… 나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가만히 턱을 매만지며 생각을 정리하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설여원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무슨 생각해?”
“지금 파티목록 3위에 있는 홍런이란 파티, 언제부터 3위였어?”
“몰라, 일주일 전에는 목록에도 안 보이더니 갑자기 올라왔어.”
일주일 만에 전 세계 모든 파티를 꺾고 3위까지 올라왔다고?
홍런의 파티원들은…… 이제야 첫 번째 에피소드를 클리어한 건가?
그래야 파티 등록이 가능하니, 어쩌면 최근에 첫 번째 에피소드 클리어 조건을 달성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럼 다행이지만, 만약 그게 아니라면…….
곤란한 마음에 혼잣말처럼 읊조렸다.
“하…… 이것들 스피드런 같은데.”
“스피드런? 그게 뭐야.”
“타임어택. 라스트아크 같은 경우는 클리어만 보고 달리는 거지.”
“그럼 좋은 거 아니야? 우리도 마찬가지잖아.”
설여원의 물음에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
저들이 라스트아크에 대한 정보가 있으면 스피드런을 해도 상관없지만, 세 번째 에피소드에 대한 정보도 없이 무작정 달린다면…….
저들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독 안개가 퍼지는 순간, 각성하지 못한 파티는 전멸이다.
최소한 대책은 마련하고 저질러야 하는데, 아무런 대책 없이 두 번째 에피소드를 클리어하면 자결이나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저들이 독 안개에 죽어버리면 전부 대장 좀비로 변이된다는 것.
또한 두 번째 에피소드를 클리어한 파티가 나타나면 세상은 그에 맞춰 변화한다는 것.
이러한 생각을 설여원에게 들려주자, 그녀는 인상을 찌푸리며 파티목록을 살폈다.
“미쳤네 이것들.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어차피 우린 각성했으니 독 안개는 상관없지만…… 앞으로 나올 변종에 대비해야지.”
“대비라면 무기?”
“그렇지. 코인부터 빨리 모아야겠는데?”
“이번에 달성공원 가면서 많이 모이긴 했어.”
설여원은 본인의 홀로그램을 열고 코인 상점을 확인했다.
천리안을 배우는 데 1,000코인을 사용했고, 남은 코인은 사용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코인을 확인했을 때 1,716코인이 있었는데, 지금은 2,142코인이 있었다.
그렇다면 명덕역과 남산역 사이에서 4,260마리의 좀비를 죽였다는 말이 된다.
설여원은 남은 코인을 보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내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독 안개 제거 레벨 좀 높여둘까?”
“초조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 홍런이란 파티가 두 번째 에피소드를 클리어하면 우리 눈에도 홀로그램이 떠오를 거야.”
“그때 레벨을 높여도 상관없다는 거지?”
“그렇지.”
설여원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금세 손톱을 깨물었다.
내심 불안한 모양이다.
이에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그런 걱정은 나중에 하고, 지금은 우리만 생각하자. 우리도 할 일 많잖아?”
“……그래.”
이른 저녁으로 든든히 배를 채우고, 다가올 내일을 위해 일찍이 잠자리에 들었다.
* * *
초가을의 선선한 공기가 여름의 온기를 밀어내고, 매미들의 빈자리를 귀뚜라미가 대신할 무렵, 가을이 당도했다는 걸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며칠 전만 해도 낮 기온은 여름의 기운이 남아 있었는데, 이젠 긴팔을 입지 않으면 서늘한 냉기가 느껴졌다.
그동안 이삿짐 트럭은 모두 개조를 마쳤고, 길거리에 보이는 온전한 트럭들도 좀비카로 개조했다.
철판은 부족하지 않았다.
A구역과 B구역에 있는 바리케이드를 뜯었을 뿐인데, 좀비카를 제작하고도 남을 정도로 많은 철판이 모였다.
모든 생존자는 한 몸처럼 움직였고, 그들의 표정에는 생기가 돌았다.
그동안 불안과 공포에 시달렸던 생존자들이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몸을 쓰고, 내일을 위해 준비하며 희망을 되찾았다.
대명동 사건으로 세상을 떠난 모든 이들을 위해 뒷산에 무덤도 만들었다.
먼저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를 올리고, 그들의 유품을 함께 묻었다.
그동안 파티 소리결은 주변 정리에 박차를 가했다.
최대한 많은 코인을 얻기 위해 설여원과 나, 최현, 정진영, 이정우는 거리를 활보하며 좀비들을 처리했다.
전완수는 차량 개조로 투입되어서 바깥 활동을 하지 못했다.
보름이면 끝날 줄 알았지만, 어느새 한 달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오늘, 황금동의 마지막 회의가 한지현의 방에서 열렸다.
곽찬혁은 거실에 모인 모든 사람을 바라보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다들 몰골이 말이 아니네요.”
이전에 비하면 푹 쉬어가면서 활동했지만, 몰골은 거지꼴이나 다름없었다.
덥수룩하게 자라난 수염과 어깻죽지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
멋쩍은 마음에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살폈다.
다들 나와 다를 바 없었다.
곽찬혁은 사람들의 표정을 가볍게 훑으며 말을 이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늘 낮에, 마지막 좀비카 제작이 완료되었습니다.”
이덕배가 박수를 치자, 거실에 모인 사람들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따라서 손뼉을 쳤다.
“내일부터 아파트에 있는 짐을 좀비카로 옮기고, 모든 정리가 끝나면…… 저흰 부산으로 이동할 생각입니다.”
곽찬혁의 입에서 나온 말에,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이제 진짜 이별이구나.
곽찬혁도 이를 느꼈는지, 애써 엷은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저번에도 얘기했다시피 저희가 먼저 가서 기다리겠습니다. 여러분이 부산에 와서 편히 쉴 수 있도록, 황금동 쉘터 같은 곳을 마련해 둘게요.”
“쯧, 그냥 같이 가도 될 것을…….”
이덕배가 아쉬운 마음에 혀를 차자, 곽찬혁은 싱겁게 웃으며 얘기했다.
“비록 몸은 멀어져도, 서로의 안부는 확인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안부를 어떻게 확인해? 비둘기 다리에 편지라도 써서 붙일까?”
이덕배가 퉁명스럽게 얘기하자, 이번엔 소파에 앉아 있던 이정우가 입을 열었다.
“확인할 수 있습니다. 파티 소리결과 황금동이 공격대로 설정된 이상, 서로 간의 거리가 20㎞ 이상 떨어지면 홀로그램으로 표시돼요.”
“그게 무슨 말이야? 홀로그램으로 서로의 위치를 알 수 있다고?”
“위치까지 확인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설명에는 각 파티의 파티장은 공격대원의 일과를 확인할 수 있다고 적혀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