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game charac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79
종말 속 게임 캐릭터가 되었다 179화
설여원은 미간을 찌푸리며 주변을 살피더니, 곧 버스 위로 올라서며 얘기했다.
“희연아, 너도 여기 올라와서 저쪽 맞은편 아파트 확인해 줘.”
“아, 네!”
설여원은 버스 위에 서서 망원경을 들고 박재형의 이동 경로를 살폈다.
저 멀리, 놀이터로 이동하는 전완수와 이정우, 박재형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설여원은 아파트 외관을 살피며 혹여나 숨어 있을지도 모를 변종의 위험을 대비했다.
김희연도 버스에 올라서며 도로 맞은편에 있는 또 다른 아파트를 응시했다.
설여원의 말이 내심 걸리는지, 변종의 움직임을 확인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 * *
이정우는 출입 현관에 서서 바닥에 즐비한 유리 파편을 응시했다.
난 이정우의 등에 손을 얹으며 얘기했다.
“들어가죠.”
“……그래.”
이정우는 두 주먹을 말아쥐며 계단으로 향했다.
현관 유리가 깨졌다는 건 이미 좀비들의 습격이 있었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두 눈으로 거실을 확인한 것도 아닌데, 차오르는 불안감을 떨쳐낼 수 없었다.
난 이정우를 뒤따르며 최대한 감정을 조절했다.
5층에 도착하자, 이정우는 좌우로 쭉 뻗은 복도의 상황을 살폈다.
인기척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발소리를 죽인 채 우측으로 이동했다.
507호 앞에 도착하자, 이정우는 조심스레 도어록에 손가락을 얹었다.
삑- 삑- 삑삑.
띠리릭-
굳게 닫혀 있던 현관을 열고 들어가자, 습한 공기와 곰팡내가 코끝을 자극했다.
시큼한 냄새에 눈살을 찌푸리며 실내를 살피자, 부엌에 있는 식용유와 각종 도구들이 바닥에 널브러진 상태였다.
전완수는 칼자루에 오른손을 얹은 채, 실내를 살폈다.
후우웅-
깨진 거실 창문에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찢어진 커튼의 모습이,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었다.
안방으로 들어간 이정우는 탁자에 놓인 가족사진을 보고 아랫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난 조심스레 이정우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얘기했다.
“형, 바로 이동하죠.”
“…….”
“퀘스트 완료 메시지 안 뜬 거로 봐서는 순천향병원에 부모님 계시는 거 같아요.”
이정우는 폐부 깊숙이 숨을 들이쉬며 격양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가족사진을 챙기며 얘기했다.
“가자.”
이정우와 함께 거실로 나오자, 황급히 옷방을 닫는 전완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것도 아니고, 전완수의 이상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전완수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어…… 다 확인했어요?”
“왜?”
“다 확인했으면 이만 나가자고.”
전완수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지만, 웃는 얼굴이 어색했다.
보면 안 되는 거라도 본 것처럼, 심히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이에 전완수의 곁으로 걸어가 옷방의 문고리를 잡자, 그는 정색하며 내 팔을 잡았다.
전완수의 얼굴을 쳐다보자, 그는 대답 대신 고개를 젓는 모습을 보였다.
……설마.
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뒤에 있던 이정우가 다가오며 물었다.
“뭔데, 안에 뭐 있어?”
“형, 그냥 나가죠.”
“……비켜.”
“형.”
“비키라고.”
전완수는 마른침을 삼키며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더니, 결국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회피했다.
나도 한 걸음을 물러서자, 이정우는 긴장된 표정으로 옷방 앞에 섰다.
뒤이어 천천히 문고리를 돌리고 안으로 들어가더니, 그 자리에 석고상처럼 굳은 모습을 보였다.
미동도 하지 않던 이정우의 어깨가 잔잔하게 떨리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난 어깨너머로 옷방의 모습을 살폈다.
뒤이어 바닥에 엎어진 존재를 보고, 반사적으로 두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가족사진에서 환하게 웃고 있던 남자의 얼굴.
이정우의 아버지.
이정우의 아버지는…… 더는 온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등에는 커다란 상처가 보이고, 뒤통수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상태였다.
뒤에서 습격을 받고, 무언가가 뇌수를 파먹은 흔적이었다.
이정우는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그 자리에 무릎을 꿇으며 멍하니 아버지의 시신을 바라봤다.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무거운 침묵이 옷방에 내려앉았다.
내부를 살피자, 창틀에 묶인 이불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창밖을 살피자, 기다랗게 연결된 이불보가 1층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돌아온 거야.”
그 순간, 마음속의 응어리를 힘겹게 억누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자, 이정우는 이 악물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일하시다가…… 좀비들 나타난 거 보고 집에 돌아온 거야. 엄마가 걱정돼서.”
“…….”
“여기서 식량이 떨어질 때까지 버텼겠지. 결국엔 탈출을 시도했을 거고…… 정문으로 나갈 수 없으니 창문으로 나간 거야.”
“형…….”
“등에 상처가 있는 거로 봐서는 어머니부터 내려보내고, 뒤따라 내려가려다가 공격받은 것 같아.”
“아니 형.”
“사선으로 벤 것 같은 상흔이 네 줄, 손톱으로 그은 거야. 이 정도 힘이면…… 알파 변종. 발소리가 없으니 발치까지 다다른 것도 몰랐을 테고.”
“형!”
목청껏 이정우를 부르자, 그는 붉게 충혈된 눈으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이런 상황에도 이성을 유지하려는 그의 태도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
콧잔등이 시큼해져서, 세차게 혀를 차며 시선을 회피했다.
소리결 파티의 파티장 이정우.
그 자리가 이정우의 어깨를 무겁게 만들었다.
난 아랫입술을 깨물며 울분을 삭인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힘들 땐 그냥 쉬어요.”
“…….”
“형이 전부 짊어질 필요 없어요.”
이정우는 눈시울을 붉히더니, 결국 터지는 울음을 참아내지 못했다.
피 칠갑이 된 아버지의 손을 잡고, 아버지의 등에 얼굴을 묻은 채 오열했다.
“크흑…… 흐흑…….”
그의 어깨로 진동이 느껴지고, 흐느끼는 울음소리 사이로 한탄이 이어졌다.
“아버지 손이…… 손이 너무 차가워…… 너무 차…….”
난 아랫입술을 깨물며 고개 숙였다.
두 눈을 질끈 감고, 묵념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니, 편할 수 없었다.
미쳐버린 세상이 원망스럽고, 좀비와 변종을 향한 분노가 치밀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용서되지 않았다.
내가 라스트아크를 클리어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물론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클리어했을 게임이라는 건 안다.
하지만…… 하지만 그래도…….
내가 모든 것을 망친 것만 같아서, 죄의식을 떨쳐낼 수 없었다.
전완수는 이를 느꼈는지, 조심스레 내 곁으로 다가와 내 등을 토닥였다.
전완수를 쳐다보자, 그는 씁쓸한 표정으로 이정우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비는 수밖에 없었다.
* * *
이정우는 한참이나 눈물을 쏟은 뒤, 조금은 진정된 모습을 보였다.
이동하기에 앞서, 이정우는 전완수와 내 얼굴을 쳐다보며 얘기했다.
“미안하지만…… 우리 아버지 이렇게 두고는 못 갈 것 같아.”
“그럼요.”
“편히 쉬실 수 있도록, 양지바른 곳에 모시고 싶어.”
“근처에 괜찮은 곳 있어요? 아버님께서 생전에 좋아하신 장소나.”
“저 앞에 공원이 있어. 생전에 자주 산책하시던 곳인데, 거기가 좋을 것 같아.”
“가죠.”
장례식 절차를 밟을 겨를은 없었다.
이불보로 아버지의 몸을 감싸고, 책상을 뜯어내 지지대를 만들었다.
이정우가 얘기했던 공원은 아파트 맞은편에 있었다.
경비실에서 챙겨온 삽으로 땅을 파고, 공원에서 가장 양지바른 곳에 아버지를 모셨다.
실개천 너머의 생존자들도 땅 파는 걸 돕겠다고 했지만,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공원 앞에 차량을 정차하고 나오지 말라고 했다.
무덤을 만들고, 주변의 안전을 확보한 뒤에 실개천 너머의 생존자들에게 나오라고 했다.
아무리 안전을 확보했다고 한들, 변종의 위협은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른다.
이에 짧은 묵념 시간을 가지고, 이정우와 정진영, 나, 전완수, 설여원을 제외한 일행은 차량으로 돌아갔다.
이정우는 무릎을 꿇은 채 기도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오래 지나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나며 얘기했다.
“가자, 순천향병원.”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이정우의 퀘스트가 완료되지 않았다는 건 어머니가 살아계실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었다.
우린 버스에 몸을 싣고, 서둘러 순천향병원으로 향했다.
* * *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길 내내, 차내는 귀신이라도 지나간 것처럼 고요했다.
다들 상황에 집중하는 건지, 이정우의 눈치를 보는 건지, 을씨년스러운 세상에 할 말을 잃은 건지, 영문은 알 수 없었다.
난 자욱한 안개가 펼쳐진 세상을 바라보며 상황에 집중했다.
이정우도 겉보기에는 무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속은 썩어 문드러졌을 것이다.
이럴수록 우리가 힘을 내야지.
뒤이어 핸들을 잡고 있던 전완수가 입을 열었다.
“보인다, 병원.”
“병원 주차장까지 바로 들어갈 수 있겠어?”
“가능할 거 같아.”
“그럼 주차장까지 들어가자.”
버스는 병원의 정문을 지나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정문을 지나며 무너진 바리케이드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뜩이나 마음이 좋지 않은데, 무너진 바리케이드를 보니 더욱 심란했다.
이정우의 표정도 이전보다 다소 굳은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결의를 다지는 정도가 아니라, 마음 단단히 먹으려고 독기를 품은 것으로 보였다.
버스가 정차하고, 이정우는 차내의 사람들에게 얘기했다.
“저랑 재형이, 완수가 정찰하고 올게요. 덕배 아저씨랑 현배 아저씨, 만석 아저씨는 여기서 아이들 지켜주세요.”
“맡겨둬.”
“좀비든 변종이든, 낌새가 보이면 절대 밖으로 나오지 말고 무전부터 보내셔야 합니다.”
“알았네.”
이덕배의 대답을 듣고 이정우는 가벼운 목례와 함께 버스에서 내렸다.
뒤이어 중형차, 승합차, 중형 트럭에 타고 있던 결인들이 버스로 다가왔다.
이정우는 일행의 표정을 살피더니, 한 차례 심호흡과 함께 얘기했다.
“재우랑 덕록이, 혜리, 희연이는 덕배 아저씨랑 같이 버스에서 상황 지켜봐 줘.”
“네.”
“진영이랑 현이, 여원이는 우측에 있는 종합센터 확인해 주고.”
“오케이.”
“우리는 정면에 있는 응급센터 확인하자.”
다들 경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ㄱ자 형태의 건물이었다.
설여원은 병원의 외관을 살피더니,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얘기했다.
“여기도 좀비가 없는 거로 봐서는…… 구미는 변종들이 점령한 거 같아요.”
“동감이야. 다들 변종 보이면 섣불리 움직이지 말고 무전으로 알려. 알파 변종은 시각에 민감하니, 지원 도착할 때까지 숨어 있어.”
이정우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각자 위치로 이동했다.
대구는 수성못을 제외하면 대장 좀비들이 점령한 형세였다.
4성 이상의 대장 좀비, 즉 부회장급은 돼야 알파 변종을 사냥할 수 있으니, 4성 이상의 대장 좀비가 없다면 변종이 그 지역을 점령하는 게 당연했다.
물론 수성못에 있던 미확인 변종이 밖으로 나왔다면 대구도 변종의 소굴이 됐을지도 모른다.
구미는 진화한 대장 좀비가 나타나기 전에, 알파 변종이 먼저 도시를 장악한 것으로 추측된다.
우린 현 상황에 집중하며, 정면으로 보이는 응급센터로 이동했다.
1층으로 들어서자, 사방에 널브러진 각종 의료기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찢어진 차트와 넘어진 의자, 깨진 유리 조각이 즐비한 상황.
벽면에 흩뿌려진 혈흔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미 오래전에 굳은 상태.
안개 속에서 혈흔이 굳을 정도면, 시간이 상당히 많이 지났으리라 생각된다.
아파트 외벽에 생존자는 순천향병원으로 오라고 적혀 있었는데, 생존자는 고사하고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흔적만이 남아 있었다.
문득, 병원 입구에서 봤던 무너진 바리케이드가 떠올랐다.
불안하다 싶었는데, 역시 늦은 건가?
슬쩍 이정우의 표정을 살폈다.
이정우는 어떻게든 흔적을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이것저것 뒤적이고 있었다.
아직 퀘스트 완료 메시지가 출력되지 않았다는 건, 희망을 버리기엔 이르다는 뜻이었다.
그 뒤로 1층을 이 잡듯이 살폈지만,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머뭇거릴 필요 없이, 곧장 2층으로 향했다.
안개가 사라지고 시야가 트인 덕에 마음은 편해졌다.
땡그르르-
그 순간, 복도 끝에서 들려선 안 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전 같은 게 떨어지는 소리.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상체를 숙였다.
총성이 들린 것도 아닌데,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그만큼 우린 생존자의 흔적이 절실했고, 상황에 집중하고 있었다.
전완수는 칼자루에 손을 얹으며 소리의 근원지를 가리켰다.
난 두 주먹을 말아쥐며 한 차례 심호흡과 함께 소리의 근원지로 걸음을 옮겼다.